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35화
135화
#36장 위기일발
"하하, 앞으로 헤쳐 나가야 할 난관도 적지 않습니다."
"난관이요?"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뭔가를 알고 있는 듯한 표정에 시진풍의 몸이 달았다.
"존 회장."
시진풍이 강혁의 손을 꼭 잡았다.
"아니 존 동생. 내 나이가 좀 더 많은 듯하니 말을 놓겠네. 그래도 되겠나?"
'뭐야 이 양반? …혹시?'
"오늘 우리 둘이 만난 것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 아닌가하네. 오늘 의형제를 맺는 것은 어떤가?"
시진풍이 강혁을 바라보는 눈은 매우 간절했다.
'하하? 의형제라?'
못이기는 척 받아주기로 했다.
미래의 중국 주석이 의형제라면 나쁠 것은 없었다.
아니 금상첨화지!
"형님, 앞으로 혁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앞으로 형님을 최선을 다해 도와드리겠습니다."
"고… 고맙네. 동생."
강혁의 말에 시진풍이 감격하며 마주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 * *
유람선을 향해 어둠 속에서 나무로 된 작은 배 하나가 서서히 다가가고 있었다.
배 안에는 총기로 무장한 한 무리의 인영들이 몸을 숨기고 있었다.
작은 배가 유람선에 가까이 다가갔다.
피슛!
사람들의 귀에 거의 들리지 않는 소음총에 경계를 서는 선원이 맞았다.
어두운 바다 위로 선원이 떨어졌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침 이때는 3층 홀에서 선상 파티가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시끄러운 음악소리와 흥겨운 댄스파티가 사람들의 이목을 가렸다.
배에 숨어 있던 인영들이 몸을 일으키더니 유람선을 향해 밧줄 총을 쏘았다.
잠시 후, 십수 명의 검은 인영들이 어두운 바닷물 위로 밧줄을 타고 유람선 위로 올랐다.
"룰루~"
종업원 유니폼을 입은 젊은 여성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마티니를 서빙접시 위에 올렸다.
"즐거운가 봐?"
"파티는 언제나 즐거운 걸요. 셰프."
유람선 직원인 류청은 20대 초반의 홍콩 아가씨다.
그녀에게 말을 건 장삼은 40대 중반으로 유람선의 주방을 책임지는 수석 셰프다.
"그게 아니라. 파티에 장국성이 와서 그런 거 아냐?"
주방에서 함께 일하는 젊은 셰프 중 하나가 유명한 홍콩 가수의 이름을 거론했다.
"캬아- 장국성 오빠!"
장삼이 이름을 거론한 것만으로도 류청이 비명을 질렀다.
주방에 함께 있던 젊은 셰프들도 흥분한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장국성만 온 게 아냐. 관지림도 왔다고."
"진짜야?"
"구숙영도 왔어."
"그, 그래?"
젊은 남자들 사이에 금세 유명한 여자 연예인들 몇 명의 이름이 오르내렸다.
하나같이 주가가 높은 연예인들이었다.
금세 화제는 누가 제일 예쁜가로 넘어갔다.
"흥, 뭐라 해도 최고 여신은 역시 우리 왕조영이지."
커다란 프라이팬을 불 위에 올려놓으며 한 젊은 셰프가 말했다.
그러자 금세 반론이 일어났다.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가운데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도 역시 최근에 최고는 화제는 역시 그 여자 아니에요. 설산천녀 주인공."
"아, 맞다. 나도 처음 보자말자 깜짝 놀랐었는데!"
"그래 장난 아니었지."
남자들의 호들갑에 류청이 말했다.
"아, 나도 알아요. 같은 여자가 봐도 너무 예뻐서 넋을 읽고 본 기억이 나네요."
"응? 누구 이야기야?"
"주방장님 몰라요? 절대가인 천려시?"
"아, 그 아가씨? 하긴 진짜 예쁘긴 하더라."
"오! 수석 셰프님도 아세요?"
류청과 나이가 비슷한 막내 셰프가 놀리듯이 웃으며 말했다.
"망할 것 내가 모를 건 또 뭐냐? 나도 영화 봤어. 이것아."
천려시는 얼마 전까지는 일반인이었다.
우연히 친구를 따라 구경하러 갔던 영화세트장에서 스카우트되어 영화에 데뷔한 케이스였다.
그녀의 첫 영화 설산천녀는 영화 그 자체보다 천려시의 미모 때문에 큰 화제가 되었다.
영화가 개봉된 아시아 전역의 나라에서 젊은 남자들의 절대적인 호응을 이끌었던 것이다.
어찌나 크게 화제가 되었던지, 각 나라의 연예기자들이 천려시와의 인터뷰를 따기 위해 몰려 들었을 정도였다.
바야흐로 홍콩 영화계에 천려시의 시대가 시작되었다는 말까지 돌고 있었다.
천녀유혼이란 전설적인 영화로 아시아 남자들의 마음을 한 번에 사로잡은 왕조영을 능가하는 임팩트였다.
영화 속의 청순가련하면서도 절대적인 미모 때문에 절대가인이란 칭호로 불리고 있었다.
최근에는 공공연히 아시아 최고 미인이란 칭송을 듣고 있는 중이었다.
"하하, 그 정도야?"
장 셰프는 젊은 셰프들의 설명에 그제서야 천려시의 위상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럼, 전 국성 오빠 얼굴 좀 보고 올게요."
류청이 웃으며 주방을 빠져나가자 장 셰프가 호통 쳤다.
"자, 어서 일하자고 일."
잠깐의 휴식이 끝나고 다시 음식을 만들어야 할 시간이었다.
파티 장으로 쉴 새 없이 음식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이 유람선은 홍콩 리 가문의 소유였다.
결혼 피로연에 참석한 인물들도 하나같이 홍콩의 유명 인사들이었다.
오늘 같은 날은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된다.
장삼이 이리저리 호통을 치며 지시를 내리고 있을 때였다.
음식을 서빙 하러 올라갔던 젊은 남자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주방문을 열고 들어왔다.
"큰, 큰일 났어요. 셰프!"
"응? 큰일이라니?"
"무, 무장 강도예요."
남자의 말이 끝나자 말자 주방 홀 문이 열리며 총기를 든 괴한이 들어와 허공에 총질을 했다.
푸타타타탓!
괴한의 손에 들린 경기관총이 불을 뿜었다.
"헛?"
총소리에 놀란 요리사들은 즉시 헛바람을 들이키며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모두 일어나!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는 녀석은 가슴에 총구멍을 내주겠다!"
온통 검은색계통의 옷에 얼굴에는 스키마스크를 뒤집어 쓴 괴한이 요리사들을 위협했다.
이들은 괴한의 엄포에 꼼짝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면서 파티장소로 올라갔다.
거대한 홀은 이미 스키마스크를 뒤집어 쓴 흑의의 괴한들에게 제압되어 있었다.
여기저기 기관총을 든 사내들이 포위하듯 홀을 둘러싸고 있었다.
홀 한쪽 구석에는 파티에 온 귀빈들이 모두 잔뜩 겁에 질린 표정으로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들을 경호하던 사람들은 이미 대부분 제압당하고, 몇몇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었다.
* * *
"응?"
형제의 결의를 맺은 후 시진풍과 담소를 나누던 강혁은 낯익은 소리에 멈칫했다.
'총소리?'
신색을 굳힌 강혁이 시진풍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시 형님, 방금 총소리가 들렸습니다."
"응? 동생, 방금 총소리라고 했나?"
시진풍의 물음에 강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몸을 숨기고 계십시오. 전 한번 나가서 상황을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총소리라니? 혹시 잘못 들은 것 아닌가?"
시진풍이 의아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홍콩 최고 부자의 피로연이 열리는 곳이다.
모여 있는 사람들도 VIP들인데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형님 말씀대로 잘못 들었을 수도 있으니 한 번 확인해보고 오겠습니다."
"그렇게 하게."
강혁은 조심스럽게 객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시진풍과 함께 있던 곳은 헨리 첸이 특별히 마련해준 장소로써, 유람선 안에서도 내부 깊숙한 곳에 위치했다.
강혁이 선실 복도를 걸어가고 있을 때였다.
스키마스크를 쓴 괴한이 계단에서 내려와 복도에 나타났다.
강혁을 본 괴한이 총으로 겨누며 소리쳤다.
"어이 거기. 손들고 이쪽으로 와!"
'뭐야? 저 자식들?'
강혁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들은 총소리는 진짜였다.
양손을 든 강혁은 괴한이 시키는 대로 가깝게 접근했다.
"위로 올라가!"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단 쪽으로 향했다.
괴한은 강혁이 올라가는 듯하자 몸을 돌려 객실 쪽을 돌아보았다.
뒤쪽을 살핀 것이었는데 강혁을 일반인으로 생각한 것이 괴한의 패착이었다.
괴한의 목을 향해 강혁의 팔이 움직였다.
휘리릭!
스키마스크를 쓴 괴한의 얼굴이 완전히 뒤집어졌다.
강혁이 목을 돌려 버린 것이다.
뚝, 하는 소리와 함께 괴한이 바닥에 쓰러졌다.
강혁은 쓰러진 괴한을 매우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재빨리 괴한에게서 총기를 수습하고 괴한의 시체를 객실 침대 밑에 숨겼다.
그때 사람들이 복도를 지나가는 발소리가 들렸다.
'군화 소리? 놈들이다!'
강혁은 괴한들이 더 나타났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덜컹!
강혁이 있던 객실의 문이 열렸다.
스키마스크를 뒤집어 쓴 흑의의 괴한 둘이 총구를 겨누며 객실 안을 들여다보았다.
"여긴 아무도 없군."
문을 다시 닫은 괴한은 다른 객실들의 문을 열며 사람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갔군.'
강혁은 침대 밑에서 나온 후, 휴대폰을 꺼내어 전화를 걸었다.
"이런…. 전파 방해인가?"
강혁은 전화가 불통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리나와 첸 부부를 구해야 해.'
강혁은 죽은 괴한의 옷으로 갈아입으려고 했지만 이내 포기했다.
옷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할 수 없이 강혁은 무기만 챙기고 괴한의 몸에서 방탄조끼를 빼서 입었다.
강혁이 괴한에게서 챙긴 무기는 경기관총 1정, 권총 1정, 단검과 수류탄, 섬광탄, 탄창3개였다.
'이놈들, 정체가 뭐야?'
강혁은 무기를 보고, 괴한들의 정체가 의심스러웠다.
중공 특수 분대들이 사용하는 무기였던 것이다.
괴한의 상의를 모두 벗긴 후, 등을 살피자 전랑이라는 글자와 늑대 문신이 보였다.
'시 형님과 관련이 있을까?'
강혁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직 시진풍은 무명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중앙 정계에서 이름을 알리려면 몇 년 더 시간이 필요했다.
강혁은 인터폴과 국제 협력 수사 당시 알게 되었던 정보들을 떠올렸다.
'이 시기 홍콩에는 대륙에서 흘러들어온 범죄자들이 흉악범죄를 자주 일으켰지.'
강혁은 중국 특수부대 출신으로 이루어졌던 범죄 집단의 기억을 떠올렸다.
'이놈들, 혹시 그놈들인가?'
이들은 중국군 특수부대 출신으로 이루어진 범죄조직이었다.
당시 은행과 대기업을 상대로 폭탄테러 협박 등을 일삼았던 놈들로 홍콩 삼합회도 혀를 내둘렀던 자들이다.
그 흉폭성과 잔인함은 조직폭력배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강혁은 자신이 회귀 이후로 가장 큰 위기에 빠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리나!'
강혁의 머릿속으로 자신을 따라온 이리나가 떠올랐다.
평소 딸처럼 생각하던 이리나였다.
자신을 따라 한국까지 온 이리나를 이런 곳에서 죽게 할 수 없었다.
오늘 이제 막 결혼식을 올린 헨리의 얼굴도 떠올랐다.
'이제 막 결혼했는데…….'
강혁은 불현듯 행복했던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강혁은 아내와 딸을 지켜주지 못했다.
'이들은 지켜줘야 해.'
강혁은 몸을 일으켜 문가로 다가갔다.
'이런? 시 형님이 잡혔다.'
혼자 객실에 남아 있던 시진풍이 이들에게 잡혀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이 보였다.
강혁은 이들이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유람선에 탑승한 사람들을 모두 모아 홀 안에 몰아넣으려는 것이다.
'배가 움직인다?'
유람선이 먼 바다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실 이 유람선은 앞으로 한 달에 걸쳐 세계 여행을 떠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강혁 역시 첸에게 함께 며칠간만이라도 함께 하자는 제안을 받은 상태였다.
유람선에 오른 유명인사들 중 상당수가 첸의 여행에 따라 가기로 되어 있었다.
배가 홍콩을 떠나도 이상하게 여길 사람이 없는 것이다.
강혁은 이들이 공해상으로 나갈 생각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조건 막아야 해.'
전랑이라 불렸던 이들의 흉악한 범죄들이 떠올랐다.
살인과 강간을 숨 쉬듯이 저지른 놈들이었다.
강혁의 눈빛이 차갑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