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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49화 (149/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49화

149화

모든 고백과 참회가 끝났다.

두근거리며 힐로이의 처분을 기다리던 클링튼은 고개를 푹 숙였다.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역시 힐로이는 자신을 용서하지 않았다.

예전 아칸소 주지사 시절에도 몇 번이나 이런 일들이 있었다.

그때는 용서를 받았지만… 지금은…….

같은 일이 반복되었으니 누구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존 회장, 뜻대로 되지 않았소. 이제 어쩌지?'

클링튼은 눈앞이 깜깜해지는 것을 느꼈다.

강혁이 말해준 계획에서 힐로이의 용서는 매우 핵심적인 부분이었다.

여기서 그녀가 자신을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모든 계획이 무너진다.

"…여보, 미……."

클링튼은 허옇게 변한 얼굴로 말했다.

그때였다.

상상하기 힘들었던 말이 그의 귓전을 때렸다.

"하지만 믿어 보기로 했어."

"……!"

클링튼은 힐로이의 말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여보!"

힐로이가 희미하게 웃으며 클링튼을 바라보았다.

힐로이의 마음속에는 존 윌슨과 마릴린의 다정한 모습이 떠올라 있었다.

언젠가 대통령이 주최한 만찬 파티에서 본 적이 있는 모습이다.

'존 회장, 당신을 한번 믿어 볼게요.'

힐로이는 기뻐하는 클링튼을 바라보며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저는 남편을 용서했습니다."

공식석상에서 나란히 클링튼의 옆에 선 힐로이의 말은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공공연한 불륜을 저지른 남편을 용서하다니 결코 쉽지 않은 일이 아닌가?

특히나 미국이란 나라에서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이혼 변호사들이 왜 부자가 되었겠는가?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지 않았다.

그녀가 권력에 눈이 멀어 남편을 용서한 척한다고 떠들어 댔다.

하지만 서서히 사람들이 그녀의 말을 믿기 시작했다.

공식석상에서의 선언 이후, 힐로이는 남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많고 다양한 행사에서 클링튼과 함께 참석했고, 미디어는 그 모습을 방송했다.

힐로이의 눈빛과 표정은 분명 남편을 사랑하는 부인의 것이었다.

그녀의 용서는 진짜였다.

여론의 방향이 뒤바뀌기 시작했다.

아내가 용서했는데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겠느냐는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으로서의 능력은 누구나 인정하는 것이었다.

결국 공화당 일각에서 시도하던 탄핵소추는 미수에 그치고 말았다.

"하하하, 존 회장."

클링튼이 크게 웃으며 양팔을 벌려 강혁을 맞이했다.

그럴 만도 했다.

정치인생을 걸고 한 도박이 큰 성공을 거둔 것이다.

게다가 아내의 믿음과 사랑을 되찾은 것에 큰 행복감을 느꼈다.

클링튼은 강혁이 자신의 인생 그 자체를 구해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앞에 서 있는 강혁의 모습에 마치 광채라도 어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존 회장, 정말 고맙습니다. 어떻게 감사를 표해야 할지 모를 정도에요."

클링튼의 말에 강혁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집무실 앞 응접실에 다함께 앉았다.

잠시 후, 좋은 향이 나는 커피가 두 사람 앞에 놓였다.

클링튼은 커피를 즐기며 강혁에게 말했다.

"알고 보니 공화당 쪽에서 상당히 깊은 내용까지 알고 있었어요."

탄핵소추가 미수에 그친 후, 클링튼은 공화당 일각에서 시도하던 공작의 전모를 알게 되었다.

클링튼의 말에 강혁은 별다른 말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태도에 클링튼은 역시 강혁도 이미 알고 있었다고 지레짐작했다.

"그놈들이 절 끌어내리려고 상당한 공작을 준비하고 있었더군요."

강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휴우, 알고 나니 식은땀이 흐를 정도예요."

클링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정도로 공화당 일각에서 꾸민 공작은 정교한 설계였다.

작전을 계획한 쪽은 아주 치밀했다.

미리 알고 있지 않았다면 절대 빠져나올 수 없는 엄청난 계략을 꾸며 놓고 있었던 것이다.

냄새만 맡았다고 생각한 것은 철저한 오해였다.

이미 르윈스키와 접촉해 증언까지 받아 놓은 상태였다.

그런데도 클링튼 쪽에는 감쪽같이 그런 사실을 전혀 모르게 했다는 것이다.

애런 비서실장은 나중에 그 사실을 알고 클링튼에게 자리를 내놓겠다는 말까지 했다.

자신의 잘못으로 하마터면 큰 판단착오를 일으킬 뻔한 것이다.

잘못된 정보를 기초로 클링튼이 대국민사과를 하는 것을 반대했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강혁이 아니었다면 애런이 아니라 누구도 몰랐을 일이었다.

탄핵소추가 미수에 그치지 않았다면 끝까지 몰랐을 일이었다.

사태가 진정되자 그쪽에서 움직였다.

혹시 클링튼 쪽이 미리 계획을 알고 있었는지 확인한 것이다.

계획을 미리 알고 있지 않고서는 벗어날 수 없는 함정이라고 확신했던 것이다.

누가 사전에 계획을 유출했는지 알아보려는 속셈마저 엿보였다.

사실을 알고 난 후 애런은 클링튼에게 사과하며 사표를 제출했다.

하지만 클링튼은 애런의 사표를 반려했다.

그리고 강혁에 대해 더 깊은 신뢰를 가지게 되었다.

"존 회장 말대로 1월에 언론에 슬쩍 퍼트릴 예정이었답니다."

"그랬겠죠."

강혁은 진득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지는 설명에 강혁도 속으로 감탄을 내질렀다.

그대로 진행되었다면 클링튼은 상당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회귀 전 어떻게 사건이 진행되었는지는 알지만 내밀한 속사정은 몰랐다.

하지만 클링튼의 설명을 들으면서 이면에서 일어난 일들을 알게 된 것이다.

하지만 강혁은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행동했다.

"내 쪽에서 르윈스키가 절대 증언하지 않으리라고 믿게 만드는 것이 핵심 전략이었어요."

"대통령께서는 거기에 말려들었겠죠."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사실을 인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끄럽지만 저는 공개적으로 부인했을 겁니다."

강혁은 클링튼이 순순히 시인하자 내심 고소를 지었다.

"공개적으로 사실 관계를 부인한 후, 르윈스키가 증언을 하게 되면 어떻게 하셨을까요?"

강혁의 물음에 클링튼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

"아마 저는 끝까지 부인하고 르윈스키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했을 겁니다."

강혁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 역사에서도 그대로 일어난 일이다.

클링튼은 뭔가 깨달았다.

"증언이 엇갈리니 특검이 조사했겠군요."

강혁은 클링튼의 말에 조용히 앞에 놓인 커피를 입가에 가져갔다.

입가에 감도는 커피의 향을 음미한 후 클링튼을 향해 큰 충격이 될 말을 해주었다.

"대통령이 끝까지 부인하면 특검조사로 이어지고 그때 증거가 공개됐을 겁니다."

"증거라고요?"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르윈스키가 이미 공화당에 증언을 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증거가 있다니?

클링튼은 관계를 맺을 때 철저히 조심했다.

그래서 어떤 흔적도 증거도 남기지 않았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것은 클링튼의 오만이었다.

회귀 전의 기억이 생생한 강혁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자, 쐐기를 박아볼까?'

강혁이 클링튼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대통령의 정액 자국이 남아 있는 드레스를 르윈스키가 가지고 있습니다."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그게 사실입니까?"

"사실입니다."

"어, 어떻게 그런 일이?"

"그냥, 기념으로 가지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그게 증거가 된 거죠."

현대 과학의 발달로 정액 자국에서 얼마든지 DNA를 추출할 수 있었다.

클링튼은 식은땀이 흘렀다.

얼마 전 탄핵소추 시도는 불발로 끝났다.

하지만 시나리오대로 돌아갔다면?

클링튼은 등골이 오싹했다.

강혁의 말대로 탄핵을 피할 수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회귀 전의 역사에 따르면 클링튼은 나중에라도 솔직하게 사과를 했다.

그리고 힐로이의 남편을 용서했다는 말을 통해 대통령직을 유지한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가 없는 클링튼으로서는 강혁이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존 회장은 증거가 있다는 걸 아셨습니까?"

강혁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클링튼은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존 회장도 참. 미리 말씀해주시지."

"절 얼마나 믿어주실지 보고 싶었죠."

강혁의 말에 클링튼은 내심 가슴이 철렁했다.

만일 자신이 강혁의 말을 믿어주지 않았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앞으로 존 회장의 말이라면 무슨 말이든 듣겠소."

클링튼의 표정은 진심이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클링튼의 표정을 보며 강혁은 내심 만족스러웠다.

"한국이 며칠 전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신 걸 알고 계시죠?"

강혁의 말에 클링튼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 정부는 외환위기를 맞아 달러가 급속도로 고갈되었다.

우방국에 돈을 빌리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결국 박영삼 대통령의 지시로 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사실 이 과정에서 강혁도 많은 내적갈등이 있었다.

이대로 역사가 흘러가는 것을 방치할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으로 개입할 것인가?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두고 고민했지만 결론은 일단은 관망하는 것이었다.

한국경제는 많은 병폐를 안고 있었다.

하지만 그를 무시하고 기록적인 성장률에 기대어 여기까지 왔다.

한 번은 무너져야 했고, 실제로 무너진 후에 한국의 경제는 체질이 개선되었다.

물론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에 휩쓸려 고용불안과 비정규직 양산이 당연시되기도 했다.

강혁은 이런 부분에서는 확실히 개입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새로 건물을 지으려면 기존의 건물은 무너져야 했다.

"I.M.F총재를 움직여 주십시오."

강혁의 말에 클링튼이 빙긋이 웃었다.

현 I.M.F총재는 클링튼의 사람이었다.

그의 말이라면 뭐든지 들어줄 사람인 것이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죠."

I.M.F와 한국정부와의 협상에서 강혁이 키잡이를 잡게 되는 순간이었다.

"오서오세요. 존. 정말 오랜만이에요."

"마릴린. 좋아 보이시네요."

"호호호, 그래요? 다 존 덕분이죠."

"그럴리가요."

"아뇨. 전 정말 존에게 감사하고 있어요."

마릴린이 눈을 빛냈다.

"어서 가보세요. 그이가 기다리고 있어요."

강혁은 마릴린에게 인사를 한 후, 서재로 갔다.

문을 열자 윌 존슨 상원의원이 누군가와 전화를 나누고 있었다.

강혁은 조용히 서재로 들어가 소파의자에 앉았다.

존슨은 강혁에게 눈인사를 건넨 후 전화를 하고 있는 상대방에게 말했다.

"이봐,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중요한 손님이 왔어."

상대가 뭐라고 응얼거렸다.

"그 이야기는 내일 국회에서 계속하자고."

상대가 계속 뭐라고 말했지만 존슨은 전화를 끊어버렸다.

"계속 이야기하시지 그래요. 중요한 전화 같은데?"

"자넬 초대해놓고 그럴 수는 없지. 사실 그리 급할 게 없는 거였어……."

"……."

강혁은 윌 존슨의 말에 그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존슨의 표정은 조금 굳어져 있었다.

강혁은 그가 왜 자신을 급히 보자고 했는지 궁금했다.

"자네 내가 왜 불렀는지 혹시 짐작하겠나?"

강혁은 그의 말에 재빨리 표정에서 나타난 감정을 읽었다.

'의혹, 걱정, 믿음이 섞여 있군.'

강혁은 윌 존슨이 공화당의 실세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클링튼 스캔들 때문이군.'

다른 사람은 몰라도 윌 존슨은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강혁이 몇 차례 백악관을 방문했다는 사실을 존슨이 알고 있다면?

이번 일에 자신이 개입했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을 것이다.

표정을 보아하니 강혁의 개입을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자네 혹시 민주당 쪽에 줄을 선 건가?"

윌 존슨이 초조한 음성으로 물었다.

강혁은 담담히 미소를 띠며 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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