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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32화 (132/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32화

132화

강혁은 신상현이 왜 유호철과 남정규를 도발해서 원래의 역사보다 몇 년이나 빨리 활동하게 했는지 생각해보았다.

프로파일러로서의 강혁은 신상현의 심리상태를 거의 정확하게 꿰뚫고 있었다.

'그 녀석은 매우 과시적인 성격이지. 게다가 형사로서의 날 존경하고 있었어.'

강혁은 신상현이 자신에게 집착하고 있다는 사실에 구역질이 났다.

자신이 형사라는 사실이 싫어지는 유일한 이유가 신상현이었다.

'놈은 내가 활약하기를 바라는 거야.'

강혁은 신상현의 속을 짐작하고는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

중학생 무렵 신상현은 강혁의 북사인회에 찾아올 정도로 형사인 강혁을 좋아했다.

'내가 승승장구할 수 있도록 때로는 도와주고 때로는 이런 식으로 시험하겠지.'

강혁은 신상현의 집착이 가져올 사태의 무서움을 깨달았다.

'내가 형사로 있으면 놈의 장난질에 휘말려 사람들이 죽거나 다친다.'

이미 눈앞에 증거가 있었다.

신상현이 도발하지 않았다면 행복하게 살았을 사람들이 역사의 궤도를 벗어나 희생당했다.

강혁은 불현듯 죄책감과 분노가 동시에 떠올랐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희생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강혁의 눈에 길가에서 피를 흘리며 죽음을 당했던 여인의 사체가 떠올랐다.

그녀는 막 연애를 시작해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꿈 많은 20대 청춘이었다.

비슷한 또래였던 아내 이유라의 모습이 겹쳐 떠올랐다.

만일 자신이 형사가 아니었다면, 신상현이 자신에게 집착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었을 것이다.

두 사람 모두.

강혁은 더 이상 형사로서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자신이 형사로 있는 한, 끊임없이 희생자들이 생길 것이었다.

판단을 내린 강혁은 박 팀장에게 말했다.

"박 팀장님."

강혁이 부르자 박정철이 말없이 강혁을 바라보았다.

강직한 사람하고 믿음직한 사람이다.

"저를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어 주셔야겠습니다."

"예?"

"정정하죠. 존재는 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세요."

"……?"

강혁의 말에 박정철과 팀원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부팀장인 신소희가 강혁의 말을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혹시 적에게 자신의 존재를 감추고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으신 건가요?"

"빙고! 역시 우리 부팀장님 머리가 빨리 돌아가시는군요."

강혁이 박 팀장을 바라보았다.

박정철은 첩보활동을 오래 해왔기 때문에 금세 강혁이 무슨 의도인지 눈치챘다.

"어떻게 해드릴까요? 회장님."

"저를 노리는 놈이 있습니다."

강혁이 투명 아크릴 상황판에 붙어 있는 신상현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박정철과 신소희 등은 강혁의 눈이 향하는 곳을 살피고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범상치 않은 소년이었지만, 아직은 어리디 어린 아이였다.

그런데 강혁은 일생의 적수라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대통령의 의자를 흔들어서 미국으로 F.B.I 연수를 떠날 겁니다."

강혁의 말에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박영삼 대통령은 강혁 덕분에 엄청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혁의 요청이라면 그 정도는 아무렇지도 않게 수락될 것이다.

"미국으로 가면 절 사라지게 만들어 주십시오. 살아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찾지는 못하게."

박정철은 강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즉석에서 하나의 작전을 구상했다.

"일단 미국으로 가십시오. 정식으로 연수를 떠나는 거죠. 하지만 거기서 사라집니다."

강혁은 박정철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 자체가 사라지는 거죠. 하지만 죽은 것은 아닙니다. 모두들 이구동성으로 말하죠."

"……?"

"강혁은 모종의 훈련을 받고 있다. 비밀 훈련이라 알려줄 수 없다."

"……!"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고,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상태가 되는 거죠. 마음에 드십니까?"

"딱 제 마음에 드는 군요."

강혁이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투명 아크릴 상황판에 붙어 있는 어린 신상현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다려라. 반드시 네 가슴에 다시 칼을 꽂아 줄 테니.'

강혁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지하에 감금해두었던 유호철과 남정규의 상처가 대충 아물었다.

"시작하죠."

강혁의 지시에 의해 제일 먼저 남정규가 감금 중 수면가스에 의해 잠이 들었다.

남정규는 대낮의 골목길에서 다시 잠에서 깨어났다.

"으… 음?"

정신이 든 남정규는 자신이 풀려 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뭐? 뭐야?"

정신을 차려보니 손에는 자신이 사용하던 칼이 들려 있었다.

"꺄― 악!"

어디선가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렸다.

남정규는 정신이 바짝 들었다.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사람들이 흉기를 든 남정규를 보며 놀라고 있었다.

'뭐, 뭐야? 이―씨!'

남정규는 당혹해 했다.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직도 혹시나 자신이 꿈을 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야! 꼼짝마― 흉기 버려!"

남정규는 소리가 나는 쪽을 바라보았다.

키가 190은 되어 보이는 남자가 달려드는 것이 보였다.

"뭐야― 씨―팔! 오지마!"

남정규는 본능적으로 칼을 강혁을 향해 겨누고는 위협했다.

"저리 가!"

남정규가 칼로 위협하는 것과 거의 동시였다.

발차기가 손등에 작렬했다.

남정규는 그만 칼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와 동시에 뭔가가 눈앞에서 풍차가 돌아가듯이 날아들었다.

강혁의 양 주먹이 연이어 날아왔다.

원도 아니고 직선도 아닌 중간쯤의 궤도였다.

퍼―억!

타격음이 울렸다.

남정규는 쇄도하는 주먹을 향해 팔을 들어 겨우 막았다.

퍼―억

주먹과 팔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강혁이 팔을 잡아당겼다.

그와 동시에 두 번째로 날아들던 주먹이 얼굴을 향해 도끼처럼 찍어 내려졌다.

남정규는 본능적으로 다른 쪽 팔을 들어 막았다.

'퍼―억!' 하는 소리가 울렸다.

팔을 들어 올린 남정규가 가까스로 주먹을 막는데 성공했다.

풍차처럼 돌아 들어오는 두 주먹의 연속공격을 모두 방어한 것이다.

남정규가 안도의 한숨을 쉬려는 찰나였다.

갑자기 아래쪽에서 마치 창으로 찌르는 듯이 주먹이 날아들었다.

퍼―억!

"켁―"

남정규는 제대로 비명소리도 내지 못했다.

강혁의 주먹이 목을 그대로 찔러 버린 것이다.

갑자기 간격을 좁혀 들어오는 모습은 마치 프라이팬에서 콩이 볶여져 튀어 오른 것 같은 모습이었다.

당랑의 절초보법 중 하나인 붕보다.

한순간에 상대와의 간격을 좁혀 들어가는데, 마치 기름에 튀긴 콩이 튀어나가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강혁은 한순간에 세 번 남정규를 공격해 들어갔다.

그 연속공격을 옆에서 보는 사람은 마치 폭죽이 연이어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 일련의 연속공격은 붕보라는 절초보법과 함께 붕보번거추라고 불린다.

원래 번거란 고대에 우물을 길어 오르는 수레를 뜻했다.

붕보번거추는 처음 두 초식은 풍차처럼 위에서 아래로 연속으로 내리친다.

두 개의 도끼가 찍어 내리는 것 같은 맹렬함을 품고 있어서 상대방은 방어할 수밖에 없다.

그때 갑자기 정반대의 궤도.

즉 아래쪽에서부터 일순 날아드는 번개 같은 찌르기가 목을 사정없이 강타하는 것이다.

강혁이 당랑의 절초들 중에서도 특히나 좋아하는 수법이었다.

"꾸엑!"

목이 찔린 남정규는 순간 양손을 들어 목을 잡고 괴로워했다.

그때 강혁의 강하게 땅을 내딛으며 한 걸음 더 파고 들었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강혁의 발이 바닥에 떨어지자 땅이 진동했다.

콰―아앙!

격렬한 타격음과 함께 남정규의 몸이 날아가 골목 벽에 부딪혀 나가떨어졌다.

강혁의 몸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남정규의 몸에 부딪힌 것이다.

팔극권의 절초 철산고였다.

당랑으로 시작해서 팔극으로 결정을 지은 것이다.

이 방법은 대만의 유명한 무술가 소욱창이 창시한 팔극당랑권의 수법이기도 했다.

당랑의 특징은 쾌속한 연타에 있었고, 팔극의 장점은 한 타, 한 타의 파괴력에 있었다.

이들의 장점을 합한 것이 바로 팔극당랑권이다.

당랑과 팔극을 함께 익힌 강혁은 자연스럽게 팔극당랑권의 기법을 사용하고 있었다.

"흠, 살아도 평생 병원 신세를 져야 할 거다."

강혁은 흰자위를 보이며 바닥에 누워있는 남정규를 내려다보았다.

내기를 실은 철산고의 수법은 남정규의 내부를 엉망으로 휘저어 놓았다.

이제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었다.

이 수법은 특히나 교묘했다.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일어날 것이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기력해진다.

그러다 종국에는 숟가락 하나 들 힘도 없는 폐인이 되는 것이다.

일종의 사형선고였다.

강혁은 정신을 잃은 남정규에게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고 수갑을 채웠다.

며칠 후, 똑같은 일이 유호철에게도 일어났다.

이 두 사람이 거주하던 곳에서는 이들이 살인을 저질렀던 증거들이 도처에서 발견되었다.

강혁은 미궁에 빠졌던 연쇄살인을 일거에 해결해 일약 경찰의 주목을 받았다.

우수 수사관으로 선정되어 미국으로 F.B.I 연수를 떠날 밑밥을 깔아 놓은 것이다.

언론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하마터면 미궁에 빠질 뻔했던 살인사건을 해결한 천재 수사관으로 언론 곳곳을 장식했다.

북천 경찰서 강력팀도 덩달아 조명되었고, 상관인 마 팀장과 팀원들 모두 큰 포상을 받았다.

*     *     *

"첸?"

―존, 잘 지냈어?

살인사건을 해결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강혁은 핸드폰으로 걸려온 국제 전화를 받고 반가워했다.

말레이시아의 황룡그룹의 적자인 첸이 전화를 한 것이다.

"하하, 오랜만이군. 무슨 일이야?"

강혁의 인사에 첸이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번 일에 대해서 고맙다는 인사도 할 겸 전해줘야 할 소식도 있고 해서."

지난번 일이란, 일본의 환투기 공격에 화교 자본이 참여하도록 해준 것을 말하는 것이다.

솔라스의 환투기 공격에 큰 손해를 보았던 황용그룹도 이때 상당한 이익을 보았다.

"우리 사이에 인사가 필요해?"

"존. 난 네게 은혜를 갚으려고 했는데 오히려 빚만 더 늘어가는 것 같군."

첸의 말에 강혁은 손가락으로 얼굴을 끄적였다.

"아무튼 그 일을 계기로 내가 황룡그룹을 정식으로 이끌게 되었어."

"오, 그거 축하할 일이군."

첸의 말에 강혁은 반색했다.

그동안 첸은 동생들과 그룹 회장직을 놓고 겨루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번 일로 황룡그룹이 위기에서 기사회생을 하게 되었다.

큰 위기에 빠졌던 황룡그룹이다.

말레이시아 경제 전체가 박살이 난 형편이었고, 황룡그룹도 위태로운 상황까지 간 상태였다.

그룹 전체가 큰 위기감에 빠져 있을 때, 강혁이 한 방에 위기를 기회로 돌려놓은 것이다.

그룹의 회생에 강혁의 공이 너무나 컸다.

그런 강혁과 황룡그룹이 인연을 맺게 한 첸은 만장일치로 회장직에 오르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돼서, 이번에 결혼을 하게 됐어."

"……!"

첸의 말에 강혁은 깜짝 놀랐다.

"그게 사실이야?"

"하하, 회장이 되려면 어쩔 수 없어."

첸은 간단히 가문의 전통에 대해서 설명을 했다.

황룡그룹의 회장이 된다는 것은 그때부터 가문을 이끄는 수장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가문을 이끄는 가주가 되려면 결혼을 해서 어엿한 가장이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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