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44화
144화
'자아, 그럼 시작해볼까?'
강혁은 천천히 시진풍에게 미래에 중국이 온 세계의 저주와 멸시를 받게 되는 이유들을 말해주었다.
"중국이 정말 그런 짓을 저지른다는 말인가?"
시진풍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천인공노할 학살과 박해를 소수 민족들에게 저지르지요."
강혁의 구체적이고 상세한 묘사는 시진풍과 첸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강혁의 말이 맞다면 인간으로서 하기 힘든 만행을 중국 공산당 정권이 저지른 게 된다.
"그리고 한복과 김치를 중국의 것이라 했다고?"
"고구려가 중국 지방 정권이라고 우겨서 전 세계인의 망신을 사지요."
강혁의 말에 시진풍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로군."
"글쎄요. 오늘 일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나요?"
"……!"
강혁의 말은 시사점이 컸다.
중국 공산당 고위직이 국가 특수부대 요원을 이용해 강도짓을 시도했지 않은가?
이 일도 있을 수 없는 일을 벌인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지켜보면 알겁니다."
강혁의 말에 시진풍은 침을 꼴깍 삼켰다.
강혁의 진지한 표정에 압도되었다.
미래를 눈으로 직접 본 듯이 상세한 설명과 묘사였다.
강혁이 회귀 전 눈으로 보고 들은 것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절대기억능력자가 아닌가?
놀랍도록 세세하게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거짓으로 꾸며낸 것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자세한 설명이었다.
'정말일까?'
끝까지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다.
하지만 강혁은 자신의 과거행적과 개인적으로 한 마음속의 결심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누구도 알 리가 없는 혼자만의 맹세를 직접 눈으로 본 것처럼 말했다.
'그러고 보니 눈으로 직접 봤다고 말했지?'
시진풍은 조금 전 강혁이 한 말을 되뇌었다.
'제 눈으로 봤습니다.'
생각에 잠겨 있던 시진풍은 강혁의 다음 말에 다시 정신이 돌아왔다.
"끝없는 악행에 결국 하늘이 노하고, 중국 전역에 미지의 바이러스가 출몰하게 됩니다."
"……?"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른 나라에도 퍼트리게 되지요."
꿀―꺽!
강혁은 세상을 강타한 몹쓸 전염병의 출몰과 그 후의 일들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첸과 시진풍은 마치 눈으로 본 것처럼 생생하게 상황을 묘사하는 강혁의 설명을 넋을 잃고 들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말인가?"
시진풍이 입을 다물지 못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중국과 중국인들이 세계인들의 저주와 멸시를 당한다고?"
강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진풍과 첸은 참담한 표정이 되었다.
'자아, 그럼 시작해볼까?'
지금까지 강혁은 진실을 말했다.
회귀 전 자신이 봤던 미래 말이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가상의 미래다.
강혁은 두 사람을 향해 자신이 꾸며낸 그 후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핵… 핵 전쟁?"
"맞습니다."
강혁의 설명을 모두 들은 두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았다.
인류를 절망과 나락으로 빠뜨린 바이러스.
결국 백신이 개발되어 팬데믹은 진정된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중국의 세균실험실에서 만들어 졌다는 사실이 판명된다.
엄청난 피해를 입은 전 세계인들이 분노하게 되고, 피해보상을 요구한다.
중국은 바이러스의 최초 발생지가 중국이 아니라고 발뺌하고, 피해요구를 일축한다.
오히려 주변 나라들을 끊임없이 겁박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중국이 홍콩의 민주화를 탄압하고, 대만을 침공한다.
결국 전 세계가 연합하여 중국과 전쟁이 벌어진다.
"북경이 함락된다고?"
시진풍은 얼굴을 감싸 안았다.
강혁의 설명이 이어졌다.
연합군에 의해 북경이 점령되기 직전, 핵미사일이 발사되고 보복으로 중국 전역이 핵 타격을 받는다.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빠집니다."
강혁의 이야기는 충격 그 자체였다.
"그걸 막을 수 있는 길은 시 형님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꿀―꺽.
"알겠네. 내 어떻게 해서든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지."
시진풍은 식은땀이 흐르고 손이 덜덜덜 떨렸다.
첸 역시 믿기지 않으면서도 너무나 생생한 묘사에 놀라고 있었다.
'후후, 얼마 지나지 않으면 중국은 동북공정을 시작할 터. 미래를 맞혔다고 하겠지.'
강혁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말했고, 시진풍과 첸은 그 사실을 확인하며 전율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핵전쟁으로 인한 인류 멸망 시나리오까지 믿게 될 것이다.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핵전쟁이라고 생각할 테니. 앞으로 잘 해봅시다. 시 형님.'
강혁은 손을 벌벌 떨고 있는 시진풍을 바라보며 몰래 입꼬리를 올렸다.
"존, 자네 말이 맞다면 나 역시 모든 것을 걸고 그 미래를 바꾸겠네."
"첸."
첸의 얼굴에 굳센 결의가 엿보였다.
"그럼 우선 시 형님이 중국 주석이 되도록 도와주게."
"그러겠네."
첸의 말에 시진풍은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았다.
쌍룡회가 돕기로 했지만 첸은 객가인이었다.
중국 대륙 안에도 객가인들은 큰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중국 공산당 혁명 역시 객가인들이 다수 참여했기 때문에 그들의 인맥은 강력했다.
"고맙습니다. 첸 회장. 내 주석이 된다면 반드시 그런 미래는 막겠습니다."
"여기 존 회장 말만 잘 들으신다면 분명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물론이죠. 앞으로 존 동생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제가 사람이 아니라 개돼지입니다."
시진풍은 두 사람 앞에서 몇 번이나 맹세했다.
"알겠습니다. 저도 시 대인을 적극 돕겠습니다."
세 사람은 나중에는 서로 의형제까지 맺었다.
강혁이 제일 젊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막내가 되었다.
파란만장했던 하루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강혁은 모두와 헤어져 이리나와 함께 다시 승용차에 올라탔다.
차가 출발했을 때였다.
핸드폰이 울렸다.
모르는 번호였다.
"존 강입니다."
전화기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저예요. 존.
천려시였다.
두 사람 사이에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 있었다.
전화를 끊은 강혁이 스티브에게 말했다.
"스티브, 잠시 들려다가 가야겠어."
"예, 회장님."
승용차가 방향을 바꾸었다.
이리나가 강혁의 옆모습을 살폈다.
뭔가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 여자인가?'
이리나는 유람선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렸다.
죽음이 다가온다고 느꼈을 때 이리나는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지 않았던 것을 후회했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여자가 강혁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것도 여자인 자신이 보아도 너무나 아름다운 여자였다.
이리나는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5성급인 천화 호텔의 스카이라운지에 한 여인이 앉아 있었다.
은은한 조명이 여인의 주변을 비추었다.
"오래 기다렸어?"
강혁이 여인에게 다가가 말을 건네었다.
"존!"
몸을 돌린 여인의 얼굴에서 배시시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강혁은 마음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역시 절대가인 천려시.'
사실 아름답기로 치자면 이리나와 안젤라도 결코 뒤지지 않았다.
각자 서로 다른 매력이 넘치는 아가씨들이었다.
하지만 강혁은 유라와 경아를 생각하는 마음이 넘쳐 두 사람의 그런 매력을 애써 모른 척했다.
만일 회귀 전 강혁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과거와 적극적인 구애가 아니었다면 천려시 역시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유람선에서 있었던 사건들과 천려시의 갑작스러운 키스 등이 다른 상황으로 만들었다.
강혁의 내면에 쳐져 있던 무의식의 경계를 단숨에 돌파해버린 것이다.
문제는 앞으로 이리나와 안젤라의 매력 역시 여과 없이 강혁에게 전달될 것이라는 점이다.
천려시로서는 생각도 하지 못했을 부작용이었다.
"아뇨, 전혀. 어서 와요."
두 사람이 자리에 앉을 때 조금 떨어진 곳에 이리나가 몰래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두 사람이 무슨 얘기를 하는지 몰래 훔쳐보려 했다.
'존 회장님.'
두 사람이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저려왔다.
"우선 음료라도 하나 시켜요."
천려시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와인을 시켜 잔을 채웠다.
"존, 술에서 좋은 향기가 나요."
"음, 그렇군."
두 사람은 잠시 술을 음미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천려시가 말을 꺼냈다.
"존, 늦었지만 물어볼 게 있어요."
"음, 뭐든지 물어봐."
"혹시, 사귀는 사람이 있나요?"
강혁은 천려시의 말에 올 것이 왔다고 생각했다.
"아니, 전혀 없어."
강혁의 말에 천려시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럼 혹시 좋아하는 사람은?"
"으음……."
강혁이 바로 대답을 하지 않자 천려시는 다시 마음을 졸였다.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하나 있어."
"그…그랬군요."
천려시는 강혁의 말에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혹시 그 사람 이름이 유라라는 분인가요?"
강혁은 천려시의 말에 깜짝 놀랐다.
"어떻게 그 이름을?"
천려시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은……."
천려시는 사실을 말해주었다.
"그랬군."
강혁은 한숨을 내쉰 후, 와인을 입에 가져갔다.
"미안해. 할 말이 없군."
잠시 천려시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과 다시 만날 생각이신가요?"
천려시의 말은 그야말로 핵심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리고 강혁이 하루 종일 고민했던 일이기도 했다.
"……글쎄, 어떻게 할지. 사실 난 오늘 하루 종일 그 문제를 생각했다고 할 수 있어."
강혁이 천려시를 바라보았다.
"미미의 고백에 대해 대답을 해주어야 했으니까."
꿀―꺽.
강혁의 말에 천려시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대답은……."
이리나는 두 사람의 대화를 몰래 듣고 있었다.
강혁이 잊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는 한편 그동안의 일이 이해가 갔다.
강혁이 어떤 여자와도 만남을 가지지 않았던 일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회장님.'
이리나는 유라라는 이름을 마음에 새겼다.
'대체 어떤 여자이기에 회장님이 그토록 잊지 못해 괴로워하신 걸까?'
"사실 과거에 그 친구가 나와의 인연 때문에 있어서는 안 될 일을 겪었어."
"……!"
"그래서 지금도 사실은 가까이 다가가기가 겁이 나."
"그…그랬군요."
천려시는 예상하지 못했던 강혁의 답변에 초조해졌다.
"하지만 그만큼 그녀를 그리워하는 것도 사실이야."
강혁의 답변에 천려시는 참지 못하고 와인을 입에 가져가 꿀꺽꿀꺽 마셨다.
"하아―"
천려시가 강혁을 바라보았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미미."
"존, 절 보세요."
강혁은 당혹한 표정으로 천려시를 바라보았다.
발갛게 달아오른 천려시의 표정은 매혹적이었다.
"전 존을 좋아해요. 좋아한다고요."
"미… 미미."
"그러니까. 날 이용해요."
"……?"
"외롭잖아. 슬프잖아. 난 존이 그런 거 싫어."
"……!"
"날 사랑해달라고 말하진 않을 게요. 하지만 난 당신을 내버려둘 수 없어요."
"……!"
"반드시 날 좋아하게 만들 거니까. 자신 있으니까. 그러니 날 멀리하지만 말아줘요."
"미미."
"그 외로움. 괴로움 내가 없애 줄 테니까."
"……."
강혁은 너무나 솔직하고 당돌한 천려시의 돌진에 마음이 깜짝 놀랐다.
말 그대로 브레이크 없는 벤츠였다.
"미미, 그걸로 괜찮겠어?"
강혁의 말에 천려시가 갑자기 몸을 다가왔다.
코에 스치듯 라벤다 향이 풍겼다.
"…미미."
꽃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다가오더니 떨리듯 입을 맞추었다.
차마 강혁은 그녀를 밀쳐낼 수 없었다.
그렇게 한다면 그녀에게 너무나 큰 상처를 줄 것 같았다.
'하아, 존. 사랑해요.'
천려시는 강혁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흘러넘치는 것 같았다.
그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 싶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달콤한 향이 입가에 맴돌았다.
마치 시간이 멈춰 선 것 같았다.
잠시 후, 강혁의 입에서 얼굴을 뗀 천려시가 말했다.
"반드시 날 좋아하게 만들거니까. 기대하라고요."
천려시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또 연락할게요. 오늘은 여기까지."
천려시는 손바닥으로 볼을 부채질했다.
"후우, 여기 너무 덥네. 그럼 존. 다음에 봐요."
"……미미."
강혁은 돌아서 나가는 천려시의 뒷모습을 말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