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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65화 (165/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65화

165화

"크윽!"

신상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무실에서 모니터를 바라보던 와이셔츠 차림의 사내들도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완전한 참패였다.

돈을 쏟아부었지만 달러의 위력에는 이길 수 없었다.

게다가 정부가 외국 자본 유치에 안달하면서 외국인 투자제한을 많이 풀어 준 상태였다.

한순간에 두 기업의 주식이 외국계 자본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신상현으로서는 닭 쫓던 개가 된 격이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삼강 주식은 이제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외국에서 움직인 거대한 세력 하나와 여러 개의 작은 세력이 삼강 주식을 가져가버린 것이다.

"빌어먹을!"

신상현은 두 주먹을 꽉 쥐었다.

회귀 후 처음으로 맛보는 감정이었다.

지금까지 신상현은 자신이 목표로 했던 것은 뭐든지 얻을 수 있었다.

계획했던 것이 지금처럼 어그러진 적은 회귀 전에도 거의 없는 일이었다.

이번에도 자신하고 있었다.

자신에게는 엄청난 자금과 황금 같은 기회가 주어진 상태였다.

회귀 전 대한민국의 재계를 양분했던 삼강과 TG.

두 거대 기업의 주식을 싼값에 삼킬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 천금 같은 기회가 눈앞에 있었는데… 외국 자본의 개입으로 그만 놓치고 말았다.

물론 상당한 양의 주식을 매입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원래 처음에 목표로 했던 수치는 얻지 못했다.

삼강 주식은 5%, TG는 4%에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현 오너 일가에게 상당한 위협을 줄 수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여기에 국내에 삼강과 TG 주식을 가지고 있는 대주주들을 회유하는 방법도 있었다.

"도련님, 아쉽지만 이 정도만으로도 큰 힘을 가질 수 있습니다."

백발의 노집사가 말했다.

잠깐 분노하던 신상현은 가볍게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할아범 말이 맞아."

신상현은 다시 의자에 앉았다.

삼강의 오너 일가는 단지 10%의 주식만으로 거대 기업 집단을 좌지우지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주식은 이미 6%나 되었다.

이 정도면 삼강의 오너 일가에게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앞으로 최영혜가 기자회견을 통해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게 될 것이다.

최영혜가 입양한 양자.

세상은 자신을 다양한 시선으로 보게 되리라.

연민과 동정에서부터 부러움과 경외심으로

신상현은 자신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선을 바꾸어갈 생각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아버지. 괴물 신철호.

그에게 자신의 정체를 드러낼 생각이었다.

그때가 되면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상상만 해도 통쾌했다.

자신이 버린 아들이 용이 되어 나타났을 때 보여줄 표정이 말이다.

물론 그 전에 어느 정도 작업은 미리 해놓을 생각이었다.

바로 자신의 형. 지금은 미국에서 유학하고 있는 신철호의 후계자 신석준.

회귀 전에는 사업차 미국에 갔다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했었다.

신상현은 이번에는 어떤 방식으로 자신의 하나뿐인 형에게 죽음을 맛보여줄지 생각했다.

'형, 이전 생에는 그래도 사장자리까지는 갔었는데 말이야. 미안해.'

신상현은 씨익 웃었다.

'이번 생에서는 학생 신분으로 죽게 될 거야. 이번에도 어떻게 죽는지 모르게 말이야. 크크큭.'

신상현의 얼굴에 희열이 가득 차올랐다.

그의 눈빛에 기이한 빛이 떠올랐다.

신상현의 얼굴은 어느새 사냥감을 떠올리는 포식자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삼강 그룹 회의실.

"회장님!"

회의실 문이 열리며 40대 초반의 남자가 뛰어 들어왔다.

"그래, 어떻게 됐어?"

신철호 회장이 남자를 향해 고개를 돌리고는 물었다.

신철호 회장은 삼강전자 임원들과 함께 반도체 공장 시설투자를 의논하고 있었다.

그런 중요한 사항을 검토 중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뛰어든 사내에게 질책을 하지 않았다.

다른 임원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삼강전자가 회사의 운명을 걸어 놓은 반도체 사업에 대해 의논하는 중인데도 말이다.

오히려 회의 중이던 임원들도 사내의 등장에 크게 관심을 드러냈다.

"박 부장, 어떻게 됐어?"

"백천호 사장님. 회장님께 먼저."

삼강전자 사장 백천호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닫고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서 말씀드리게."

"아니, 됐어. 모두들 들을 수 있게 말해."

"그게, 방어에 성공했습니다."

박 부장의 말에 모두들 화색을 띠었다.

"다행입니다. 회장님."

임원들이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신철호 회장 역시 박 부장의 말을 반겼다.

"그래? 자세히 말해봐."

"예. 회장님."

박 부장은 자신을 향한 임원들의 시선을 느끼며 브리핑을 했다.

"4%선에서 막았습니다."

박 부장의 말에 임원들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다양한 표정들이 오갔다.

"4%라고? 위험했던 것 아냐?"

"맞습니다. 만일 외국 자본이 대거 개입하지 않았다면 10% 이상 뺏겼을 겁니다."

삼강 측에서도 방어에 나섰지만 외국 자본의 개입이 큰 도움이 된 상황이었다.

"외국 자본은 어디서 사갔어?"

"다양한 경로로 들어와서 확인하려면 시간이 걸릴 겁니다."

"대강 큰 건만 말해봐."

신철호 회장이 말했다.

"솔라스 진영의 헤지펀드들과 홍콩 기업 집단, 말레이시아 등 화교자본 등입니다."

"음, 그렇군."

신철호와 삼강 임원들은 크게 안도하는 표정이었다.

이번에 거의 50%를 넘어서는 주식이 매도되었다.

이를 인수한 대부분이 외국 자본이었다.

신철호 일가가 경영권을 행사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였다.

"좋아, 그 건은 이제 됐어. 들어가 봐. 박 부장. 수고했어."

"예, 회장님."

박 부장은 크게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하고는 회의실을 나섰다.

신철호 회장이 임원들을 향해 말했다.

"위기가 곧 기회라는 말 알지?"

"예, 회장님."

삼강 전자 임원들이 일제히 외쳤다.

"이번 일에 사활을 걸어. 모든 걸 바꿔야 해. 마누라하고 애들 빼고 다 바꿔. 알겠어들?"

임원들을 바라보는 신철호의 눈빛이 번쩍거렸다.

거대 기업 삼강을 일으킨 괴물 신철호의 기백에 임원들의 머리카락이 바싹 섰다.

"명심하겠습니다."

"좋아, 그런 생각으로 회의를 해보자고."

잠시 후 회의실은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다.

*     *     *

―존 회장, 어떻게 도움이 좀 되었나?

"그럼요. 솔라스 회장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솔라스의 음성에 강혁은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승리자의 미소였다.

이번 삼강과 TG 주식 매입 건에는 솔라스가 이끄는 헤지펀드와 화교자본도 끼어들었다.

강혁의 골든 타워 역시 삼강 쪽에서 봤을 때는 이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만일 매입한 주식의 대부분이 다시 골든 타워 쪽으로 흘러들어간 것을 알면 깜짝 놀랄 것이다.

강혁의 골든 타워는 30%에 해당하는 주식을 매입했다.

나머지 10%씩은 솔라스 쪽과 홍콩 기업 집단, 말레이시아 등 화교자본에게 배분되었다.

이 둘은 모두 강혁의 우호지분들이다.

솔라스의 유대자본들과 홍콩과 말레이시아 등지의 기업인들이 함께 주식을 공략했다.

이것은 모두 강혁의 지시에 의해 이루어 진 일이었다.

솔라스뿐 아니라 홍콩과 말레이시아의 기업인들은 강혁에 대해 신뢰가 두터웠다.

강혁이 연락하자 두 집단 모두 적극 협력했던 것이다.

강혁은 현재 지구상에서 유대금융자본과 화교자본을 모두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주식 매입이 끝난 후 두 집단에게 귀속된 주식도 모두 강혁에게 위임되었다.

모두들 주식에 대한 권리를 강혁에게 위임하기로 동의한 것이다.

이번 일로 강혁은 단숨에 두 기업의 경영권을 확보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하게 셈이다.

이런 사실을 만일 현재 삼강이나 TG의 오너들이 알게 된다면 뒤로 나자빠질 일이었다.

물론 강혁으로서는 굳이 그럴 이유가 없었다.

앞으로 두 기업의 오너들이 회사를 얼마나 잘 키워나갈지 알기 때문이다.

다만 앞으로 한국 사회에 좋은 방향으로 그룹의 힘을 사용하도록 압력은 행사할 생각이었다.

경영권을 협상 카드로 걸고 말이다.

사실상 강혁은 두 기업의 보이지 않는 주인이 된 셈이었다.

강혁은 새삼 신기한 느낌이었다.

처음 신상현과 대결하려고 했을 때는 솔직히 막막했다.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삼강의 영향력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강혁은 삼강만이 아니라 TG그룹까지 흔들 수 있는 힘이 생겼다.

'목을 씻고 기다려라. 신상현.'

강혁의 두 눈이 번쩍였다.

"예? 한국의 중소기업들을 인수하라고요?"

강혁의 말에 올리브 윌슨은 약간 의아해했다.

"그렇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한국에 투자를 해볼 생각입니다."

강혁은 윌슨 사장에게 자신의 복안을 이야기했다.

"그러니까 회장님 말씀은 한국의 소재부품 기업들을 인수해서……."

"이전에 인수해두었던 일본 기업들의 기술을 이식할 생각입니다."

"……그, 그렇군요."

윌슨은 지난번 일본의 여러 소재부품 기업들을 인수하거나 특허를 구입했던 일을 떠올렸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사장님. 서둘러 주세요."

"아, 알겠습니다. 회장님. 팀을 꾸려보겠습니다."

올리브 윌슨은 강혁이 지시한 회사의 인수에 대해 TF팀을 꾸리기 위해 자리를 떴다.

그런 그의 뒷모습을 보며 강혁은 입꼬리를 올렸다.

오래전부터 하나씩 준비해 왔던 것이 하나씩 결실을 맺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혁은 회귀 전 I.M.F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실업자들이 발생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수없이 많은 가정들이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많은 가정들이 집단으로 자살을 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언론에도 보도되지 않았던 많은 변사 사건들이 있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미래를 비관한 가장이 가족들과 함께 자살한 사건들이었다.

신문에는 대기업의 도산들만 보도되었지만 이들과 연계한 중소기업들도 우수수 무너졌다.

이들을 구제하려면 겨우 치킨집 프랜차이즈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다.

강혁은 이때를 대비해서 미리 일본 내에 기술력을 갖춘 기업들을 사냥해둔 상태였다.

이제 이들을 사용할 시간이었다.

목숨이 간당간당한 국내 중소기업들을 인수하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보다 쉬웠다.

이들에게 일본의 선진기술들을 도입시키고, 경쟁력을 키운다면 얼마든지 회생시킬 수 있었다.

그리고 삼강과 TG그룹의 전자, 반도체 산업과 연계시킨다면 금방 일어설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한국과 일본의 경제 관계를 설명하던 가마우치 경제는 종결될 것이다.

이 모든 것이 강혁의 큰 그림이었다.

*     *     *

"조 사장님, 그렇게 사정하신다고 되는 게 아니라니까요?"

"남 계장님, 제발 이번 한 번만 눈감아 주십시오. 다음 달에는 반드시 입금하겠습니다."

"벌써, 석 달째예요. 어음 부도난 걸 이만큼 참아줬으면 됐지. 뭘 바래요?"

공장 앞에서 말쑥한 양복 차림의 남자에게 작업복 차림의 중년 사내가 사정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양복 차림의 젊은 남자는 냉정했다.

"포기하세요. 사장님. 저희 은행이 기다려 줄 수 있는 한도는 여기까지입니다."

"그렇다고 기계를 가져가시면 저희는 어떻게 하라고요?"

초췌한 표정의 사장을 향해 남 계장은 냉정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미 여러 은행이 문을 닫았다.

돈이 넘친다는 은행도 부도가 나는 시대였다.

살아남으려면 냉정해야 했다.

"공장 문을 닫으셔야지요."

"예? 뭐라고요?"

조 사장의 황당해하는 얼굴을 돌아보지도 않고 남 계장이 사람들에게 외쳤다.

"뭐해? 어서 움직이지 않고."

남 계장의 지시에 용역들이 공장 안으로 진입하려 했다.

"안 돼!"

조 사장은 헐레벌떡 뛰어 공장 문 앞을 가로막았다.

어떻게 시작한 공장인가? 이 공장에는 조 사장의 인생이 모두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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