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22화
122화
"이야, 여기가 골든 타워 코리아라고요?"
최승호는 강혁을 만나기 위해 골든 타워 코리아를 찾았다.
골든 타워 코리아는 강남에 위치한 트레이드 센터 38층에서 40층까지 3개의 층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었다.
최승호는 회장실이 있는 40층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이리나가 반갑게 마중했다.
"승호, 오랜만이야. 요즘 엄청 화제던데?"
"하하, 그게 본의 아니게 그렇게 됐네요."
이라나가 아멜리아와의 스캔들을 살짝 들먹이자 승호는 얼굴을 붉혔다.
'호호, 귀여워.'
쑥스러워하는 승호를 보고 이리나는 웃었다.
"저기서 기다려. 회장님은 좀 늦으실 거야."
"옙."
승호는 넓은 회장실 한쪽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
얼마 있지 않아 강혁이 회장실로 들어왔다.
"왔냐?"
"예, 그런데 형은 안 피곤해요?"
"나? 하하."
최승호의 물음에 강혁은 그저 살짝 웃을 뿐이었다.
강혁은 승호가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알기 때문이다.
"뭐, 어차피 회사 일은 이리나가 다 알아서 하고 있어서 말이야."
"그게 아니라 형사 일 말이에요. 전 정말 아직도 이해가 안 가요."
승호는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겠지."
강혁은 슬쩍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입가와 달리 얼굴은 웃고 있지 않았다.
강혁을 바라본 승호는 순간 가슴이 아파왔다.
그의 표정에서 뭔지 모를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죄, 죄송해요."
"응? 하하. 네가 왜 죄송해."
"아뇨."
미안해하는 승호를 보며 강혁은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
"미안하다. 지금은 말 못 하지만 언젠가는 말해줄 테니까."
"그 말 정말이죠?"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회귀했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대충 각색하는 수밖에.'
"지금으로서는 날 믿어 달라는 것밖에는 할 수 없구나."
강혁의 말에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형을 못 믿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죠. 전 형을 믿어요."
"그래?"
승호의 말에 강혁이 웃었다.
"그건 그렇고. 무슨 일이야?"
"뭐, 꼭 일이 있어야 보나요. 보고 싶어서 왔어요."
"그래?"
사실 한국에 온 후로도 승호는 강혁을 만나기 어려웠다.
워낙 알려진 얼굴에 따라다니는 기자들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혁의 자취방에도 찾아가지 않았다.
유일하게 그를 몰래 만날 수 있는 곳이 이곳이었다.
강혁은 골든 타워 코리아에는 비번 날에만 가끔 출근했다.
그보다 자주 가는 곳은 강혁이 만든 비밀안가였다.
그곳에서 알파팀 대원들과 자주 회동하고 있었다.
강혁이 이곳에 올 때는 신분노출을 피하기 위해 상당히 조심했다.
어디선가 자신을 보고 있을지도 모르는 신상현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이곳에 올 때는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하는 방식으로 오곤 했다.
오늘도 강혁은 서울 시내에 있는 쇼핑센터에 들렀다.
그곳의 옷가게에 들어간 강혁은 비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그곳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스티브의 차에 올라탄 후, 이곳까지 온 것이다.
강혁은 이런 장소를 서울 시내 여러 군데에 마련해 놓고 있었다.
강혁은 오랜 만에 만난 최승호를 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부모님한테 돈을 부쳤다며?"
"헤헤."
"잘했어."
승호가 쑥스러워하며 코에 손가락을 가져갔다.
페이스북은 현재 전 세계에서 회원을 급속도로 늘려가고 있었다.
게다가 이번 제이슨 사건은 그 증가 속도의 도화선이 되었다.
현재 파악된 회원 수는 무려 1억 명을 넘었다.
페이스북에 광고를 올리는 기업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지난 3개월간 들어온 광고 수입만 2천만 달러에 달했다.
그 덕에 승호도 상당한 액수의 수익을 얻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부모님께 돈을 부쳤던 것이다.
하지만 올해 승호가 얻은 수익은 앞으로 얻게 될 것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강혁은 반년 후, 페이스북을 주식시장에 상장할 예정이었다.
그때가 되면, 최승호는 20대에 수천억의 자산가가 될 터였다.
회사는 강혁의 소유였지만 승호에게도 약간의 지분을 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강혁이 승호에게 원하는 것은 페이스북 정도가 아니었다.
강혁은 최승호가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시킬 생각이었다.
그래서 지금처럼 승호를 만나서 이야기하는 기회를 최대한 살릴 생각이었다.
'그럼, 작업 들어가 볼까?'
강혁의 입가에 미묘한 웃음기가 띠었다.
"친구들은 미국으로 돌아갔던데?"
"예, 오늘 낮에 돌아갔어요."
아멜리아, 에밀리, 다나는 모두 강혁의 전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넌 좀 더 있다가 갈 생각이니?"
"부모님과 며칠 더 지내다가 가려고요."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비행기 표는 예약해 둔거야?"
"아뇨. 아직… 인터넷으로 검색은 해봤는데… 아직 못 골랐어요."
"이리나에게 부탁해. 도와 줄 거야."
"아니에요. 그런 폐를 끼칠 수는."
"훗, 여전하구나."
강혁의 말에 얼굴을 붉혔다.
"그러고 보니 생각난 게 있는데……."
"……?"
"비행기 티켓팅을 하려면 여러 항공사가 있잖아."
"그렇죠."
"항공사마다 시간이나 가격도 다르고 말이야."
강혁의 말에 승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그거 고르는 것도 머리가 아프더라고요."
"흠, 너만 그럴까?"
"……?"
"아마 대다수가 가격 비교한다고 시간을 보낼걸."
"그렇겠죠."
"나도 전용기를 사기 전까지는 가격 비교한다고 상당히 시간을……."
"맞아요. 가격 비교를 한 번에 할 수 있으면 얼마나… 엇?"
"…왜?"
강혁은 다 알고 있으면서도 짐짓 모른 척 물었다.
"…한 번에 가격을 비교하고 여기에 티켓팅도 할 수 있다면……."
"그거 진짜 편리하겠다."
"편리하겠네요."
강혁과 최승호의 눈빛이 마주쳤다.
"투자하지. 한번 해봐."
마치 승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이 말했다.
"골든 트립 티켓팅 어때요?"
"멋진데? 승호 사장."
강혁이 웃으며 말했다.
세계 최초의 온라인 여행 티켓팅 회사의 탄생을 알리는 순간이었다.
강혁과 최승호는 계속해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갔다.
"각 나라의 말로 번역되면 더 좋겠지."
승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이건 혼자서는 시간이 너무 많이 걸려요."
당연한 말이다.
"음, 사람이 필요하겠네. 얼마든지 구해주지."
강혁과 승호는 새로운 개념의 온라인 서비스에 대해서 의견을 나누었다.
그러던 중 중요한 문제가 발견됐다.
"티켓팅을 온라인으로 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이 필요해요."
아직 비행기 티켓을 예약하기 위해서는 항공사에 전화를 하거나, 여행사를 통해 예매하던 시기였다.
온라인으로 티켓팅까지 하려면 온라인 결제 시스템이 필요했다.
"일단 가격 비교까지는 그리 어렵지 않겠는데 그게 문제군."
"흠, 하지만 불가능한 건 아니에요."
"그렇지. 불가능한 건 아니야."
강혁과 승호는 온라인 결제 시스템에 대해 아이디어를 교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승호가 말했다.
"형, 티켓팅이 가능하게 된다면 다른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승호의 말에 강혁은 회심의 미소를 숨기며 대답했다.
"뭐든 가능하지."
두 사람의 의견교환 끝에 정리된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회사는 온라인상에 계정을 만든다.
구매자가 계정에 돈을 입금한다.
회사는 계정에 들어온 돈을 판매자에게 준다.
회사는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는다.
이를 구현하기 위한 송금서비스 즉,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만든다.
"형, 미국으로 바로 돌아가야겠어요. 이리나 누나에게 표 부탁드려요."
"응? 며칠 더 있겠다며?"
"아뇨, 부모님께는 미안하지만 바로 가야겠어요."
승호의 눈동자가 반짝반짝거렸다.
머릿속에 떠오른 아이디어를 바로 구현해보고 싶어 안달이었다.
"하하, 못 말리겠군."
강혁은 갑자기 승호의 부모님에게 미안해졌다.
"알았어. 원하는 대로 해봐. 지원은 얼마든지 해줄 테니."
강혁이 눈 한쪽을 찡그리며 윙크를 날렸다.
승호가 생각한 것은 강혁의 회귀 전 미국에서 페이팔이란 회사가 한 것이다.
페이팔은 1999년에 탄생했고 나중에 이베이에 인수되었다.
페이팔을 세운 일론 머스크는 이때 회사를 판매한 돈으로 일약 수천억의 자산가가 되었다.
강혁은 최승호를 부추겨 일론 머스크보다 2년 먼저 온라인 결제 시스템을 만들도록 유도한 것이다.
현재 강혁이 가진 자금으로 인재를 영입하고 연구에 들어가면 1년 안에 결과를 볼 수 있을 터였다.
일론 머스크는 앞으로 2년 후에나 페이팔의 전신인 엑스닷컴을 창업하게 된다.
최승호가 1년은 먼저 앞서게 되니 회사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렇게 되면 회귀 전 전 세계 온라인 지불시스템의 지위를 가졌던 페이팔을 대신할 회사가 될 것이다.
페이팔은 강혁의 회귀 전 자본금만 16조 9천300만 달러짜리 회사였다.
한 해 순이익이 25억 달러에 달했고, 사원만 2만 명이 넘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것은 페이팔을 창업할 때 함께 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천재였다는 것이다.
페이팔 창업자이며, 테슬라를 만든 일론 머스크.
유튜브를 만든 스티브 첸과 채드 헐리.
천재 엔지니어 맥스 레브친.
링크드인 창업자 레이드 호프만.
페이팔 공동창업자이며 CEO인 피터 틸.
이들이 모두 페이팔 창업시에 함께 했던 이들이다.
강혁은 이들을 최승호가 만들 온라인 결제 서비스 회사의 연구원으로 불러 모을 생각이었다.
머릿속으로 거대한 그림이 그려졌다.
세계를 주름잡을 거대 그룹의 CEO들을 자신의 영향력 아래에 둘 수 있는 기회였다.
강혁의 회귀 전 이들은 모두가 실리콘 밸리의 파워 맨들로 성장했다.
독립한 이후로도 페이팔 창업시 함께 했던 인연으로 끈끈한 정을 유지하는 사이였다.
오죽했으면 페이팔 마피아라고까지 불렀겠는가?
서로 사업 아이디어들을 의논하고 즉석에서 투자하며 끌어주고 당겨주는 관계였다.
강혁은 최승호에게 한 것처럼 이들에게 영감을 주고, 투자를 해서 회사를 세울 생각이었다.
강혁은 이들 천재들을 데리고 회귀 전 페이팔 마피아 이상의 관계를 만들 자신이 있었다.
끊임없는 아이디어와 영감, 투자금과 회사의 지분이라면 이들을 사로잡을 수 있었다.
강혁은 승호를 배웅하고 이리나에게 비행기 티켓 예약을 지시했다.
"자, 한 건 해결했으니, 그럼 한국의 천재를 포섭하러 가볼까?"
강혁은 테이블에 올려져 있는 커피를 마저 마신 후, 자리에서 일어나 주차장으로 내려갔다.
* * *
허름한 사무실에서 30대 중반의 남자가 컵라면을 까고 있었다.
제대로 정돈 안 된 머리, 덜 깎인 턱수염.
키는 170 중반에 적당히 살이 찐 체격이다.
사내의 이름은 이재학.
며칠 동안 사무실에서 숙식을 하며 시스템에서 발견된 버그를 잡고 있는 중이다.
컵라면에 끓는 물을 부은 이재학은 냉장고를 뒤졌다.
"김치가 남아 있어야 하는데. 하~아."
냉장고를 열어본 이재학은 한숨을 쉬었다.
김치를 넣어 두었던 네모난 반찬통 안에서 발견한 것은 반쯤 먹다 남은 무 한 조각이었다.
"이거라도 남았으니 다행인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이재학은 반쯤 먹다 남은 무를 다시 반 조각냈다.
"크~ 무야, 무야. 넌 저녁에 먹어주마."
이재학은 반의 반 조각난 무김치 하나와 컵라면을 우걱우걱 먹어치웠다.
"실례합니다. 이재학씨 계시나요?"
"응? 누구지?"
이재학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문 쪽으로 걸어갔다.
"누구세요?"
"이재학씨인가요?"
이재학은 문을 열어 주었다.
눈앞에 훤칠한 인상에 키가 큰 20대 중반의 남자가 서 있었다.
"예, 저 맞습니다만.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반갑습니다. 팬입니다. 우리나라 최초로 웹 메일 서비스를 개발하신 분이죠?"
강혁이 이재학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