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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30화 (130/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30화

130화

"눈앞의 사람은 C.I.A 출신의 고문 전문가야. 별명은 피 박사지."

'피 박사?'

"사람을 딱 죽지 않을 만큼만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안다고 해서 피 박사야."

"……!"

"지금부터 널 죽지 않을 만큼만 피를 흘리게 해줄 거야."

강혁의 말이 끝나자 흑인이 남정규를 바라보았다.

무미건조한 얼굴은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얼굴이었다.

남정규의 눈앞에서 커다란 하얀색 슈트케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금속성의 기기묘묘한 금속제 도구들을 꺼내었다.

"뭐, 뭐야, 이것들은?"

"뭐랄까? 네 입을 열게 해줄 마법의 도구?"

강혁은 짐짓 남정규에게 겁을 주었다.

"말, 말할게. 아니 말할게요. 뭐든 물어보세요."

강혁은 남정규의 태도에서 거짓을 읽었다.

멋대로 말을 지어내려고 하는 마음을 바로 읽어냈다.

"좋은 태도군. 하지만 아직은 믿을 수가 없어."

강혁의 말이 끝나자 거대한 몸집의 흑인이 남정규의 손가락을 향해 집게를 가져갔다.

"말한다니깐?"

남정규의 절규에도 흑인 고문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잠시 후,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울렸다.

하지만 방음장치가 완벽한 이곳에서 조금만 소리도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이곳은 C.I.A의 심문실을 본떠서 만든 장소였다.

"어때? 진실을 말할 준비가 됐나?"

남정규의 손가락이 기묘한 방향으로 꺾여 있었다.

"말할게요. 말한다니까요? 제발 물어봐주세요."

"아직은 믿을 수 없군."

강혁은 여전히 남정규가 거짓말을 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을 눈치챘다.

"개자식아― 말한다니까?"

뿌드득하는 소리와 함께 또 하나의 손가락이 부러졌다.

비명소리가 사방으로 울렸다.

그런 남정규를 강혁은 무심히 바라보았다.

원래의 강혁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이런 모습의 강혁은 회귀 전 신상현 일당을 죽이러 갔을 때를 제외하고 처음 보는 것이었다.

비명을 지르며 고문을 당하는 남정규를 강혁은 눈도 하나 깜짝하지 않고 바라보았다.

어떤 질문도 없이 고문은 계속되었다.

마치 그의 손에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복수라도 하려는 듯이 강혁은 무자비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남정규가 공포와 절망에 빠진 모습을 확인한 강혁은 그제야 고문관에게 신호를 주었다.

그러자 흑인 고문관은 슈트케이스에서 기묘하게 생긴 주사 바늘 총을 꺼내었다.

남정규의 목에 총을 갖다 대고 쏘았다.

"이제 준비가 된 것 같군. 시작해 보지."

남정규의 목에 자백제를 주사한 것이다.

자백제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신념이 있는 자에게는 효과가 없다.

하지만 지금처럼 의지가 꺾인 자에게는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잠시 후, 남정규는 강혁이 물어보는 것은 무엇이든 대답하기 시작했다.

"……?"

강혁은 남정규와의 대화 중에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다시 말해봐? 어린 꼬마를 만났다고?"

"초등학교 6학년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였어요. 이상한 소릴 하더군요."

"이상한 말?"

"아니 정정해야겠네요. 그건 복음과도 같은 말이었어요."

"……?"

"늑대가 왜 토끼처럼 살고 있냐고 하더군요."

"……."

"그게 다였어요. 그게 다였는데…이상하게 그날부터 내 안의 본능이 깨어나기 시작했죠. 키킥킥."

만신창이가 된 상태에서도 남정규는 웃음을 그치지 못했다.

강혁은 남정규가 더 이상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미 짐승이었다.

유호철은 정신을 차리자 자신이 이상한 곳에서 깨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을 바라보는 험악한 흑인 군인을 발견하고는 눈을 껌뻑거렸다.

그는 앞으로 자신에게 일어날 일을 미처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바닥에서 나는 피 냄새를 맡고 이곳에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게 선팅된 유리창 너머로 위압적이고 공포스런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호철, 네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

강혁은 유호철까지 심문을 끝낸 후, 심각한 표정이 되었다.

두 사람 모두 미지의 초등학생을 우연히 만났고, 비슷한 말을 들었다.

그리고 그 후로 다시는 그 초등학생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덕분에 자신 안의 어떤 것이 깨어났다고 말했다.

남정규나 유호철 모두 비슷한 경험을 했고, 기회가 되자 살인을 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미지의 초등학생.

두 사람이 설명한 초등학생의 생김새는 강혁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신상현과 일치했다.

회귀 전 자취방에서 보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TV속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그 신상현이었다.

강혁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신상현이 마침내 행적을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왜 신상현은 그런 짓을 한 것일까?

무엇을 위해서?

강혁은 이 부분은 짐작하기 어려웠다.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문이 열리며 박정철이 들어왔다.

"회장님, 저들은 어떻게 할까요?"

이미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살인행각과 흉기를 숨겨둔 곳, 매장 장소까지 모든 것을 실토했다.

강혁은 언제든지 두 사람을 체포해서 경찰로 넘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상처가 나을 때까지는 이곳에 감금해 두도록 해요."

"알겠습니다."

강혁의 말에 박정철이 대답했다.

박정철이 다시 방을 나가자 강혁은 다시 생각에 잠겼다.

'회귀 이후, 역사가 많이 바뀌었지. 대다수 내가 개입했을 때였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은 신상현이 개입하면서 역사가 바뀐 것이었다.

강혁은 이제 신상현이 자신과 같은 회귀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고 판단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많았다.

애초에 신상현은 지금쯤이면 삼강 회장의 집에서 외부와 격리된 채 살아야 했다.

그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삼강은 그의 존재 자체를 세상에 숨겼었다.

'그렇게 살기 싫었겠지. 그렇다면 지금은 어디에 있을까?'

강혁은 자신이 신상현의 입장이 되어 생각하기 시작했다.

회귀 전 강혁은 그에 대해서 프로파일링을 했었다.

그의 심리 상태에 대해서 강혁은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만일 내가 기억을 그대로 가진 채 회귀한 신상현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갇혀 지냈던 삼강으로는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신상현은 야심이 대단한 자였다.

그는 삼강을 삼키기 위해 삼강의 후계자였던 형을 독살하지 않았던가?

그런 야심가가 그저 조용히 살기를 택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어려웠다.

무엇보다도 신상현은 자신처럼 미래를 알고 있는 자였다.

그렇게 생각하자 새삼 강혁은 신상현의 존재가 위험하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강혁은 회귀 후, 바뀐 역사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검토했다.

그러다가 한 가지 사실이 뇌리를 스쳤다.

'최영혜! 최영혜는 왜 삼양백화점 붕괴 현장에 나타났을까?'

뭔가를 깨달은 강혁은 팔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 정치계에서 가장 큰 화제 중의 하나가 바로 최영혜였다.

아직 정계에 입문하지 않았지만, 이미 상당수의 사람들이 최영혜의 정계입문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강혁은 벌떡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박 팀장을 불렀다.

"회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최영혜. 최강수 대통령의 딸 최영혜 아시죠?"

강혁의 말에 박정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인기가 하늘을 찌르시는 분이죠."

강혁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최영혜의 인기는 아이러니하게도 삼양백화점의 붕괴 때문이었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강혁은 그제야 모든 퍼즐이 맞춰지는 듯했다.

이규철이 뇌물을 먹여서 국회의원들과 시장, 국내 최고의 신문사를 모두 구워삶았었다.

그런데 왜 실패했을까?

그 이유는 바로 최영혜였다.

최영혜가 붕괴 현장에 나타나 국민적인 영웅이 되는 것.

그것 하나를 위해 붕괴 사실을 예견하고도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런 모든 계획을 설계하고 행동에 옮긴 것은 회귀한 신상현일 것이다.

강혁은 모든 사실을 깨닫자 분노로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박정철이 걱정이 되었는지 강혁을 몇 차례나 불렀다.

"전 괜찮습니다."

"하지만……."

"진짜 괜찮아요. 그보다 지금 당장 착수하셔야 할 일이 하나 있습니다."

"……?"

"최영혜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모든 것을 조사해주세요."

"……!"

"특히 최영혜 주변에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의 남자아이가 있는지 알아봐 주세요."

"초등학생요?"

박정철의 의문에 강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그 초등학생이?"

"맞습니다. 유호철과 남정규의 살인 본능을 깨운 것이 바로 그 초등학생입니다."

"……!"

"이름은 신상현. 사이코 패스 연쇄 살인범입니다."

초등학생이 사이코 패스에 연쇄 살인범이란 말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지금까지 강혁을 지켜본 박정철은 그가 허튼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박정철은 평소와 같이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바로 조사에 들어가죠."

"부탁합니다."

*     *     *

거실에는 머리가 희끗하고 나이가 든 늙은이와 중년의 남자들이 여러 명 모여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어린 초등학생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나무자비 조화불. 시키신 일은 처리했습니다."

머리가 희끗한 중년의 남자가 머리를 숙이며 신상현에게 말했다.

"잘했어요. 최 총장."

신상현이 미소를 지으며 중년 남자를 바라보았다.

"아닙니다. 현세에 강림하신 조화불이시며 영세계의 칙사께서 내리신 신탁인데 따라야지요."

검찰총장인 최찬규의 말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 역시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맞습니다. 우리 조화불님께서 하신 말씀을 따라서 잘못된 적이 있던가요?"

나이가 지긋한 대한일보 회장이 주변 인사들을 바라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렇고 말고요. 미래를 정확히 예견하시는 분이 아니십니까."

이번에 국회의장으로 선출된 5선의 이기용이 함박웃음을 지으며 동의했다.

"우리 조화불님 신통하신 것을 우리가 한두 번 겪어 봤습니까? 하하."

수도방위사령부의 사령관인 김도균 중장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 자리에 모여 있는 면면들 모두 대한민국의 거대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이제 겨우 초등학교 6학년인 신상현의 말을 신탁처럼 여기고 있었다.

"하하, 앞으로도 저의 말을 잘 따르면 여러분과 여러분의 자손들 대대로 큰 복을 받을 것입니다."

"나무자비 조화불."

신상현의 말에 모두가 양손을 모아 비비며 주문을 외웠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 우리 영혜님께서 입당을 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대한국당의 실세이자 국회의장인 이기용이 조심스럽게 신상현에게 물었다.

이기용의 질문에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십여 명의 사람들이 모두 신상현의 입술을 주목했다.

현재 최영혜의 인기는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지금 나서면 당선은 당연한 것이고 단숨에 다음 대권 후보로 떠오를 수 있었다.

이기용이 나선다면 대한국당의 의원들 다수가 최영혜의 밑으로 모일 것이다.

그러면 다음 대통령이 최영혜가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 될 것이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지금 국민적인 영웅이 된 최영혜가 아닌가?

모두의 기대가 어린 눈이 신상현의 입만 바라보았다.

신상현이 빙긋이 웃었다.

현기증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미소였다.

"다들 기대가 큰 모양이군요."

신상현의 말에 모두들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최영혜가 대통령이 되면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그 정권의 실세가 될 사람들이다.

달콤한 꿀단지가 옆에 있으니 몸이 달아오를 만도 했다.

신상현이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조용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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