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63화
163화
장일환은 최 국장이 사무실을 나가자 표정이 바뀌며 입꼬리를 올렸다.
최상도 국장은 자신이 국제통산부에서 근무하던 시절부터 인연이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최 국장은 국가안전기획부의 해외파트 요원이었다.
장일환이 팀장이었던 국제통상 협상팀에게 상대국의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때의 인연으로 지금은 국정원의 간부가 된 최 국장과 안면을 가지게 된 것이다.
최 국장은 현 정부에 반감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쉽게 포섭할 수 있었다.
앞으로 미륵불 신상현이 열어갈 새로운 시대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인물을 자신이 직접 발탁했다는 것만으로도 신상현에게 큰 점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장일환은 존 강에 대한 조사를 핑계 삼아 최상도 국장을 신상현과 연결시켜 줄 생각이었다.
국정원 간부급 인사가 자신들과 함께한다면 더 막강한 힘을 가지게 될 것이다.
장일환은 마음속으로 김현중에게 땡큐를 외쳤다.
김현중은 대통령이 되자 국정원 개혁을 내걸었다.
만일 김현중이 국정원 조직을 흔들지 않았다면 최상도를 포섭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장일환은 최 국장을 시작으로 국정원에서 현 정권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을 더 포섭할 생각이었다.
모든 것은 미륵불 신상현이 건설할 그들만의 제국을 위한 것이었다.
그때가 되면 자신은 그 제국의 일인지하 만인지상이 될 것이 분명했다.
장일환이 마음속으로 품은 야망이었다.
그런데 그런 야망을 품고 있는 것은 장일환 하나가 아니었다.
그들이 모임이라고 부르는 곳에 속한 멤버들 중 많은 이들이 같은 생각이었다.
그래서 어느 사이엔가 그들 가운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질시와 반목이 생겨났다.
'흐흐흐, 두고 봐라. 최후에 웃는 자는 내가 될 것이니.'
장일환은 두 눈을 번뜩이며 자신의 경쟁자들을 떠올렸다.
* * *
"으음, 이것이 사실입니까?"
"예, 회장님. 저도 믿기지 않지만 사실입니다."
강혁은 알파팀 팀장 박정철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지난번 박 팀장이 보내준 사진을 보고 더 상세한 내용들을 알아보도록 지시했던 것이다.
회귀 전의 역사와는 달리 최영혜의 집에는 대한민국 각계각층의 세력이 모이고 있었다.
이들의 모임은 갈수록 비밀스러워지고 있었다.
처음에는 몇 번 최영혜의 집 거실에서 모였다.
하지만 갈수록 모임이 비밀스러워지면서 모이는 장소도, 일시도 종잡기 어려워졌다.
만일 미리 조사를 지시하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정보를 모으는 것조차 어려웠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이전에 회장님이 지시하셨던 세력들과 겹치는 점이 많습니다."
"그래요?"
강혁은 알파팀이 초기에 결성되었을 때 박 팀장에게 내린 지시가 있었다.
바로 대한민국의 집권 세력과 기득권 세력들 중 친일파의 후예들을 조사하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기득권 세력으로 뿌리내린 친일파들을 조사해왔다.
그들은 이미 한국 사회에 깊숙이 뿌리 내려 엄청난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 상당수가 최영혜에게로 모여들고 있었다.
박 팀장의 조사에 의하면 최영혜는 이미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대체 최영혜의 목적이 뭡니까? 왜 이런 자들을 포섭한 거죠?"
"저희가 알아낸 바에 의하면 최영혜는 곧 정계에 입문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
박팀장의 말에 강혁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그가 말하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회귀 전 최영혜는 이번 정권에서 정계에 입문했다.
강혁의 기억에 당시의 일들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자칫 과거의 기억 속으로 빨려 들어갈까 싶어 강혁은 자신을 다잡았다.
'정신 차려 강혁.'
"앞으로 얼마 있지 않아 정식으로 기자회견을 한다고 합니다."
"흐음, 그렇군요."
강혁은 박 팀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사 중에 추가로 알아낸 사실이 있습니다."
"……?"
"최영혜가 4년 전에 아이를 입양했더군요."
"……!"
박정철의 말에 강혁은 깜짝 놀랐다.
"아이를… 입양했다고요?"
"예, 최영혜가 운영하는 보육원에서 아이 하나를 입양했더군요."
강혁의 기억 속에 없던 이야기다.
회귀 전 최영혜는 한 번도 결혼을 하지 않은 처녀였다.
그리고 아이를 입양한 적도 없었다.
"이번에 그 아이도 공개할 모양입니다. 좋은 화젯거리겠지요. 미담으로 언론에 소개할……."
"조금 전에 4년 전이라고 하셨죠?"
"예, 그렇습니다만……."
박정철은 강혁의 반응에 당황하고 있었다.
말은 그렇지 않았지만 얼굴 표정이나 몸짓에서 상당히 동요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입양했다는 아이에 대해서 알아내신 것이 있습니까?"
"사실은… 아이를 입양했다고 하기에 조사를 시도했습니다만……."
"……?"
"알아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알파팀이 가지고 있는 장비와 박 팀장과 팀원들의 실력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발언이었다.
"보육원에서 있던 자료들도 이미 모두 최영혜 측에서 가지고 간 후였습니다."
"으음. 그래서 알아내지 못했나요?"
강혁의 반문에 박 팀장이 씩 웃었다.
"그럴 리가요? 우리 실력을 누구보다도 더 잘 아시지 않습니까?"
박정철이 강혁의 앞에 사진들을 내놓았다.
"……."
사진 속에는 중2 정도로 보이는 미소년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이…이 녀석은?"
사진을 본 강혁이 두 눈을 부릅떴다.
"왜 그러십니까?"
강혁이 사진을 보고 몸을 부들부들 떨자 박 팀장이 당황했다.
'그 놈이다!'
청년 시절 신상현의 얼굴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이전 신상현의 나이에 맞추어 작성했던 몽타주와도 닮아 있었다.
게다가 신상현이 사라진 바로 그 시기와 입양되었다는 시기가 일치했다.
'어디로 사라졌나 했더니… 최영혜에게 갔다니?'
강혁은 신상현이 최영혜의 양자라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제야 퍼즐이 맞아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원래 역사와는 미묘하게 달라진 삼양백 화점 사건.
이 일로 인해 최영혜는 지금 국민적인 영웅이 되어 있었다.
이대로라면 정계에 입문하자마자 일약 야당의 대선주자가 될 가능성도 있었다.
게다가 지금 최영혜의 집을 방문하는 자들의 면면을 보라.
이들이 최영혜에게 접근한 것도 신상현이 뭔가를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생각해보면 소름이 돋았다.
자신이 신상현을 찾아 그의 삼촌 집을 찾았을 때를 떠올렸다.
'놈은 나와 같은 회귀자였어!'
그동안 그토록 의심했던 일들이 사실로 드러났다.
신상현은 강혁과 같은 회귀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강혁이 삼촌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곳을 떠나고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그랬을까?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신상현은 삼강으로 들어가게 될 터였다.
강혁은 회귀 전, 신상현의 과거에 대해 추적했던 일들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면… 그 녀석 갇혀 지낸 것이나 마찬가지였지.'
삼강에서 정식으로 신상현을 세상에 알리기 전까지 그는 세상에 없는 사람처럼 지냈다.
말 그대로 집 안에 갇혀 세상 밖으로 나가지 못했다.
강혁 자신이라고 해도 다시 그런 일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최영혜를 택했나?'
강혁은 신상현의 노림수를 생각해보았다.
만일 사진 속의 어린 소년이 그 신상현이라면 무슨 일을 계획하고 있을 것인가?
강혁은 사진을 내려놓고 박 팀장에게 말했다.
"지금부터 알파팀은 이 소년에게 집중해주시기 바랍니다."
"……?"
"팀의 모든 자산을 가동해서 소년과 그 주변을 감시해주세요."
"알겠습니다. 회장님."
"이유는 이 소년과 주변을 감시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겁니다."
강혁의 말에 박 팀장은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런 지시를 내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게다가 팀의 모든 자산을 동원하라고까지 말했다.
그렇다면 한반도 상공 위에 돌아다니는 미국의 첩보위성까지 사용해도 된다는 뜻이다.
'흠, 궁금해지는군. 이 어린 친구가 대체 뭐길래. 회장님이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는지.'
박 팀장이 회장실을 나가자 강혁은 의자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거대하면서도 투명한 블록 유리 아래로 성냥갑 같은 맨허튼 거리가 내려다 보였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신상현.'
유리창벽 너머 뉴욕의 거리를 내려다보는 강혁의 눈빛이 강렬하게 이글거렸다.
그와 마주할 시간이 머지않은 것 같았다.
* * *
부르르릉― 끼이익!
멋들어진 오토바이가 한적한 시골의 흙길 위에 섰다.
오토바이에서 한 사내가 내려왔다.
머리에 쓴 헬멧을 벗자 금발로 머리를 물들인 20대 청년의 모습이 보였다.
햇살에 비친 옆모습이 상당한 미청년이었다.
청년의 귀에는 통신용 이어폰이 달려 있었다.
청년이 통신용 이어폰에 손을 갖다 댔다.
"도착했어요. 대장―"
―보고 있다. 뭔가 알아내면 다시 연락해.
박정철은 위성으로 최요한을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한반도 상공 위를 돌아다니는 미군의 첩보위성을 사용하고 있었다.
"롸져."
간단히 대답한 최요한은 폐허가 된 농가를 바라보았다.
요한의 왼쪽에는 에덴농원이라는 오래된 팻말이 보였다.
굳게 닫힌 문 앞에는 벨이 보였다.
띵―똥, 띵―똥.
"아무도 없습니까?"
벨을 눌러도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최요한은 소리를 높여 사람을 불렀지만 아무도 응답을 하지 않았다.
"흠, 아무도 없나?"
한 걸음 뒤로 물러나 담벼락 너머로 보이는 농원을 바라보았다.
농원에 오기 전 전화를 걸었을 때도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장, 아무래도 농원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은데요?"
요한의 말에 작전실에 앉아 있는 박정철은 잠시 생각하더니 지시를 내렸다.
―진입해.
"롸져!"
최요한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디에도 CCTV 하나 보이지 않았다.
최요한은 먼저 오토바이를 사람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숨겼다.
그리고 다시 담벼락으로 돌아왔다.
"좋아, 흑장미 누님에게 배운 솜씨를 한번 발휘해 볼까?"
흑장미는 특전사 출신이면서 파쿠르의 달인이기도 했다.
현장에서 주로 활동하는 최요한은 흑장미에게 시달리며 파쿠르를 몸에 익혔다.
몇 걸음 뒤로 물러섰던 최요한은 단숨에 달음박질해서 벽을 한 번 찼다.
몸이 솟구치며 손끝으로 담벼락을 잡았다.
그리고는 고양이처럼 담벼락을 훌쩍 넘어갔다.
"진입 완료."
담을 넘은 최요한이 통신을 보내오자 박정철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훈련시킨 보람이 있군.
"휴, 두 번은 사양합니다. 대장."
박정철의 말에 요한은 몸서리를 쳤다.
그만큼 흑장미의 훈련은 혹독했다.
하지만 그만큼 단련이 된 것도 사실이다.
현장 요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자신에게는 필요한 특기이기도 했다.
―흑장미 말로는 소질이 있다는군. 제대로 배워둬.
"……크!"
보아하니 다음번도 있을 모양이다.
이제는 제법 능숙해졌다고 생각하지만 흑장미의 눈에는 여전히 부족한 것 투성이었다.
최요한은 속으로 투덜대며 조심스럽게 농원 안으로 몸을 옮겼다.
에덴 농원은 과일 농원이다.
지금은 아직 봄이 오기 전이라 농원 입장에서는 제일 일이 없는 계절이었다.
"전방에 건물이 세 채 보입니다."
―중앙의 제일 큰 건물로 진입해.
"롸져!"
최요한은 주변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건물 가까이로 이동했다.
집 안의 불은 꺼져 있었다.
문도 굳게 잠겨 있었다.
요한은 품속에서 만능 열쇠를 꺼내 문고리에 집어넣었다.
잠시 후, 문이 달칵하고 열렸다.
그런데 문이 열리자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이게 뭔 냄새지?'
최요한은 역겨운 냄새에 코를 잡고는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