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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48화 (148/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48화

148화

"부군은 다시 돌아올 겁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당신의 용서가 필요합니다."

"……!"

힐로이는 조용히 강혁이 하는 말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들었다.

"정말로 그렇게 하면 모든 것이 잘 해결될까요?"

힐로이의 물음에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부군의 앞에는 전에 겪지 못했던 어려움이 닥칠 겁니다."

"……!"

힐로이는 강혁의 말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하긴 만일 이 일이 언론에라도 알려진다면 좋을 일은 없었다.

"부군의 옆을 단단히 지켜주십시오. 그분의 방패가 되어 주십시오."

"……!"

"만일 그렇게 한다면 부군은 여사님을 존중할 뿐 아니라 사랑하게 될 겁니다."

힐로이가 가장 듣고 싶은 말이 강혁에게서 나왔다.

'그이가 날 사랑한다고? 아니 사랑하게 될 거라고?'

"정말 그렇게 될까요?"

"그렇게 되고말고요. 그리고 전 미국이 당신을 존경하고 사랑하게 될 겁니다."

강혁의 말에 힐로이는 눈물을 글썽였다.

*     *     *

"대통령님, 아무래도 냄새를 맡은 놈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클링튼은 비서실장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놈들이 누구야?"

"공화당 쪽 사람들 같습니다."

클링튼의 얼굴표정이 흔들렸다.

그의 뇌리로 강혁이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내년 1월 언론에서도 알게 됩니다.'

'대통령님은 탄핵을 당하게 될 겁니다.'

"그건 절대 안 돼."

갑자기 클링튼이 소리치자 비서실장은 깜짝 놀랐다.

"대, 대통령님?"

"아, 미안하군. 잠시만 혼자 있게 해주겠나?"

클링튼의 말에 애런 비서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 그래도 영부인 힐로이가 클링튼의 불륜을 눈치채면서 두 사람이 한바탕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공화당 인사들 중 일부가 냄새를 맡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비밀이 유지되고 있지만, 언제 어떻게 상황이 일변하게 될지 모른다.

뭔가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클링튼으로서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애런 비서실장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며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하아, 역시 존 회장의 말을 따라야 하는 것인가?"

클링튼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안았다.

아직까지는 구체적인 정보는 유출되지 않은 상황이다.

백악관 인턴이었던 르윈스키 역시 자신과의 관계를 절대 발설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었다.

공화당에서도 냄새는 맡았을지 몰라도 그 이상의 정보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러다가 정말로 언론에서 알게 되면?'

강혁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1월에 언론에서 터트립니다.'

'르윈스키가 직접 사실을 폭로합니다.'

"젠장!"

클링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만일 그 말이 사실이라면 르윈스키가 자신의 뒤통수를 친다는 뜻이다.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입막음을 위해 이미 많은 대가를 치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언론에 터트린다니?

클링튼은 비록 자신이 잘못한 것이지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르윈스키에 비하면 자신의 아내 힐로이는 얼마나 훌륭한 여인인가?

두 사람은 비교할 거리도 못 될 정도로 큰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여자를 아내로 두고도 자신은 불륜을 저지르고 다녔다는 사실이다.

클링튼은 자기 자신에게 순간 모멸감이 느껴졌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한참을 고민하던 클링튼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강혁의 예언은 놀라울 정도로 적중했었다.

이번에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았다.

이미 야당에서도 냄새를 맡았다고 하지 않는가?

강혁이 한 모든 예언이 사실이라고 가정한다면 내년에 자신은 탄핵을 당하게 된다.

그것만은 막아야 했다.

공화당 인사들에게 불륜 스캔들이 들어가면 자신은 파멸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부르르.

몸이 떨려왔다.

강혁이 자신에게 한 조언 역시 쉽게 결단하기 어려운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순간 그를 믿어도 되는 것인지 두려움에 휩싸였다.

잘못하면 모든 것을 잃을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어쩌면 굳이 지금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도 들었다.

그러나 정적들의 올가미에 조금씩 조여오기 시작했다.

옴짝달싹도 할 수 없게 되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

클링튼의 갈고닦은 정치적 감각이 그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승부수를 던진다면 지금이다.

'휴우, 존 회장을 믿어보는 수밖에.'

결심을 내리자 다리가 부르르 떨렸다.

스스로 자신을 절벽 아래로 던지는 승부수였다.

겁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른 길이 없었다.

'존 회장, 부디 그대의 말이 맞기를…….'

몸을 일으킨 클링튼은 자신들의 참모를 집무실로 소집시켰다.

백악관 대변인실.

"여러분, 미합중국 대통령님이십니다."

대변인의 말에 이어 클링튼이 등장하자 백악관 기자들이 일제히 일어나 박수로 환영했다.

그리고 이어진 클링튼의 발언은 전 미국을 놀라게 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인턴과 불륜을 저지른 것을 스스로 밝힌 것이다.

클링튼은 솔직히 모든 사실을 고백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지금까지 제가 한 말을 모두 사실입니다……. 모두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립니다."

클링튼의 대국민 발표가 끝나자 전 미국이 뒤집어졌다.

대변인실을 나서자 비서실장이 창백한 얼굴로 클링튼을 맞이했다.

"얼굴 좀 펴, 자네가 더 죽을상이군."

대통령의 말에 애런은 속상했다.

애런은 참모 회의에서 마지막까지 대국민사과발표를 반대한 인물이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는 굳이 나서서 말을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르윈스키의 입막음을 확실하게 했고, 공화당은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이다.

충분히 다른 방법으로 막을 수 있는 일이었는데…….

애런이 보기에 클링튼은 일을 너무 크게 만들었다.

"자네 걱정은 다 알고 있네. 너무 염려하지마."

"대통령님, 대체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 것인지 저는 지금도 이해가 안 갑니다."

"후훗, 그런가?"

클링튼은 애런의 다 죽어가는 표정에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했다.

"날 믿고 지켜보게."

애런은 대통령의 호언장담에 한숨이 나왔다.

그가 보기에는 스스로를 망가트리는 미친 짓이었던 것이다.

클링튼 역시 호언장담과 달리 다리를 미세하게 떨고 있었다.

'이건 땀이야.'

애런은 자신의 어깨를 손으로 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조금 전 클링튼이 자신의 어깨를 두드린 곳에서 땀이 만져졌던 것이다.

'대통령님, 대체 뭘 믿고 이렇게 하시는 겁니까?'

애런의 표정이 걱정과 근심으로 가득했다.

클링튼의 대국민사과에 대한 반응은 그야말로 핵폭탄급이었다.

전 언론과 미디어가 이 사안에 대해 하루 종일 대서특필했다.

각종 시사 전문가들과 정계의 논객들이 총출동했다.

어느 방송을 틀어도 이 문제를 놓고 하루 종일 갑론을박을 나누었다.

국민들의 반응 또한 폭발적이었다.

각종, 각양의 반응들이 매스 미디어를 달구었다.

클링튼은 백안관 집무실에 앉아 홀로 고독을 씹었다.

이 순간은 그 누구도 그를 대신해 줄 수 없었다.

오롯이 그가 감당해야 할 몫이었던 것이다.

사과발표 이후 국민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다.

국회에서는 현직 대통령의 스캔들에 대해 벌써부터 국정조사를 해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었다.

대통령의 발언이 사실인지 다른 범법행위는 없었는지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클링튼은 민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대통령님? 특검조사요?"

"예, 그렇게 해주십시오."

"…왜 그렇게까지?"

"이미 발표한 내용 이외에 다른 건 없습니다."

"……으음."

잠시 전화기 너머로 침묵이 흘렀다.

"좋습니다. 대통령의 도박에 저도 걸어보죠."

민주당 대표의 말에 클링튼은 사의를 표하고 전화를 끊었다.

"…후우"

긴장이 되는지 전화를 끊은 클링튼은 손으로 넥타이를 느슨하게 했다.

지금까지 강혁이 시킨 대로 정확히 지시를 따랐다.

이제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했다.

이번에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쩌면 대국민 사과문 발표만큼이나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를 알 수 없다는 점에서는 대국민 사과문 발표 이상이었다.

현재 미국 국민들 다수는 자신에게 호의를 품고 있었다.

비록 실망감을 안겨주었지만 적어도 자신에게 적대적이지는 않을 것이란 기대는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것마저 기대할 수 없었다.

국민들과는 달리 이미 수차례 실망을 안긴 대상이기 때문이다.

'……힐로이.'

자신의 아내를 생각하며 클링튼은 한숨을 깊게 쉬었다.

그녀에 대한 미안함과 죄책감이 엄습해왔다.

클링튼은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비서실장을 불렀다.

"애런, 차를 준비하게."

"예, 대통령님. 어디로 모실까요?"

"힐로이에게 가겠네."

대통령의 말에 애런은 즉시 경호실장에게 연락을 취했다.

"휴우,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지?"

힐로이는 보던 TV를 껐다.

시사프로 진행자들이 클링튼의 스캔들을 가지고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하는 걸 듣기 괴로웠다.

구체적인 상황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많은 추측과 상상들이 오갔던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힐로이는 거실을 서성였다.

며칠 전 자신을 찾아왔던 강혁이 한 말들이 떠올랐다.

'앞으로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겁니다.'

'영부인이 옆에서 대통령을 지탱해주세요.'

'그의 사랑이 다시 돌아올 겁니다.'

강혁이 한 어떤 말보다도 힐로이를 끌어당긴 말은 마지막 문장이었다.

남편의 사랑이 다시 돌아온다는 것.

만일 그럴 수만 있다면… 만일 그렇게 된다면…….

힐로이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렇게 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친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엄습했다.

20세기에 예언자가 대체 무슨 말이냐, 하는 생각도 들었다.

'휴우, 하지만… 하지만…….'

힐로이는 그래도 존의 말이 다 사실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마릴린이 생각났다.

'그래, 그 분은 남편을 되찾았잖아!'

생각해보니, 강혁의 조언을 듣고 남편의 사랑을 되찾은 마릴린이 떠올랐다.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던 힐로이의 눈에 다시 한번 희망이 번득였다.

그때 거실에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들어왔다.

"누구죠? 허락 없이는 아무도… 여보!"

힐로이는 설마 남편이 지금 자신을 찾아오리라고 생각하지 못했었다.

자신이 아는 클링튼이라면 분명 참모들과 대책회의를 하느라 정신이 없을 것인데?

대체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당신 괜찮아?"

그러고 보니 낯빛이 어두웠다.

"지금 같은 순간에 괜찮다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

클링튼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낯빛은 여전히 어두웠지만 그래도 그의 유머는 아직 남아 있는 듯했다.

"아직은 농담할 기운이 있나보네?"

힐로이의 말에 클링튼은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모든 것은 내 잘못이야. 힐로이."

클링튼은 천천히 자신의 심경을 말하기 시작했다.

강혁이 자신에게 제안했던 것들이다.

하지만 지금은 누가 시켜서 했다기보다는 자신이 더 하고 싶었다.

아내에게 자신의 잘못을 모두 고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가까운 곳에서 자신을 지탱해주었던 사람을 되찾고 싶었다.

'힐로이, 내가 어리석었어.'

클링튼은 진심을 담아 현재 자신의 심경을 남김없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내가 당신 말을 믿어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힐로이의 말에 클링튼은 당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고개를 든 클링튼의 눈앞에 힐로이의 야멸찬 표정이 보였다.

그녀는 클링튼의 참회를 믿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벌써 몇 번째 같은 일이 반복되었는가?

클링튼의 가슴이 내려앉았다.

'틀, 틀렸어. 존, 존 회장. 이제 어쩌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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