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47화
147화
#39장 대통령의 스캔들
힐로이 클링튼은 백악관을 떠나 대통령 별장에 있었다.
공식 일정에는 없던 일정이었다.
영부인이 스케줄을 모두 취소하고 별장에서 머문다면 언론에서 이상하게 여길 것이다.
그렇기에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힐로이는 과연 자신이 클링튼을 위해 백악관으로 다시 돌아가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클링튼은 자신을 배반하고, 국민들의 믿음을 배반하고 있었다.
국민적인 인기에 취해 자신을 잃고 허리 아래를 함부로 휘두르는 남편이 너무 혐오스러웠다.
수십 년에 걸친 결혼생활 중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었다.
아칸소주 주지사 시절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당시 힐로이는 자신에게 사과하며 다시는 불륜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한 남편의 말을 믿었다.
하지만 그저 그 순간을 모면하려는 공수표에 불과한 말이었다.
'이제 어쩌지?'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슬픔에 잠겨 있는 힐로이에게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는 힐끗 핸드폰 번호를 확인했다.
'마릴린 여사님?'
전화를 한 것은 윌 존슨 상원의원의 아내인 마릴린이었다.
윌 존슨은 공화당의 실세이지만 클링튼의 대학 선배로 이전부터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였다.
힐로이 역시 윌 존슨과 마릴린을 모두 잘 알았다.
그런데 마릴린 역시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고 있었다.
윌 존슨이 비서와 바람이 났었던 것이다.
하지만 결국 윌 존슨은 불륜을 청산하고 마릴린에게 다시 돌아갔다.
지금 두 사람의 관계는 매우 돈독해져 있었다.
두 사람의 일은 자신과 같은 정계의 부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였다.
마릴린이 어떻게 윌 존슨 상원의원의 마음을 되돌렸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마릴린.'
힐로이는 전화를 받았다.
"어쩐 일이에요. 마릴린 여사님."
―영부인님.
힐로이는 마릴린에게는 딱딱한 예의는 벗어던지고 대화하고 싶었다.
"그냥, 예전처럼 로이라고 불러 주세요."
힐로이의 말에 잠시 침묵하던 마릴린의 음성이 다시 들려왔다.
―알았어. 로이. 지금 어디야?
"별장이에요."
―그렇군.
마릴린의 목소리에는 안타까워하는 느낌이 깃들어 있었다.
"혹시 그이가 연락한 건가요?"
―그럴 리가. 그 바람둥이가 그럴 요령이라도 있었다면 로이가 그렇게 상심하진 않았겠지.
대통령에게 예전처럼 가차 없는 평가를 내리는 마릴린의 말에 힐로이는 미소를 지었다.
"풋, 여전하시군요."
―내 친구가 네게 한번 전화해보라고 하더군.
'친구?'
힐로이는 마릴린의 친구가 누굴까 궁금해하며 다시 물었다.
전부터 궁금해했던 일이다.
"언니는 대체 어떻게 하신 거예요."
―응?
"모를 척하시지 말아요. 우리 부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이야기잖아요."
―아아, 그거 말이지.
힐로이는 무슨 말이 나올지 궁금해하며 마릴린의 말을 기다렸다.
모든 남자들은 젊고 예쁜 여자들을 좋아한다.
특히나 자기 남편처럼 성공한 남자들일수록 더 그렇다.
힐로이 자신이나 마릴린 같은 여자들은 세월이 흐를수록 남편들을 뺏기게 되기 마련인 것이다.
아무리 젊었을 때 대단한 미모를 지니고 있었다고 한들 소용이 없었다.
자신들은 하루가 다르게 늙고, 어린 여자애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애당초 이길 수 없는 경쟁인 것이다.
그런데 마릴린이 그 대단한 걸 해냈다.
어린 비서 여자애한테서 남편을 되찾은 것이다.
자신들과 같은 처지에 있는 부인들에게는 그야말로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마릴린은 자신들의 영웅이었다.
그런데 마릴린은 대체 어떻게 해낸 걸까?
부러움과 호기심, 열등감이 동시에 솟구쳤다.
―친구가 계기를 만들어 줬지.
"……?"
―로이에게 전화해보라고 한 것도 그 친구야.
"……!"
힐로이는 대체 어떤 친구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마릴린의 집안은 자녀 문제로 얼마 전 큰 일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이 약혼자와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사이코패스에게 납치됐었던 일이다.
워낙 큰 화제가 된 일이라 힐로이도 자세히 알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윌 존슨은 미인 비서와의 불륜으로 마릴린을 슬프게 하고 있던 시기였다.
힐로이는 막연하게 당시의 일이 계기가 되어 두 사람의 관계가 회복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사연에 미지의 친구가 개입되어 있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 친구가 내게 전화를 해보라고 했다고?
대체 누구일까?
현재 나와 남편의 문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친구라? 그 이야기를 자세히 해주시겠어요?"
―그러죠. 로이. 사실 그러려고 전화한 거기도 해요.
'……?'
힐로이는 마릴린의 말을 들을수록 믿기가 힘들어졌다.
세상에 어떻게 그런 사람이 존재할 수 있다는 말인가?
미래를 알고, 사람들의 마음을 꿰뚫어 보며, 가장 좋은 조언을 준다고?
"마릴린 미안하지만 이 말을 꼭 해야겠어요."
―말해봐. 로이.
"어떻게 마릴린 같은 사람이 영매 같은 걸 믿을 수 있죠?"
―그 사람은 영매 같은 게 아니야. 로이.
"영매가 아니라뇨?"
―그 사람은… 예언자야.
"예언자?"
―남편이나 애런에게 물어봐. 로이. 진실을 말해 줄 거야.
'애런? 부통령이 알고 있다고?'
남편은 물론이고 부통령인 애런도 알고 있다니 황당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미합중국의 대통령과 부통령이 영매와 알고 지낸다고?
힐로이는 급피곤해졌다.
'마릴린의 전화를 받는 것이 아니었어.'
"죄송해요. 마릴린 전화해줬는데 피곤해서 이만 끊어야겠어요."
―알겠어. 로이. 만일 마음이 바뀌면 연락줘.
"이만 끊을게요."
전화를 끊은 힐로이는 의사에게 처방받은 불면증 약을 먹고 침대에 누웠다.
'예언자? 훗 잘도 포장하는군.'
눈을 감고 잠을 청한 힐로이는 이리저리 몸을 뒤척였다.
수면제를 두 알 먹었지만 듣지 않았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킨 힐로이는 한숨을 쉬었다.
머릿속에는 계속해서 마릴린이 한 말들이 생각났다.
'정말 그런 사람이 있을까? 그런 거짓말 같은 사람이?'
한참을 고민하던 힐로이는 핸드폰을 손에 들었다.
그리고 애런 화이트 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은 남편과 말을 섞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힐로이 여사님.
"부통령님, 한 가지 묻고 싶은 일이 있어서 전화드렸습니다."
―무슨 일인가요? 제가 답변드릴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대답해드리지요.
애런 화이트 대통령의 부드러운 응대에 만족하며 힐로이는 물었다.
"사실은 제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말이에요."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 그게 뭐죠?
"혹시 존 강이란 사람에 대해서 아시나요?"
힐로이는 말을 하면서도 자신이 우스웠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일로 전화를 건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힐로이는 급 후회하며 전화를 끊으려고 결심했다.
"아, 죄송해요. 그냥 끊을게요."
―힐로이 여사님. 실례지만 그 이름은 누구에게서 들은 건가요?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음성이 조금 전과 달리 약간 딱딱했다.
"……?"
의문을 느낀 힐로이가 다시 물었다.
"왜 물으시죠?"
―누구에게 들으신 건가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꼭 알려주십시오.
부통령의 말에서 뭔가 심상치 않은 점을 느낀 힐로이는 대답을 해주었다.
"조금 전 윌 존슨 상원의원의 부인인 마릴린 여사에게서 전화가 왔었어요."
―아, 그렇군요.
목소리에서 바로 안심하는 듯한 음성이 나왔다.
힐로이는 바로 태세를 전환하는 애런 화이트 부통령의 태도에 의아함을 느꼈다.
'……뭐지?'
"애런, 혹시 정말 그런 사람이 있는 건가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이었지만 애런 화이트 부통령의 대답은 더 충격이었다.
―제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인 것 같군요. 힐로이 여사님.
"예?"
―대통령님께 직접 물어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애런의 말은 간접적으로 자신의 질문에 사실이라고 대답한 것과 같았다.
힐로이는 큰 충격을 받았다.
어쩌면 마릴린의 말이 사실일지도 몰랐다.
'정말로 있다고? 20세기에? 예언자가?'
힐로이는 전화를 끊은 후, 잠시 망연자실한 채 침대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핸드폰을 바라보았다.
한참을 고민하던 힐로이는 다시 전화를 들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로이?
"……마릴린."
강혁이 거실로 들어서자 우아한 중년 여인이 서 있었다.
미합중국의 영부인 힐로이 클링튼이었다.
"어서 오세요. 존 회장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부인님."
강혁을 별장 거실로 맞이하는 힐로이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잔뜩 드러나고 있었다.
"뭘 좋아하시나요?"
힐로이가 마실 차에 대해 묻자 강혁이 대답했다.
"따뜻한 녹차가 마시고 싶군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강혁의 말에 힐로이는 미소를 띠며 말했다.
잠시 후, 강혁의 앞에는 따뜻한 녹차가 놓였다.
강혁은 차를 입가에 가져가며 물었다.
"절 만나고 싶어 하셨다면서요."
강혁의 말에 힐로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은 마릴린 여사에게서 존 회장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어요."
"……."
"그런데 이렇게 젊은 분이실거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답니다."
힐로이의 말에 강혁은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어머? 이 사람.'
"매력적인 미소로군요. 그 미소 함부로 남에게 보여주지 마세요."
힐로이가 웃으며 말했다.
"……?"
강혁의 미소에는 여성의 모성애를 건드리는 뭔가가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강혁은 이런 여자들의 반응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마릴린 여사님은 절 친구처럼 여기시죠."
"맞아요. 마릴린은 존 회장님을 친구라고 말씀하셨답니다."
힐로이의 말에 강혁은 잔잔한 미소를 지었다.
마릴린과 윌 존슨이 자신에게 보여주고 있는 호의와 우정이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두 분께는 항상 감사하고 있답니다."
강혁의 말에 힐로이는 고개를 끄덕인 후,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런 힐로이를 강혁은 말없이 기다려 주었다.
답답한 침묵을 깨려는 듯 잠시 찬찬히 강혁을 살피던 힐로이가 입을 열었다.
"사실은 도움이 필요해요. 아니 조언이라고 할지……."
"……."
"뭐든 좋으니 절 위해서 해주실 말이 없을까요?"
강혁은 힐로이의 얼굴에서 진심과 절박함을 느꼈다.
가만히 입가에 따뜻한 녹차를 가져갔다.
희미한 찻잎의 냄새를 맡으며 강혁은 입 안으로 찻물을 넘겼다.
잠시 후, 찻잔을 내려놓은 강혁이 입을 열었다.
"힐로이 여사님, 만일 남편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사과한다면 용서해주십시오."
"……!"
아무런 사전 설명도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듯이 대답하는 강혁에게 힐로이는 놀랐다.
하긴 이미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마릴린에게 자신에게 전화해보라고 했다지 않은가?
"그이가 과연 내게 사과를 할까요?"
"그럴 겁니다."
"……?"
"사과하실 겁니다. 진심으로."
"……!"
쉬이 믿기지 않은 말이었다.
게다가 사실 사과가 다는 아니었다.
이전에도 사과는 충분히 받았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아니, 남편이 자신을 사랑해주는 것이다.
힐로이는 마음에 담아 둔 말을 생각하자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