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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40화 (140/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40화

140화

"휴, 형. 조심하시라고요."

최승호는 거대한 스크린으로 유람선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고 있었다.

강혁의 해킹 프로그램으로 미국의 정찰 위성을 해킹한 것이다.

여기에는 어느새 수십만 개에 달하게 된 엄청난 수의 서버가 이용되었다.

수십만 개의 서버는 일종의 슈퍼 컴퓨터가 되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천재 최승호에게 슈퍼 컴퓨터와 진보된 해킹 프로그램이 주어진 것이다.

이 세상에 최승호가 뚫지 못하는 보안 프로그램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만일 강혁을 숭배하는 최승호라면 말 한마디에 핵무기 시설도 해킹해 버릴 녀석이었다.

현재 페이스북과 구글의 전 세계 서비스를 위해 대규모의 서버실이 실리콘 밸리에 설치되어 있었다.

여기에 호주에도 백만 개에 달하는 대규모 서버시설을 건축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강혁의 손에 온라인 세계를 지배할 거대한 무기가 마련되고 있는 중인 것이다.

"응, 저건 뭐지?"

스크린으로 유람선의 상황을 살피던 최승호는 위성에 뭔가 이상한 것이 잡힌 것을 발견했다.

해당 영상을 확대하자 정체가 들어났다.

"뭐야? 중국 잠수함이잖아?"

첩보 위성답게 한 번에 잠수함의 제원까지 알 수 있었다.

최승호는 즉시 첩보위성의 프로그램을 설정해서 잠수함의 추적을 명령했다.

"햐아, 전랑 부대에 연락은 없나?"

"예, 아무래도 제압당한 것 같습니다."

함장은 잠시 고민하더니 곧 명령을 내렸다.

"헬기에게 발견될 가능성이 있다. 이대로 돌아간다."

함장의 명령에 승조원들이 즉시 움직였다.

잠수함이 바닷속 깊은 곳으로 입수를 시작했다.

*     *     *

유람선 주변으로 해안 경비정들이 무수히 에워쌌다.

미국 등 각국 대사관의 압력으로 마침내 홍콩 관리들이 움직인 것이다.

감금되어 있던 사람들이 서서히 가라앉고 있는 유람선을 버리고 보트 위로 올라탔다.

"어디 계시는 거지?"

천려시는 보트에 타지 않고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그녀는 특이하게도 남자의 양복을 걸치고 있었다.

그런데 천려시는 전혀 그런 상황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걸치고 있는 양복을 몇 번이나 부드럽게 매만졌다.

마치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표정으로 말이다.

'존, 어디 있는 거죠?'

천려시는 사방을 둘러보았지만 강혁을 발견하지 못했다.

주변에 알 만한 사람들이 지나가면 꼭 물어 보았다.

"아마 경호원일거예요. 키가 매우 크고……."

천려시는 경찰들이 지나가면 그들을 붙들고 강혁의 신체 특징 등을 말해주었다.

"…아마도 첸 회장님 쪽 사람 같은데 혹시 못 보셨나요?"

하지만 아무도 강혁을 본 사람이 없었다.

"정말로 그런 사람을 보지 못했다고요?"

"예, 천려시양."

홍콩 해양 경찰이 천려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답변했다.

하지만 천려시는 경찰의 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가장 큰 증거는 자기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분명히 그를 만났다.

그리고 강혁이 준 양복을 자신이 입고 있었다.

'존, 당신은 대체 누구인가요? 그리고 어디로 가신 건가요?'

천려시는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가 결국 억지로 보트 위에 올라갔다.

"미미, 도대체 어쩌려고 그래? 잘못하면 스캔들이 날 수도 있어."

미미는 천려시의 아명으로 아주 친한 사람만이 아는 이름이다.

어릴 때부터 너무 예뻐서, '아름다울 미' 자 두 개를 이어 부른 것이 아명이 되었다.

"오빠, 난 상관없어. 그 사람은 내 생명의 은인이라고."

천려시의 말에 진오는 고개를 내저었다.

"무슨 소리야? 너 지금 막 대스타가 되기 직전이라고."

"오빠, 나. 그 사람 아니었으면 내 배우 생명이 끝날 뻔했어."

"……!"

천려시의 말에 진오는 깜짝 놀랐다.

"아니, 사실 배우 생명이 아니라 목숨을 잃었겠지."

청백지신인 자신의 몸이 더럽혀지기 직전 수치심에 자결하려고 했던 생각이 떠올랐다.

'그 사람이 아니었다면…….'

천려시는 흑표와 결투를 벌였던 강혁의 모습을 떠올렸다.

마치 야수에게서 아름다운 공주를 구하러온 흑기사 같은 용맹한 모습이었다.

천려시는 수많은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며 만인의 연인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이제 갓 20대가 된 꿈 많은 아가씨이기도 했다.

그런 천려시에게 강혁은 그야말로 용맹한 흑기사이며, 그녀만을 위한 히어로였다.

'그래 맞아. 마치 영화 보디가드 속의 주인공 같았어.'

92년도에 개봉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친 영화가 떠올랐다.

캐빈 코스트너가 주연이었고, 휘트니 휴스턴이 여주인공이자 주제가를 불러 유명해진 영화다.

강혁이 첸 회장의 경호원이라고 생각한 천려시에게 강혁은 딱 그 영화의 주인공이었다.

천려시는 조용히 영화의 주제가를 읊조렸다.

"And I will always love you.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 거에요.)

You, darling, I love you. Oh, I'll always, I'll always love you.

(그대, 내 사랑, 사랑해요. 오, 난 언제나 당신을 사랑할 거예요.)"

'그래, 그럴 거야. 난 언제나 당신만을 사랑할 거예요.'

천려시는 가사의 내용을 음미하며 강혁을 떠올렸다.

마음이 붕 떠오르고 온 세상이 달콤함으로 물들었다.

"미미, 정신 차려. 그 친구는 일개 경호원이야."

"그…그게 무슨 상관이야. 진 오빠."

"휴우, 이것아. 생각을 해봐. 너희 집안이 그 사람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아?"

진오의 말에 천려시의 얼굴이 굳었다.

그녀의 엄마는 어릴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왔다.

그래서인지 천려시가 어릴 때부터 넌 반드시 부자하고 결혼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엄, 엄마는 내가 설득하면……."

"어휴, 어련히 설득되시겠다. 네가 제일 잘 알자나 고모가 어떤 사람인지?"

"돈…돈은 내가 많이 벌면 되잖아. 굳이 부자하고 결혼하지 않아도……."

"하아, 너도 참 고집 세다."

진오는 고개를 내저었다.

한편 보트에 옮겨져 육지로 이동하는 천려시를 강혁은 헬기 위에서 바라보고 있었다.

'조심해서 가요.'

강혁이 고개를 돌리자 이리나가 강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회장님, 정말 무사해서 다행이에요."

"미안해. 이리나. 놀랐지?"

이리나는 고개를 도리질하며 말했다.

"조금 놀란 건 사실이지만 회장님이 반드시 구해줄 거라고 믿었어요."

"무사해서 다행이야. 이리나."

강혁은 진심을 담아 말했다.

사실 강혁은 유람선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이리나의 안전을 가장 염려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리나는 자신의 사람이었고, 어찌 보면 강혁 때문에 위기에 빠진 셈이었다.

그러니 어찌 강혁이 이리나를 챙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껏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어 노심초사하고 있었다.

구출되어 나오는 사람들 사이에서 이리나를 발견하고 강혁이 얼마나 안도했는지 모른다.

이리나 역시 강혁을 발견하고는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강혁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강혁은 조금 놀랐지만 워낙 큰일이 있었던 터라 그녀의 포옹을 내버려두었었다.

이리나는 강혁과 눈이 마주치자 조금 전 품에 안겨 있었던 일이 떠올랐다.

창가에 비친 햇살에 금발이 반짝거리며 요정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발그레하게 변했다.

시진풍이 두 사람을 보며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두 사람이 연인관계라고 생각한 것이다.

"동생, 정말 아름다운 아가씨로군. 혹시 자네 애인인가?"

시진풍이 영어로 말하자 이리나도 알아듣고는 금세 얼굴이 붉어지며 기뻐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머? 애인이라니. 남의 눈에는 그렇게 보이는 걸까?'

그러고 보니 조금 전만해도 이리나는 강혁의 품에 안겨 있었다.

강혁을 보자 너무 기쁜 나머지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었다.

무서운 무장 강도들이 자신을 음흉한 눈으로 바라볼 때마다 얼마나 불안했는지 모른다.

사람들과 함께 객실에 강제로 감금되었을 때도 목숨의 위협을 느꼈었다.

특히나 굉음이 울리며 유람선 여기저기에 폭탄이 터지는 순간은 정말로 죽는 줄 알았다.

그때 이리나는 깨달았다.

자신이 진심으로 강혁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 이리나의 가슴속에는 오직 강혁이 떠올랐다.

강혁과 함께 했던 모든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처음 입사해서 강혁을 모시게 되었던 일.

강혁을 가까운 곳에서 지켜보며 조금씩 강혁에 대해 마음이 끌렸던 일.

처음으로 강혁과 단 둘이 멋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었던 일.

그와 함께 뉴욕 거리를 드라이브를 했던 일.

한국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을 받았던 일.

납치되었을 때 강혁에게 구출 되었던 일.

하나하나가 추억이 되어 이리나의 가슴에 남아 있었다.

이리나는 죽음을 눈앞에 두자 눈물을 글썽거렸다.

마지막을 강혁과 함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이 원망스러웠다.

이리나는 기회가 있었을 때 고백했어야 했다고 후회했었다.

죽음이 임박하자 강혁에 대한 마음이 흘러넘쳤다.

자신이 이렇게나 강혁을 좋아하고 있었는지는 이라나 본인도 몰랐다.

'회장님… 보고 싶어요.'

이리나는 마지막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굳게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그리고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강혁의 부하들이었다.

그제야 이리나는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십년감수했다는 한국말이 가슴에 와닿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시 강혁을 보았을 때, 회사 동료들의 시선은 생각도 나지 않았다.

강혁이 자신을 비서로서만 대해왔다는 것도 잊어버렸다.

자신의 위치와 상사에 대한 예의 같은 것도 깡그리 잊어 버렸다.

그저 마음이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아뇨. 제 비서입니다."

"그래?"

강혁의 말에 시진풍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동생의 여복이 상당하군 그래.'

강혁의 말과 달리 이리나의 표정을 보아하니 강혁에게 마음이 있는 듯이 보였던 것이다.

이리나가 강혁의 말에 몇 번이나 얼굴색이 바뀌는 것을 보며 금세 눈치챌 수 있었다.

조금 전 강혁이 이리나를 비서로 소개하는 것을 듣고 살짝 변하는 표정을 본 것이다.

강혁 역시 이리나를 챙기는 모습을 보면 그냥 평범한 비서처럼 여기는 것 같지는 않았다.

시진풍은 다시 한 번 이리나를 살펴보았다.

동생의 애인이 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달리 보였던 것이다.

'허허, 진짜 사람이 맞기는 한 건가?'

헬기가 하늘을 날고 있는 가운데 창으로 햇살이 비쳤다.

이리나의 금발머리가 햇살에 금빛으로 물결치고 있었다.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은 소설 속에 나오는 요정족을 연상시켰다.

시진풍은 대학시절 동서양의 고전에 심취했었다.

눈앞에 서 있는 이리나를 보니 서양고전에 등장하는 님프나 엘프가 떠올랐다.

"동생, 내 동생에게 꼭 해줘야 할 이야기가 있네."

잠시 이리나를 품평하던 시진풍은 강혁에게 북경어로 말을 걸었다.

강혁은 시진풍의 말에 그가 흑랑과 함께 있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말씀하시지요. 형님."

강혁 역시 북경어로 말했다.

현재 헬기 안에 북경어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실은 말이네……."

시진풍의 말을 들으며 강혁은 그제야 머릿속으로 퍼즐이 완전히 맞춰지는 것 같았다.

'상해방과 태자방 사이의 권력다툼. 그리고 쉬지라이와 시진풍.'

강혁은 뭔가 거대한 운명의 소용돌이가 눈앞에서 회오리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다.

머릿속으로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미래들이 떠올랐다.

'시진풍과 첸 가문 그리고 홍콩재벌들… 이번 일로 함께 엮을 수 있을지도.'

강혁의 눈빛이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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