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20화
120화
#32장 강혁의 큰 그림
최 형사는 계속 질문을 이어나갔다.
"네가 현장에서 체포될 때 타고 있던 차야."
"……."
"이 차 주인을 밀치고 차를 절도한 것을 시인하나?"
제이슨은 답변을 하려다가 제임스와 눈이 마주쳤다.
제임스의 눈은 허튼짓을 하면 박살내겠다는 표정이었다.
꿀―꺽!
제이슨은 침을 삼켰다.
'어…어쨌든 이건 목격자가 많으니…….'
제이슨은 슬쩍 고개를 끄덕였다.
"맞… 맞습니……."
"제이슨 상병!"
취조실이 떠나가라 제임스 중령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제이슨의 미적지근한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상병 제이슨!"
"일어나! 퓨삽 100회!"
"퓨삽 100회!"
제이슨은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팔꿉혀펴기를 시작했다.
자동반사적인 행동이었다.
취조실 안에서 초유의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최 형사는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벙찐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의 미군 수사와는 완전히 다른 양상이었다.
이제껏 파견 나온 참관인이 이런 식으로 행동한 적이 없었다.
방해가 되면 방해가 되었지, 조사에 비협조적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흘러갔다.
제이슨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최형사가 어떤 질문을 하든 태도를 바르게 하며 대답했다.
"흠, 태도는 달라졌는데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군."
최 형사의 말에 제이슨은 입을 다물었다.
태도만 바르면 제임스 중령도 별말을 하지 않았다.
"좋아, 물어볼 건 다 물어 봤으니 이만 끝내지."
최 형사의 말에 제이슨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이제 끝났군. 그럼 부대로 복귀하겠지?'
최 형사가 끝낸다는 말을 하자 제임스 중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임스 중령은 최 형사에게 악수를 건넸다.
"저희 못난 놈 때문에 고생하셨습니다."
"아, 아닙니다."
최 형사는 제임스가 설마 악수를 청할 줄은 몰랐다.
인사를 마친 제임스 중령이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중, 중령님?"
제임스 중령이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왜 그러지?"
"저는 안 데리고 가십니까?"
제이슨의 질문에 최 형사 역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소파 협정에 따라 미군이 요청하면 부대로 소환이 가능했다.
"그런 명령은 받은 적이 없다."
"예?"
"그럼."
제임스는 최 형사에게 경례를 붙이고는 문을 열고 나가버렸다.
최 형사는 그런 제임스를 벙찐 얼굴로 바라보았다.
"야, 너 엄청 꼴통이었나 보다. 완전 버린 자식 취급인데?"
최 형사가 고소하다는 듯이 제이슨을 바라보았다.
이런 일은 미군범죄 수사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보통은 경찰서로 공문을 보내서 부대로 복귀시켰던 것이다.
제이슨은 일련의 상황에 시쳇말로 멘붕이 왔다.
'대, 대체 왜 나한테만 이래?'
미군범죄는 자기만 저지른 것이 아니다.
그동안 들어왔던 것과는 완전 딴판이었다.
제이슨은 그동안 부대에서 들었던 말들이 거짓말이 아니었나 생각할 정도였다.
* * *
"틀림없습니까?"
"예, 회장님. 아멜리아양을 스토킹한 녀석과 동일범입니다."
박정철의 설명에 강혁은 탄식했다.
제이슨이 가지고 있던 총기와 사제 폭탄은 분석 결과 모두 사용가능한 것이었다.
박정철은 제이슨을 그냥 놓아준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놈을 그날 풀어준 것은 제 실책입니다."
박정철이 강혁에게 사과했다.
"꼭 팀장님 잘못이라고만 할 수는 없죠."
강혁이 박정철을 위로했지만 입맛이 썼다.
사고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지나간 일에 연연하기보다 앞으로 어떻게 할지 생각하자.'
사람이 하는 일에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는 일이다.
무슨 일이든 지나고 보면 후회가 있다.
지난 과오에 얽매여 자책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법이다.
게다가 사실 제이슨이 한 일은 여타 다른 미군범죄와 다를 바 없었다.
제이슨이 아니라고 해도 벌어지는 일이었다.
게다가 3년 후, 2000년에 실제 미군에 의한 살인사건이 벌어진다.
2002년에는 어린 두 소녀가 미군 장갑차에 깔려 주었다.
모두 불합리한 소파 협정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라고 할 수 없었다.
강혁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생각의 각도를 바꾸자 오히려 제이슨이 일을 벌였기에 판을 바꿀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팀장님, 놈의 행적을 증명할 수 있습니까?"
강혁이 돌연 고개를 들고 박 팀장을 돌아보았다.
"상당 부분 가능합니다."
알파 팀의 훈련 중 일어난 일이라 많은 부분이 촬영되어 있었다.
원래 훈련 후, 피드백을 위한 자료들이었다.
영상을 편집하면 제이슨의 행적을 증명할 수 있었다.
"아멜리아를 경호하던 팀에서 촬영한 거라고 하면 될 겁니다."
"좋습니다. 박 팀장님. 바로 자료를 만들어 주시죠."
"알겠습니다. 회장님."
강혁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머리가 재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미군이 사제 폭탄을 만들어 테러를 하려고 했다.
그 대상에는 한국에서 영웅대접 받고 있는 최승호가 있었다.
그뿐인가?
아멜리아는 미국의 국민여동생이었다.
다나 무어는 또 어떤가?
그의 아버지는 미국 재계와 정치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강혁은 뭔가 일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일어난 미군범죄에 미국 대통령이 사과를 한 적이 없었지. 아마?'
강혁은 머릿속 기억서랍장을 들여다보았다.
'없군. 없어.'
회귀 전의 기억 속에도 미국 대통령이 한국 국민에게 미군범죄에 대해 사과한 일이 없었다.
'이번에는 다를 겁니다. 대통령님.'
강혁은 워싱턴에 있는 클링튼을 생각하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한국 국민 여러분.
속보라는 자막이 화면에 뜬 가운데 주한미국 사령관이 등장했다.
―…미군 범죄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립니다.
방송에 등장한 워커 사령관은 장문의 사과문을 발표했다.
한국에 미군이 주둔한 이후로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 일을 국내 언론에서 대서특필했다.
워커 사령관은 사과와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문제는 미국 정부에서 일어났다.
워커 사령관의 갑작스런 사과문 발표에 난리가 난 것이다.
주둔군 사령관의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미군이 한국에만 주둔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미 정부 인사들 중 몇몇은 왜 워커가 사과했느냐며 성토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존 회장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은 분명합니다."
국방장관이 대답했다.
"음, 존 회장과 대화를 나눠 볼 필요가 있겠군."
―존 회장.
"대통령님."
강남에 위치한 트레이드 센터 40층에는 골든 타워의 한국지사가 있었다.
강혁은 그곳에서 클링튼 대통령과 화상통화를 진행했다.
화상으로 보는 클링튼 대통령의 표정이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이번 일로 클링튼은 큰 곤혹을 치르고 있었다.
내부적으로 워커 사령관의 사과에 대해 분개하는 인사들이 있었다.
그들이 클링튼에게 워커에 대한 징계를 요구한 것이다.
강혁에 대해 큰 신뢰를 가지고 있는 클링튼으로서는 곤란한 상황이었다.
―존 회장, 이번 일은 좀 지나친 것 같군요.
클링튼은 에둘러 이번 일에 대해 강혁을 질책했다.
"대통령님, 사실 이번 일은 온전히 미국과 대통령님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클링튼은 강혁의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그게 무슨 말이지요?
강혁이 심각한 표정을 연기했다.
"오래전부터 저는 하나의 환상을 보고 있었습니다."
―……?
강혁은 잠시 말을 멈추고 클링튼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시선이 화면에서 부딪혔다.
클링튼은 강혁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궁금해 했다.
강혁이 무거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대통령님, 환상 속에서 미국이 불타고 있었습니다."
―……!
강혁의 말에 클링튼이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강혁은 여러 번 미래를 예언했다.
그런 강혁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 더욱 놀랐다.
―그…그게 무슨 말이요?
"미국에 어두운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두운 그림자?
클링튼의 말에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잠시 고민하던 강혁이 말을 이었다.
"어두운 그림자는 미국에 피해를 입은 국가와 사람들의 원한의 집결체입니다."
―……!
강혁의 말에 클링튼이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원한의 집결체라고요?
"그렇습니다. 원한이 쌓이고 쌓여 미국에 큰 화로 돌아올 겁니다."
―화로 돌아온다.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검은 그림자가 미국을 덮을 때, 큰 화가 닥치게 됩니다."
―그래서 미국이 불탄다는 말이요?
"그렇습니다."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목이 타들어갔다.
―막을 수 없을까요?
"방법이 있습니다."
―정말입니까?
"원한이 쌓여서 생긴 일이니 원한을 풀면 됩니다."
―……?
"워커 사령관이 한 사과는 원한을 풀기 위해 한 일입니다."
―그…그런가요?
강혁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부족합니다."
―그 말은?
"검은 그림자를 막으려면 대통령님께서 직접 사과하셔야 합니다."
―내가요?
"그렇습니다. 여기에 더해 소파협정까지 개정하셔야합니다."
―……!
강혁의 말에 클링튼이 곤혹스러워했다.
"만일 제 말대로 하신다면 적어도 대통령님 임기 중에는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그… 그럼 결국은 일어난다는 말이요?
강혁이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세계 각지에서 검은 그림자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화가 곧 미칠 겁니다."
―……!
"하지만 제 말대로 하신다면 미국이 불타는 시기가 미뤄질 겁니다."
―아예 없앨 수는 없는 겁니까?
"대통령님, 중동에서 군대를 철수시킬 수 있겠습니까?"
―……!
클링튼의 얼굴에 큰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럴 수 없겠지요?"
―그… 그건 어려운 일이요.
"그렇겠지요."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하지만?
"제 말대로 한다면 적어도 대통령님 임기 중에는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
잠시 클링튼의 얼굴색이 여러 번 바뀌었다.
강혁은 클링튼의 얼굴 표정을 면밀히 관찰했다.
'의심하고 있군.'
클링튼은 이미 몇 차례 강혁의 신통함을 경험했다.
하지만 아직은 완전히 그을 믿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강혁은 이미 이럴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강혁은 클링튼에게 회심의 카드를 꺼냈다.
"르윈스키양은 잘 지내고 있습니까?"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화들짝 놀랐다.
르윈스키는 백악관 인턴으로 클링튼은 그녀와 불륜 관계였다.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이 최측근 말고 없었다.
클링튼은 크게 당황했다.
잠시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제가 여자를 조심하라고 했던 말 기억하십니까?"
클링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와는 얼마 전에 관계를 끊으신 것도 압니다."
―……!
클링튼은 강혁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정말 존 회장의 예지능력은 대단하군요.
클링튼은 이제는 믿지 않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강혁은 면밀히 클링튼의 표정을 관찰했다.
'거의 넘어 왔나? 그럼 마지막 쇄기를 박아 볼까?'
"내년에 그 일로 대통령님은 곤경에 처하게 될 겁니다."
―……!
클링튼은 강혁의 말에 깜짝 놀라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실제로 회귀 전 클링튼은 98년에 르윈스키 스캔들로 탄핵위기를 당한다.
―존 회장, 내…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소?
"제가 도와 드리겠습니다."
강혁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고, 고맙소. 존 회장.
이제 더이상 강혁의 말을 의심하던 클링튼은 없었다.
강혁이 말하면 바다를 강이라고 해도 믿을 태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