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66화
166화
#44장 진격의 강혁
"이놈들아, 안 된다. 안 돼! 멈춰!"
공장 문 앞을 조 사장이 막아섰다.
하지만 무지막지한 용역들을 혼자서 막아낸다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실 공장에는 이미 직원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몇 달째 임금을 주지 못하고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조 사장은 기계만 있다면 다시 공장문을 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어이쿠!"
거칠게 밀어붙이는 용역들과의 몸싸움에 조 사장은 문 앞에서 밀쳐져 바닥에 나뒹굴었다.
남 계장은 차마 그 모습을 보지 못하고 몸을 돌려 허공을 바라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제기럴― 그러게 왜 막아서서는… 쯧.'
남 계장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이 공장은 조 사장의 청춘과 피와 땀이 배어 있는 곳이다.
그래서 자기도 석 달이나 기다려 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자신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었다.
이번에 빌려준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자신도 은행에서 해고될 수 있었다.
실적이 부진한 직원은 정리해고의 대상이었다.
이 일에는 남 계장의 목도 걸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서 나타난 건지 갑자기 파마머리에 몸빼바지를 입은 아줌마가 튀어나왔다.
"여보! 괜찮아? 이것들아― 무슨 짓이야!"
'아이쿠, 이런!'
남 계장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조 사장의 아내가 나뒹굴어 있는 조 사장을 보더니 갑자기 용역들 사이로 뛰어든 것이다.
용역들은 공장 문을 열고 기계를 뜯기 시작한 참이었다.
"안 된다. 이것들아! 안 돼!"
"아이씨! 이 아줌마 뭐야?"
한 용역 사내에게 조 사장의 아내가 매달렸고 사내는 눈을 부릅뜨며 화를 냈다.
그런데 조 사장의 아내는 전혀 상관하지 않았다.
"이게 뭔지 알아? 이건 우리 건영이 아빠 목숨 같은 거야. 이것들아!"
바락바락 악을 쓰는 조 사장 아내의 모습에 용역들도 혀를 찼다.
하지만 사실 용역들은 이런 모습에는 이골이 난 사람들이다.
"아줌마, 다치기 싫으면 저기 한구석에 찌그러져 있어! 우리가 만만해 보여?"
용역들 중 험상궂은 면상에 가슴둘레가 드럼통 같은 사내가 조 사장 와이프를 향해 말했다.
가만있어도 무서운 얼굴인데 인상을 굳히니 더 무서워 보인다.
원래 용역들 중에서도 이런 일이 있을 때 항상 얼굴마담으로 내세우는 자다.
"이…이놈아! 넌 애비애미도 없냐? 어디서 반말 짓거리야―"
조 사장 아내는 조금 찔끔했지만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는지 다시 핏대를 세웠다.
"허허, 이 아줌마가 그래도? 꼭 피를 봐야 쓰―겠어― 잉?"
용역들은 조 사장 아내가 그래도 물러서지 않자 주먹이라도 쓰겠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하, 하지마! 이것들아!"
조 사장이 달려와 아내의 앞을 가로막았다.
"건영이 아빠, 괜찮아?"
"당신, 여긴 왜 온 거야? 집에 있으라고 했잖아."
"무슨 소리야. 이런 판국에 나 혼자 어떻게 집에 있어."
"내가 어떻게든 해볼 테니깐 당신은 빨리 집으로 돌아가―"
조 사장의 말에 여자가 도리질을 쳤다.
"당신 혼자 저 인간들을 어떻게 당하려고?"
"당신 있어봐야. 도움이 안 돼. 어여 들어가. 내가 한 번 더 사정해 볼 테니깐."
남 계장은 두 사람의 말을 듣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정한다고 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런 일을 다 받아들였다가는 은행도 자신도 모두 망할 판이다.
아니 망하고 있었다.
지금 주변에서 돌아가고 있는 상황이 그랬다.
하루가 지나면 멀쩡했던 기업이 망하고, 은행이 부도가 났다.
하루아침에 수백에서 수천 명의 직원들이 거리에 나앉았다.
남 계장은 눈을 질끈 감았다.
공장 기계라도 팔아야 대출금을 상환할 수 있다.
"뭣들 해! 당장 작업 시작해!"
남 계장이 호통을 쳤다.
그러자 용역들을 지휘하는 작업반장이 동료들을 독려했다.
"들었지! 빨리 움직여!"
"예!"
일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조 사장과 그의 아내는 그 모습을 보며 망연자실했다.
"아이고― 아이고―"
조 사장은 아내가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하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여보― 이제 우린 어떡해? 응?"
"휴― 산목숨 거미줄이야 치겠어? 다른 일이라도 알아봐야지."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알고 있었다.
지금 같은 시기에 취직자리를 알아본다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 같다는 것을…….
"건영이 아빠, 내가 식당 아줌마 자리라도 한번 알아볼게……."
"여보."
조 사장은 눈물이 핑 돌았다.
젊은 시절 자신에게 시집와서 지금까지 호강 한 번 시켜준 적이 없이 고생만 시켰다.
한 해 전까지만 해도 공장이 돌아가고, 직원들이 있을 때는 그래도 살만했다.
이렇게 몇 해만 고생하면 자신들도 부자가 될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런 I.M.F한파가 몰아치더니 그만 공장이 문을 닫고 말았다.
이제 다시 재기한다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나도 어디 공사판이라도 알아 볼 테니깐. 우리 건영이 학교는 보내야지."
두 사람이 앞으로 살길을 의논하고 있을 때, 용역들은 하나둘 기계들을 공장에서 떼어 내고 있었다.
그때 선글라스를 끼고 양복을 입은 사내 하나가 들어섰다.
서류 가방을 든 남자들 몇이 뒤를 따랐다.
"사장님 계십니까? 사장님?"
사내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작업복 차림의 조 사장을 보고 다가왔다.
"혹시 이곳 사장님이신가요?"
"예, 그렇습니다만……."
"그러시군요. 그런데 죄송하지만 지금 기계를 어디로 옮기는 중인가요?"
"하아, 사실은 제가 은행에서 빌린 돈을 못 갚아서……."
조 사장이 말을 흐렸다.
선글라스 사내는 조 사장이 하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듣고는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소리쳤다.
"잠깐! 멈추시오!"
용역들은 선글라스 사내의 말에 잠깐 웅성거리긴 했지만 여전히 작업을 진행했다.
"이런?"
선글라스 사내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남 계장을 발견했다.
마침 남 계장도 선글라스 사내를 쳐다보는 중이었다.
"이봐요! 당신 혹시 저 사람들 책임자요?"
"그런데 당신은 누구요?"
"맞군."
선글라스 사내가 조 사장을 돌아보았다.
"잠시 저 사람하고 저하고 같이 얘기 좀 하시죠."
선글라스 사내의 말에 조 사장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아내와 눈을 맞추었다.
"예? 빚을 떠안고 공장을 인수하시겠다고요?"
"예, 그리고 대대적인 투자도 할 겁니다. 공장 운영은 사장님이 계속 해주시면 좋겠고요."
선글라스 사내의 말에 조 사장과 조 사장의 와이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보낸 직원들도 모두 다시 불러들이세요. 계약만 하면 곧 공장이 다시 가동될 겁니다."
"정, 정말입니까?"
조 사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글라스를 낀 사내가 웃으며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앞으로 많이 바빠질 겁니다."
조 사장과 아내는 서로 얼굴을 바라보며 기뻐했다.
사내가 내건 조건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그야말로 하늘이 도운 격이었다.
"하, 하겠습니다. 그 조건이라면 지금 제 사정에는 감지덕지지요."
남 계장 역시 선글라스 사내의 말을 듣더니 크게 반색했다.
기계를 뜯어가는 것보다 공장이 다시 회생하고 자신들과 계속 거래를 하는 것이 백번 나았다.
"그렇다면 저희 은행도 더 기다려 드릴 수 있습니다. 조 사장님."
"그, 그래요?"
"하하,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저희 쪽에서 바로 빚은 상환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더 좋고요."
남 계장이 웃으며 말했다.
"조 사장님, 잘됐습니다."
조금 전까지 냉정한 얼굴이던 남 계장은 조 사장의 양손을 잡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남 계장의 태도 변화에 화를 낼 법도 했지만 조 사장 역시 잘 알고 있었다.
남 계장이 조금 전 냉정하게 행동했지만 사실 그동안 많이 기다려 줬다는 사실을.
자신이 남 계장의 입장이었어도 별로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도.
조 사장은 연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빚을 갚을 수 있어서 다행이네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남 계장님."
남 계장이 용역들을 향해 소리쳤다.
"이봐요. 작업 멈춰요. 그리고 기계들 다시 원위치 시킵니다."
한참 기계를 빼내던 용역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지만 자신들은 돈만 받으면 된다.
금세 떼어 내던 기계를 다시 공장으로 가져다 놓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조 사장과 조 사장의 안내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하하, 사장님. 왜 울어요? 이제 좋은 일만 있을 것 같은데."
남 계장이 웃으며 말했다.
"너무 좋아서 그럽니다. 좋아서요."
조 사장과 남 계장이 대화하는 것을 선글라스 사내는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역시 우리 회장님. 참 난 분이라니깐.'
선글라스 사내는 이규철이었다.
지금 전국에서 이규철뿐만이 아니라 다른 골든 브릿지 사원들도 움직이고 있었다.
앞으로 한국의 소재, 부품, 장비 개발 업체들은 강혁의 개입으로 환골탈태하게 될 것이다.
이미 이를 대비해서 골든 브릿지는 많은 회사들과 특허를 사둔 상태였다.
앞으로 여러 중소기업과 공장들의 인수가 끝나면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강혁이 주식을 사 모은 대기업들과 연계되면 엄청난 시너지효과가 발생할 것이다.
당장 삼강만 해도 반도체 공장에 필요한 소재 부품 회사들은 모두 일본 기업이었다.
그런데 그 일본 기업들은 모두 강혁의 회사들이다.
강혁은 이미 일부 일본 회사의 공장을 한국에 세우도록 지시를 내린 상태였다.
지금 구입하고 있는 회사들 중 일부는 그 회사들의 현지 공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일부는 합병을 할 생각이고, 일부는 기술을 이전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다 보면 어느새 일본 기업들은 사라지게 될 예정이었다.
나중에는 모두 한국 기업으로 탈바꿈시킬 계획이 진행 중이었다.
* * *
"회장님, 보시죠. 이것이 첫 시제품입니다."
앨런 머스크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강혁은 앨런 머스크가 캘리포니아에 세운 전기자동차 회사에 나와 있었다.
이름은 테슬라였다.
여기까지는 회귀 전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실제 역사보다 창립 시기가 앞당겨졌다는 것이다.
앨런은 강혁의 지시로 스페이스 X라는 민간 우주항공회사를 설립한 상태였다.
그런 상태에서 전기자동차까지 손을 댄 것이다.
앨런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강혁의 도움이 컸다.
필요한 자금과 인재들은 공급해 주었던 것이다.
자금도 중요했지만 인재들 역시 중요했다.
돈과 열정이 있어도 인재가 없으며 일이 진행되기는 어렵다.
그런데 강혁은 귀신처럼 꼭 필요한 인재들을 영입해 주었던 것이다.
앨런은 그런 점에서 강혁에게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사실 인재 영입이야말로 강혁의 가장 큰 장기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구글을 세운 세르게이나, 눈앞의 앨런 머스크까지 모두 강혁이 스카우트한 인재다.
회귀 전의 역사를 정확히 기억하는데다가 다큐멘터리 방송 시청이 낙이었던 강혁이다.
어떤 기술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사람들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앨런이 놀랄 정도로 뛰어난 인재들을 적재적소에 영입해서 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바퀴와 엔진만 붙어 있는 전기자동차 시제품을 벌써 만들 수 있었던 이유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