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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27화 (127/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27화

127화

#34장 새로운 결심

청와대.

곽 실장은 비서실장실에서 청와대 비서관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통령의 다음 달 일정을 세부적으로 조율하기 위한 중요한 회의였다.

이 자리에는 청와대 경호실장도 실무팀과 함께 참석하고 있었다.

워낙 중요한 회의라 참석자들은 예외 없이 일절 외부로부터의 연락을 차단시켜 놓았다.

"잘 들어요. 이번 행사에서는 어떤 차질도 일어나서는 안 됩니다."

곽 실장의 당부에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청와대 비서관들이라면 대통령이 이번에 참석하는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 가를 알고 있었다.

대통령이 정치적 지지기반인 부산, 경남을 거쳐 대구, 경북을 아우르는 일정이었다.

일정과 방문지에 한 치의 차질도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한참 회의가 진행되고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였다.

회의실 문이 열리며 행정관 한 명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대통령님이 부르시는 게 아니면……."

곽 실장의 물음에 행정관은 대답하지 않고 단지 가까이 다가가 귓속말을 건네었다.

"바로 가도록 하지."

곽 실장은 비서관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잠시 쉬도록 하지."

곽 실장의 말에 비서관들은 의아해했지만 곧바로 수긍했다.

회의실을 벗어나자 몇몇 비서관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통령님이 부르시는 것이 아니면 회의 도중 들어올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귓속말을 했다는 것은 대통령이 부른 것이 아니란 뜻이었다.

대체 무슨 일이었을까?

얼마나 중대한 일이기에 대통령의 오른팔이라는 곽 실장이 중요한 회의 중에 나간 것일까?

비서관 중에 몇몇은 곽 실장의 행적에 호기심을 품었다.

그만큼이나 곽 실장의 지금 모습은 평소 보기 힘든 예외 행동이었다.

다만 대통령 경호실장 백상호는 뭔가 아는 듯한 표정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그런 문제라면 걱정 마십시오. 지금 바로 조치를 취하지요."

전화를 끊은 곽 실장은 다시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전화로 누군가에게 지시를 내린 곽 실장은 전화를 끊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존 회장님,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소파협정 개정에 힘써주신 것. 대한민국 국민을 대신해서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틀림없이 나라를 위한 일이겠지요. 앞으로도 전화만 주신다면 언제든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곽 실장은 잠시 콧대 높은 미국 대통령과 주한 미군 사령관이 공개적으로 한국과 한국국민에게 사과했던 일을 떠올렸다.

주한미군범죄에 대한 미국 대통령의 사과는 건국 이래 최초의 일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일본은 이미 몇 년 전 오키나와에서 있었던 초등학생 윤간사건에 대해 미국 대통령의 사과를 받았다.

거기에 비하면 경미하다고 할 수 있는 일에 미국 대통령이 사과를 했다.

게다가 일본과 독일 수준으로 소파협정을 개정하면서 요즘 박 대통령의 인기는 상한가를 치고 있었다.

여러모로 강혁에게 고마운 곽 실장이었다.

강혁이 경찰청에 도착하자 소속을 알 수 없는 두 남녀가 다가왔다.

두 사람 모두 맞춘 듯한 검은색 양복 차림에 머리가 단정했다.

"강혁 형사이신가요?"

두 사람 중 남자가 강혁에게 말을 걸었다.

"예, 그렇습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저희가 안내해드리죠."

강혁의 남자의 말에 가볍게 머리를 끄덕였다.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는 강혁을 경찰청 3층에 별도로 준비된 공간으로 인도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는 이미 자료들이 놓여 있었다.

"살펴보시죠."

사내의 말에 강혁은 자료들이 놓여 있는 책상으로 다가가 의자에 앉았다.

눈으로 살펴보니 요청했던 자료들이 모여 있었다.

"더 필요하신 자료가 있으면 말씀하세요."

머리를 짧고 단정하게 자른 미모의 여성이 강혁에게 말했다.

눈빛이 차분하고 몸놀림이 고도로 절제되어 있었다.

강혁은 두 사람의 정체에 대해 추측되는 바가 있었다.

'국가안전기획부? 아니 대통령 경호실 쪽 사람이군.'

국가안전기획부는 강혁의 회귀 전 국정원의 전신이다.

강혁은 두 사람의 몸놀림과 태도를 보고 훈련받은 요원이라 판단했다.

다만, 일반인들 사이에 섞여야 하는 첩보요원보다는 경호실 쪽 인재로 판단했다.

누가 봐도 일반인들과는 구분되는 아우라가 풍겼던 것이다.

"필요하면 말씀드리죠."

강혁의 말에 두 사람은 고개를 숙여 인사한 후, 방에서 나갔다.

강혁의 눈이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자료들을 향했다.

"그럼 살펴볼까?"

강혁의 눈앞에는 지난 삼 개월 이내에 수도권 전역에서 일어난 살인사건들의 자료가 있었다.

그는 예리한 눈으로 눈앞에 놓인 자료들을 하나둘 살펴나갔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테이블의 위에는 검토를 마친 파일들이 하나둘 쌓여나갔다.

'이거다.'

강혁의 눈에 예사롭지 않은 사건 파일이 발견되었다.

그는 심각한 표정으로 사건 파일 속에 적혀 있는 수사일지를 살펴보았다.

인천 월미도 바닷가 인근의 석유가게.

20대 초반의 젊은 남자가 모자를 푹 눌러쓰고, 승합차에서 내렸다.

석유와 얼음을 파는 석유가게의 이름은 등대 석유 가게였다.

여름철에는 얼음을 팔고, 겨울에는 난방용 기름을 파는 곳이었다.

주로 전화로 주문을 받아 주택가로 배달을 가는 가게다.

외진 곳이라 지나가는 사람도 드물고 CCTV도 없었다.

남자는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승합차에 기름을 끼얹은 후 불을 붙였다.

그리고 유유히 사라졌다.

퍼어엉!

불꽃과 함께 엄청난 소리가 터졌다.

가게 주인인 최동현은 굉음에 놀라 밖으로 나왔다가 가게 주차장에서 난 불을 보고 깜짝 놀랐다.

처음 보는 승합차가 불에 휩싸여 있었다.

"뭐, 뭔 일이여?"

당황한 최 사장은 즉시 119에 신고하고는 소화기를 찾아 승합차로 달려갔다.

석유 가게라 인근에 유류창고가 있었다.

거기에 불이 옮겨 붙으면 큰일이 벌어진다.

"제―엔장, 대체 뭔 일이여? 이 차는 또 뭐여?"

간이 소화기로 불을 꺼보지만, 중과부족이었다.

최 사장은 소방차가 올 때까지 발을 동동 굴렀다.

혹시나 차에서 난 불이 유류창고까지 옮겨갈까 노심초사했다.

마침내 앵앵거리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 최 사장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여기여! 여기! 빨랑 좀 오시랑께"

최 사장은 팔을 흔들며 소방차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사장님, 비켜서세요."

소방차에서 내린 소방관들이 재빨리 불타는 승합차 쪽으로 소방호수를 겨누었다.

곧 소방호수에서 강한 물줄기가 쏟아져 나왔다.

소방관들이 불을 끄는 동안 소방대장으로 보이는 사내가 다가와 물었다.

"유류창고가 어딥니까?"

"아, 저기여. 저기여."

최 사장은 손으로 유류창고를 가리키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최 사장의 설명을 들은 소방대장이 말했다.

"모두들, 잘 들어. 유류창고 쪽으로 불똥이 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도록!"

"예! 대장님."

소방관들은 혼신의 힘을 다해 불을 끄는데 주력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승합차에 난 불과 주변으로 옮겨 붙었던 불들을 모두 끄는 데 성공했다.

그제야 소방관과 함께 출동했던 경찰들이 사장에게 다가가 물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최 사장은 놀랐던 마음을 겨우 진정시키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창 불을 끄는 중에는 경황이 없어서 제정신이 아니라 대답을 해줄 상태가 못 되었다.

"그렇다면, 저 승합차는 사장님이나 지인의 차가 아니란 말씀이죠?"

"그렇지요. 전 전혀 모르는 찹니다. 오늘 처음 봤으니께."

"알겠습니다."

불이난 주차장 인근 주민의 안전과 질서유지를 위해 경찰들도 다수 출동한 상태였다.

그중 책임자인 남 경사는 최 사장의 말에 불길한 느낌을 받았다.

'이곳 차가 아니다? 왜 외딴 곳에 차를 버리고 불을 태웠을까?'

남 경사는 불이 꺼진 승합차를 바라보았다.

"어이, 김 순경!"

"예, 남 경사님."

"따라와!"

"예."

남 경사는 김 순경을 데리고 승합차로 다가갔다.

"김 순경은 뒤 범퍼 쪽을 살펴봐. 아직 뜨거울 수 있으니까. 조심하고."

"예!"

남 경사는 조심스럽게 차 안을 살펴보았다.

운전석 쪽은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었지만 뒷좌석을 살펴본 남 경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했던 예감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불타고 남은 차량의 뒷좌석에 반쯤 불탄 남자의 시체가 있었던 것이다.

"어이! 당장 서로 연락해! 살인 사건이다."

"예? 예. 경사님."

뒤 트렁크를 살피던 김 순경은 남 경사의 말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살인이 났다는 말에 최 사장도 화들짝 놀랐다.

소방관들도 남 경사의 말에 술렁였다.

'대체 어떤 미친놈이 사람을 죽이고 여기다가 버린 거야?'

남 경사는 얼굴을 찌푸렸다.

그리고 속으로 이제는 고인이 된 신원불명의 남자를 향해 명복을 빌었다.

30분 후, 경찰서에서 감식반이 도착했다.

시신은 수거되어 국과수로 넘겨졌다.

수사 일지를 모두 살펴본 강혁은 파일에 첨부된 검시 보고서를 읽었다.

[양 손목 절단.

신체 스무 군데 칼자국.

머리에 둔기로 맞은 상처 자국.]

시신의 사인을 본 강혁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강혁의 설마했던 의심이 확신으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회귀 전 2004년 서울은 연이은 살인 사건으로 몸서리쳤다.

너무도 잔혹하게 살해당한 시신들이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피해자 대부분이 칼로 잔인하게 죽임을 당했다.

온몸에서 발견된 칼상.

잔혹하다 할 정도로 심하게 훼손된 사체.

해당 사건들을 조사한 수사관들은 처음에는 원한관계에 주목하고, 피해자의 주변을 탐문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딱히 원한을 살 만한 일이 없었기에 사건들은 미궁에 빠졌다.

인천 월미도 인근에서 발생한 이 사건 역시 사건 해결에 진척이 없는 상태였다.

양 손목이 잘려나가고, 온몸에 스무 군데 이상 칼자국이 나 있었다.

잔혹한 살인 방법에 수사관들은 원한관계로 생각하고 주변인들을 탐문했다.

피해자는 서울 황학동 도깨비 시장에서 불법CD를 판매하는 자였다.

조사 결과 피해자는 살인을 당할 만큼 특별한 원한관계나 채무관계가 전혀 없었다.

다만 살해당한 날 저녁 7시경 20대로 보이는 청년과 골목에서 심각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모습이 목격되었을 뿐이었다.

목격자는 인근 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이었다.

이 대목에서 강혁의 두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20대 청년.'

2004년에 남정규는 30대 초반이었다.

하지만 지금이라면 20대 청년이다.

강혁은 목격자의 신상과 연락처를 따로 메모했다.

그리고 파일을 따로 빼 놓은 다음 다른 파일들을 살폈다.

시간이 물 흐르듯 흘렀다.

어느덧 경찰청 바깥은 까만 장막으로 뒤덮였다.

문이 소리도 없이 열리며, 미모의 젊은 여성이 들어왔다.

낮에 강혁을 이곳으로 안내했던 대통령 경호실 요원이다.

"커피라도 드시면서 하시죠."

강혁이 고개를 돌리자 구수한 커피향과 함께 앳된 미모의 여성이 커피를 내놓았다.

"아직 안 가셨군요?"

"예! 저희들이 받은 지시는 별도의 지시가 있기 전까지 이곳에서 VIP를 돕는 것입니다."

"이름이 뭐죠?"

"예?"

"절 도우라고 했다면서요? 이름이라도 알아야 말하기 편하지 않겠어요?"

"신보라입니다."

"밖의 친구는요?"

"이태경입니다."

문 밖에서 낮고 굵직한 음성이 들렸다.

두 사람 모두 강혁에게 불필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강혁은 문득 그들이 이곳으로 파견될 때 어떤 말을 들었는지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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