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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62화 (162/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62화

162화

#43장 일촉즉발

[대한 일보]

악몽은 언제 끝나는가? 작년 1월 한보 철강의 부도를 시작으로 중견기업들의 부도 행렬이 시작되었다.

[한국 일보]

거리에 아버지들이 넘친다. 하루아침에 잘 다니던 직장을 잃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중앙 데일리]

위기의 대한민국 탈출구는 있는가? 환율이 3일 연속 1일 변동폭 상한선까지 폭등했다. …미국의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 국가신용등급을 준 Junk 수준으로 하향조정했다.

[주간 한국 경제]

달러당 1,995원!

환율이 미친 듯이 날뛴다. 그 끝은 어디인가? 환율은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다.

[고려 일보]

주가 대폭락! 악몽의 블랙 먼데이. 주가 지수 500선이 붕괴되었다. …한국 경제의 회생의 희망은 보이지 않는다.

"휴우, 도대체 나아질 기미를 보이질 않는군."

김현중 대통령은 답답한 표정으로 집무실 테이블 위 서류들을 바라보았다.

지난 1년간의 외환위기 사태를 정리한 보고서와 스크랩한 경제 신문 기사들이다.

자세히 살펴본 후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지금 거리로 나가면 전국에서 발생한 실업자들이 백만 명이란 말이 있다.

그것이 과장된 말이 아닌 것이 지금도 어딘가에서는 기업이 도산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엄중한 상황이었다.

김현중은 이렇게 중차대한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것이다.

자신이 조금만 잘못해서 삐끗하면 한국 경제가 회생 불능의 상태로 빠지게 된다.

막중한 책임감이 김현중 대통령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지금 무엇보다도 국민들이 그에게 거는 기대가 컸다.

김현중의 마음속에는 새로운 대한민국을 향한 거대한 꿈이 있었다.

하지만 그 꿈을 이루기 전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 바로 경제 회생이었다.

이것이 먼저 담보되지 않고서는 무엇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하지만 넘쳐나는 실업자들은 아무리 머리를 짜내어도 쉽게 해결할 방도가 보이지 않았다.

실직자가 된 가장이 가족들과 자택에서 목숨을 끊었다는 신문기사가 마음을 어지럽혔다.

답답한 심정의 김현중 대통령은 다음 보고서를 넘겼다.

청와대 경제특보가 실업자 현황을 정리한 보고서들이었다.

눈앞에 당면한 문제를 직시하기 위해 김현중 대통령의 지시로 작성한 보고서였다.

김현중 대통령은 참담한 표정으로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그런데 어느 대목에 이르러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경제특보가 특이사항이라며 올린 내용이었다.

'프랜차이즈 신라 치킨?'

보고서의 내용은 매우 흥미로운 것이었다.

전국적으로 몇만 명이나 되는 실직자들이 치킨점을 새로 시작했다는 보고서였다.

대다수의 치킨점들이 신라 치킨이라는 프랜차이즈 업체였다.

이들이 그런 선택을 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첫째, 치킨점 가입 및 설립에 초기자본이 거의 들지 않았다.

둘째, 본사의 결정으로 2년간은 영업이익이 고스란히 자신에게 돌아간다고 한다.

내용을 읽어보니 실직자라면 한번 해볼 만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현중 대통령은 신라 치킨의 큰 결단에 감동을 받았다.

"호오, 이런 기업이 있다니. 정말 흐뭇한 일이군."

김현중은 집무실 테이블 위의 호출단추를 눌렀다.

"장 경제특보 보고 지금 집무실로 오라고 해주세요."

―예, 대통령님.

호출기 너머로 여성 행정관의 목소리가 들린 지 오래지 않아 집무실 문이 열렸다.

머리에 무스를 묻혀 말끔하게 정돈한 장일환 경제특보가 나타났다.

세련된 외모에 지적인 눈매를 갖췄으며, 방송에서는 경제, 시사평론가로 활약하기도 했다.

스탠포드 경제학 박사에 국제 통상 전문가로 오랫동안 활약했던 사람이다.

국제통상부를 나와 삼강물산의 사장으로 재임 중인 사람을 대통령이 경제특보로 뽑은 것이었다.

"대통령님 부르셨습니까?"

"장 특보가 작성한 보고서를 보고 있었어요."

"예, 혹시 궁금하신 것이 있으십니까?"

"맞아요. 다름이 아니라 여기 신라 치킨 말인데……."

대통령의 말에 장일환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왜 대통령이 자신을 부른지 알겠다는 표정이었다.

장일환은 자신이 조사한 내용을 상세하게 알려주었다.

"하아, 그게 사실입니까?"

"예,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신라 치킨의 사장 백정원씨가 이번에 대단한 일을 해냈습니다."

장일환의 말에 김현중 대통령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맞아요. 지금 같은 시기에 이런 착한 기업이 있다니 정말 고마운 일이에요."

"안 그래도 대통령님께 건의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말씀해 보세요."

"이런 기업이 있다는 사실을 홍보하고, 세제 혜택 등 편의를 제공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음, 유인책을 주자는 말씀이군요?"

"그렇습니다. 신라 치킨뿐 아니라 다른 기업들도 앞장설 수 있도록……."

"……으음."

장일환의 말에 김현중 대통령은 생각에 잠겼다.

"……정부차원의 보상이 이뤄지면 좋겠습니다."

"글쎄요. 장 특보. 아시겠지만 지금은 다들 돈을 움켜쥐고는 내놓지 않는 실정이라……."

"…하긴 그렇군요. 하지만 효과가 있을지 장담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극은 되겠죠."

"음, 그 건은 그렇게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장 특보는 대통령에게 인사를 한 후 돌아서려다가 뭔가 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대통령님."

"응?"

"제가 깜빡 잊고 말씀을 안 드린 것이 있네요."

"그게 뭐죠?"

"사실 신라 치킨은 계열사에 불과합니다."

"……?"

"이번 결정은 신라 치킨의 본사인 골든 그룹 차원의 결정이었다고 합니다."

"본사가 따로 있었다는 말이군요."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골든 그룹이라? 못 들어본 이름인데?"

"골든 타워라는 투자회사에서 시작한 기업으로 회장은 존 강이라는 한국인입니다."

장일환의 말에 김현중 대통령은 깜짝 놀랐다.

"존 강? 방금 존 강이라고 했습니까?"

대통령의 반문에 장일환은 오히려 더 당황했다.

대통령이 왜 저렇게 놀라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아, 예. 맞습니다. 국적은 한국인이고, 미국에서 투자회사를 설립해서 자수성가한 인물입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아시는 분이십니까?"

장일환의 반문에 김현중의 머릿속으로 전임 대통령이 한 당부가 생각났다.

"아, 아닙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요. 제가 아는 사람과 이름이 같아서 그만… 하하하."

대통령의 어색한 말투에 장일환은 의아했지만 그렇다고 캐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흐음, 이상하군. 분명히 아는 눈치인데?'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인사를 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 장일환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장 특보가 집무실 밖으로 나가자 김현중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외환 위기로 인한 국가 부도 사태를 예언했습니다.'

'미국의 정계와 현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는 인물입니다.'

'I.M.F총재를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한국인입니다.'

쉽게 믿기 힘든 이야기들이었다.

그때는 전임 대통령에 대한 예우로 끝까지 들어주기는 했지만 솔직히 믿지 않았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이상한 일들이 몇 가지 있었다.

난항을 거듭하던 I.M.F 협상단과의 협상이 갑자기 하루아침에 타결되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모두들 이해할 수 없다며 어리둥절했었지… 설마? 사실이었던 걸까?"

김현중 대통령은 집무실 서랍을 열었다.

서랍 안에는 작은 은색 테두리의 카드가 하나 놓여 있었다.

김현중은 손을 뻗어 카드를 꺼내었다.

"…으음."

사실 그동안 김현중은 몇 번이나 카드를 열어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고개를 도리질 치며 서랍을 도로 닫아버렸다.

존 강이란 초인적인 존재를 믿기도 어려웠다.

그리고 그에게 선뜻 연락하는 것에 대해 알 수 없는 불안감도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 불안감이 호기심으로 변해버렸다.

'……정말일까?'

김현중 대통령은 조심스럽게 카드를 열어 보았다.

카드에는 한 통의 전화번호와 박 대통령의 당부가 적혀 있었다.

[대통령님, 그를 믿으십시오.]

"…으음."

김현중 대통령은 가볍게 숨을 들이마신 후, 전화기에 손을 뻗었다.

떨리는 손으로 카드에 적힌 전화번호를 눌렀다.

'예언자라고 불리는 자. 과연 어떤 인물일까?'

뭔가 모를 감정이 대통령을 감싸 안았다.

잠시 후, 전화기 너머로 진중하면서도 단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 존 강입니다.

*     *     *

집무실 밖으로 나온 장일환은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김현중 대통령도 존 강을 안다는 말인가? 정말로 존 강이란 자가 그런 자일까?'

장일환은 지난번 모임에서 미륵불 신상현과 대면했던 일을 떠올렸다.

그때 신상현은 자신에게 골든 타워 그룹의 존 강에 대해 알아봐 달라고 했었다.

당시의 일을 떠올려보며 신상현은 존 강에 대해 여러 가지로 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를 물어보면 정확하게 대답을 해주지 않은 것도 이상했다.

하지만 적어도 미륵불의 관심을 받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인 것은 분명했다.

어쩌면 자신들의 모임에 끌어들이려고 하는 것인지도 몰랐다.

그런 의심은 이제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다.

모임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대단한 인물들이었다.

대한민국을 실질적으로 움직여 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장일환 역시 전 삼강물산의 사장이자 현 대통령의 경제특보로서 당당히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모임에서 경제와 국제 통상에 관련되어서는 자신이 가장 큰 권위자였다.

그런데 존 강이란 인물에 대해서 조사를 해보면 상당 부분 자신과 겹치는 것이 많았다.

장일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벌써 대통령까지 그 녀석에게 접근하려고 하고 있어.'

장일환은 머리도 좋지만 질투도 많은 인간이었다.

그는 경쟁자가 되려는 사람이 있으면 일찌감치 싹을 밟아 버리는 자였다.

때로는 뒤에서 공작을 해서라도 밟아버리는 성격이다.

그런 장일환에게 강혁의 등장은 좋지 않은 징조였다.

'흥, 존 강, 존 강이란 말이지?'

장일환은 신상현에게 전달할 존 강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대통령까지 존 강에 대한 관심을 보이자 배알이 꼬였다.

'흥, 날 대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 누구도…….'

장일환은 보고서에 살짝 MSG를 가할 생각을 품었다.

그것이 그에게 어떤 부메랑으로 돌아올지 알지 못한 채.

"장 특보님, 절 찾으셨다고요?"

"어서 오게. 최 국장."

장일환이 사무실 안으로 들어온 사내를 반겼다.

사내는 얼핏 보면 동네 아저씨들을 보는 것 같은 평범한 인상이었다.

그런데 눈매에 힘이 있고, 말투가 진중했다.

"무슨 일이신가요?"

"하하, 빨갱이들 잡느라 바쁘신 분을 불러서 미안하이."

장일환의 말에 최 국장이라는 자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방향을 턱으로 가르키며 나직히 말했다.

"글쎄요. 제일 큰 빨갱이가… 저 자리에 있어서 말입니다."

"흐흐, 말 조심하게 최 국장. 그래도 지금 청와대 주인인 분이니."

장일환의 말에 최 국장은 이빨을 빠드득 갈았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려는지."

"그 세상 말일세… 그 일은 잘 진행되고 있겠지?"

"그건 걱정 마시오."

"그래, 내 최 국장 아니면 누굴 믿겠나."

"이제 용무를 말씀하시지요."

"음, 이 사람에 대해서 알아봐주면 좋겠군."

장일환이 사진 한 장을 꺼내주었다.

"누구요?"

"존 강, 골든 그룹의 회장이야."

"이유는?"

"자네가 만나고 싶어하는 그분께서 지시하신 거네."

"흠, 그 말은?"

"이 일을 잘 해내면 그분께 자넬 소개해 주겠네."

장일환의 말에 최 국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사진을 품속에 넣은 후 최 국장이 자리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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