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19화
119화
"존 회장님? 어떻게 전화를 주시고?"
로보트 워커는 강혁의 전화를 받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지난번에 골프 라운딩에서 강혁의 반응이 시원찮았기 때문에 내심 실망했던 워커 사령관이다.
지금이야 주한미군 사령관이라는 떵떵거리는 위치에 있지만 반 년 후에는 퇴역 장군에 불과했다.
동기들은 워싱턴에 줄을 대어 아직도 잘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끈이 전혀 없던 워커는 앞으로의 행보가 사실 막막한 편이었다.
이대로 퇴임하게 되면 연금이나 받아먹고 은퇴 생활을 해야 했다.
그런 노년을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젊은이 못지않게 피가 끊는 로버트 워커는 벌써부터 뒷방 늙은이가 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하지만 세상살이라는 것이 원한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니다.
로버트 워커는 사성 장군이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미군에 세 자리밖에 없는 원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 자리는 모두 임자가 있었다.
앞으로 워커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은퇴말고는 없었다.
그래서 강혁에게 대기업의 이사 자리를 은근히 바랬던 것이다.
―지난번에 나눴던 얘기 말입니다.
강혁의 말에 워커의 귀가 번쩍 뜨였다.
"예, 존 회장님."
―사실은 제가 그 날 이후로 장군님의 미래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강혁의 말에 워커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워커는 강혁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직 정정하신데 은퇴하신다니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휴, 저도 사실 아직은 현역에서 10년은 더 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만 현실이 그렇지 않더군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워커 사령관님. 워커 장군님 정도라면 승진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하, 말씀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제 위로는 자리가 없어서 말이지요."
강혁은 워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충분히 알고 있었다.
미군은 해군, 육군, 공군, 해병대 이렇게 크게 네 개의 편제가 존재했다.
여기에 더해서 해안경비대가 있지만 해병대와 해안경비대는 모두 해군장관이 지휘한다.
―하나 더 만들면 되지 않겠습니까?
"……?"
강혁의 말에 워커는 당황했다.
"무슨 말씀이신지?"
강혁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조용히 대답했다.
―워커 사령관님, 사령관님이 최초의 우주군 장관이 되시는 겁니다.
"……!"
―미국 역사상 최초의 우주군 창설 장관이 되시도록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워커는 강혁의 답변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짧은 순간 여러 가지 생각이 오갔다.
처음에는 혹시 자신을 놀리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에는 강혁의 제안이 왠지 획기적으로 느껴졌다.
우주군이라니?
자신이 최초의 우주군 장관이 된다니?
―워커 장군님이 미군의 역사에 영원히 남을 전설이 되실 겁니다.
강혁의 이 한마디가 워커의 마음에 불을 당겼다.
"그 이야기 좀 더 들어보고 싶군요. 전화가 아니라 직접 만나서 말입니다."
―물론이죠. 그 전에 제가 도와드린다면 한번 해보실 생각은 있으신 겁니까?
"으음, 사실 얼토당토않은 생각이지만… 그게 가능하다면 멋진 일이 되겠지요."
강혁은 워커의 말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먹이를 물었군.'
강혁은 목소리를 다듬으며 진지하게 말을 이어갔다.
―사실 저는 앞으로 위성이나, 우주로켓 사업을 시작할 생각입니다.
"……!"
―처음에는 저희 회사의 사외 이사로 있으면서 국방부와 저희 회사 사이의 다리가 되어 주십시오.
"오, 그런 일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요."
강혁의 말은 워커가 바라던 일이었다.
―그렇게 우주 관련 사업에 대한 지식을 쌓으시면서, 우주군 창설에 대한 아이디어를 개발하시는 겁니다.
"……!"
―그렇게 밑그림을 그리시다가, 최초로 우주군 창설에 대한 필요성을 설파하시는 겁니다.
"…오!"
강혁의 말을 듣고 보니 충분히 현실성 있는 이야기라고 느껴졌다.
아직까지 우주군에 대한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점이었다.
자신이 그에 대한 최초의 제안자가 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은 이야기다.
워커는 강혁의 제안이 매우 매력적으로 들렸다.
어쨌든 자신은 대기업의 사외 이사로 임명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해 조국의 우주군 창설에 이바지할 수 있다면 그 또한 영예로운 일이 아닌가?
갑자기 의욕이 솟구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죠. 아니 합시다. 존 회장. 아니 반드시 해보이겠소."
워커의 목소리가 갑자기 톤 자체가 변했다.
"존 회장님, 우주군 창설은 이제부터 내 목표요. 조국을 향한 내 마지막 헌신이 될 겁니다."
워커의 말을 들은 강혁은 입꼬리를 올렸다.
그의 목표는 강혁의 목적과 부합되는 것이었다.
물론 단순히 미국의 영광을 위한 일만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강혁은 위성 사업과 로켓 사업을 통해 미국의 전 세계적 정보망과 우주군 사업을 선점할 생각이었다.
워커의 영입은 그를 위한 밑그림이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강혁이 주한미군사령관에서 퇴임할 워커를 잘 대해주면 여러모로 돌아올 것이 많았다.
우선 다음부터 한국에 부임하게 될 주한미군사령관 역시 강혁에게 잘 보이려고 할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장군들 역시 강혁에게 줄을 대려고 할 것이다.
강혁은 한국 주둔 미군 장성들의 동아줄이 되어 줄 수 있었다.
이들 중 강혁에 대한 충성심이 높은 자들은 음으로 양으로 밀어 줄 생각이다.
이런 일이 10년 이상 이어진다면?
강혁의 사람이 미국 국방부 장관이나 태평양 사령관이 되는 일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워커 사령관은 그런 원대한 그림의 시작이 될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워커 사령관님. 장군님의 결심이 그렇다면 저도 힘껏 돕겠습니다.
강혁의 대답에 워커는 감지덕지했다.
"고맙습니다. 존 회장님. 은퇴를 앞두고 있던 저에게 새로운 삶의 비전을 제시했어요."
강혁은 그 후로도 한동안 워커와 앞으로의 일을 두고 의견을 나누었다.
워커는 강혁과 대화하면서 상당히 감명을 받았다.
미국이 왜 우주군을 창설해야하는지에 대한 강혁의 설명은 워커에게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사실 강혁은 미국의 2019년 우주군 창설을 직접 본 사람이다.
게다가 방송을 통해 왜 미국이 우주군을 창설했으며, 우주군의 운영개념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강혁은 워커에게 앞으로 20년은 앞선 미국의 비전을 설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명을 들으면 들을수록 워커는 강혁이 마치 선지자나 되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존 회장이 이런 사람이었나?'
대화를 나눌수록 강혁에 대한 워커의 신뢰와 기대는 커졌다.
―워커 장군님. 그런데 이번에 일어난 미군병사의 시민 폭행 및 살인미수 사건을 알고 계십니까?
"엇? 아, 알고 있지요."
워커는 갑자기 훅 들어오는 강혁의 말에 당황했다.
―사실 상당히 불쾌하더군요.
"하하, 존 회장 입장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워커 사령관은 갑자기 강혁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소파 협정은 알고 있습니다. 그걸 지금 바꿀 수도 없는 노릇이겠지요.
"예, 그건 그렇지요."
―하지만 워커 사령관님이 미국과 우리나라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하기 위해 약간의 힘을 써주실 수는 있지 않을까요?
"……?"
워커 사령관은 강혁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협정의 틀 안에서 이렇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강혁이 자신이 생각한 것을 쭉 설명해주었다.
"그… 그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만,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일이라……."
워커 사령관이 난색을 표하자 강혁은 강하게 나갔다.
―전례야 언제나 만들면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제이슨 때문에 미군에 대한 국민감정이 최악입니다.
"그…그건 그렇습니다."
―이제 임기가 반 년 남았습니다. 워커 사령관님. 마지막으로 한국 국민들을 위해 선물을 하나 주시고 떠나시는 것도 좋지 않겠습니까?
"……."
워커는 잠시 말이 없었다.
강혁이 요구한 것은 아직까지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오래지 않았다.
워커는 지금의 결정이 앞으로 자신의 미래의 향방을 결정짓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2사단장 하워드는 제 부관으로 독일에서 5년간 함께 근무한 적이 있죠."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시오. 존 회장님."
강혁은 워커의 말에 입가를 끌어 올렸다.
―골든 타워 그룹의 일원이 되신 것을 환영합니다. 워커 사령관님.
"감사합니다. 존 회장님. 앞으로 회장님을 잘 모시겠습니다."
―제가 감사하죠. 워커 이사님!
강혁의 말에 워커 사령관의 얼굴에 회색이 돌았다.
퇴임 후 앞날이 깜깜했던 그의 앞길에 밝은 헤드라이트가 비췄다.
캐리 대사의 말대로라면 강혁의 미국 행정부와 의회에 대한 영향력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가 자신을 밀어준다면 국방부로의 재입성도 불가능해보이지 않았다.
제이슨은 취조실에 앉아서 여전히 기고만장했다.
2사단에서 나온 직속 부대 장교 캐빈 대위가 취조실에 함께 하고 있었다.
제이슨은 캐빈이 오자 마음이 든든했다.
왜냐하면 캐빈 대위는 평소 한국인들을 무시하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캐빈이라면 자신을 이해하고 지켜 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자, 이제 기다리던 사람이 왔으니까. 시작해보자고."
제이슨은 최 형사의 말에 입술을 다문 채 양 옆으로 쭉 찢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최 형사가 제이슨의 면전에 사진을 보여주며 물었다.
"21일 저녁 9시경 이태원 기린주점 앞에서 이 사람 뒤통수를 맥주병으로 가격했지?"
최 형사의 질문을 통역이 말해주자 제이슨은 입술을 내밀려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널 봤다는 사람이 5명이 넘어!"
최 형사의 말에 제이슨은 어깨를 으쓱하며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햐, 이 자식이 또 빡 돌게 하네."
최 형사가 화를 삭이며 이를 악 물 때였다.
취조실 문이 열리며 새로운 미군이 나타났다.
"엇? 제임스 중령님?"
캐리와 제이슨은 제임스의 등장에 깜짝 놀랐다.
"캐리 대위, 자네는 부대로 복귀하게. 지금부터 제이슨은 내가 감독하겠네."
"예? 아니 왜?"
"사단장님의 명령이네."
제임스가 캐리에게 명령서를 보여주었다.
"왜 갑자기?"
"그건 나도 모르겠군. 아무튼 자네는 부대로 복귀하게."
제임스 중령의 말에 캐리는 의아스런 표정을 짓고는 경례를 붙인 후, 취조실 밖으로 나갔다.
제이슨 역시 갑자기 캐리가 나가자 약간 불안했지만 제임스는 중령이었다.
더 높은 계급이 왔으니 한국 수사관은 더 함부로 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제이슨의 생각은 5분도 지나지 않아 바뀌었다.
제이슨이 한국 수사관 앞에서 그를 무시하는 듯한 표정을 짓자 바로 불호령이 떨어졌다.
"제이슨! 차렷!"
취조실이 떠나가라 울러 퍼지는 목소리에 제이슨은 깜짝 놀라며 자동반사적으로 차렷 자세를 지었다.
"지금부터 수사관님이 묻는 대답에 정직하고 성실하게 대답한다. 그렇지 않을 시에는 얼차려를 실시하겠다."
"중… 중령님?"
"제이슨 상병!"
"상병 제이슨!"
"알았나?"
"알, 알겠습니다."
제이슨은 제임스 중령의 명령에 깜짝 놀랐다.
대체 왜 이러는지 이유를 짐작할 수 없었다.
'호오? 이것 바라? 이것들이 또 뭐하자는 수작이지?'
최 형사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제임스와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