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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68화 (168/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68화

168화

앨런은 벌써부터 몸이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그 자동차 회사는 언제 구입하시는 겁니까?"

앨런의 물음에 강혁은 입꼬리를 씨익 하고 올렸다.

"이제 군불을 떼고 있으니 조만간에 결판이 날 것 같습니다."

"하루 속히 그날이 왔으면 좋겠군요."

앨런의 말에 강혁이 웃었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앨런은 벌써부터 스페이스X로 다시 출근하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아직은 더 다듬어야 했다.

"앨런, 우선 람보르기니에서 기술팀을 보내오면 자동차를 완성시켜 봅시다."

강혁의 말에 앨런은 살짝 볼을 붉혔다.

자신의 속내가 드러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하, 물론이죠. 우선 전기차부터 완성해야죠."

"좋은 소식 기대하겠습니다."

강혁은 다시 한 번 앨런에게 윙크를 보낸 뒤 테슬라를 떠났다.

*     *     *

6개월 후.

청와대 집무실.

"대통령님, 아무래도 태우가 넘어갈 것 같습니다."

경제 부총리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청와대 경제 부총리를 비롯하여 경제 각료들이 모두 회의실에 모여 있었다.

재계 4대 그룹 중 하나인 태우그룹이 흔들리고 있는 중요 사태를 맞아 회의가 소집된 것이다.

태우가 어떤 회사인가?

한때 재계 2위까지 올라섰던 그룹이다.

그런 큰 회사가 무너지고 있었다.

"정부가 개입해야 합니다."

경제 부총리의 말에 대통령을 비롯하여 경제 각료들은 얼굴 표정이 굳어 있었다.

"맞습니다. 대통령님, 태우가 무너지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질 겁니다."

각료들 일부가 부총리의 말에 동조했다.

그들은 긴급수혈을 해서라도 생명 연장을 시켜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여기에 한국은행장이 반대하고 나섰다.

태우그룹의 회장 김정우의 방만한 경영을 문제로 삼았다.

"세계 경영이니 뭐니 말은 좋지만 자기 돈이 아니라 전부 은행 빚으로 한 겁니다. 더 이상……."

"뭐, 그거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쨌든 우선 살려 놓고 봐야―"

경제 부총리가 바로 반격에 나섰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예요. 잘못하면 태우 하나 살리려다 다 같이 넘어질 수도 있어요."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장이 옥신각신하는 중에 다른 각료들도 의견이 분분하게 나눠졌다.

한쪽은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 한다.

한쪽은 이 이상 혈세를 쏟을 수 없다.

양쪽으로 갈라져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다.

시간이 흘러도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결론이 나지 않았다.

결국 모두는 대통령의 입만 쳐다보게 되었다.

의견이 일치하지 않으니 대통령이 결단을 내려 달라는 것이다.

김현중 대통령은 숙고에 들어갔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결국 대통령이 각료들을 향해 말했다.

"모두들 잠시만 내게 시간을 주시겠소?"

대통령의 말에 경제부총리가 모두를 대신해서 말했다.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그럼 잠시 회의를 멈추지요. 언제 다시 들어오면 되겠습니까?"

"한 시간만 주시오. 그러면 내 결정을 내리지."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경제 각료들은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대통령에게 목례를 한 후 자리를 빠져나갔다.

사무실을 빠져나가는 각료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김현중은 남몰래 한숨을 토했다.

처음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대통령에게 주어진 압박감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결정 하나에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영향을 받는다.

혼자 남게 된 대통령은 깊은 숙고에 들어갔다.

사실 김현중 대통령이 고민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었다.

태우그룹이 넘어질 때 발생할 엄청난 충격 때문이었다.

한때 재계 서열 2위까지 올라갔던 태우그룹이다.

항상 네 손가락 안에 꼽히던 대기업이면서 문어발 확장의 대명사 같은 기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그 규모도 엄청난 회사였다.

사원들 숫자만 해도 27만 명에 달할 정도로 어마어마했다.

이 중에서 17만 명이 해외에서 근무 중이었다.

이들이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되어 거리로 내몰린다면?

생각만 해도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지원을 하자니 그것도 문제였다.

보고서를 보면 대우 그룹의 자본금은 20조였다.

그런데 부채는 90조였다.

부채 비율이 400%를 넘어 버린 것이다.

90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부채.

정부의 한 해 예산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큰 빚이었다.

얼마 전 태우그룹은 I.M.F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청용자동차 회사를 인수했다.

모두들 역시 태우그룹이라며 감탄했지만 부채 만기 시점이 다가오자 바닥이 드러났다.

빚을 갚을 돈이 없었던 것이다.

모두들 어처구니없어 했지만 어떻게든 정부와 은행이 나서서 도움을 주려고 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대규모 분식회계가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혈세를 쏟아부어 살려 놓으면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었다.

게다가 I.M.F에서 눈에 불을 켜고 한국의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막대한 달러를 한국에 지원한 입장에서 돈을 방만하게 사용하는 것을 허락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태우그룹이 무너지는 것을 그대로 방치해도 문제가 심각했다.

당장 27만 명이라는 엄청난 수의 실업자가 발생하게 되고 그 여파도 상상을 초월했다.

미국 포춘지 선정 100대 기업 중 24위에 올랐던 기업이다.

310개의 해외 현지법인을 비롯하여 538개의 해외네트워크를 가진 세계적인 기업이다.

한국 국내의 그 어떤 기업보다 세계화되어 있는 기업이었다.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앞으로 잠재적인 성장도 무시할 수 없는 기업이었다.

그렇기에 김현중 대통령의 고민도 깊었다.

그때 회의실 문이 열리며 비서관이 들어왔다.

"대통령님, 전임 박영삼 대통령께서 태우그룹 일로 알려드릴 일이 있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박 대통령님이? 알았어. 전화 돌리게."

"예, 대통령님."

잠시 후, 김현중은 회의실 내 보안전화기로 전임 대통령의 전화를 받았다.

"박 대통령님, 태우그룹 일로 알려주실 일이 있다고요?"

―예, 대통령님, 사실 직접 뵙고 말씀드려야 하는데…….

"아닙니다. 이렇게라도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 무슨 내용인가요?"

―사실 태우그룹이 회생 불능이 될 것이라는 언급을 이미 들은 적이 있습니다.

"……?"

―제게 그 말을 해준 사람은 절대 태우그룹에 정부의 지원을 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태우가 무너질 걸 이미 알고 계셨다고요?"

―제가 존 강 회장에 대해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십니까?

박 대통령의 말에 김현중은 뒤통수를 세게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존…존 강 회장이요?"

―그렇습니다. 김 대통령님.

6개월 전 김현중은 전임 박 대통령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강혁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많은 말을 나누지는 않았지만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사실 호감을 느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단지 맑고 밝은 기상을 지닌 청년 사업가라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태우그룹이 무너질 것을 예상했다고?

"그게 사실입니까? 다시는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했다고요?"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그러니 정부가 지원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하더군요.

"그…그런?"

박 대통령의 말에 김현중 대통령은 안담해졌다.

지원을 하는냐, 마느냐 결정을 내리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한국경제에는 쇼크다.

당장 27만 명이 거리로 나앉게 된다.

아직 박 대통령의 말을 다 믿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심리적으로 큰 충격이었다.

"살릴 방법은 없는 겁니까?"

김현중 대통령이 크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 김현중의 태도에 박 대통령은 연민과 책임감을 동시에 느꼈다.

이 사태가 모두 전임 정부에서 시작된 일이 아닌가.

―대통령님, 존 회장이 제게 해주었던 말들을 전달해드리지요.

"말씀하십시오."

김현중은 어떻든 들어두면 나쁠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귀를 기울였다.

아니 앞이 안 보이는 상황에서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기를 바랐다.

―그 친구의 말이 지금 태우를 도우면 잠시 생명은 연장하겠지만…….

"……?"

―결국 내년이나 내후년에는 망한다고 하더군요. 대신 지금이라도 정부지원을 끊으면…….

"……!"

―…그나마 살릴 방안을 자신이 찾아보겠다고 하더군요.

"그…그래요? 살릴 방안을 찾아본다고요?"

―그렇습니다. 분명히 그렇게 말했습니다.

김현중 대통령은 전화를 끊은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방법이 있다고? 지금 지원하면 잠시 생명만 연장될 뿐이라고?'

정말로 그렇다면 김 대통령으로서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하지만 정말로 존 강이란 자를 믿어도 되는 것일까?

아직 김현중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김 대통령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 가고 있었다.

김현중은 비서관에게 연락했다.

"1시간만 더 기다리라고 해."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비서관에게 말해 회의를 1시간 더 늦춘 후 김현중은 시계를 바라보았다.

현재 시간은 오전 11시, 지금이라면 미국은 저녁 10시였다.

이전에 강혁과 통화했을 때, 언제든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었다.

김현중은 이전에 박 대통령이 넘겨주었던 카드를 다시 펼쳤다.

"존 강입니다. 대통령님. 무슨 일이신지요."

―존 회장, 늦은 시간에 미안하오.

"아닙니다. 대통령님. 오늘은 무슨 일이신지요?"

반년 전 강혁은 김 대통령의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긴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다.

아직 김현중 대통령이 강혁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름대로 우호적인 대화를 했던 것은 사실이다.

―존 회장, 태우그룹의 대규모 분식회계가 드러났소.

"……."

―오늘 박 대통령에게 연락이 왔소.

"……."

―존 회장은 태우그룹이 지금과 같은 상태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던데…….

"맞습니다. 대통령님."

―……!

직접 강혁의 입에서 듣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어떻게 안 거요?

설마 진짜 미래를 본다는 말인가?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듣기는 했지만 여전히 믿기 어려웠다.

아니, 개인적으로 믿는 것은 상관이 없다. 하지만 자신은 일국의 대통령이었다.

국정을 이끄는 사람이 예언 따위를 믿는다는 것은… 나라가 흔들릴 수 있었다.

"…봤습니다. 직접 제 눈으로……."

―……!

꿀―꺽!

김현중은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혹시 미국 대통령과 친밀한 관계가 된 것도 그… 능력과 관련된 것이오?

"……."

김 대통령의 말에 강혁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그 짧은 순간 대통령은 갖가지 생각에 사로잡혔다.

"대통령님이 말이 맞습니다. 저는 미래를 보지요."

꿀―꺽!

―어…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요?

"…글쎄요. 저로서는 신의 뜻이라고밖에 말씀드릴 수 없군요."

―……. 신의 뜻이라.

잠시 침묵하던 김 대통령이 물었다.

―내가 당신을 믿어도 되겠소?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대통령님."

―내가 어떻게 하면 되겠소. 존 회장.

김현중 대통령의 말에 멀리 미국에서 강혁은 미소를 지었다.

"반드시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대통령님."

강혁은 전화기를 든 채로 회장실의 거대한 창벽 너머 맨허튼의 야경을 내려다보았다.

지상에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불빛들이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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