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07화 (107/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07화

107화

안젤라가 원주를 능숙하게 돌 수 있게 되자 강혁은 그녀에게 한 가지 초식을 알려주었다.

"날 따라해 봐."

그는 원주를 돌다가 돌연 뒤로 돌더니 다시 몸을 반회전했다.

"어때, 할 수 있겠어?"

안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해봐."

안젤라는 강혁을 따라서 뒤로 몸을 돌린 후, 앞으로 한 걸음을 나가며 반회전했다.

"좋아, 여기서 팔꿈치를 들면 돼."

강혁은 안젤라의 팔을 움직여 동작을 교정했다.

그녀의 볼이 살짝 상기되었다.

"그리고 팔을 이렇게 움직여서 다시 반대쪽으로 돌리는 거야."

몇 번 시범을 보이고, 동작을 수정해주자 곧잘 따라했다.

"발레를 했다더니……."

강혁은 감탄했다.

몸을 움직이는 것이 예사롭지 않았다.

"내가 잘하는 편이야?"

"하하, 괴물 수준인데?"

강혁은 솔직히 놀랐다.

그가 가르친 것은 신비의 내가권이라 불리는 팔괘장의 한 초식이었다.

최초의 팔괘장이라고 불리는 세 가지 초식 중 첫 번째 단환장이었던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 노삼장이라고 하며 단환장, 쌍환장. 삼천장 모두 세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좋아, 이번엔 사용법을 알려줄게."

강혁은 양손을 들어 안젤라를 향해 겨누었다.

"날 향해서 주먹을 뻗어봐."

안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심해. 내가 이래 보여도 예전에는 복싱클럽에서 매주 트레이닝을 거르지 않았다고."

강혁은 안젤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마치자마자 쏜살같은 펀치가 강혁의 안면을 향해 날아왔다.

보통 이런 주먹은 고개를 움직여 어깨 위로 흘렸다.

하지만 팔괘장은 사람들의 상상을 초월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주먹이 강혁이 겨누고 있는 팔 주위를 지나는 순간이었다.

강혁의 팔이 안젤라가 뻗은 팔에 닿았다.

그리고 그 순간 강혁의 몸이 반회전하며 안젤라의 몸 옆으로 돌아 들어갔다.

파앗!

"앗!"

안젤라는 깜짝 놀랐다.

자신이 어느새 바닥에 등을 맞대고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한 거야?"

안젤라가 벌떡 일어나며 물었다.

그녀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쓰러지게 되었는지도 알 수 없었다.

그야말로 눈 깜박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강혁의 몸놀림은 그야말로 구름 위를 나는 한 마리의 용과 같았다.

안젤라의 질문에 강혁은 가볍게 미소를 지으며 하나씩 천천히 설명해 주었다.

파앗!

강혁의 등이 거실 바닥에 닿았다.

"이번엔 어때?"

안젤라가 물었다.

"하하, 정말 습득력이 대단한데?"

강혁이 거실에서 몸을 일으키며 말했다.

안젤라의 운동능력을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안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가리켜 하는 말일 것이다.

"마지막으로 복습을 해보자."

강혁의 말에 안젤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처음 상대와 팔이 닿는 순간 팔이 발이 되고, 발이 손이 되어 반회전하는 하는 거야."

강혁의 뒷발이 앞으로 반회전하면서 안젤라의 다리를 봉쇄했다.

그와 동시에 팔꿈치가 안젤라의 갈비뼈에 닿았다.

"이때 팔꿈치로 상대의 갈비뼈를 치는 거지. 그리고 상대의 팔 안쪽을 감아 들어가."

강혁의 팔이 안젤라의 팔을 아래로 잡아 당겼다.

그와 동시에 한 팔은 안쪽 어깻죽지를 따라 올라갔다.

안젤라의 몸이 위로 한 뼘쯤 떴다.

팔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안젤라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하지만 그런 모습조차도 매력적이었다.

강혁은 인상을 찌푸린 모습조차 아름다움을 발하는 그녀의 미모에 솔직히 감탄했다.

"그리고 이 상태를 유지하면서 뒤로 허리를 돌리면"

휘리릭!

마치 용권풍이 부는 듯 안젤라의 몸이 강혁의 팔에 감겨 뒤로 넘어갔다.

"혁, 나도 해볼게."

"얼마든지"

강혁은 그 후로도 상당한 시간을 보내며 안젤라의 상대가 되어 주었다.

*     *     *

수련에 푹 빠진 안젤라를 호텔방에 두고, 강혁은 약속장소로 갔다.

두 사람이 회담을 약속한 곳은 바다가 보이는 팔각정자 형태의 커피숍이었다.

강혁은 미리 예약을 해둔 방으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바깥 풍경을 감상했다.

그러기를 10여분.

약속 시간인 오후 3시가 되었다.

문이 열리면서, 일단의 무리가 들어왔다.

모두 중국인이었다.

"존 강 회장이신가?"

"그렇소만?"

"함께 가주셔야 겠어."

강혁의 옆구리에 총구가 닿았다.

끈으로 눈이 가려진채 자신을 납치한 사람들에게 끌려간 곳은 중국 전통 가옥이었다.

가려진 끈이 벗겨지고 눈을 뜨자 자신의 맞은편에 홍의를 걸친 중국인이 앉아 있는 것이 보였다.

"존 강 회장이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왜 저를 이리로 데려 왔는지 이유를 모르겠군요."

강혁의 말에 홍의인이 미소를 머금으려 손뼉을 쳤다.

"하하, 급할 것 있나? 일단 차부터 마시면서 이야기해보지."

강혁의 앞에 용정차가 놓였다.

"용정차로군요."

살짝 차를 맛보며 말했다.

"호오, 차에 대해서 아시오?"

"조금 공부해본 적이 있지요."

강혁의 말에 홍의인이 웃으며 말했다.

"요즘 젊은 친구 치고는 제법이군. 한국인이라고 들었는데 맞소?"

"맞습니다."

"일단 차를 드시오."

홍의인은 말을 마치고, 입가에 용정차를 가져갔다.

강혁도 차를 입에 가져갔다.

"이 차는 운서지방에서 나는 최상품의 용정차로군요."

강혁의 대답에 홍의인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알았나?"

"예전에 한 번 맛본 적이 있지요."

과잉기억증후군의 작용이었다.

강혁은 한 번 맛본 차의 산지를 정확히 맞출 수 있었다.

"젊은 친구가 날 놀라게 하는군. 지난 10년간 그런 사람은 없었다네."

홍의인이 호탕하게 웃었다.

"짙은 향, 부드러운 맛, 비취 같은 녹색. 그리고 아름다운 잎새. 과연 4절이라 할 만하군요."

그의 품평에 홍의인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맞네. 용정차가 중국 10대 차 중 제일 첫 번째에 놓이는 것도 그런 연유이지."

강혁은 계속해서 용정차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원래 서호 용정차는 호포천의 물로 재배하죠."

"맞네, 맞아. 계속해보게."

"호포천의 물은 차고 깨끗하며 깊지요. 이 용정차와 호포천을 합쳐 용차호수(龍茶虎水)라 부르며……."

"그렇지!"

홍의인은 강혁이 이야기를 풀어 놓을 때마다 박수를 치며 크게 즐거워했다.

"계속해보게."

"줄여서는 용정차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용정차와 호포천을 합쳐서 서호쌍절이라 부르지요."

강혁의 말에 홍의인은 크게 흡족해했다.

"그렇지. 서호쌍절."

강혁의 말에 홍의인은 잠시 눈을 감았다.

뭔가 먼 옛일을 회상하는 듯했다.

강혁은 잠시 기다렸다가 노인에게 물었다.

"혹시… 노인께서는 서호가 고향이십니까?"

강혁의 말에 노인이 감았던 눈을 떴다.

노인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맞아."

홍의인이 미소를 띠며 강혁을 바라보았다.

"내 이름은 마천중이라고 하네. 홍방의 방주를 맡고 있지."

*     *     *

쏴아아―

뜨거운 물줄기를 맞으며 안젤라는 땀으로 뒤범벅이 된 나신을 씻고 있었다.

강혁과 약속한 저녁식사 시간에 맞추기 위해서였다.

샤워를 하고 나온 안젤라는 잠시 서서 자신의 몸을 거울에 비춰 보았다.

달빛이 부끄러워 얼굴을 감출 만한 아름다움이 고고히 빛나고 있었다.

안젤라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몸을 닦고 밖으로 나왔다.

'입을 만한 옷이 없어.'

챙겨온 옷들을 입어 보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얼굴을 찡그렸다.

그런 모습조차 고혹적으로 보인다.

잠시 고민하던 안젤라는 평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호텔 밖으로 나갔다.

"어머나! 정말 잘 어울려요."

여직원이 연신 안젤라를 향해 칭찬을 연발했다.

그 말이 빈말이 아닌 것이, 거울에 비친 안젤라의 자태는 천상의 여신을 보는 듯했다.

매끈한 양어깨의 쇄골이 드러난 붉은빛 드레스는 섹시하면서도 기품이 있었다.

"이걸로 할게요."

카드를 꺼내서 직원에게 건네주었다.

"누군지 몰라도 아가씨와 사귀시는 분은 진짜 복 받으신 거예요."

여직원의 말에 안젤라는 가볍게 미소로 답했다.

마음에 드는 옷을 찾은 그녀는 강혁과 약속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     *     *

홍방의 방주.

강혁은 노인의 말을 듣고 살짝 놀라고 있었다.

그는 한때, 한국을 대표하는 형사로서 인터폴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때 홍방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노인이 스스로 홍방이라고 말한 단체를 외부인들은 삼합회라고 부른다.

즉, 악명 높은 중국계 마피아의 대명사인 삼합회가 바로 홍방인 것이다.

전 세계에 5만에서 6만에 달하는 조직원을 가지고 있으며, 수십억 달러의 검은 돈을 움직인다.

그런데 이들은 왜 스스로를 홍방이라고 할까?

삼합회가 외부에 알려진 이름이라면, 홍방은 내부에서 스스로를 일컫는 이름이다.

홍방의 홍은 붉을 홍으로, 명나라를 세운 태조 주원장의 연호인 홍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홍방은 일종의 비밀결사 단체였다.

이들의 종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늘을 어버이처럼 숭배하고, 땅을 어머니처럼 떠받든다.

둘째, 청을 무너뜨리고 명을 다시 세운다.

홍방은 한때 장개석의 국민당을 도와 중국대륙의 패권을 장악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공산당의 대륙 지배가 확실시되자 장개석의 국민당이 대만으로 물러날 때, 함께 대륙을 떠나 홍콩, 대만, 동남아 등지에 조직이 뿌리내렸다.

강혁은 자신에게 황용패를 주었던 첸 가문과 객가가 홍방과 깊은 관련이 있다고 짐작하고 있었다.

"원래 홍방의 영웅이셨군요."

강혁이 중국식 인사인 양손을 모은 포권을 취하며 다시 인사를 올렸다.

노인이 강혁의 인사를 받으며 너털웃음을 보였다.

"홍방을 아는가?"

"조금 알고 있습니다."

"…그래."

노인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한때는 우리 홍방에도 큰 뜻을 품은 영웅들이 기라성같이 많았지."

"……."

"지금은 그저 잔인무도한 폭력배 조직이라고만 여기지만 말이야."

강혁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인터폴에서 근무하며 삼합회가 저지른 수많은 범죄행각들을 목격했었기 때문이다.

정치결사조직에 가까웠던 그들이 왜 그렇게 변질되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들도 한때는 큰 뜻을 품었던 것만큼은 사실인 듯 했다.

잠깐 한숨을 내쉰 노인이 말을 이었다.

"이제 그만 본론으로 들어가야겠군."

"……."

"음, 자네 조지아 솔라스와는 어떤 관계인가?"

노인의 눈빛과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졌다.

우연히 내온 차를 매개로 분위기를 달구었던 조금 전까지의 일은 씻은 듯이 잊은 얼굴이다.

강혁은 자신의 대답여하에 따라서 목숨도 위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할까?'

강혁은 왜 이들이 조지아 솔라스를 납치했는지를 추측했다.

이유는 오래지 않아 짐작할 수 있었다.

조지아 솔라스와 그가 이끄는 국제투기세력은 현재 아시아 전역을 공격 중이었다.

필시 이들의 사업체도 큰 손해를 봤을 것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