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41화
141화
천려시는 유람선에 있었던 다른 사람들과 함께 경찰서에 있었다.
유람선에서 있었던 일을 경찰에게 진술해야 했던 것이다.
여기서도 천려시는 강혁에 대해 물었다.
하지만 경찰은 그런 사람은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천려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존, 대체 어디에 계신 건가요.'
"다 끝났습니다. 이제 돌아가셔도 됩니다."
경찰의 말에 천려시는 살짝 웃으며 수고하시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의 옆에서 곁을 지키던 진오가 고개를 절레절레하며 말했다.
"미미, 너도 참 대단하다."
"……?"
"여기까지 와서 또 존을 찾다니. 대단한 열녀 나셨네. 아주 그냥."
"진 오빠. 자꾸 그러면 매니저 자른다."
"흐흐, 내가 없으면 당장 네가 불편할건데?"
진이 혀를 낼름 내밀며 천려시를 놀렸다.
"하하, 두 분 보기 좋군요."
조금 전까지 진술을 받던 경찰관이 일어나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다음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와서 진술 받거든요."
경찰관이 천려시와 진오에게 말하며 문고리를 잡았을 때였다.
문이 열리며 키가 큰 남자가 들어왔다.
"어머? 존?"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강혁이었다.
"천려시양"
마침내 그토록 찾던 강혁을 다시보자 천려시는 반가운 나머지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존!"
천려시는 눈가에 눈물을 닦더니 갑자기 강혁의 품으로 뛰어들었다.
"……!"
강혁은 깜짝 놀랐다.
설마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자신의 품으로 뛰어들 줄은 몰랐던 것이다.
매니저인 진오도 화들짝 놀랐다.
다행히 경찰관은 강혁이 들어 올 때 밖으로 나간 상태였다.
진오는 급히 문을 열고 나가 문 앞을 지켰다.
천려시가 귓가에 대고 말했다.
"보고 싶었어요. 존."
"천려시 양."
강혁의 품에서 얼굴을 뗀 천려시가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그 모습이 마치 장미가 활짝 꽃을 핀 듯 아름다웠다.
강혁도 순간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앞으로는 절 미미라고 불러 주세요."
"미미?"
"제 애칭이에요. 친한 사람만 알아요."
"……!"
강혁은 천려시의 말에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고백처럼 느껴졌던 것이다.
강혁은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한다는 것이 순간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리 자신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할지라고 말이다.
강혁은 천려시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감정이 이해가지는 않았지만 모를 수는 없었다.
당시 자신의 얼굴을 잡아당기며 키스까지 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강혁은 천려시의 감정이 일시적인 것이라고 여겼다.
급박한 상황에서 구원을 받았으니 고마운 마음과 애정을 혼돈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금세 식어버릴 감정이었다.
그렇게 단정한 강혁은 천려시를 좋게 타이르고 싶었다.
그리고 앞으로는 좋은 오빠, 동생같은 사이로 지내고 싶었다.
어쨌거나 회귀 전 한동안 정말로 좋아했던 연예인이 아닌가?
어쩌면 자신은 성공한 덕후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강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천려시 양……."
"존, 미미라니까요."
천려시가 뽀로퉁하는 표정을 보이자 강혁은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웠다.
그만 입가에 가득히 미소를 지었다.
예쁘고 사랑스러운 여동생을 보는 느낌이었다.
"하하, 그래…. 미미."
강혁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천려시의 애칭을 불러주었다.
이렇게 예쁜 여동생이 있다며 정말 좋을 것 같았다.
강혁은 외동아들이다.
친구 녀석들 중에 여동생이 있는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미미, 앞으로 좋은 오빠, 동생으로 지내자.'
강혁이 다시 천려시에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너무 좋아요."
천려시가 갑자기 강혁을 끌어안았다.
코로 라벤터 향이 스쳤다.
달콤하면서도 부드러운 여체가 느껴졌다.
강혁은 자신의 품 안에 뛰어든 사람이 절대가인 천려시라는 사실을 재차 깨달았다.
달빛처럼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그냥저냥 예쁜 여동생이 아닌 것이다.
전 아시아 남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절대가인이다.
'하하, 이거 돌 맞아 죽는 거 아닌가 몰라?'
강혁도 얼굴이 화끈거렸다.
다시 한 번 말을 하려고 할 때 천려시가 입술을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워~ 아이 니(사랑해요)."
입술이 달싹거리며 몇 번이나 반복해서 사랑을 속삭였다.
잠시 후, 천려시가 커다란 눈으로 강혁을 올려다보았다.
절세적인 미인의 얼굴에 홍조가 어렸다.
사랑에 빠진 아가씨의 얼굴이었다.
달빛처럼 아름다운 여인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강혁은 순간 숨이 턱하고 막혀왔다.
'부디 이 사람이 절 사랑하게 해주세요.'
부끄러움도 잊고 필사적으로 사랑을 고백한 천려시는 신에게 간절히 기원했다.
강혁이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천려시는 덜컥 겁이 났다.
강혁이 자신을 거절하려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엄습했다.
'……설마?'
천려시는 자신도 모르게 미약하게 떨었다.
그러고 보면 여자친구나 애인이 있는지 물어보지도 않았다.
어쩌면 부인이 있을지도 몰랐다.
'아냐, 손에 반지는 없었는걸. 그럼 혹시? 애인이 있는 걸까? 어쩌지? 거절하려는 걸까?'
천려시의 두 눈에 구슬 같은 이슬이 맺히려 할 때였다.
어색하게 안고 있던 강혁의 손길에서 갑자기 단단한 힘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아… 존. 사랑해요.'
천려시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부드러운 입술이 닿았다.
귓가에 멀리서 아련하게 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잠시 두 사람은 애틋하게 서로를 탐했다.
강혁은 꽃을 찾은 벌처럼 집요하게 천려시의 입술을 탐했다.
얼마나 시간이 흐른 걸까?
문득 강혁은 정신을 차렸다.
'이런 사고 쳤다.'
품 안에 부드러운 여체가 느껴졌다.
달빛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온통 홍조를 띠고 있었다.
손아귀에는 부드러운 여체의 느낌이 생생하게 남아 있었다.
'…제길. 어디까지 간 거야?'
강혁의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강혁은 분명 조금 전 천려시를 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사랑스럽고 매력적인 모습에 이유라를 떠올렸던 것이다.
유라의 가장 사랑스럽던 시절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정신을 잃었다.
과잉기억증후군이 갑자기 발동했던 것이다.
강혁은 시공간의 감각을 잃어버리고 눈앞에 유라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강혁은 머리가 욱신거렸다.
그리고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릴 수 있었다.
'이런 얼어 죽을!'
강혁은 황당함을 금할 수 없었다.
자신이 천려시를 집요하게 탐닉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천려시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강혁은 조심스럽게 품 안에서 그녀를 떼어냈다.
"미안해. 미미, 아무래도 내가 잠시 정신을 잃은 모양이야. 그런데……."
정신을 차린 천려시가 엉망이 된 옷매무새를 정돈하더니 몸을 바로 하고 강혁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존."
"……?"
천려시가 갑자기 말을 막자 강혁은 어리둥절했다.
무엇이 괜찮다는 말인가?
아직도 홍조를 띤 얼굴이 채 가시지 않은 천려시는 꿈을 꾸듯 몽롱한 표정이었다.
"걱정하지 말아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
"경호원이란 직업 때문에 그러는 거죠. 난 여배우고 당신은 일개 보디가드니까."
"……?"
"걱정 말아요. 그런 장벽쯤은 내가……."
"아니,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똑똑똑!
강혁이 사정을 설명하려고 할 때 노크소리가 들리며 진오가 고개만 내밀고 말했다.
"저기 존 회장님, 첸 회장님의 비서가 오셨습니다……."
"……?"
천려시는 자신의 이종사촌이자 매니저인 진오가 하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존 회장님? 첸 회장님 비서?'
"아, 들어오시라고 해요."
강혁이 담담히 그 말을 받았다.
"아, 예."
문이 열리며 첸 회장의 비서라는 사람이 들어왔다.
"존 회장님. 진술을 마치신 후, 잠시 뵙자고 하시는군요."
"알겠습니다. 어디로 가면 되죠?"
첸 회장 비서가 장소를 설명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진술을 마치고 나면 그리로 가죠."
"회장님, 그리고 그곳에 가시면 홍콩 재벌들이 감사 인사를 하실 겁니다."
강혁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첸 회장비서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는 문밖으로 나갔다.
"존, 대체 무슨 소리에요? 회장이라니? 당신 경호원이 아니었나요?"
"미미, 사실은……."
문이 갑자기 열리며 경찰관이 들어왔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갑자기 일이 좀 생겨서……."
천려시는 경찰관의 말에 머뭇거리며 문밖으로 나갔다.
"오빠, 존 회장님이라니? 대체 무슨 말이야?"
"미미, 듣고 놀라지 마라. 존 회장은 일개 경호원이 아니야!"
"……?"
천려시는 진오의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영락없이 첸 회장의 경호원이라고 생각했던 강혁이 알고 보니 미국의 갑부란다.
"회장님이라고?"
"그래, 엄청 큰 기업을 운영한고 있다고 해."
"회사 이름이 뭔데 오빠."
"골든 타워라는 금융회사인가봐."
"그, 그래?"
"야, 내가 확실하게 서포트 해 줄 테니. 꼭 잡아라."
"……!"
조금 전과는 백팔십도로 달라진 진오의 태도에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천려시의 얼굴은 그리 밝지만은 않았다.
"너 왜 그래? 무슨 일 있었니?"
"아, 아니야. 오빠."
천려시는 빙긋이 웃었다.
"야, 내가 시간 벌어주는 사이에 어떻게 진도는 좀 나갔냐?"
진오의 말에 천려시는 어깨를 세게 때렸다.
"아얏!"
"흥, 그런 소리할 거면 매니저 못 하게 할 줄 알아."
"야, 내가 알아야. 널 도와줄 거 아냐."
"흥, 됐네요. 내가 다 알아서 할거니까."
천려시가 진오를 향해 얼굴을 찡그리며 메롱하고 혀를 내밀었다.
'그런데 유라라는 사람 대체 누굴까?'
강혁이 있는 문 저쪽을 바라보며 천려시는 고운 아미를 찌푸렸다.
조금 전 강혁이 자신의 입술을 탐할 때 흘러나온 이름이었다.
천려시는 마음이 아련하게 아파왔다.
'존,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경찰에게 대충 이야기를 꾸며서 진술을 하는 한편 강혁은 조금 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아무리 자신이 천려시의 절세적인 미모에 홀렸다고 해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히 자신은 천려시에게 사정을 말하고 거절하려고 했다.
뜨겁기 그지 없는 고백에 마음이 흔들린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강혁에게는 누가 뭐라고 해도 사랑하는 아내가 있었다.
아직은 11살에 불과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천려시가 스무살 무렵의 이유라로 보였다.
천려시가 사랑에 빠진 여인의 얼굴로 자신을 바라본 순간이었다.
자신과 처음 사랑에 빠졌던 시절의 유라와 천려시의 얼굴이 오버 랩이 되었다.
갑자기 시공간의 감각이 사라지며 정신을 잃었다.
깨어나보니 그 모양이었다.
마치 누군가 다른 사람이 빙의라도 한 것 같았다.
'얼어 죽을. 이제 어쩌지?'
관계를 맺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연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행위를 해버렸다.
강혁은 오해하고 있을 것이 분명한 천려시에게 확실하게 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뺨을 얻어맞고 망신을 제대로 당해도 기꺼이 감수할 생각이었다.
위자료를 요구한다면 얼마를 요구해도 들어 줄 생각이었다.
'휴우, 그런데 진짜 어떻게 해야 할까?'
강혁은 이전부터 이유라에 대해 걱정하던 것이 있었다.
이대로 이유라가 자랄 때까지 기다려서 결혼하는 것은 과연 이유라에게 좋은 일일까?
자신을 만나지 않았다면 행복하게 살았을지도 모를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