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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31화 (131/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31화

131화

#35장 길을 바꾸다

"대권을 잡으려면 천시가 맞아야 합니다."

"천시?"

"이번에는 천시가 안 맞다는 말입니까?"

이기용 국회의장의 물음에 신상현이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아니 왜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대한일보 회장 서성수가 조심스럽게 다시 물었다.

뭐라 해도 시류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것이 언론사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정보가 빠르다는 대한일보의 회장인 서성수는 신상현의 말에 가장 의아한 사람이었다.

그가 생각할 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류가 맞았다.

"다들 믿지 못하는 표정이군요?"

신상현의 말에 그들의 얼굴이 일변한다.

"아, 아닙니다. 조화불님. 그게 아니라."

김도균 중장이 당황하자 신상현은 그저 미소를 띨 뿐이다.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죠."

지금 집권 여당의 인기는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현 대통령이 소파개정을 성공적으로 해낸 후 임기말 인기가 치솟았던 것이다.

유일한 문제가 있다면 현재 여당 내에서 다음 대권주자로 전 감사원장이며 국무총리였던 이상재를 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문제는 없었다.

만일 최영혜가 등장한다면 얼마든지 여당 내 지지 세력의 판도를 바꿀 수 있었다.

여권의 실세인 이기용은 그렇게 생각했다.

"올해가 가기 전 큰 환난이 발생할 겁니다."

"환난이라고요?"

서성수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환난이란 말에 모두들 벙찐 표정이 되었다.

환난이라니?

전쟁이라도 일어난다는 말인가?

"어떤 환난입니까? 조화불님. 북한 놈들이 불장난이라도 저지르는 건가요?"

김도균 중장이 급히 물었다.

그런 김도균을 바라보며 신상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번 환난은 서쪽에서 시작됩니다. 북쪽이 아니라."

"서쪽이라고요?"

신상현이 무리를 바라보며 신비로운 미소를 머금었다.

"나라가 흔들리고, 많은 기업이 무너질 겁니다. 하지만 준비만 잘 해놓는다면 오히려 큰 부를 이룰 수도 있겠죠."

신상현의 말에 놀라는 한편으로 희색이 떠올랐다.

환난이 닥쳐도 신상현만 잘 따르면 자신들은 오히려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까지 신상현의 신탁은 항상 자신들에게 큰 이익을 안겨주었다.

"뭐든지 지시만 하십시오. 저희들은 조화불님의 신탁만 믿겠습니다."

"나무자비 조화불."

누군가 한 사람이 합장하며 주문을 외웠다.

그러자 무리 전체가 따라 하기 시작했다.

실내가 금세 뜨거운 열기로 뒤덮였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파워 그룹이 이제 초등학교 6학년 정도밖에 되지 않는 신상현을 신불처럼 모셨다.

이 장면은 기묘한 광경이었다.

*     *     *

"이럴 수가?"

강혁은 최영혜의 저택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면면과, 상석에 앉아 있는 신상현의 모습에 큰 충격을 받았다.

"최영혜씨가 양자를 들였더군요."

"양자라고요?"

박정철은 강혁에게 두 사람의 법적인 관계를 알려주는 서류의 복사본을 내밀었다.

강혁은 박정철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소년은 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이 사람들이 모두 하나같이 신불처럼 여기고 있었습니다."

박정철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파워맨들이었다.

국회의장 이기용만 해도 여의도 정계에서 누구도 무시 못 하는 사람이었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의 원수가 되는 복마전에서 살아남은 사람인 것이다.

집권 여당에는 이기용을 따르는 거대 계파가 존재했다.

현 대통령 박영삼 역시 이기용이 손을 들어주어 대통령 후보로 나설 수 있었지 않은가?

그뿐인가?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밤의 대통령.

대한일보 회장 서성수 역시 어린 소년을 신불처럼 모셨다.

마치 자신의 앞날을 점지해주기라도 하는 신적인 존재처럼 말이다.

여기에 검찰 권력의 정점인 검찰총장 역시 함께했다.

하지만 이 모임의 화룡점정을 찍는 것은 역시 김도균 중장이었다.

대한민국 최강의 전력을 갖추고 있는 수도방위사령부의 사령관이 바로 김도균 중장이다.

권력은 총부리에서 나온다는 격언까지 있지 않은가?

정계와 언론계, 사법당국 그리고 군부.

하나같이 정점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자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들이 모두 한 자리에서 모임을 가졌다는 것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들 외에는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유력자들이 많았다.

강혁은 이들의 면면을 보며 신상현이 이미 오래 전부터 준비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불현듯 소름이 돋았다.

강혁은 신상현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깨달았다.

'놈은 신철호 회장의 아들이다. 어쨌든 혈연으로 이어져 있지.'

신상현은 어떻게든 삼강의 후계자가 될 생각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앞으로 최영혜가 대통령이 된다면?

재계와 정계를 모두 장악해 대한민국을 뒤에서 조정하려는 속셈이 분명했다.

강혁은 치가 떨렸다.

사이코 패스 살인마가 대한민국을 통째로 삼킬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아니었다.

강혁은 삼강만을 상대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생각을 크게 수정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얼어 죽을~ 잘못하면 삼강이 아니라 대한민국 전체와 싸워야 할지도 모른다.'

강혁의 두 눈에서 불꽃이 피었다.

'네 생각대로 되게 두지는 않는다. 신상현.'

"박 팀장님, 알파팀을 모두 소집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강남에 위치한 거대한 마천루 건물인 트레이드 센터 지하주차장 아래에 거대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모든 것이 매우 비밀한 가운데 이뤄졌기 때문이다.

건물의 주인인 한국무역협회 역시 이러한 사실을 몰랐는데, 이는 대한민국 정부 측에서 정식으로 협조 요청이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약간이나마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은 트레이드 센터 지하에 정부 시설이 들어선다고만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작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트레이드 센터 지하에 만들어진 공간이 C.I.A의 한국 지부에서 사용하는 비밀기지로 알고 있었다.

강혁이 미국 쪽 인맥을 이용해 철저하게 비밀로 한 것이다.

강혁은 골든 타워 그룹에 C.I.A와 이스라엘의 모사드를 능가하는 수준의 사설 정보기관을 만들 생각이었다.

알파팀은 그런 강혁의 구상에 아주 작은 편린에 불과했다.

팀의 명칭이 알파팀인 것도 일종의 프로모 개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강혁은 골든 타워 한국 본사를 위한 거대한 빌딩 건설을 계획 중이었다.

만일 완공이 끝난다면 트레이드 센터를 넘어서는 서울의 랜드마크가 될 것이다.

회귀 전 롯데월드타워를 훨씬 능가하는 세계 최고의 건물을 지을 생각이었다.

이미 부지를 선정하고 설계를 이탈리아의 유명 설계 회사에 의뢰해 놓은 상태였다.

골든 타워 본사 건물을 강혁은 한국을 대표하는 명물로 만들고 싶었다.

미국의 쌍둥이 빌딩, 회귀 전 세계 최대의 높이를 자랑하는 두바이의 부르즈 칼리파.

강혁은 이들 모두를 능가할 수 있는 건물을 생각했다.

건물이 완공되면 현재 트레이드 센터에 있는 이 비밀기지는 그곳으로 옮겨질 것이다.

그때까지는 이곳을 아지트로 삼을 생각이었다.

"한 달 후, 이곳으로 미국에서 교육받은 정보팀이 올 겁니다."

강혁의 말에 알파팀은 고개를 끄덕였다.

박정철의 인맥으로 국가안전기획부 해외정보팀 출신 사람들이 미국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

알파팀이 그랬던 것과 마찬가지로 전직 C.I.A와 모사드 출신의 교관들이 그들을 교육시켰다.

원래 국가안전기획부 소속으로 철저하게 단련된 인물들이라 빠른 교육이 가능했다.

"그들은 골든 타워 그룹 소속 사설 정보팀의 창설 멤버들이 될 거예요."

모두 이미 그동안 강혁에게 들어왔던 이야기라 큰 동요는 없었다.

"그들에게 지금까지 조사했던 자료들을 넘기도록 하세요."

"예, 회장님."

알파팀은 그동안 대다수의 시간을 정계와 사법 당국의 주요 인사들의 동향과 그들의 비리를 캐고 있었다.

주로 삼강의 장학생들로 알려진 인물들이었다.

여당과 야당의 국회의원들과 판검사, 경찰들이 대상이었다.

앞으로 강혁의 행보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들이었다.

그런데 신상현이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 삼강만을 생각했던 강혁의 계획은 수정이 불가피해보였다.

신상현은 이미 삼강이 포섭했던 인사들을 넘어서는 인맥들을 보유하고 있었다.

전직 대통령 최강수의 인맥들이었다.

이들은 매우 뿌리가 깊은 자들이다.

일제 시대부터 일본에 부역하며 대대로 부를 쌓은 사람들이었다.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의 후손들인 것이다.

여기에 독재 정권이 서자 거기에 빌붙어서 호의호식한 사람들도 있었다.

한마디로 한국 사회의 악의 근원들이 신상현과 붙어먹은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강혁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세력들 그 자체와 싸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의 힘은 넓고도 깊었다.

자칫 잘못하면 복수가 아니라 당하는 수가 있었다.

지금은 신중하게 힘을 길러야 했다.

그들이 아무리 뭉쳐서 덤빈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수 있는 힘을.

"그리고 시진풍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한 것은 어떻게 됐나요?"

"중국 정계에 아직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자료를 구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박정철은 그동안 구한 자료들을 강혁에게 줬다.

강혁은 서류를 펼쳐 대략적인 것들을 검토했다.

"음, 수고했어요."

박정철은 시진풍에 대해서 조사하기 위해 알파팀 전체를 이끌고 중국을 다녀오기도 했다.

강혁은 박정철과 팀원들이 멀리서 찍은 시진풍의 얼굴 사진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중국 본토에 가서는 홍방에서 자료를 얻는데 많은 도움을 줬습니다."

박정철의 말에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 방주에게는 내가 인사를 따로 드려야겠네요."

자료에는 강혁이 알고 싶은 내용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현재 시진풍의 중앙 인맥들, 정치 자금줄, 친척 관계, 중요 수하들과 경쟁 상대들에 대해서 상세한 조사가 이뤄져 있었다.

'이제 준비는 됐다. 하지만 그를 만나야 어떻게 해 볼 텐데…….'

강혁은 미래의 중국 주석이 될 시진풍을 만나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만남을 가질 계기가 부족했다.

황룡그룹의 첸에게 부탁을 해놓았으니 지금으로서는 기다리는 것밖에는 길이 없었다.

시진풍은 아직 푸젠성의 부서기에 불과한 인물이다.

중앙정계에서 그리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 포섭하기에는 지금이 적기였다.

강혁은 괜히 조바심이 났다.

아무래도 신상현이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회귀자로서.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는 그를 생각하면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그를 조여 왔다.

'침착하자. 아직은 내가 한발 유리하다.'

강혁은 신상현이 현재 강혁의 진실한 힘을 알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게다가 회귀자라는 사실도.

아직 강혁은 신상현에게 평범한 형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강혁이 결정적으로 유리한 부분이었다.

강혁은 이 사실을 이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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