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39화
139화
#37장 새로운 인연들
이런 곳에서 천려시를 만날 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던 강혁이다.
젊은 시절 이상형이었던 여자를 만난 것도 모자라 키스까지 나누었다.
복잡한 감정을 품고 강혁은 은신처를 조심스럽게 떠났다.
배 바깥을 살피니 배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홍콩 경찰이었다.
'왜 아직까지 아무도 오지 않는 거지?'
강혁은 몸을 숨기고 있을 때, 유람선 바깥에서 울리는 굉음을 몇 차례 들었다.
분명히 유람선에서 로켓포 내지는 유사 병기를 사용한 것 같았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쯤이면 홍콩의 해상경비정이라도 출동을 했어야 옳았다.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해야 했다.
그런데 아직까지 누군가가 유람선을 쫓아오는 것 같지 않았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잠깐 얼마 전 홍콩은 중국에 반환되었어.'
강혁은 97년 7월.
즉, 얼마 전에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지금 유람선을 점령한 자들이 중국 본토의 특수부대원 출신들이라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았다.
'…설마?'
마음속으로 뭉게구름처럼 갖가지 의혹이 떠올랐다.
'음, 일단 외부와 연락을 취해야 해.'
강혁은 손에 쥔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방해 전파 때문에 정상적인 통화는 불가능했다.
하지만 강혁에게는 치트키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연락이 올 텐데.'
강혁은 핸드폰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찌르르르릉.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왔다'
강혁은 즉시 핸드폰 폴더를 열었다.
―회장님, 무사하십니까?
다급한 박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 괜찮습니다. 다만……."
강혁은 현재 상황을 재빨리 설명했다.
―그럼 중국 특수부대 출신들이란 말이지요?
"전문적으로 훈련을 받은 녀석들입니다."
―숫자는 몇 명이나 됩니까?
강혁은 박 팀장에게 자신이 파악한 인원과 위치를 알려 주었다.
―그럼 대략 10명에서 12명 정도군요.
"맞아요. 그리고 무장이 상당합니다."
―그건 저희도 압니다. 초반에 첸 회장 경호원들이 헬기와 모터보트로 쫓다가 로켓포에 당했거든요.
"역시 그랬군요."
강혁은 자신이 들었던 굉음의 정체가 로켓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했는데도 홍콩 경찰 측에서 움직임을 안 보이는 이유가 뭡니까?"
―사실은 안 그래도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박정철은 강혁에게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듣고 보니 정말 이상했다.
처음에는 바로 경찰 병력과 홍콩 해안 경비선들이 출동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 아직도 미적거리고 있고 자신들이 나서는 것도 막아섰다고 한다.
'음, 역시 그래서 늦은 것이었군.'
강혁은 박 팀장에게 자신의 추측을 이야기했다.
―예? 그렇다면 저들이 중국 공산당 정부와 관련이 있다는 겁니까?
"어디까지나 추측이지만 그럴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는군요."
―만일 회장님 생각이 사실이라면 큰일이군요.
"맞아요. 하지만 어쩌면 드디어 미스테리가 풀리는 건지도 모르죠."
"예?"
"하하, 그런 게 있습니다."
강혁은 회귀 전 홍콩 반환 직후 벌어졌던 엽기적인 사건들을 떠올렸다.
대륙에서 흘러들어온 범죄집단이 기업과 금융기관을 협박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강력한 폭탄제조 기술이 있어, 이를 빌미로 엄청난 금액들을 뜯어냈었다.
협박 편지를 보내서 돈을 보내지 않으면 폭탄을 설치하겠다고 협박했던 것이다.
이들은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졌는데 이들의 정체에 대해서 의문이 많았다.
'중국 정부 고위직들과 연관이 있는 자들일 수 있다.'
강혁은 죽은 자들의 몸에서 보았던 전랑 문신을 떠올렸다.
―첸 회장 경호팀과 상황을 공유하고 즉시 병력을 보내겠습니다.
"홍콩경찰이 막을 수 있으니, 각 국 대사관에 연락을 취하세요."
강혁의 생각에 홍콩 경찰 수뇌부 전체가 연관된 것은 아닐 것이다.
홍콩은 자치를 인정받은 상태이고, 아직은 중국 공산당의 영향이 미약할 때였다.
미국과 한국, 말레이시아 대사관에서 나서면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박정철은 누구보다도 강혁의 영향력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미국과 한국 대사관들은 모두 강혁에 대해 특별 관리를 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강혁이 처한 상황을 말하면 알아서 홍콩 관리들을 움직여 줄 것이다.
"대장이 쉽게는 안 끝낼 모양이군."
홀 안에 남아 있는 흑의인 중 부대장이 있었다.
부하들이 부르는 이름은 흑랑이었다.
흑랑의 눈앞에는 첸 회장이 노트북을 꺼내 놓고 암호키로 돈을 계좌에 입금시키고 있었다.
"끝났소. 이제 우릴 풀어 주시오."
첸이 돈을 입금한 것을 확인한 흑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첸 회장. 약속대로 목숨만은 살려주지."
흑랑의 고갯짓에 흑의인들이 움직였다.
"자, 모두들 일어나."
흑의인들은 이들을 몇 그룹으로 나누어 객실 안으로 몰아넣었다.
그때 흑랑이 겁에 질려 움직이는 손님들 중 누군가를 발견했다.
'저 녀석은? 아는 얼굴인데 여긴 왜?'
흑랑의 지시에 흑의인은 손님 중 하나를 붙잡아 흑랑에게 데려왔다.
"왜, 왜 이러시오?"
"흠, 역시 맞군."
흑랑은 시진풍의 얼굴을 가까이에서 확인하고는 말없이 고갯짓으로 지시를 내렸다.
그러자 흑의인들이 시진풍을 끌고 아래층 객실로 내려갔다.
한편 유람선 선원들과 피로연에 온 손님들이 모두 객실 안으로 들어가자 밖에서 문을 잠갔다.
"좋아, 그럼. 난 쥐새끼를 만나러 가볼까?"
흑랑은 시진풍을 가둬둔 곳으로 움직였다.
객실 문이 열리며 흑랑이 등장하자 시진풍은 긴장했다.
"하아, 우리 푸젠성 부서기장께서 어떻게 첸 회장 결혼식까지 오게 된 건지 궁금하군."
"나, 날 아는가?"
시진풍이 깜짝 놀란 얼굴로 흑랑을 바라보았다.
"흐흐, 푸젠성에 태자방의 떠오르는 신예가 있다고 하더군."
"……!"
흑랑의 말에 시진풍은 한 번 더 놀랐다.
상대는 자신을 아는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대체 어떻게?
언론이나 방송을 한 번도 안 탄 자신을 안다는 말인가?
"의아한 표정이로군."
흑랑의 입에서 스산한 기운이 풍겼다.
"혹시 상해방 쪽인가?"
시진풍의 말에 흑랑이 살짝 놀랐다.
"흐흥, 우리 주군께서 주목하고 계신 이들 중 한 명이라더니 과연 머리가 잘 돌아가는군."
'주군?'
시진풍은 흑랑의 말에 의아함이 증폭되었다.
"반쯤 맞다고 해주지. 아무튼 운이 나빴다고 생각해. 어차피 숙청당할 거였으니 말이야."
"숙청이라고?"
흑랑의 말에 시진풍은 깜짝 놀랐다.
"지금은 아니라고 해도. 언젠가는."
흑랑은 손가락으로 목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말이야. 우리에겐 사람들의 눈길을 끌어 줄 미끼가 필요했거든."
"뭐라고?"
"딱히 너여야 하는 건 아니지만. 마침 딱 좋은 대상이란 말이지."
부르르―
시진풍은 흑랑의 말에 몸을 떨었다.
흑랑의 스산한 말투와 몸에서 흐르는 살기에 감응한 것이다.
갑자기 문이 덜컹 열렸다.
"뭐야?"
"부, 부대장……."
"……?"
흑랑은 흑의인의 태도에 의아했다.
"흑표 대장이 죽었습니다."
"뭐?"
흑랑은 깜짝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리야?"
흑랑은 흑의인의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시간이 되어서 대장한테 갔는데, 방 안이 엉망이 되어 있고 그년도 사라졌어요."
"……!"
"그런데 침대 밑에 대장의 시체가……."
흑랑은 부하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때 또 한 명의 흑의인이 달려와 말했다.
"부대장, 헬기가 날아옵니다. 해양순시선도 오고 있어요."
순간 흑랑의 얼굴에 당혹감이 떠올랐지만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변한 것 없어. 계획대로 한다."
흑랑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해."
"옙"
부하들이 움직이자 흑랑이 시진풍에게 총을 겨누었다.
"넌 날 따라와."
부다다다다.
헬기 한 대가 엄청난 속도로 유람선 상공 위로 날아들었다.
시진풍을 끌고 갑판 위로 올라간 흑랑은 총으로 시진풍을 겨누었다.
"잠수함은 어디까지 온 거지?"
흑랑이 부하에게 물었다.
"이미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흑랑에게 대답한 부하는 한쪽 손에 노트북이 들어 있는 검은 가방을 들고 있었다.
"좋아. 준비가 끝나면 알려."
"예, 부대장."
흑랑은 여전히 총으로 시진풍을 겨누고 있었다.
그리고 갑판 위에는 몇 명의 흑의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러자 헬기는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하고 거리를 유지했다.
얼마간 대치 상태가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흑랑의 부하가 무전을 받더니 흑랑에게 말했다.
"설치가 끝났습니다."
"좋아, 그럼 탈출 작전을 시작한다."
흑랑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였다.
흑의인들은 유람선의 이곳저곳에 폭탄을 설치했다.
경찰이 추격해왔을 때를 대비한 시간 벌기용이었다.
유람선을 폭발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배에 구멍을 뚫어 배가 가라앉게 하기 위한 것이다.
경찰들이 자신들을 추격하기보다 사람들을 구출하는 데 인력을 소비시키려는 용도였다.
흑랑이 시진풍을 바라보며 총을 겨누었다.
그의 입가가 올라갔다.
"얼어 죽을!"
강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다.
잘못하면 공을 들였던 시진풍이 여기서 죽을 판이다.
재빨리 흑의인에게 뺏었던 총으로 흑랑을 겨누었다.
문제는 여기서 흑랑을 죽이는 타이밍이다.
잘못하면 벌집을 쑤셔 놓는 꼴이 될 수 있었다.
섣불리 흑랑만 죽으면 남은 흑의인들이 무슨 짓을 벌일지 몰랐다.
적어로 헬기에 있는 자신의 부하들이 유람선으로 내려 올 타이밍에 죽여야 했다.
강혁은 헬기의 위치를 확인했다.
'좋아, 저 정도라면…….'
강혁의 이마에 땀이 맺혔다.
"그럼 잘 가라고."
총구가 시진풍의 이마를 향했다.
'이, 이대로 죽는 건가?'
시진풍은 이마에서 식은 땀이 흘렀다.
흑랑의 손가락이 방아쇠를 당기려고 할 때였다.
갑판 위의 흑의인들이 로켓포를 헬기를 향해 겨누었다.
그야말로 절체절명의 순간이었다.
시진풍은 눈을 질끈 감았다.
타―앙.
총소리가 울렸다.
그런데 한 발이 아니다.
연이어 총소리가 울리더니 갑판 위에 서 있던 흑의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쓰러졌다.
강혁이 순식간에 흑랑과 흑의인들을 저격한 것이다.
그 와중에 흑의인 하나가 쓰러지며 로켓포가 발사되었다.
슈우우우웅―
로켓포가 바다 위로 떨어지며 굉음이 울렸다.
콰―아앙.
그것이 신호라도 된 것처럼 유람선 안에서도 여기저기서 폭탄이 터져나갔다.
눈을 감고 있던 시진풍이 눈을 떴다.
총소리가 연이어 울렸는데도 자신이 멀쩡했던 것이다.
'뭐지?'
눈을 뜬 시진풍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흑의인들이 모두 쓰러져 있었던 것이다.
그때 굉음이 들렸다.
로켓포가 발사되며 배 여기저기에 폭발음이 들렸다.
시진풍의 몸이 흔들렸다.
"형님, 조심하세요."
강혁이 시진풍의 몸을 잡아주었다.
"동생? 자네였나?"
"간발의 차였습니다."
"고, 고마워."
시진풍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별 말씀을요. 저 때문에 이 고초를 당했는데."
강혁의 말에 시진풍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야. 언젠가는 당할 일이었어. 자네가 아니었다면 적이 누군지도 모르고 당했겠지."
"형님은 누군지 아시나요?"
"짐작이 가는 인물이 있어. 현 상해방의 두령이지."
시진풍의 말에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자였군.'
강혁 역시 누군지 깨달았다.
상해방 출신으로 시진풍이 떠오르기 전 2인자로 군림하며 다음 주석으로 거론되던 인물이다.
'쉬지라이. 그 녀석 짓이군.'
하늘에 떠있는 헬기에서 줄이 내려오며 무장한 군인들이 내려왔다.
"회장님. 무사 하십니까?"
"스티브. 난 괜찮아. 놈들을 소탕하게."
"알겠습니다."
군인들은 모두 강혁의 부하들이었다.
이들은 모두 신속하게 움직이며 유람선을 장악해 나갔다.
여기저기서 총소리가 울렸다.
* * *
강혁의 눈에 쓰러진 흑의인의 손에 들린 검은 가방이 보였다.
그의 눈에 이채가 띠었다.
'저건 혹시?'
강혁은 다가가 가방을 열었다.
'이건?'
첸 회장이 계좌 이체를 시켰던 노트북이 들어 있었다.
'흐흐, 녀석들. 감히 첸의 돈을 삼키려고 했단 말이지.'
강혁은 노트북으로 역추적해서 계좌를 해킹해버릴 생각이었다.
'쉬지라이의 정치 자금이겠지. 내가 모두 털어주마.'
강혁의 입술이 올라갔다.
중국 지도층의 부패 정도는 천문학적이었다.
특히나 쉬지라이는 너무 지나친 부패 때문에 숙청당한 인물이다.
아직 97년도지만 적지 않은 돈이 계좌에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