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50화 (150/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50화

150화

강혁은 윌 존슨을 지긋이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럴리가요. 전 딱히 민주당 편이 아닙니다."

강혁이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윌 존슨 상원의원은 강혁의 말에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왜?"

"그게 더 미국, 아니 세계 전체에 이익이기 때문이죠."

"……!"

강혁의 말에 윌 존슨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그런가?"

"전 딱히 어느 정파 사람이 아닙니다."

"……."

"제가 움직이는 건 미국 아니, 세계와 인류 전체에 이익이 되는 쪽이죠."

"……!"

윌 존슨은 조용히 강혁을 바라보았다.

"저는 어느 당이 대통령이 되든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쪽으로 움직일 겁니다."

"으음!"

강혁의 말에 윌 존슨 상원의원은 가볍게 신음성을 흘렸다.

잠시 침묵이 서재 안에 감돌았다.

"그렇다면 더 할 말은 없군."

"음, 저는 윌이 지금 대통령과 친분이 있는 사이로 알고 있었는데요?"

강혁이 오히려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은 같은 대학 출신으로 정파는 다르지만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전에 안젤라가 실종되었을 때도 클링튼이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물론 난 그 친구가 싫지 않아. 오히려 인정하는 편이지."

윌 존슨의 표정을 살피며 강혁은 그가 처한 상황을 이해했다.

'공화당의 실세이니 만큼 곤란한 입장일 테지.'

"지금 우리 당은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네."

현직 대통령인 클링튼이 미국 경제를 부흥시켰다는 평판 때문에 다음 대선도 어려웠다.

공화당 쪽 사람들은 큰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스캔들은 큰 기회였다.

그런데 강혁이 움직이면서 여론을 바꿀 기회가 무산된 것이다.

강혁은 윌 존슨 상원의원의 입장을 이해했다.

"다음 대선 때문이라면 너무 걱정 마십시오."

강혁의 말에 윌의 눈동자가 커졌다.

"혹시 뭔가 본 것이 있는가?"

윌의 말에 강혁은 잠시 조용히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

"다음 대선은 공화당에 돌아갑니다."

"그…그래?"

"하지만 그게……."

강혁이 인상을 찌푸렸다.

윌 존슨은 공화당이 정권을 잡는다는 말에 좋아하다가 강혁의 표정을 보고 의아해했다.

"자네 왜 그러나?"

"다음 대선을 공화당에서 배출하는 것은 사실입니다."

"오! 정말인가?"

"예, 사실입니다."

"그런데 자네 표정은 왜 그런가?"

강혁은 윌의 질문에도 잠시 침묵을 지켰다.

"……이보게?"

"음, 뭐라고 말씀드려야 할지."

강혁이 뜸을 들이자 윌은 더 속이 타들어갔다.

공화당에서 대통령이 나온다면 경사가 분명했다.

그런데 강혁이 왜 저러는 걸까?

"미국을 향한 검은 그림자가 매우 선명하게 보입니다."

"검은 그림자라고?"

윌의 반문에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커다란 재앙이 다가올 겁니다."

"으음."

윌 존슨은 강혁의 말에 짧은 신음을 흘렀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강혁의 말이기에 흘려들을 수 없었다.

"어떤 재앙인지 말해줄 수 있나?"

"지금은 한 가지만 보입니다."

"……!"

"항공기가 경로를 벗어나 뉴욕의 한 빌딩에 부딪힙니다."

"뭐라고?"

윌은 강혁의 말에 깜짝 놀랐다.

"곧이어 또 한 대의 비행기가 같은 빌딩에 부딪힙니다."

"혹시 테러인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망할!"

윌 존슨은 매우 화를 냈다.

하지만 이어진 강혁의 말은 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비행기에 부딪힌 빌딩은 얼마 안 있어 완전히 무너져 내립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나? 아무리 그래도 빌딩이 무너지다니?"

"제 눈으로 똑똑히 봤습니다."

"……!"

윌 존슨은 잠시 충격을 받은 듯이 말을 잇지 못했다.

강혁의 말이 사실이라면 미 본토가 공격을 받는 첫 번째 사건이 되는 것이다.

"말도 안 돼."

윌 존슨은 고개를 내저었다.

하지만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강혁이 한 말이다.

쉬이 믿기는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무작정 무시하기도 어려웠다.

"자네……."

"믿기 어려우시겠죠. 하지만… 그 일은 일어날 겁니다."

강혁이 진지한 눈으로 윌 존슨을 바라보았다.

잠시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의 눈을 응시했다.

먼저 말을 연 것은 윌이었다.

"휴우, 용서해주게. 아무리 자네라고 해도 믿기 어려운 말이었어."

"알고 있습니다."

"대책을 세워야겠군."

강혁은 윌 존슨 상원의원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만일 정말로 대책이 세워진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던 날이었다.

그 일을 막을 수만 있다면 막는 것이 맞을 것이다.

하지만 과연 막아질까?

강혁은 9.11 사건 당시 미국 정보기관이 이미 몇 차례 경고를 했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경고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새로 집권한 대통령이 그 정보를 믿을 수 없는 정보로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연 새 대통령이 강혁이 한 말을 받아들일까?

윌이 노력은 하겠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새 대통령은 강혁과 접점이 전혀 없었다.

게다가 교육받은 현대인일수록 예언 같은 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강혁이기에 현실을 만만하게 보지 않았다.

'9.11… 만일 막을 수 없다면 희생이라도 최소화 시켜야 한다.'

사실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의 중동정책이었다.

테러의 원인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미봉책에 불과한 것이다.

새 대통령이 강혁의 말을 믿고 움직여서 테러를 막는다고 해도 문제였다.

결국은 다시 새로운 테러가 일어나고 그 테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차라리 9.11에 테러가 일어나게 하는 것이 최선일 수 있었다.

만일 그 날 예정대로 테러가 일어난다면 강혁은 희생을 최소화 시킬 수 있었다.

그래서 강혁은 테러가 일어나는 세부적인 상황은 말해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중동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은 언제든 반드시 일어날 일이었기 때문이다.

'윌이 대책을 세운다고는 했지만 어려운 일이야.'

강혁은 아무리 생각해도 회의적이었다.

새롭게 대통령이 되는 조지 부스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부정적인 언급을 할 필요는 없었다.

"언제든 돕겠습니다."

"고맙네. 존 회장. 내가 자네를 오해했군."

윌 존슨의 얼굴에는 강혁을 향한 신뢰감으로 가득했다.

그리고 강혁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가지게 되었다.

강혁은 민주당이나 공화당의 어느 쪽 사람도 아니라는 것이다.

미국 아니,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래, 존은 그런 사람이지. 처음부터 그랬어.'

윌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으며 강혁의 손을 잡았다.

"존 회장, 그대 같은 사람을 알게 되어 정말 다행이야."

"아뇨, 이런 능력을 가졌으니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음, 그렇군. 그래."

강혁의 말에 윌은 얼굴이 상기되었다.

'과연 내가 사람을 잘 봤군. 잘 봤어.'

윌은 강혁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마음에 들었다.

"아, 참. 자네가 온다는 소식을 듣고 안젤라가 집으로 오고 있다네."

"그, 그래요?"

윌이 안젤라를 언급하자 강혁은 살짝 놀랐다.

바로 얼마 전 안젤라의 마음을 알게 되지 않았던가?

그 후 다시 만나는 것이다.

강혁은 어떤 얼굴로 안젤라를 봐야 할지 걱정이었다.

"함께 저녁이라도 하게. 둘 다 젊은 청춘 아닌가? 하하."

"……예?"

"아빠라서 하는 말이 아니네. 우리 안젤라. 어디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아이야."

"무, 물론이죠."

"나는 두 사람만 좋다면 적극 찬성이네. 한번 둘이 만나보게나."

"아, 그…그게?"

"응? 혹시 사귀는 사람이라도 있는 건가?"

윌 존슨의 말에 강혁은 불현듯 천려시와 이리나가 떠올랐다.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사이는 아니지만 가능성은 열어 놓았지 않았던가?

강혁의 반응에 윌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하긴 자네 같은 남자가 여자 한둘 없을 리가 없지."

"아, 아닙니다. 아직 정식으로 사귀는 사람은 없습니다."

강혁의 여성관계에 대해서는 윌 존슨 역시 이미 조사해서 알고 있었다.

그 나이에 재벌이 된 남자치고 여자친구라고 할 만한 사람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조금 전 강혁의 반응에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럼. 한번 만나봐. 우리 안젤라도 자네에게 마음이 없는 건 아닌 것 같은데."

"……하하."

강혁은 불현듯 홍콩에서 마지막으로 보았던 안젤라의 표정들이 떠올랐다.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분명히 알고 있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던 안젤라의 표정들.

그녀와 함께 홍콩의 밤거리를 걸으며 나눴던 이야기들.

순식간에 강혁은 여러 복잡한 감정에 휩싸였다.

당황하는 강혁을 향해 윌 존슨이 호탕하게 웃으며 어깨를 두드렸다.

그때 서재의 문이 열렸다.

"존, 오셨군요."

고개를 돌리자 안젤라가 활짝 웃으며 서 있었다.

마치 생생한 장미꽃이 피어오른 듯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는 그녀는 훨씬 활기가 차 있었다.

몸 전체에 알 수 없는 오라가 느껴졌다.

"오랜만이에요. 안젤라."

강혁도 미소를 지으며 안젤라를 바라보았다.

윌 존슨은 그런 두 사람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홍콩에서 만난 후로 세 달 만이군요."

"그렇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요. 안젤라?"

"음, 저는 지금 뉴욕시에서 검사보로 일하고 있어요."

안젤라의 말에 강혁은 미소를 지었다.

"꿈을 찾았군요."

안젤라가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존 덕분이에요."

"응?"

"그때 홍콩에서 말해줬잖아요. 왜 경찰을 하는지."

"……."

"저도 오랫동안 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당신이라면 틀림없이 좋은 검사가 될 거예요."

강혁의 말에 안젤라가 빙긋이 미소를 머금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리나와 천려시와는 전혀 다른 아름다움이다.

여성정장 차림에 지적이며 인텔리한 모습.

풍성한 금발에 투명한 우유빛 피부.

르네상스 작가의 작품 속 천사들을 연상시키는 외모.

한 번씩 웃을 때마다 주변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웃는 모습이 보기 좋네요."

"어머? 그래요?"

"자주 웃어요."

"그래야겠네요."

안젤라는 강혁의 말에 사실 놀라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자주 웃었던가?'

안젤라는 스스로에게 반문했다.

활기차 보이는 모습마저 남들에게 자신이 괜찮다는 것을 어필하는 과장된 몸짓이었다.

마크가 죽은 이후, 가까운 사람들에게 걱정만 끼쳐왔다.

그래서 뉴욕으로 돌아온 후, 안젤라는 검사보에 지원했다.

지금까지 필사적으로 일하고 노력했다.

그런 가운데 정말 진심으로 웃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오늘만은 달랐다.

가식적으로 웃을 필요도, 억지로 활기찰 필요도 없었다.

안젤라는 자신이 생각 이상으로 강혁과 만나는 것을 즐거워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어째서?'

안젤라는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었다.

"존은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뉴욕에는 어떻게 온 거예요?"

"일단은 연수차 온 거랍니다."

"연수?"

강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렇군요. 그럼 자주 만나기 어렵겠네요?"

"음, 그건 모르겠네요. 시간이 날 때도 바쁠 때도 있을 거예요."

"음, 그건 샘샘이네. 저도 그래요."

안젤라는 말해놓고 우스운지 까르르 웃었다.

그리고는 그런 자신에 대해 마음속으로 놀라고 있었다.

'마크가 죽은 이후 이렇게 즐겁게 웃은 건 처음이야.'

안젤라는 자신의 모습에 깜짝깜짝 놀랐다.

'내가 왜 이러는 걸까?'

안젤라는 자신을 향해 미소 짓고 있는 강혁을 바라보았다.

'……존.'

마음이 편안해지고, 저절로 입술이 옆으로 당겨졌다.

안젤라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마치 장미가 아침이슬을 머금은 듯 아름다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