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46화 (146/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46화

146화

"F.B.I연수?"

전화를 받고 있는 대통령 비서실장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건 없지."

전화를 끊은 곽 실장은 경찰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야, 축하한다. 강혁"

"하하, 뭘요. 그저 운이 좋았어요."

강혁은 자신을 축하하는 선배와 동료들에게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얼마 전 경찰 전체를 대상으로 열린 F.B.I연수 신청 대상선정에 최종 합격한 것이다.

쟁쟁한 경찰대학 출신들이 대거 신청했기에 강혁의 선발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순경 출신이 머리 좋은 경찰 대학 출신들을 누르고 이래 합격할 줄은 몰랐데이~"

순경 출신인 선배 중 한 사람이 자랑스럽다는 듯이 강혁의 어깨를 두드렸다.

강혁은 그저 쑥스러워했다.

강혁의 본 모습을 아는 사람이 봤다면 두 눈을 의심할 만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실제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물여덟이다.

겉모습만 본다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강혁은 동료들과 선배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며칠 후,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     *     *

"오랜만입니다. 존 회장."

클링튼은 강혁을 반갑게 맞았다.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대통령님."

"저야 잘 지내죠."

클링튼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강혁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클링튼의 과장된 제스처와 얼굴 표정을 보고 금세 거짓말을 눈치챘다.

그의 얼굴에서 짙은 그림자가 엿보였다.

강혁은 내년 1월 르윈스키와의 스캔들이 언론에 터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 경제를 회복시킨 장본인으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시점이다.

최전성기를 보내고 있는 대통령의 얼굴에 감추어진 수심이라면 그 일밖에 없었다.

강혁은 하지만 짐짓 모른 채 넘어갔다.

"그런데 존 회장은 얼마 전 홍콩에서 큰일을 당할 뻔했다면서요?"

"하하, 그때는 크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강혁은 미국 대사관에서 홍콩 경찰 수뇌부에 압력을 넣었던 일을 거론했다.

"존 회장의 안위와 비교한다면 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클링튼은 크게 제스처를 취하며 공치사를 했다.

우리가 이 정도로 널 아끼고 있으니 알아서 미국을 위해 움직이라는 뜻이다.

오늘 클링튼이 강혁을 부른 것도 혹시나 뭔가 들을 만한 일이 없는가해서다.

이번 미국 연수도 강혁과 클링튼 사이에서 이미 사전에 조율된 것들이었다.

강혁 역시 클링튼이 그저 자신이 좋아서 해준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겠는가?

클링튼은 오늘 자신들이 해준 일에 대한 대가를 받을 생각인 것이다.

강혁 역시 그런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늘 강혁은 나름 성의를 보일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일방적으로 미국에 좋은 일을 시킬 생각은 아니었다.

이전에 클링튼과의 대화에서 미국에 어리는 불길한 그림자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그날의 대화 이후, 클링튼은 한미소파협정을 대대적으로 개정했다.

강혁은 오늘 클링튼에게 아니, 미국 정부에 두고두고 큰 임팩트를 줄 미끼를 던질 생각이었다.

"감사하신 말씀입니다. 대통령님."

강혁은 빙긋이 웃으며 클링튼 행정부의 뛰어난 경제 정책과 그 효과를 칭찬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고 했던가?

이미 수없이 많이 들은 칭찬이었지만 클링튼은 강혁의 칭찬에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존 회장 같은 분에게 이런 칭찬을 듣다니 영광입니다."

클링튼 등 몇몇 사람들에게 강혁은 특별한 대우를 받고 있었다.

그것은 그들이 강혁을 신의 선지자 같은 존재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강혁이 한 칭찬은 여느 사람과 같을 수 없었다.

"하하, 절 너무 크게 생각하시는군요."

클링튼의 말에 강혁이 손사래를 쳤다.

"무슨 말씀을 존 회장이야말로 20세기의 살아 있는 예언자가 아닙니까?"

강혁은 그 말에 빙긋이 미소 지을 뿐 딱히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오늘 절 부르신 것도 사실은 그 능력 때문이신 거죠?"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멋쩍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미국의 국익과 관련해서 혹시 알려주실 것이 없습니까?"

클링튼의 말에 강혁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그럼 미끼를 던져 볼까?'

"사실은 오늘 대통령님께 꼭 말씀드려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크게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물었다.

"그게 뭡니까? 존 회장님."

"사실은 정확히 언제 일어날 일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너무 충격적인 일이라……."

"……?"

강혁이 운을 떼자 클링튼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강혁의 말을 주목했다.

"거대한 항공기가 큰 빌딩에 부딪히는 것을 보았습니다."

"……!"

강혁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인 채 두 손을 모았다.

얼굴은 고통으로 가득했다.

과잉기억증후군은 그날의 참상을 지금 겪는 일처럼 생생하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비행기가 빌딩에 부딪힌 후, 얼마 가지 않아 또 하나의 비행기가 같은 건물에 부딪힙니다."

꿀―꺽!

클링튼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강혁의 말을 경청했다.

"갑자기 거대한 빌딩이 무너져 내립니다."

"……."

"그 광경을 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고, 비탄에 빠졌습니다."

"……!"

클링튼은 강혁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강혁이 두 눈을 뜨며 말했다.

"그 빌딩은 쌍둥이 빌딩입니다."

마지막 말은 클링튼을 크게 걱정하게 만들었다.

"그…그게 사실입니까?"

클링튼의 물음에 강혁은 말없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클링튼은 목에 낀 넥타이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강혁의 말에 진땀이 났기 때문이다.

"무서운 이야기로군요."

클링튼은 잠시 말을 잊었다.

속으로 전전긍긍하던 클링튼이 다시 물었다.

"그게 언제 일어날 일인지 전혀 모르겠습니까?"

클링튼의 말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뭔가 더 알게 된다면 말씀드리지요."

"그래 주시겠습니까?"

"물론이죠. 대통령님."

클링튼이 강혁의 두 손을 꼭 잡았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존 회장."

"걱정 마십시오. 제 사업장도 뉴욕에 있습니다. 뭔가 더 알게 되면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불안해하면서도 약간은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클링튼은 그 외에 더 알려줄 것은 없는지 물었다.

"사실… 대통령님 개인과 관련된 일을 얼마 전에 본 것이 있습니다."

"그래요?"

클링튼은 강혁의 말에 귀가 솔깃했다.

미국의 안보야말로 대통령으로서 항상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일을 보았다고 하니 인간으로서 더 솔깃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무, 무슨 일인가요?"

클링튼의 얼굴이 조금 전보다 훨씬 더 강혁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르.윈.스.키"

강혁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클링튼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잠시 클링튼은 말이 없었다.

설마 강혁이 르윈스키에 대해 거론할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제가 여성을 조심하라고 했지 않습니다. 대통령님."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이전 강혁과의 만남에서 들었던 충고를 떠올렸다.

클링튼은 팔에 소름이 돋았다.

강혁이 경고가 사실이 되었기 때문이다.

"하하, 그…그게."

클링튼은 손으로 뒷덜미를 만지작거렸다.

뭔가 변명이나 거짓말을 해볼까 하다가 그냥 솔직해지기로 했다.

"하아, 역시 우리 존 회장한테는 숨길 수가 없군요."

클링튼은 그대로 면목 없다는 듯 고개를 떨구었다.

강혁의 말대로 클링튼은 백악관 인턴인 르윈스키와 불륜을 저질렀다.

현재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그런데 강혁이 대뜸 그 일을 거론한 것이다.

그것도 미국을 멀리 떠나있던 사람이 말이다.

클링튼은 강혁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하아, 존 회장의 능력이 진짜야. 진짜. 그렇다면 그 일도 진짜로 일어난다는 말인데.'

클링튼은 조금 전 강혁이 해주었던 쌍둥이 빌딩 중 하나가 무너지는 일을 떠올렸다.

새삼 두려움이 엄습했다.

미국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의 임기 중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막아야 했다.

클링튼이 그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강혁은 그런 클링튼의 표정을 관찰하고 있었다.

'크큭, 마음이 많이 복잡할 거야.'

강혁은 굳이 지금 클링튼에게 911에 대한 모든 것을 말할 생각이 없었다.

물론 강혁 역시 가능하다면 911테러를 막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 일이 그리 간단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지금의 클링튼과 달리 다음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들을지는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지금 미리 이렇게 언질을 해두는 것은 어떻게든 자신에게 유리하게 돌아올 것이다.

"대통령님, 이 일은 앞으로 크게 문제가 될 겁니다."

"……!"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는 잘 막아 온 비밀이었다.

그런데 큰 일로 번진다고?

만일 언론이 알아차린다면 자신의 정치인생에 큰 위기가 될 일인 것은 사실이다.

클링튼은 목으로 침을 크게 삼켰다.

꿀―걱!

"하지만 너무 걱정은 마십시오. 제가 도와드리지요."

"고, 고맙소. 존 회장.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뭐든 도와드리죠."

클링튼은 강혁이 돕겠다는 말에 크게 반색했다.

'뭐든 돕는다라? 그 말을 기다렸습니다. 대통령님.'

강혁의 두 눈이 빛났다.

얼마 후면 한국에서는 외환위기로 국가 부도 사태가 벌어진다.

그때가 되면 강혁은 클링튼에게 지운 빚을 크게 돌려받을 생각이었다.

'언론에서 르윈스키 스캔들이 발표되는 건 내년 1월이다.'

강혁의 머리가 무섭게 돌아갔다.

"대통령님, 지금 문제가 된 건 힐로이 여사님이시죠?"

"휴, 내가 존 회장 앞에 무엇을 숨기겠소. 아내가 크게 실망했어요."

클링튼의 말에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만간 공화당에서 눈치를 채고 움직일 겁니다."

"……!"

"내년 1월에는 언론에서도 알게 됩니다."

강혁의 말에 클링튼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터트리는 건 르윈스키입니다."

"뭐라고요? 설마 그 여자가?"

클링튼은 강혁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 정도로 놀라시면 안 되죠."

"설마 더 있는 겁니까?"

클링튼의 말에 강혁은 한숨을 쉬었다.

"공화당에서 대통령님을 탄핵시키려고 할 겁니다."

"……!"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깜짝 놀랐다.

"그…그게 사실입니까?"

클링튼이 믿기 어렵다는 듯 강혁의 말에 반신반의했다.

하지만 그런 클링튼에게 강혁은 쐐기를 박았다.

"제가 봤습니다."

"……!"

강혁의 이 말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클링튼은 강혁이 이 말을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왔는지 알고 있었다.

강혁에 대한 비밀스런 내사가 이루어졌고, 그 보고서에 이런 글귀가 있었다.

'존 회장이 직접 두 눈으로 보았다는 표현을 썼다면 그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지금까지의 전적을 생각하며 클링튼은 의자에 몸을 눕혔다.

'탄핵이라니? 내가?'

클링튼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너무나 수치스러웠던 것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탄핵만은 상상하지 못했다.

사실 지금 미국인들 사이에서 클링튼의 인기는 엄청난 것이었다.

미국의 경제를 살렸다는 찬사를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그는 전 국민적인 사랑과 인기를 한껏 즐기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내년에는 탄핵을 당한다니?

도저히 믿기 힘든 일이었다.

아내가 상심하여 백악관을 나간 것도 비상사태지만 그것보다 더 충격적으로 다가왔다.

"어, 어떻게 방법이 없겠습니까?"

클링튼이 해쓱한 표정으로 물었다.

"방법은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회색이 돌았다.

"뭔지는 모르지만 시키는 대로 하겠소."

클링튼의 말에 강혁은 속으로 웃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