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08화
108화
"저는 솔라스에게 새로운 사업을 제안했습니다."
강혁의 대답에 노인의 얼굴이 급변했다.
"내가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군."
마천중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강혁의 재치 있는 답변에 오랜만에 자신의 고향을 떠올렸다.
거기다 홍방의 고고한 정신과 전통을 이해하는 듯한 강혁에게 호감을 가졌다.
그래서 혹여 자신이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니가싶어 스스로 해명하게 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솔라스와 같은 부류의 인간이었다.
"태국이나 홍콩 같은 작은 나라들이 아니라, 일본을 상대로 크게 한방 먹이는 것은 어떠냐고 말이죠."
"일본?"
"예, 그렇습니다."
"일본을 상대로 과연 효과가 있을까?"
"저는 가능하다고 보았고, 오늘 솔라스를 만나 의논을 해볼 생각이었습니다."
"…일본, 일본이라?"
강혁의 말은 마천중에게 의외의 답변이었다.
일본은 80년대 고도성장을 이루며 미국을 바짝 따라붙었었다.
미국의 조야는 일본의 약진을 보며, 앞으로 10년 후면 미국이 일본에게 따라 잡힌다며 호들갑을 떨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비록 프라자 합의 이후, 엔고 현상이 지속되며 잃어버린 10년이라며 자학하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세계 경제 2위의 경제 대국이다.
그런 나라를 상대로 환투기 공작을 성공시킬 수 있을까?
만일 가능하다면?
그보다 더 통쾌한 일이 없을 듯싶었다.
마천중은 어린 시절 고향에서 일본군의 침략으로 가족들과 함께 큰 고통을 입었다.
행복했던 어린 시절은 일본군의 침략 이후, 전쟁의 공포와 굶주림으로 돌변했다.
마천중의 어린 누나는 입을 하나라도 줄이기 위해 단돈 몇 푼에 누군가에게 팔려갔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는 만나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일자리를 찾아다니던 어느 날, 총에 맞아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고아 아닌 고아가 된 마천중은 거리를 헤매다가 굶어죽기 직전 은인에게 발견되어 겨우 살아났다.
자신을 구해주었던 은인은 홍방의 열두 두령 중 한 사람이었다.
잠시 옛일을 회상하던 마천중은 강혁의 말에 큰 호기심을 내비쳤다.
"일본을 대상으로 돈을 벌어 볼 생각인건가?"
강혁은 노인의 얼굴표정을 읽었다.
'복수심과 탐욕이 뒤섞여 있다?'
강혁은 심중에 있던 말을 털어 놓았다.
그리고 자신의 예상이 맞다면 지금의 상황을 역전시킬 수 있는 말일 것이다.
"일본 경제를 흔들어 볼 생각입니다."
강혁의 답변에 마천중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빙고! 맞는 대답이었군.'
마천중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런 일이 가능하단 말인가?'
솔라스가 이끄는 환투기 세력 때문에 홍방의 조직이 위치하고 있는 나라들의 경제가 크게 흔들렸다.
그 때문에 조직도 만만치 않은 손해를 입었기에 솔라스를 협박하여 공격을 중단시킬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일본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건가?"
"그전에 한 가지 보여드릴 것이 있습니다."
"……?"
의아해 하는 마천중에게 강혁은 품속에서 첸에게 받은 황룡패를 꺼내보였다.
"…그… 그것은 설마 황용패?"
"그렇습니다."
구름을 탄 황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패를 본 마천중의 두 눈이 가늘게 떨렸다.
황용그룹의 황용패가 틀림없었다.
"그…그걸 대체 자네가 어떻게 들고 있는 건가?"
원래 홍방은 대대로 객가와 큰 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홍방이 말레이시아에서 조직을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은 황용그룹이 비호해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황용패를 보고 놀란 것이다.
강혁은 첸과 있었던 일을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설명을 모두 들은 마천중이 포권을 하며 말했다.
"원래 우리는 한 가족이었군. 내 크게 실례를 범했네. 용서해주시겠나?"
"모르고 하신 일이니 크게 괘념치 마십시오."
"자네가 원한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도 좋네."
강혁은 마천중의 얼굴 표정을 살폈다.
그의 말은 분명 진실이었다.
하지만 얼굴에는 안타까움이 남아 있었다.
'어차피 나 혼자 돌아가서 될 일이 아니다.'
"아닙니다. 조금 전,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하죠."
강혁은 천천히 대략적인 그의 계획을 노인에게 들려주었다.
"으음, 그런 방법이……."
마천중은 강혁의 계략에 무릎을 쳤다.
"자네는 정말 제갈량이 울고 갈 정도의 책략가로군."
"과찬이십니다."
"아니네. 자네의 방법은 정말이지 보통사람들이 여간해서는 생각해낼 수 없는 방법이네."
마천중이 감탄할 만도 했다.
이 방법으로 솔라스는 일본이 10년간 벌어들인 돈을 한 번의 환투기 공격으로 가져갔으니 말이다.
"흠, 자네 이 일에 우리가 끼어드는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마천중의 말에 뭔가 강혁의 뇌리를 치는 것이 있었다.
'유대인들의 자본에 화교의 자본까지 더한다면?'
시쳇말로 10년간 벌어들인 돈이 아니라, 20년간 벌어들인 돈을 가져올 수도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일본이란 나라의 경제를 등골까지 쪽쪽 빨아 먹어 볼 수 있지 않을까?'
그 순간 강혁의 머릿속으로 이전보다 훨씬 완벽하고, 귀신도 울고 갈 계략이 완성되었다.
'있다. 모두의 눈을 속이고, 일본 재무성의 관료들을 완전한 바보로 만들어 버릴 계략이.'
강혁이 마천중을 바라보았다.
"전화기를 돌려주시겠습니까?"
"……?"
"첸에게 전화를 걸고 싶군요."
강혁의 말에 마천중이 환하게 웃었다.
"자네 덕에 우리가 입었던 손실을 회복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 * *
조지아 솔라스는 공포에 젖어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중국 마피아로 보이는 사내들이 살기를 풀풀 풍기고 있었다.
실제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잔인하게 죽여 본 경험이 있는 자들이 솔라스를 노려보고 있었다.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한 사내들이 독기어린 표정에 솔라스는 오금이 저려왔다.
"내게 무…뭘 원하는 거요?"
솔라스의 말에 사내들은 아무런 답변도 해주지 않았다.
다만 말없이 침묵만을 지켰는데 솔라스는 그게 더 큰 고문이었다.
'이… 이 개자식들이 대체 내게 원하는 게 뭐야?'
그들이 모여 있는 방의 한쪽 구석에 놓여 있는 전화기의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솔라스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전화기를 향했다.
사내들이 서로 시선을 마주하더니, 그중 한 사람이 전화기를 향해 걸어갔다.
사내가 수화기를 들었다.
솔라스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가 싶어 귀를 기울였지만 중국어라 알아들을 수 없었다.
수염을 메기처럼 기르고, 머리는 산발을 한 사내가 전화를 마친 사내를 향해 눈빛으로 물었다.
전화를 끊은 사내가 손가락으로 자신의 목을 베듯이 지나갔다.
사내의 손짓에 솔라스는 깜짝 놀랐다.
"아냐, 아닐 거야. 다시 확인해봐."
솔라스가 소리쳤다.
삼합회의 조직원들은 이런 일에는 이골이 났는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어디선가 커다란 줄을 가져왔다.
그리고 그 줄을 허공에 매달았다.
솔라스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다.
'이것들이 저걸로 날 목매달려고 하는구나?'
다리가 덜덜덜 떨려왔다.
사내 중 하나가 솔라스의 몸을 붙잡아 일으켰다.
솔라스가 반항하자 그의 복부에 주먹이 날아들었다.
커―헉!
위액이 입으로 올라올 정도로 강력한 펀치에 다리가 후들거렸다.
고통에 겨워하는 솔라스의 목에 차가운 금속물질이 닿았다.
"움직이지 않으면, 지금 당장 이걸로 목을 갈라주지."
"…으으으."
이들은 충분히 그렇게 하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차가운 파충류 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는 이 자들은 모두가 살인귀들이었다.
솔라스는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
그 순간 자신의 일생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헝가리를 탈출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었던 일.
처음으로 주식을 사서 돈을 벌었던 일.
영국의 파운드화를 공격해서 헤지펀드의 신화를 써내려갔던 일까지.
'으으으, 이렇게 죽을 수는 없어.'
솔라스는 창백한 얼굴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얼굴에는 땀으로 뒤범벅이다.
어떻게든 살아날 구멍을 찾으려고 애를 쓰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목에 칼을 들이댄 사내의 채근에 한 걸음 더 걸었다.
눈앞에 길게 늘어뜨려진 목줄이 자신을 데리러 지옥에서 온 사신처럼 보였다.
솔라스는 의자 위에 올라갔다.
삼합회의 사내들이 솔라스의 목에 줄을 걸었다.
'오, 하나님. 저는 이렇게 죽는 건가요? 이 솔라스가? 이런 곳에서?'
메기 같은 수염을 가진 사내가 솔라스가 올라서 있는 의자를 찼다.
"끄… 으……."
자신의 목을 조여 오는 밧줄의 압박에 솔라스는 눈이 튀어나오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솔라스는 죽지 않으려 마지막까지 발버둥을 쳤다.
하지만 밧줄은 굵고 단단했다.
솔라스는 안간힘을 다해 버텼다.
하지만 이내 힘이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아…안 돼.'
솔라스가 완전히 절망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와장창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박살나며 한 사내가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시끄러운 중국어가 사방에서 울리며 사내와 삼합회 조직원들 간에 싸움이 벌어졌다.
그 싸움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탁자가 부서지고, 의자가 박살이 났다.
사방에서 고통스런 신음소리와 울분에 찬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방 안에 정적이 흘렀다.
'어…어떻게 된 거지?'
솔라스는 의식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자신을 향해 누군가가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실신했다.
* * *
"어…어떻게?"
솔라스는 자신이 병원 침대에 누워있고, 준수하게 생긴 20대 청년이 자신을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누구?"
"솔라스 회장님, 정신이 드십니까?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으셔서 찾아다녔습니다."
"……?"
"설마 그런 일을 당하고 계실 줄이야. 하마터면 큰일이 날 뻔 했습니다."
"설마… 존 강 회장?"
"그렇습니다. 제가 존 강입니다."
솔라스는 윌가에서도 명성이 자자한 골든타워을 이끄는 수장이 설마 이런 앳된 얼굴의 청년일 줄은 몰랐다.
"날 구한 게 자네였나?"
"그렇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홍콩에서 회장님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자들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으음, 그건 내 잘못도 있네."
솔라스는 이런 일을 당한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자신에게 원한이 있는 자들은 산더미같이 존재했다.
언젠가는 이런 일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에 그동안 경호에 만전을 가했었다.
하지만 상대는 자신이 상정했던 것보다 훨씬 더 무직막지한 놈들이었다.
'돌아가면, 경호 팀을 바꿔야겠어. 그 놈들은 너무 약해.'
솔라스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돈은 얼마든지 있으니, 어디 동구권의 용병이라도 구해 볼 생각이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지.'
솔라스의 눈빛이 번쩍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