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09화
109화
#29장 일본 공략
조금 전에 그런 일을 당하고도 금세 원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을 바라보며 강혁은 경계했다.
'조지아 솔라스. 유대 자본을 등에 업고, 세계 경제를 농락하는 자 답군.'
강혁은 조금만 방심하면 솔라스에게 자신이 꾸민 계략이 들어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만큼 솔라스는 녹록지 않은 상대였다.
"날 살려줘서 고맙군. 존 회장."
솔라스의 눈에는 강혁을 향한 고마움이 가득했고 태도 또한 우호적이었다.
상대의 표정을 읽는 강혁은 솔라스의 겉으로 들어난 표정에 거짓이 없다는 것을 간파했다.
"하지만 비즈니스는 비즈니스지. 어디 존 회장이 내게 제안했던 방법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 볼까?"
"좋지요."
강혁이 빙긋이 웃었다.
조지아 솔라스는 천생 사업가였다.
이 정도가 되니 세계 경제를 주물럭거린 거인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리라.
강혁은 전화로는 할 수 없었던 몇 가지 세부 사항을 설명했다.
강혁의 설명 중간 중간 솔라스는 간간히 질문을 던지거나 자신의 의견을 제시했다.
"좋아, 확실히 가능하겠군."
솔라스는 다음 타깃으로 일본을 공략하기로 확실히 마음을 먹었다.
"자넨 앞으로도 좋은 사업 파트너가 될 것 같군."
솔라스는 이번 일로 강혁에 대해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게 된 것 같았다.
퀸덤 박스와 그를 따르는 국제투기자본은, 일본 공략에 대해서는 강혁의 지시를 따르기로 했다.
"분명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기대하지."
솔라스는 강혁과 악수를 나누었다.
* * *
바닷가의 야경이 보이는 멋진 중국식 레스토랑에 안젤라가 들어섰다.
붉은빛이 감도는 드레스는 조명을 받아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안젤라를 본 레스토랑 직원들과, 식사를 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일시에 할 말을 잃었다.
그야말로 여신강림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순간이었다.
안젤라는 존 강이란 이름으로 예약된 자리로 안내를 받았다.
약속 시간이 다 되어 갈 때였다.
레스토랑의 문이 열리며 강혁이 들어왔다.
그런데 모습이 좀 이상하다.
고급 레스토랑에 출입하기에는 조금 문제가 있을 정도로 복장이 더러워져 있었다.
안젤라가 그 모습에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강혁에게 다가갔다.
"혁,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미안해. 안젤라. 이 꼴로는 식사를 하는 건 무리겠지?"
강혁이 뒷머리를 끄적였다.
바지 아랫단과 가슴 앞부분이 먼지와 진흙으로 엉망진창이었다.
자세히 보면 머리카락도 헝클어져 있었다.
그때 레스토랑 문이 열리며 젊은 부부가 8살 정도 된 남자 아이를 데리고 들어왔다.
"아빠, 이 아저씨예요."
"엇? 너는?"
남자 아이의 아버지가 나서서 울먹이며 감사를 표했다.
"선생님, 정말 고맙습니다. 선생님이 아니었으면 전 아들을 잃을 뻔 했어요."
"아닙니다. 아버님. 진정하세요."
강혁은 레스토랑 앞을 지나다가 웬 남자아이가 부모를 찾으며 도로를 건너는 것을 보았다.
하필이면 그때 도로를 달리고 있던 자동차 운전자가 옆자리의 여자친구를 보고 있었다.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도로에 뛰어 들어 아이를 안고 한 바퀴 굴렀던 것이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만일 이 애를 잃었다면 전 살지 못했을 거예요."
아이의 엄마가 구술 같은 눈물을 흘리며 연신 감사를 표했다.
두 사람의 감사에 난처해하는 강혁을 보며 안젤라는 입가에 손을 가져가며 가볍게 웃었다.
'……혁.'
안젤라는 자신이 왜 강혁을 그토록 만나려고 했었는지 깨달았다.
그는 슬픔에 빠져 자신이 잃어버린 것을 가지고 있었다.
'난 경찰이 되어 누군가를 도울 때 가장 큰 행복을 느껴.'
왜 경찰이 되었느냐고 물었을 때 강혁이 한 말이 생각났다.
그것은 누군가를 연상시키는 대답이었다.
'마크, 여기 당신 같은 사람이 또 있어.'
캠퍼스를 거닐며, 자신을 향해 환한 미소로 웃어주며 마크가 했던 말이 있다.
'안젤라, 나와 함께 세상을 좀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바꾸어 보자.'
안젤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크고 강한 손을 잡았었다.
마크와 함께 같은 꿈을 꾸며 앞으로 영원히 함께 할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이다.
'마크가 없어.'
불현 듯 다시 슬픔이 찾아왔다.
그때 안젤라의 시선에 강혁이 들어왔다.
부모와 아이를 향해 강혁이 미소를 지었다.
안젤라는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뭔가가 다시 타오르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레스토랑을 나온 강혁과 안젤라는 홍콩 거리에서 파는 길거리 음식을 몇 가지 샀다.
더럽혀진 양복 차림과 아름다운 파티 드레스를 걸친 채 두 사람은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응, 혁 고마워."
무엇이 고맙다는 걸가?
강혁은 고맙다고 말하는 안젤라의 얼굴 표정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다행이다."
자세한 것은 묻지 않았다.
때로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는 법이다.
두 사람은 홍콩의 야경을 즐기며, 끝도 없이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밤이 새도록 두 사람은 지칠 줄을 몰랐다.
* * *
"징글징글 하군 이 친구."
일본 재무성 고위 관리인 다나까 요시모리가 잡지를 자신의 부하 책상 위로 건넸다.
일본의 유명 경제 주간지 '비즈니스 재팬' 이었다.
"국장님 왜 그러십니까? 무슨 좋은 소식이라도 있나요?"
"23페이지를 읽어봐."
다나까의 말에 보좌역인 신이치가 잡지를 폈다.
지면에 헤지펀드로 유명한 조지아 솔라스의 인터뷰 장면이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신이치는 특별히 과장되게 인쇄된 솔라스의 말을 읽었다.
"지금의 달러는 엔화에 대해서 지나치게 평가 절하되어 있습니다."
"흐음, 솔라스가 달러를 사 모을 모양이군요."
"그런 것 같아."
"달러가 지금보다 더 오르겠군요."
지난 몇 달간 달러화는 1달러당 95엔~100엔 사이를 왔다갔다했다.
대부분 사람들은 달러 강세로, 기본적으로 엔화가 달러당 100엔대 선으로 오를 것이라 생각했다.
만약 떨어진다고 하더라도 1달러당 95엔 선의 전후에서 멈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 이상으로 폭락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일본 재무성 관리들이 그런 생각에 사로잡힌 동안 실제로 솔라스는 달러를 사 모았다.
실제로 달러가 초강세를 보이고 있어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었다.
"존, 첫 번째 단계는 완료했네."
―수고 하셨습니다. 이제 2단계로 들어가죠.
"오케이~"
강혁과의 전화를 끊은 솔라스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그럼. 2단계 작전으로 가볼까?"
"흐흠, 이거 괜찮아 보이는데?"
마이니치 은행의 은행장 사이토 이치로는 새로운 파생상품의 구입을 고려하고 있었다.
그에게 파생상품을 설명하고 있는 하시모토 과장은 힘주어 말했다.
"이건 틀림없이 우리 은행에게 큰 이익을 줄 겁니다. 은행장님."
"으음."
안경 너머 사이토 은행장의 눈빛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하시모토!"
"예!"
"이번 일이 잘 되면 자네의 출세길은 확실히 내가 보장해주지."
사이토 은행장의 말에 하시모토가 머리를 허리까지 숙이며 말했다.
"믿어 주십시오. 반드시 성공시키겠습니다."
하시모토의 말에 사이토 은행장이 머리를 끄덕였다.
두 사람 모두 이번 건은 땅 짚고 헤엄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조지아 솔라스가 녹아웃 옵션이라는 파생상품을 개발해 판매에 나섰다.
상품명이 무려 녹아웃이다.
버는 쪽은 왕창 벌고, 지는 쪽은 녹아웃이 될 정도로 깨지는 그런 상품이었다.
옵션료를 일반 옵션상품보다 낮게 받는다.
대신 엔고가 달러당 94엔 선까지 깰 정도로 급격히 진행되면 매입자의 권리가 소멸된다.
그러면서 엄청난 환차익을 솔라스가 모두 챙기겠다는 것이다.
일종의 도박이나 다름이 없는 파생상품이었다.
하시모토 과장은 엔고가 아무리 급격히 진행돼도 94엔 선을 돌파하는 일은 없으리라 확신했다.
마이니치 은행을 비롯하여 수많은 일본의 은행들은 기꺼이 이 도박에 응했다.
"존, 때가 무르익었네!"
강혁에게 전화를 건 솔라스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시작하죠.
"알겠네. 내 쪽에서도 준비하지."
전화를 끊은 솔라스는 결투를 앞둔 검투사처럼 흥분으로 얼굴이 달아올랐다.
"자, 그럼 시작해볼까?"
다음 날 일본 엔―달러 환율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급작스레 요동치기 시작했다.
일주일 후 도쿄 외환 시장에서 '마의 90엔 선'이 깨졌다.
외환딜러들의 비명 섞인 신음소리가 울려 퍼지며 오후 장중 한때 달러당 88.75엔까지 폭등했다.
일본 경제가 뿌리째 뒤흔들렸다.
더불어 녹아웃 옵션을 사들인 수많은 은행들이 도산 위기에 빠져들었다.
몇 주 뒤, 일본의 중요 경제 신문들은 이 사태의 주범이 솔라스임을 밝혀냈다.
대량으로 사 모았던 달러화를 손해를 무릅쓰고 되판 후, 반대로 엔화 매입에 나선 것이다.
이에 따라 달러가 강세를 보이기는커녕 폭락을 하고 있었다.
일본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이 적극적으로 개입에 나섰다.
그러나 솔라스의 파워는 예상을 훨씬 초월한 것이었다.
엔화가 하루에 2, 3엔씩 폭등했다.
천문학적인 자금이 몰려들어 엔화를 사들였다.
결국에는 며칠 뒤 90엔까지 파죽지세로 돌파했다.
"크하하핫핫!"
솔라스는 축배를 들었다.
강혁의 아이디어로 큰돈을 벌어들인 것이다.
녹아웃옵션이란 파생상품은 강혁의 조언을 받아들여 개발한 상품이었다.
솔라스는 강혁이 제안한 양동작전으로 엄청난 거금을 쥘 수 있었다.
그 금액이 어느 정도에 이르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솔라스가 이 계약을 거래소를 통해서 거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작전의 엄밀성을 위해 직접 장외에서 1대1로 거래했기 때문이다.
솔라스의 뒤를 따라 그의 동업자들 역시 같은 녹아웃옵션을 팔아 많은 이득을 거두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이름이 알려진 것은 솔라스밖에 없었다.
강혁과 그가 동원한 자금의 출처들은 흑막 속에 감춰졌다.
이 와중에 녹아웃이란 말답게 몇 몇 일본의 수출기업들과 금융기관들은 엄청난 손해를 입었다.
천문학적인 금액의 파생상품 환차손을 입은 것이다.
졸지에 수많은 기업과 은행들이 파산 위기에 빠져들었다.
솔라스가 승리의 축배를 들고 있을 때, 강혁은 부도 위기에 빠진 기업들을 인수했다.
부도사태를 맞은 은행들은 지분을 확보하고, 사들인 엔화를 고리로 빌려줬다.
기업들은 부도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싼 가격에 강혁에게 팔려나갔다.
어떤 기업은 강혁에게 특허권을 뺐겼다.
한마디로 도박에 지고 패가망신한 것이다.
일본 중앙은행도 손해가 막심했다.
한 달 동안에만 140억 달러어치의 달러화를 사들였고, 20억 달러 이상의 환차손을 보았다.
일본 경제가 뿌리 채 흔들렸다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강혁의 일본 징벌은 도산으로 쓰러져가는 은행들을 헐값으로 인수한 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존?
"솔라스 회장님. 이제 슬슬 3단계로 도입하죠."
―흐흐흐, 아직도 배가 고프다 이건가?
"처음부터 계획했던 일 아닙니까? 저는 중간에 멈추는 어중간한 일은 못 하는 성미라서요."
―오케이. 사실 나도 마찬가지라네."
다음 날, 훗날 도쿄 공습이라 불리는 길고도 긴 하루가 시작되었다.
일본인들에게는 잊고 싶은 악몽과도 같은 하루였다.
월요일 아침.
도쿄의 외환시장은 달러당 83.35엔의 가격으로 엔―달러 환율거래를 시작하였다.
이전 주말 뉴욕의 외환시장의 폐장가는 83.11엔이었다.
도쿄의 외환시장이 좀 더 비싼 셈이다.
이 날의 시작은 엔화의 상승세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