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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18화 (118/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18화

118화

제이슨의 미친 듯한 질주에 대부분의 차량들은 겁을 집어 먹고 멀찌감치 떨어졌다.

그때 멀찌감치 떨어진 주변 차량들을 제치며 회색의 뉴코란도가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제이슨은 뭐지? 하는 단순한 마음이었다.

그런데 속도를 줄이지 않고 자신을 향해 무소처럼 돌진해오는 모습에 순간 당황했다.

"크…크레~ 이지!"

엑셀을 밟은 발에 힘을 줬지만, 순간 가속 능력이 엄청났다.

진짜 뉴코란도가 맞는지 의심스러운 장면이었다.

콰가가가가강―

쇠와 쇠가 부딪히며 거친 소음이 일었다.

순식간에 따라잡은 뉴코란도 차량이 제이슨의 차량 옆면으로 붙었다.

뉴코란도의 오른쪽 측면으로 제이슨의 차량을 밀어붙인 것이다.

상당히 위험천만한 행동이었는데, 강혁은 마치 서커스 하듯이 해내고 있었다.

"미…미친 너무 힘이 세―"

강혁의 뉴코란도는 육중한 외형을 훨씬 넘어서는 강도와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

탱크라도 되는 듯 강혁의 차량에 밀린 제이슨의 차는 반대편 가드 레일에 부딪히며 불꽃이 일었다.

"…제… 제기랄―"

차량에 불이라도 나는 것이 아닌가 겁을 집어 먹은 제이슨은 브레이크를 밟을 수밖에 없었다.

차가 멈추자 자신을 덮친 차량의 운전자가 보였다.

"저…저 미친 새끼―"

제이슨은 차량을 억지로 세운 후, 자신을 비웃듯이 바라보고 있는 동양인을 보고 빡이 돌았다.

당장 문을 열고 턱주가리를 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문을 열고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젠장, 어…어쩌지?"

30분 후,

신고를 받고 제이슨을 추적하던 순찰차들이 도착했다.

차 안에서 이런 저런 궁리를 하던 제이슨은 강혁이 차를 비켜주는 순간을 노렸다.

문이 열리자 제일 앞에 서 있던 제복 경찰의 복부를 발로 찼다.

퍼―억!

경찰이 엉덩방아를 찧자 제이슨은 회심의 미소를 짓고는 반대 방향으로 달렸다.

인근에 보이는 산속으로 도주하려는 것이다.

"저… 저 쉑… 잡아!"

경찰들이 소리칠 때 제이슨은 자신을 막아서는 동양인을 보고 깜짝 놀랐다.

"뭐… 뭐야? 이 자식―"

동양인 중에 만나 본 적이 없던 장신이다.

게다가 운동을 했는지 몸 전체가 탄력이 있어 보였다.

동양인이라면 일단 무시하고 봤던 제이슨은 살짝 움찔했다.

"어딜 그렇게 가시나?"

강혁이 제이슨을 바라보며 씨익 웃었다.

"비켜―"

외마디 소리를 지르며 제이슨의 묵직한 주먹이 허공을 갈랐다.

비록 피지컬은 상당해 보였지만 어쨌든 저쪽은 일반인이고, 자신은 현역 군인이었다.

제이슨은 어떻게든 이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무작정 공격을 시도했다.

그런데 눈앞에 서 있던 강혁이 자신이 휘두른 주먹의 궤도 바깥으로 반원을 도는 것이 보였다.

퍼―억!

"커―어억!"

타격음과 비명소리가 거의 동시에 연달아 일어났다.

지켜보던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제이슨의 주먹이 강혁의 턱을 향해 곡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동시에, 강혁의 몸이 움직이는 듯싶더니 제이슨이 옆구리를 감싸고 있었다.

"뭐… 뭐야?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지켜보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강혁은 훅이 날아드는 궤도를 거의 스치듯 지나가며 제이슨의 옆구리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제이슨의 옆구리에 송곳처럼 주먹을 찔러 넣었던 것이다.

완전히 허를 찔린 제이슨은 강혁의 일격에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어느새 강혁이 제이슨의 목을 향해 손날을 날리는 동시에 배후에 다리를 걸어 당겼다.

"커―헉!"

목에 타격을 받는 것과 동시에 다리에 걸려 뒤로 벌러덩 넘어졌다.

제이슨에게 섬광처럼 당랑의 절초를 연이어 작렬시킨 것이다.

비연과 등탑의 연속기였다.

비연은 번개처럼 상대의 공격을 피하며 사각을 섬광처럼 찔러 들어가는 절기다.

만일 강혁이 손에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면 제이슨의 갈비뼈는 그대로 부러졌을 것이다.

부러진 갈비뼈가 내장을 찔러 사망에 이르게 하는 수법이다.

과호사보추라는 정식 명칭이 있지만 강혁은 간단히 비연이라고 불렀다.

섬광 같은 움직임이 날쌘 제비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비연에 이어 등탑은 상대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는 기법이다.

인체에서 단련이 불가능한 부위 중 하나가 바로 목이다.

등탑은 손날로 인후(목)를 치거나, 팔꿈치로 명치나 비장을 가격하며 상대의 다리를 후리는 절명수다.

한마디로 제이슨은 조금 전 죽음을 가까스로 피한 것이었다.

강혁이 조금만 손의 각도나 힘의 세기를 조정했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을 것이다.

"헤이, 넌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지금부터 하는 모든 말은 불리한 증거가 될 수 있고……."

강혁은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며 목을 맞아서 꺽꺽거리는 제이슨의 손목에 수갑을 채웠다.

*     *     *

TBS 뉴스.

―…어제 저녁 9시경 미 2사단 제이슨 상병이 이태원에서 지나가던 행인을 폭행하고 차량을 절도하여 도주 중에 20대 커플을 차로 치고 도망가다가 경찰에 체포되었습니다. 현재 병원에서 치료 중인 20대 커플 중 여성은 중태에 빠져 있는 가운데…….

제이슨이 벌인 행동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제이슨이 차량을 절도하고 도주하다가 낸 사고의 이유가 주목을 받았다.

―지금 이곳은 제이슨 상병이 차량을 절도하고 이동하다가 사고를 낸 골목입니다.

화면에는 상큼한 미모의 여성 아나운서가 사고현장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제이슨 상병은 폭행 후 굳이 다시 차량을 절도하는 범죄를 더했을까요?

TBS의 간판 여성 아나운서인 송채연은 잠시 멈춰 서서 카메라를 응시했다.

좀 더 극적인 효과를 노린 것이다.

―미군 부대로 도망만 칠 수 있으면 경찰서에 다시 불려가는 일을 막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TV화면에는 범죄자가 범행 후 미군 시설 내로 도주할 경우 미군당국이 배타적인 경찰권을 행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는 내용이 자막으로 올라갔다.

뉴스를 시청하던 국민들은 그 내용에 함께 분노를 표출했다.

그 후로도 소파 협정의 문제에 대해 그 외에도 중요한 문제들이 간략하게 정리된 글들이 올라갔다.

송채연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성 아나운서였다.

그녀는 특히 이번 사건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다.

해마다 미군들이 일으킨 사건들이 적지 않았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91년 1차 개정 이후, 작년까지 개정에 대한 협의가 진행되다가 1년 남짓 멈춘 상태입니다."

송채연은 카메라 중심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에야말로 정부는 미국 정부와 소파 협정을 개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컷!"

PD가 컷을 외치고, 방송 화면이 넘어갔다.

송채연이 피곤한지 인형 같은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흠, 그럼 가볼까?"

방송 녹화가 끝나자마자 송채연은 TBS 취재차에 올라탄 후 용산 경찰서로 향했다.

취조실에서 제이슨은 눈앞의 형사가 무엇을 물어도 무작정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은 그의 편이었다.

이제 얼마 가지 않아 자신을 데리러 미군 부대에서 헌병을 보내 올 것이다.

그러면 그와 함께 부대로 복귀하면 된다.

심지어 소파 협정에서 심문은 제이슨의 상관의 입회하에 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더더욱 아무 말도 할 이유가 없었다.

"이 자식! 그렇게 입만 다물고 있으면 다 되는 줄 알아?"

피식!

제이슨이 웃었다.

"웃어? 너 때문에 다친 사람만 세 명이야. 그중 한명은 중태로 오늘내일한다고. 네가 인간이냐?"

통역이 취조를 맡은 최 형사의 말을 전해주자 제이슨이 그제야 말을 꺼냈다.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인데?"

말을 마친 제이슨이 귀를 후벼 팠다.

"뭐? 이 개자식이?"

최 형사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이 덜컹 열리며 형사들이 난입해 최 형사를 말린다.

"최 형사 참아!"

"최 형사님 참아요!"

제이슨을 체포해서 관할서에 넘긴 강혁은 그런 모습을 참관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저 개자식을 이대로 넘겨야 해?"

용산서 외사계장 홍희철은 제이슨이 하는 짓거리를 보고 부들부들 떨었다.

"계장님, 진정하세요."

강력계 반장 김형석이 홍희철을 말렸다.

"아, 나! 저 꼴을 보고도 진정하라는 소리가 나와?"

홍희철이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어떻게 해요. 방법이 없는데. 저놈도 그걸 알고 저러는 거 아닙니까?"

"젠장, 우리 국민이 셋이나 다쳤는데도 저놈을 풀어 줘야하나?"

홍희철이 부들부들 거렸다.

"진정하세요. 계장님, 대통령도 어쩌지 못하는 걸 우리 같은 일개 형사가 어떻게 하겠어요."

"제기랄! 저놈을 엿 먹일 수만 있다면 누구든 평생 상전으로 모시고 살겠다."

강혁이 홍희철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리며 말했다.

"그러실 필요는 없습니다. 계장님."

"응?"

말을 건네는 강혁의 눈빛이 묘했다.

참관실 문을 열고 강혁이 밖으로 나가자 홍희철이 말했다.

"저놈 저렇게 살벌한 놈이었나?"

"예?"

"아냐, 아무것도."

홍희철은 강혁의 눈에서 순간 엄청난 살기를 느꼈지만, 자신이 잘못 본 것이라 치부했다.

'눈빛이 사람을 한 명 이상 죽여 본 놈의 눈빛이었어. 하지만 그럴 리가 있나.'

조금 전 마주쳤던 강혁의 눈빛을 생각하며 홍희철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사님 부탁드립니다."

―예, 존 회장님.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잠시 후, 월리엄 캐리 대사가 전화를 받았다.

―존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목소리 너머로 반가운 기색이 역력했다.

"하하, 잘 계시죠."

―저야, 잘 있죠. 존 회장님. 그런데 오늘은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하하, 다름이 아니라 전에 대사님과 함께 골프를 쳤던……."

―아, 워커 사령관 말이군요.

"예, 워커 대장님이 마침 반 년 후에 퇴역한다고 들었습니다만."

―맞습니다. 존 회장님. 한국이 마지막 근무지죠.

캐리 대사는 일주일 전 강혁을 어렵게 초대해서 주한미군 사령관 로버트 워커와 골프 라운딩을 했다.

한국을 마지막으로 퇴역하는 워커 사령관을 강혁에게 소개시켜 준 것은 그의 퇴역 후 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것이었다.

"조만간 한번 만나자고 연락을 드리고 싶은데요. 전에 주신 명함이 마침 안 보여서 말이죠."

―아, 그거라면 제가 알려 드리죠.

캐리 대사는 강혁의 말에 반색하며 워커 사령관의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감사합니다. 대사님. 다음에 또 골프 한 게임 하시죠."

―물론이죠. 존 회장님. 그 때는 브룩스 그 친구도 함께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토머스 브룩스는 C.I.A 한국지부장이다.

지난번 이리나 납치 사건 이후로 강혁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었다.

"하하, 예. 알겠습니다. 만남을 고대한다고 전해주십시오."

―브룩스가 좋아할 겁니다. 하하.

계속 친근감을 표시하며 한마디라도 더 건네려는 캐리 대사의 전화를 겨우 끊은 강혁은 워커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원래 강혁은 이전 골프 라운딩에서 은근히 퇴임 후 자리를 원하는 워커의 접근을 불편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워커 사령관을 시작으로 한국에 주둔하는 미군 사령관과 장군들이 내게 줄을 서게 만들어야 겠어.'

강혁은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제이슨의 행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제이슨은 감히 더럽혀서는 안 되는 것을 건드렸다.

적어도 강혁은 그렇게 느꼈다.

할아버지의 피와 땀을 흘려 바친 나라의 독립과 자유.

그것을 위해 가족들이 했던 헌신과 희생.

그 모든 것이 나라의 독립과 자유를 위한 것이었다.

그런데 제이슨의 한 행태는 그런 강혁의 자부심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이었다.

'소파 협정? 얼어 죽을~ 할아버지의 이름을 걸고 내가 바꾸고야 만다.'

강혁은 결심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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