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61화
161화
"모두들, 오랜만입니다."
신상현이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투명하기까지 한 맑은 음성이었다.
미소년이라고 부르기에 충분한 미모까지 갖췄다.
겉만 보면 어린 나이와 앳된 외모를 보고 깔볼 수 있었다.
하지만 신상현을 향해 누구도 그런 마음을 품지 않았다.
오히려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눈앞의 어린 미소년에게 압도되고 있었다.
"나무아비 조화불, 미륵불님을 뵙습니다."
가장 앞쪽에 앉은 전 여당 소속의 국회의장이 머리를 숙였다.
그러자 장내의 모두가 고개를 숙이며 따라 외쳤다.
"나무아비 조화불, 미륵불님을 뵙습니다."
"고개들 드세요."
"나무아비 조화불."
신상현의 한마디에 모두들 고개를 들었다.
이들의 얼굴에 기이한 빛이 감돌고 있었다.
"모두들 오랜만에 뵙게 되니 반갑군요."
"나무아비 조화불."
신상현의 말이 끝나면 모두가 일제히 나무아비 조화불을 외쳤다.
"오늘 여러분을 부른 것은 긴밀히 몇 가지 지시할 일이 있어서입니다."
"무슨 일이든 말씀만 하십시오. 미륵불님."
두 줄로 양옆에 나란히 앉아 있는 사람 중 중년의 한 남자가 진심이 담긴 어투로 외쳤다.
모두들 그 남자를 살짝 돌아보았다.
여기저기서 뒤질세라 비슷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그렇습니다. 미륵불님. 뭐든지 명령만 내리십시오."
"저희들이 힘을 합치면 대한민국에서 못 할 일은 없습니다. 뭐든 지시만 내리십시오."
이구동성으로 터져 나오는 목소리에 신상현은 입가에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어머님께서 정계에 진출하시기로 했습니다."
신상현의 말에 모두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아! 드디어. 그분께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드디어!"
"오오오!"
다들 환호작약하였다.
이들은 모두가 군사정권의 후예이거나, 그에 빌붙어 출세한 자들이었다.
멀게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부역한 자들이 빠른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여 부와 권력을 장악한 경우였다.
그런데 세월이 흐름에 따라 상황이 점점 변하고 있었다.
굳건할 것만 같았던 군사정권이 무너졌다.
그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치부가 점점 드러나고 있었다.
이대로 가다가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상존했다.
지은 죄가 많은 만큼이나 두려움도 컸다.
그런 이들에게 최영혜의 존재는 커다란 희망일 수밖에 없었다.
해방 이후 가장 강력한 독재자였던 최 대통령의 무남독녀 외동딸.
아직도 국민들 다수가 최 대통령에 대한 강한 향수를 가지고 있었다.
비록 민주주의를 짓밟고 유신헌법을 만든 대통령이었지만 말이다.
나라의 경제를 살리고 국가를 근대화했다는 큰 공이 있었다.
국민들은 아직도 그를 잊지 않았다.
게다가 나이든 분들은 최영혜를 보기만 해도 눈시울을 적셨다.
불쌍하다고 말이다.
부모가 둘 다 총에 맞아 숨지지 않았던가?
젊은 나이에 부모를 비명에 잃었으니 얼마나 기구한 인생인가?
이런 동정론도 매우 강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지난 삼양백화점 사건이었다.
백화점이 무너지는 가운데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시민들을 안전하게 피신시켰다.
거기다 엄마를 잃은 소년을 구해주기까지 했다.
하루아침에 국민적인 영웅으로 등극한 것이다.
그런 최영혜가 정계에 진출한다?
그야말로 하루아침에 폭풍의 눈이 될 것이다.
지금 확실한 대선 주자가 없는 야당의 가장 강력한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될 터였다.
그렇게만 된다면 자신들의 권토중래하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이들이 지금 어린 신상현을 미륵불이라며 굽실거리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했다.
장내의 모두 어떤 기대감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모두의 소란이 가라앉길 기다린 신상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제가 말씀드린 대로 이번에 정권이 바뀌었습니다."
신상현의 말에 희희낙락거리던 사람들의 얼굴이 일변했다.
이번 국가 위기 사태로 인해 정권이 바뀔 것이라는 말.
비록 그들이 미륵불이라며 떠받들던 신상현이 한 말이었지만 사실 믿고 싶지 않았던 예언이다.
하지만 소년의 말은 현실이 되었다.
그들로서는 악몽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만큼 이번 정권 교체는 그들 모두에게 큰 충격이었다.
선거 결과가 발표되던 날 이들 모두는 큰 충격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만큼 꿈에도 원치 않던 상황이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겠습니까? 미륵불님."
대한민국의 언론을 자기 입맛대로 좌지우지한다는 늙은이가 신상현에게 물었다.
모두의 눈초리가 신상현의 입에 집중되었다.
정권이 교체될 것이라는 예언을 해준 뒤, 그 후로는 아무 말도 없었던 것이다.
모두 그동안 막연한 불안 속에서 살았다.
다행히 신상현의 지시로 미리 대처했기에 재산을 훨씬 더 많이 불릴 수 있었지만 말이다.
돈도 좋지만 역시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들의 목숨이었다.
지금 정권을 잡은 김중현은 자신들이 가장 싫어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군사정권의 후예들과 그런 자들에게 빌붙어 있던 자들을 혐오하는 사람이었다.
앞으로 자신들에게 어떤 위해를 가할지 알 수 없는 자였던 것이다.
"그 사람은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그게 사실입니까? 미륵불님?"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질문을 한 사람만이 아니다.
대다수가 같은 표정이었다.
신상현은 입꼬리를 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날 못 믿겠다는 건가?"
"……헉!"
질문을 했던 자가 납작 바닥에 엎드렸다.
얼굴에 검버섯이 핀 노구지만 체면을 가리지 않았다.
"아,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불경을 저지르겠습니까?"
"흐흐, 그래. 그래야지."
앳된 얼굴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투와 표정,
그 기묘한 부조화가 사람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마치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존재가 속에 들어앉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장중의 사람들은 온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신상현은 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을 좌우로 돌아보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응시했다.
"남아공의 만델라를 알고 있소?"
"만, 만델라요?"
"그렇지. 만델라. 그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지."
"……?"
아는 사람도 있지만 모르는 자도 있는 모양이었다.
아직 남아공의 흑인 대통령 만델라가 모두에게 잘 알려지기 전이었다.
신상현은 간단히 그들에게 만델라에 대해 설명했다.
"그 사람도 정적에 의해 거의 평생을 감옥에서 지냈지만 대통령이 된 후 보복을 하지 않았지."
"……?"
"지금 대통령도 동일한 선택을 할 거요."
신상현의 말에 거실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처음에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피와 살을 가진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다는 말인가?
예수가 살아서 돌아오기라도 했다는 말인가?
어떻게 대통령이 되어서 복수를 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들의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만델라의 이야기를 하자 그중에는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 중 일부는 일시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다.
사실 이들 모두는 김중현이 대통령이 되면 피의 보복이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도 필연에 가깝게 그런 일이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김중현은 참아도 필시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먼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자신들이 그런 상황이라면 결코 가만히 앉아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전전긍긍 좌불안석이었다.
내일이라도 경찰들이 자신을 잡으로 집으로 들이닥치지 않을까 겁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신상현이 저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니 자신도 모르게 서서히 안도감이 들었다.
지금까지 몇 번이나 신상현은 도저히 믿기 어려운 예언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신상현은 여러모로 심정이 복잡해 보이는 중인들을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크, 여전히 쉽게 믿기는 힘든가 보군. 하긴… 크크.'
신상현은 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자신도 미래를 알고 있기에 하는 말이지, 김현중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정도로 당시 상황을 이해하고 있었다.
"아직 믿기지 않는 모양이군."
"아, 아닙니다. 믿습니다. 나무아비 조화불."
모두가 화들짝 놀라며 따라 외쳤다.
"나무아비 조화불."
"크크!"
신상현은 그런 그들을 비릿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으로 설명이 필요해 보였던 것이다.
"김중현은 부도가 난 국가 경제를 살려야 할 책임이 있어요."
"그, 그렇지요."
"국민들이 김중현에게 걸고 있는 기대는 다른 게 아니에요."
"……!"
"국가부도의 위기 사태를 극복해달라는 건데, 정적에 대한 복수나 하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
"흐흐흐, 그러니 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는 겁니다."
지금 하는 신상현의 말은 이해가 갔다.
모두는 서로를 바라보며 이제야 깨달았다는 표정과 함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아무튼 전에도 말했듯이 지금이야 말로 기회라면 기회!"
신상현의 갑자기 달라진 단호한 말투에 모두의 얼굴색이 일변했다.
그렇다!
위기는 위기지만 미리 알고 대비해왔던 자신들에게는 엄청난 기회였다.
"앞으로 집값이 엄청 내려갈 겁니다."
신상현의 말에 모두의 눈빛이 희번득 했다.
"내가 말해준 대로 돈 아까워하지 말고 가격이 떨어지면 사도록 해요."
"……."
"얼마 있지 않아 다시 원상태로 회복할 테니까."
"……!"
신상현의 말이 사실이라면 엄청난 기회인 것이 맞다.
비싼 집들을 아주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닌가?
이미 신상현의 조언을 듣고 달러를 대량으로 매수해 두었던 터다.
환율이 급변하면서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었다.
그런데 신상현의 말대로 집값이 하락했다가 다시 원상회복한다면?
그 타이밍만 알고 있으면 거금을 벌어들이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돈이라면 환장을 하는 족속들이었다.
신상현의 말을 이해한 자들은 하나같이 눈이 돌아갔다.
다들 신상현이 칼 하나 쥐어주고, 부모를 찌르라고 해도 들을 기세였다.
사람들의 표정이 다시 희희낙락해졌다.
* * *
강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테이블 위에 놓여 있는 사진들을 바라보았다.
알파팀이 강혁의 지시로 보내온 조사 자료들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이 사람들이 모두 모였단 말이야?"
전 국회의장, 검사장, 경찰국장, 대한일보 사주를 필두로 하나같이 거물들의 사진이었다.
이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도 심상치 않았는데, 이들이 모인 장소가 더 큰 충격이었다.
바로 최강수 대통령의 무남독녀 최영혜의 저택이었던 것이다.
대체 이들의 왜 이곳에 모인 것일까?
강혁은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하지만 최영혜가 처음부터 이런 강력한 세력을 등에 업었다는 기억은 없었다.
만일 그랬다면 대통령 경선에서 두 차례나 떨어질 이유도 없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강혁은 지난 삼양백화점 사건 때, 그 자리에 최영혜가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었다.
원래 회귀 전의 역사 속에는 있지 않았던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 일은 일어났고, 최영혜는 국민적인 영웅이 되어 있었다.
역사가 바뀐 것이다.
강혁은 미국으로 떠나면서 알파팀에게 최영혜에 대해 주변을 조사해보라고 지시를 내렸었다.
그런데 오늘 보내온 자료를 보니 자신이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엄청난 일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무래도 좀 더 깊이 파보아야겠어."
사진을 바라보는 강혁의 표정이 무섭게 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