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06화
106화
"어머?"
카드를 만져보던 안젤라는 깜짝 놀랐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평범한 카드였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의 손등에 꽂힐 수 있었을까?
"기라는 거야."
"기?"
"동양 사상 중 하나인데, 기는 온 우주 만물에 가득한 일종의 에너지라고 할 수 있지."
안젤라는 강혁이 하는 이야기를 흥미진진한 얼굴로 들었다.
"그럼 그 기라는 걸 카드에 불어 넣었다는 거야?"
안젤라가 의문스러운 표정으로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아무리 만져보아도 단순한 종이다.
기가 대체 뭐기에 종이로 사람의 피부를 뚫고 들어간다는 말인가?
그녀의 표정을 보고 강혁은 빙긋이 웃었다.
마치 어린 아이 같은 천진한 표정이었다.
안젤라를 안 후 저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강혁은 원래 보여줄 생각은 없었지만 안젤라의 표정을 보고 마음이 변했다.
"잘 봐."
그는 카드 한 장을 다시 건네받은 후, 카드 끝 쪽을 손으로 만졌다.
그리고 단전에서 한 가닥 기운을 일으켜 카드로 보냈다.
"이제 만져봐."
강혁의 말에 안젤라는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조심스럽게 카드를 만져보았다.
"…어때?"
"…달라. 조금 전에는 확실히 종이였는데. 지금도 종이지만 뭔가가 달라 훨씬 단단해."
"자… 이제 내가 하는 걸 잘 봐."
강혁은 카드를 잡고 지나가던 카페의 창틀을 향해 던졌다.
휘리릭~
"와앗! 대단해~ 혁."
나무로 된 창틀에 카드가 꽂혔다.
"아빠 말씀이 맞았어."
안젤라의 말에 강혁이 웃으며 말했다.
"존슨 씨가 뭐라고 했는데?"
"…아빠 말씀이 혁은 초능력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셨어."
안젤라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하하, 그건 너무 나갔다."
"아냐?"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기는… 서양에서 말하는 초능력하고는 조금 다른 거야."
길을 걸으며 강혁은 안젤라에게 태극도설에서부터 시작해서 만물에 대한 동양사상을 설명했다.
"흐흠, 그럼 태극이란 것이 우주 만물의 근원이란 말이지."
"동양에서는 그렇게 생각을 했지."
"갓 파더(God father) 같은 개념이네."
안젤라의 말에 강혁이 웃었다.
"그래. 비슷하지. 하지만 인격은 없으니. 엄밀히 말하자면 차이가 있지."
안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네."
안젤라의 눈에는 호기심이 가득 담겨있었다.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부드러운 머릿결이 바람에 살랑거렸다.
금발은 햇살에 반짝거렸고, 푸른 두 눈망울에는 강혁의 모습으로 가득했다.
신비로운 동양의 현인이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가 새롭지 않은 것이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안젤라는 슬픔에서 벗어나 있었다.
"안젤라도 기를 느끼면서 살고 있어."
"정말?"
"무서운 영화를 보면 어때?"
"……?"
"소름이 끼치지?"
"그… 그렇지."
"팔에 소름이 돋은 건, 눈으로 본 걸 통해 감정이 움직이면서 신체에 변화가 일어난 거야."
"……!"
"눈에 보이지 않는 기가 물리적인 현상을 일으키는 일례지."
강혁의 설명에 안젤라는 조금은 이해가 가는듯했다.
"사실 누구나 기를 느끼고 수련할 수 있어. 건강에도 좋고, 장수할 수 있지."
"흐흠. 그래?"
안젤라가 흥미를 보이자 강혁이 말했다.
"가르쳐 줄까?"
"그래도 돼?"
"하하, 물론이지."
강혁은 안젤라를 커피숍에서 만났을 때, 이미 몸속의 정이 많이 상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나친 슬픔과 오랜 마음고생은 인간이 가지고 태어난 선천지기를 상하게 하는 법이다.
강혁은 안젤라를 위해 자신이 배워온 공부의 일부를 전해줄 생각이었다.
오랜 시간 수련한다면 마음을 다스리고, 건강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호텔로 돌아가자."
안젤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중국의 전통 건축미가 잘 살려져 있는 정자에 60대 초중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는 팔에 흑룡이 새겨진 홍의를 걸치고 용정차를 마시고 있었다.
홍의인은 눈썹이 두껍고 진했으며, 몸집이 장대했다.
턱에는 붓이 연상되는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홍의인은 정자 바깥으로 보이는 정원의 나무를 감상했다.
한참 차를 마시며, 열락을 즐기고 있을 무렴 수하로 보이는 사내가 나타났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사내는 창파오를 입고 있었다.
"솔라스가 홍콩에 나타났습니다."
"뭐? 그게 사실이야?"
"공항에 있는 우리 아이들이 확실하게 확인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잠시 생각하던 홍의인이 말했다.
"솔라스와 그가 조정하는 국제투기집단 때문에 우리 사업이 엉망이 됐어."
차찬을 내려놓으며 수하를 향해 말했다.
"우리 홍방의 100년 사업이 그놈 때문에 뿌리가 흔들릴 지경이야."
"그렇습니다. 방주님."
30대 중반의 사내 역시 솔라스에 대한 원한이 작지 않은 모양이었다.
"놈을 잡아와. 우리 사업에 손해를 끼쳤으니, 손해배상을 청구해야겠다."
"존명."
사내가 허리를 깊숙이 숙이더니 자리에서 물러났다.
"솔라스, 겁도 없이 홍콩에 나타났구나. 크하하핫."
홍의인이 수염을 매만지며 용정차를 입가에 가져가며 비릿하게 웃었다.
조지아 솔라스는 자신의 전용기에서 내려 수행원, 경호원들과 함께 여러 대의 리무진 차에 올라탔다.
이들 차량은 홍콩에 예약해둔 호텔로 향했다.
그들이 도로 위를 달리던 중 이었다.
선두에 탄 차량을 향해 오토바이 한 대가 스치듯 지나갔다.
잠시 후, 차량이 갑자기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그만 가드레일을 박았다.
솔라스가 타고 있는 차량을 앞뒤로 호위하던 차들 중의 하나였다.
상황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뒤에서 솔라스를 호위하고 있던 차량도 똑같이 비틀거리더니 옆 가드레일을 박았다.
그때 다른 도로에서 합세한 대형트레일러가 나타나 솔라스가 타고 있는 차량 앞으로 이동했다.
차를 돌리려고 했지만 양옆으로 두 대의 거대한 트레일러가 퇴로를 막아섰다.
앞 차량의 뚜껑이 열렸다.
솔라스가 탄 리무진 뒤에도 거대한 트레일러가 다가오더니 뒤에서 차를 박았다.
쿠―웅!
충격과 함께 리무진이 떠밀리듯 앞 차량의 트레일러에 올라탔다.
그러자 다시 뚜껑이 닫혔다.
솔라스와 경호원들이 당황하고 있을 때, 리무진 안으로 수면가스가 새어 들어왔다.
잠시 후, 그들 모두 잠에 빠져들었다.
* * *
"지금부터 내가 가르치는 내공 수련법의 이름은 자오단전공이라고 해."
"자오단전공?"
"자시와 오시는 오전 5시부터 7시, 저녁11시부터 1시까지를 일컫는 시간이야."
예약해두었던 호텔로 돌아온 강혁은 안젤라에게 간단히 자오단전공을 강의하기 시작했다.
자오단전공은 강혁이 어린 시절 아버지로부터 전수받은 내공술의 이름이었다.
"가능하다면 매일 두번 즉, 자시와 오시에 걸쳐서 이 단전공을 하도록 해."
"자시와 오시 매일 두 번."
강혁은 자신이 배운 단전공을 다운그레이드 시켜 설명하고 있었다.
사실 강혁은 하루에 모두 네 번에 걸쳐 100일 동안 집중적으로 내공을 수련했다.
이렇게 되면 일상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100일 수련은 대단한 희생이 필요했다.
젊은 남성은 100일 수련기간 동안 절대 몸속의 정을 발설해서도 안 된다.
수련 기간 중에는 차가운 물도 마시면 안 된다.
여성과 가까이 해서도 안 된다.
지켜야 할 계율들이 적지 않았다.
강혁은 이런 것들을 모두 생략하고, 건강을 위해 매일 수련할 수 있는 방법으로 간략화 시켰다.
"그래, 한 번 수련할 때 10분에서 15분 정도 하도록 하고."
안젤라는 눈 하나 깜박거리지 않고, 강혁의 설명에 집중했다.
"중요한 것은 호흡이야."
"호흡?"
"우주에 충만한 기운을 몸속에 받아들이는 거지."
강혁은 마음을 사용하여 우주의 에너지를 몸속으로 받아들이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그렇게 하면 기가 움직인다고?"
"상상력이 중요해. 기가 머리의 정수리를 통해 몸의 정중앙선을 따라 내려온다고 생각해."
"상상력?"
안젤라의 질문에 강혁은 머리를 끄덕였다.
"마음의 인도를 따라 기가 움직이는 법이지."
강혁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며 강조했다.
"숨을 내뱉을 때, 기가 단전으로 모인다고 상상하고 횡격막을 내려야 해."
"횡격막?"
"단전공의 비밀 중 하나는 횡격막에 있거든."
"……?"
강혁은 횡격막을 통해 몸 안의 압력을 만들어 내는 법을 알려주었다.
"좋아, 이젠 실습을 해보자."
강혁은 결좌부좌를 가르쳤다.
어린 시절 발레를 배워 몸이 유연한 안젤라는 금세 자세를 취할 수 있었다.
"좋아, 그럼 명문이 어딘지 알려줄게."
강혁은 안젤라의 뒤로 돌아서 허리부근에 손바닥을 가져갔다.
따뜻한 손길이 피부에 닿자 안젤라는 얼굴이 화끈거리고 숨기 가빠오는 것을 느꼈다.
'…혁.'
안젤라의 동요하는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강혁은 기초적인 운기토납법을 차근차근 알려주었다.
"숨을 들이 쉴 때는 자연스럽게 호흡하고, 내쉴 때는 명문혈 부근의 근육을 살짝 늘려야 해."
강혁은 명문혈이 위치한 곳의 근육을 움직이는 방법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30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 안젤라는 기초적인 운기토납법을 익혔다.
그리고 마음을 사용하는 심상수련법까지 이해하게 되었다.
"역시 처음인데도 잘 배우네."
강혁은 안젤라의 자질이 대단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좋아, 이젠 혼자서도 할 수 있겠다."
강혁은 자신의 제자가 된 안젤라를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좋아, 그럼 이제 동공을 수련해보자."
"동공?"
"움직이면서 호흡법을 수련하는 거지. 가만히 앉아서 하는 건 정공의 일종이야."
강혁은 안젤라를 거실 중앙으로 데려갔다.
그리고 원주를 따라 걷는 법을 알려주었다.
"모두 여덟 걸음으로 한 바퀴를 돌면 돼."
"으음. 여덟 걸음으로 한 바퀴."
"그리고 모두 여덟 걸음을 걸으면 방향을 바꾸어서 다시 여덟 걸음을 걷도록 해."
강혁은 상체와 하체의 위치를 엇갈려서 걷는 방향과,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곳을 향하도록 했다.
"이 자세를 피정사격이라고 하지."
"피정사격?"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