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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60화 (160/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60화

160화

한 달 후.

이병수는 감개무량한 눈으로 눈앞에 서 있는 자신의 가게를 쳐다보았다.

큼지막하게 신라 치킨이란 상호가 박혀 있었다.

"이제 시작이다."

이병수는 자기 가게를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점포를 새로 단장하는 데 돈도 얼마 들지 않았다.

본사에서 보낸 사람들이 와서 점포를 개조하고 내부시설을 해주었다.

대진건설이란 유명 건설사 쪽 사람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가격으로 점포를 마련할 수 있었다.

알고 보니 대진건설과 신라치킨은 모두 같은 골든 그룹의 계열사들이었다.

"아빠, 축하드려요. 이젠 사장님이네?"

뒤를 돌아보자 딸인 이진주가 웃으며 서 있었다.

동그란 안경에 포니테일, 청바지 차림에 어깨에는 작은 사진기를 메고 있었다.

"이것아, 취재 때문에 바쁘다면서 왜 왔어?"

"아이, 아무리 바빠도 아빠가 개업을 했는데 안 올 수 있나?"

"허허, 녀석."

아무리 기자라고 하지만 선머슴 같은 딸의 모습에 누가 데려갈지 걱정되는 이병수였다.

"이것아, 너도 예쁜 옷도 좀 입고 다녀? 응?"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뻔했다.

이진주는 재빨리 아빠의 입을 막았다.

"아빠, 내가 사진 찍어줄게 엄마하고 같이 서요."

"뭐? 이것이 말 돌리기는."

"에이, 누가 말 돌린다고 그래? 어서 서보라니까?"

이병수는 딸의 성화에 아내와 함께 가게 앞에서 함박 미소를 지었다.

이병수의 아내는 남편이 가게를 정리하러 들어가자 몰래 이진주를 따로 불러냈다.

"그래, 좀 알아봤어?"

"뭐, 처음에는 나도 염려가 됐지만, 신라 치킨 생각보다 탄탄하더라고."

"그렇지? 괜찮다지?"

"응, 염려하지 말고 장사나 잘해."

"그래. 알았다. 그럼 됐어."

이진주는 여전히 걱정이 많은 엄마를 다독거린 후 생각에 잠겼다.

'신라 치킨. 토종기업이라고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외국계 회사의 자본으로 세워진 회사.'

그룹 본사가 골든 타워라는 이름의 투자 금융 회사였다.

사람들은 통칭해서 모두 골든 그룹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외국계 회사이지만 생각보다 사람들의 인식은 호의적이었다.

그룹 회장이 토종 한국인이라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강혁이 의도적으로 퍼트린 것이기도 했다.

막연히 외국 자본이라고 하면 거부반응이 일 것을 우려한 것이다.

강혁의 작전은 성공했다.

골든 타워 투자 회사는 언론지상에 긍정적으로 몇 번이나 언급되기도 했다.

한국인이 미국에서 돈을 벌어 한국에 재투자한다는 식으로 알려졌다.

이진주가 알아본 바로는 골든 타워 본사는 미국에 있고, 한국에는 지부가 세워져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대진건설, 신라 치킨, 신라 레스토랑 등 여러 업계에 진출하고 있었다.

이진주는 사실 아버지가 관련되기 얼마 전부터 골드 타워라는 회사에 대해 주목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오래 전부터 작성하고 있었던 르포 기사의 주제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골든 타워가 인수한 대진건설은 기존의 한국 건설사와 궤를 달리했다.

누구보다도 앞장서서 한국건설사의 악습들을 개선하고 있었다.

대진건설이 지은 아파트와 건물들은 안전성에 있어서 큰 호평을 받았다.

무엇보다도 아파트의 경우 층간소음으로 인한 주민 간 갈등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존 강이란 사람 누군지 얼굴 한번 보고 싶군. 인터뷰에 응해주려나?'

이진주는 문득 골든 그룹 회장이라 알려진 존 강을 떠올렸다.

그녀는 대진건설에 대해 취재하다가 존 강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오늘날 대진건설이 업계의 기린아가 된 것에는 모두 존 강의 영향력이 있었다.

특히 층간소음 없는 아파트로 유명세를 떨치는 데는 존 강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한다.

'돈 좀 덜 벌어도 좋으니 제대로 된 아파트를 만드시오.'

업계의 관행을 뒤집는 대진건설의 행태에 업계 관계자들은 코웃음을 쳤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명품 아파트라는 브랜드로 회사 가치와 이름값을 크게 키웠다.

대진건설이 만든 아파트라면 보지도 않고 계약한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였다.

'이번 가맹점 파격 계약도 존 강 회장의 명령이 있었다는데… 쩝!'

이진주는 입맛을 다셨다.

기자 입장에서 존 강은 꼭 한번 인터뷰를 따보고 싶은 존재였던 것이다.

―아, 회장님. 저 백정원입니다."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백정원 특유의 말투에 강혁은 미소를 지었다.

"사장님, 무슨 일이세요?"

―뭐, 다른 건 아니고요. 보고 좀 드리려고요. 시간되시죠? 흐흐.

백정원이 무슨 일로 전화를 걸었는지 강혁도 대충 짐작이 갔다.

이번 파격적인 조치로 인해 백정원이 많이 걱정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걱정 없다고 말하고 다니지만 말이다.

그런 백정원의 마음을 다독거려주는 것도 자신이 할 일이다.

"하하, 그럼요. 사장님. 시간 됩니다."

―그럼 말씀드릴게요. 이번 파격적인 조치로 전국적으로 점포 1만 개가 새로 개점했어요.

"으음, 돈 좀 들었겠네요."

―흐흐, 돈 좀 많이 들었습니다.

"뭐, 처음부터 예상했던 일이니까요."

―괜찮은 거죠? 회장님?

"물론이죠. 백 사장님. 걱정 마십시오. 2년입니다. 2년. 2년만 참으세요."

―전에도 그렇게 말씀하셨죠.

"예, 2년만 지나면 큰 고비는 넘깁니다."

―…….

쉽게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지금은 TV만 틀면 나오는 말이 경제 위기였다.

신문을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알 만한 기업들이 도산했다는 말이 들리고 있었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동원해서 도산하는 것을 막고는 있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으로 판정된 기업들은 공적자금도 지원이 안 되고 있었다.

어제는 번듯한 직장인이었지만 하루아침에 길바닥에 내던져진 신세가 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그런 상황이라 강혁이 제시한 파격적인 가맹점 계약을 무작정 반대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때 강혁이 한 말이 2년만 버티자는 말이었다.

백정원은 그 기간 동안은 버틸 자금은 충분하다는 말도 들었다.

하지만 벌써 1만 개나 되는 가맹점이 전국에 새로 생겼다.

앞으로 얼마나 더 늘지 모른다.

대진건설 측에서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으로 점포 공사를 해주고 있었다.

신라 치킨 쪽에서는 크게 다행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차피 왼쪽 주머니에 있는 돈을 오른쪽 주머니로 옮기는 것에 불과한 일이다.

이 파고를 골든 그룹이 넘어갈 능력이 되는지 백정원으로서는 걱정스러운 것이다.

…회장님, 자금이 되겠습니까? 지금은 1만 개지만 얼마나 더 커질지…….

백정원이 말을 흐렸다.

"하하, 돈은 걱정 마십시오. 앞으로 들어올 돈도 적지 않습니다."

강혁은 백정원의 말에서 그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알았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지금 한국에서는 달러의 가치가 치솟고 있었다.

미국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강혁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강혁은 이제 거둬들여야 할 돈줄이 있었다.

바로 일본 은행들이다.

그들에게 돈을 빌려줄 때 달러로 갚아야 한다는 조건을 명시해두었었다.

당시만 해도 달러의 가치가 높지 않았을 때였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쯤 일본 은행 관계자들은 땅을 치고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강혁은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았다.

그들에게서 다시 거둬들인 달러로 한국의 실직자들을 거둬 먹일 생각인 것이다.

백정원으로서는 그런 사정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2년이 지나면 상황은 많이 좋아질 것이다.

한국이 I.M.F에 진 빚을 2년 후면 다 갚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는 이전에는 상상도 하기 힘들었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한국이 세계를 선도하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한국은 급속도로 디지털화가 진행되고, 인터넷 속도와 환경에서 세계 최고가 된다.

이에 비해 일본은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아날로그에 머물게 된다.

결국 일본이 여러 분야에서 한국에게 뒤지게 되는 계기가 마련되는 것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앞으로 K드라마와 K팝을 필두로 한 한류가 시작된다.

한국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가 삶의 한가운데로 파고드는 시기이다.

이전처럼 국가가 나서서 창작자들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로 인해 창작자들의 역량이 급속도로 강화된다.

강혁은 이미 TM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상태였다.

미래를 내다보고 과감한 투자를 결정한 상태였다.

여기에 앞으로 한국은 미식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강혁은 백정원과 함께 그 시대를 앞당길 생각이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앞으로 한국에는 미식의 시대가 찾아올 겁니다."

강혁의 말에 백정원은 전화기를 들고 있는 손이 떨렸다.

미식의 시대!

강혁이 처음 자신을 만나러 왔을 때 했던 말이다.

웬 젊은 자식이 약을 파나 했지만 지금은 백정원도 기대하고 있었다.

강혁을 알면 알수록 허튼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무명의 요리연구가였던 자신을 사장으로 발탁한 사람이다.

게다가 신라 치킨의 다양한 치킨 개발에는 강혁의 영향력도 컸다.

그는 지나가다가 한마디씩 툭툭 던지고는 했는데, 지나고 나서 보면 정말 중요한 조언들이었던 것이다.

그런 일들이 매번 반복되다 보니 백정원도 강혁의 말은 허투루 듣는 경우가 없었다.

―미식의 시대― 정말 그날이 올까요?

"옵니다. 아니 정정하죠. 우리가 대한민국에 그 시대를 가져올 겁니다."

―……!

"역사는 백정원 사장님과 저희 골든 그룹이 미식 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하게 될 겁니다."

백정원의 가슴이 떨려왔다.

―회장님, 그 말 반드시 사실로 만들어 보겠습니다.

"기대하지요. 백 사장님."

강혁은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백정원이라면 해낼 것이라고 믿었다.

회귀 전에도 백정원은 대한민국의 미식 시대를 이끌던 리더 중 한 명이었다.

자신이 그 뒤를 뒷받침 해준다면 회귀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성과를 이룰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강혁은 미국에서 회사를 운영하다 보니 생각 자체가 국내를 벗어나 있었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회사를 경영하는 것이 당연한 마인드가 되어 있는 것이다.

'켄터키 치킨을 훨씬 능가할 가능성이 한국식 치킨에는 있다. 분명 성공할 거야.'

강혁은 신라 치킨으로 세계 시장을 넘보고 있었다.

분명히 가능성이 있는 시도였다.

게다가 백정원이라면 치킨 하나로 끝낼 사람이 아니다.

회귀 전에도 중식, 한식, 양식을 아우르며 다양한 음식을 개발했던 사람이 아닌가?

강혁은 신라 치킨을 시작으로 다양한 프랜차이즈의 개발을 백정원에게 독려하고 있었다.

이들이 한국에서 자리를 잡으면 한류의 물결을 타고, K푸드의 유행을 전 세계로 퍼트릴 것이다.

강혁은 그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시작이 모두 한국 경제가 망했다고 말하는 1998년이라는 것이 아이러니였다.

사실 강혁의 입장에서는 지금이야말로 가장 큰 기회였다.

전화기를 내린 강혁의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     *     *

넓은 거실에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녹록치 않은 인물들이었다.

정계, 언론, 경제, 사법계 등 분야도 다양했다.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강력한 힘을 가진 인사들이었다.

이들은 이미 서로 안면이 있는지 모여서 담화를 나누고 있었다.

"정말 대단하시지. 우리 미륵불님."

"허허 그러게. 내가 말했잖아. 신통하시다고."

"나도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아무튼 이번 일로 조금이나마 미심쩍어 하던 놈들도 생각을 바꿨겠지."

모두들 희희낙락하고 있었다.

미리 신상현에게 외환위기로 인한 국가부도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던 이들이다.

이들은 미리 대비해서 다양한 방법으로 자신들의 재산을 크게 불릴 수 있었다.

이들의 대화 중에 얼굴에 단안경을 낀 백발의 노신사가 나타났다.

"그분께서 오십니다."

갑자기 이들이 조용해졌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이들 중에는 얼굴에 버섯이 필 정도로 나이가 먹은 사람들도 있었다.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였다 살렸다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세상천지에 무엇도 두려워하는 것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제 겨우 14살짜리 아이의 등장에 장내가 숨죽은 듯이 조용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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