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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70화 (170/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70화

170화

#45장 리셋 코리아

일주일 후.

홍인걸은 터덜거리며 회사 입구 로비로 들어섰다.

결국 준비했던 기사는 나가지 못했다.

야당 국회의원인 김성수는 지방에서 가족들과 함께 사립학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런데 운영과정에서 사립학원이 저지를 수 있는 비리란 비리는 다 해먹고 있었다.

학원의 족벌운영은 기본이었고 돈을 받고 교사직을 주었다.

대부분 국고 지원으로 이루어지는 학교 경영은 방만했다.

게다가 여교사와 학생에게 이사장이 성추행을 했다는 의혹까지 있었다.

홍인걸은 주변의 제보로 이런 사실을 알고 지방출장까지 가면서 취재에 나섰다.

제보 내용들은 대부분 사실로 확인이 되었다.

하지만 이런 사실들은 지역 경찰과 검찰청, 언론의 묵인 하에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었다.

지역 국회의원인 김성수와 그의 동생이 이사장으로 있는 명성 학원의 영향력 때문이었다.

지역 유지인 이들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들이 없었다.

홍인걸은 이런 사실들을 취재한 후 기사로 내려고 했다.

기사를 통해 여론의 공분을 일으켜 움직이지 않는 경찰과 검찰을 움직일 생각이었던 것이다.

"어이 선배."

"어, 왔냐?"

이진주였다.

홍인걸은 이진주를 보자마자 한숨을 내쉬었다.

"알고 있겠지만 내 기사 잘렸다."

"들었어요."

이진주는 안됐다는 눈으로 홍인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선배, 지금은 기사보다 더 걱정해야 하는 것이 있지 않아요?"

"그거 말이지?"

이진주의 말에 홍인걸은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일주일 전의 일이 떠올랐다.

"아! 지금이라도 무릎 꿇고 잘못했다고 함 빌어봐?"

홍인걸의 말에 이진주가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나야, 시집이라도 가면 된다지만… 선배는 어머니가 있으니……."

이진주가 말을 이었다.

"선배가 그런다고 해도 나 선배 안 보거나 하지 않을 테니깐. 그렇게 해요."

"…진주야."

"선배는 어머니를 모셔야 하잖아요. 그러다 장기옥 선배 꼴 나면 어떻게 해요."

"……."

"나 선배까지 그런 꼴 당하면… 진짜 이 생활 못 버틸 것 같아."

"휴우, 장기옥 선배."

홍인걸은 이번 기사의 취재를 돕고, 자신에게 조언을 해주었던 선배 장기옥 기자를 떠올렸다.

자신보다 5년 선배인 장기옥은 이진주와 자신의 롤모델과 같은 존재였다.

회사의 많은 후배 기자들이 존경하고 닮고 싶어 했던 기자인 것이다.

하지만 몇 달 전 갑작스럽게 잘리고 말았다.

이미 전부터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윗선에서 해직처분을 내렸던 것이다.

이유는 장기옥이 이전부터 전 여권 인사들의 비리들에 대해 파헤쳤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야당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막강한 자들이었다.

그들의 압력에 신문사가 굴복한 것이나 마찬가지라 후배 기자들은 크게 분노했었다.

"제기랄― 기자라는 것들이 말이야. 밸도 없나? 쉬―팔!"

장기옥을 생각하며 홍인걸은 화를 냈다.

그런 홍인걸을 이진주가 다독거렸다.

"선배, 그러지 말고. 지금이라도 서 부장 찾아가 봐요."

"서 부장?"

"가서 바짝 엎드려요. 나 그래도 선배 경멸 안 해. 그렇게라도 살아남아요."

이진주의 진지한 말에 홍인걸은 눈빛이 흔들렸다.

집에 홀로 남아 있는 어머니가 떠올랐다.

자신이 회사를 그만두면 어머니는 어떻게 모실 것인가?

생각만 해도 답답했다.

웅성웅성.

"응? 뭐지?"

홍인걸은 터덜터덜 걷다가 회사 로비에 동료들이 모여 있는 것이 보였다.

아무래도 인사공고가 난 모양이었다.

사람들의 심각한 표정에 홍인걸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홍인걸과 이진주 두 사람은 잠시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하아, 진짜. 이제 시집이나 가야 하는 건가?"

이진주의 말에 홍인걸이 격려의 말을 건네었다.

"너라면 다른 곳에서 서로 데리고 가려고 할 거야."

이진주는 사회부에서 연예부로 옮긴 후 상당한 실적을 쌓아올렸다.

이때는 사실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신문 부수에 영향을 주어 윗선에서 칭찬이 자자했다.

문제가 된 것은 다시 사회부로 옮긴 이후였다.

이전보다 훨씬 독해진 이진주는 편집부와 싸움도 불사하는 투사로 변해있었다.

다시는 삼양 백화점 붕괴사건과 같은 일이 없도록 막으려는 이진주는 거침이 없었다.

자신이 열심히 취재한 기사가 잘리면 편집부 책상을 뒤집어 엎으려하니 엄청난 골칫덩이였다.

하지만 그 덕에 특종도 많이 잡아내서 잘라내지 못한 점도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그것도 한계를 초과한 모양이다.

"가볼까?"

"선배나 봐요. 난 그냥 기자실로 갈래."

"그래?"

"나중에 우리 껍데기에 소주나 한잔해요."

"……? …그래, 그러자."

그동안 슬슬 자신을 피하던 이진주였지만 마지막이라 생각하는 모양이다.

자신과 술자리를 한다니, 이제는 진짜 마지막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집에 혼자 있는 노모가 생각났다.

'정말 서 부장 앞에 무릎이라도 꿇어야하는 걸까?'

어쩌면 그마저도 늦은 것일지도 몰랐다.

홍인걸은 얼굴이 허옇게 변해서 터벅터벅 벽보가 붙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어머니는 어쩌지?'

이 와중에도 홍인걸은 자신보다 어머니가 걱정이었다.

"야, 이거 진짜야?"

"우와,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벽보를 본 기자들이 놀란 얼굴로 웅성거리고 있었다.

홍인걸은 뭔가 묘한 느낌의 기자들 얼굴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번 인사에서 자신을 비롯한 회사의 반골들이 잘려나갈 것은 모두들 알고 있었다.

그러니 저런 표정을 지을 리가 없는 것이다.

홍인걸은 설마하는 마음에 인파를 가로질러갔다.

"이봐, 나도 좀 보자."

"어, 인걸 선배."

홍인걸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후배 기자가 고개를 돌리며 바라보았다.

"선배, 이것 좀 보세요. 윗대가리들이 싹 잘려나갔어요."

"뭐? 그게 무슨 소리야?"

후배의 말에 홍인걸은 깜짝 놀랐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그들이 왜?

홍인걸은 고개를 돌려 벽보를 보았다.

'이게 뭐야?'

홍인걸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벽보에는 회사의 적폐라 할 만한 인물들이 총망라되어 있었다.

대체 어떻게 알았는지 기가 막힐 정도였다.

새로운 사주의 정보력에 대해서 혀를 두를 정도였다.

홍인걸과 동료 사원들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거 무슨 뜻일까?"

무리 중 누군가가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좋은 거 아닐까?"

모두의 시선이 말을 한 상대에게 쏠렸다.

홍인걸은 상대가 누구인지 잘 알았다.

자신과 함께 살생부에 올라갔다는 소문이 돌던 문화부의 박수진이었다.

"무슨 소리야?"

홍인걸이 묻자 박수진이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모두를 보더니 대답했다.

"생각해봐. 여기 있는 명단들… 모두 회사의 암덩어리들이잖아. 무슨 뜻이겠어?"

"……."

"새로 올 사주가 그나마 좀 정신이 제대로 박힌 인물이란 뜻이 아닐까?"

박수진의 말에 모두는 생각에 잠기는 모습이었다.

"수진이 말이 어느 정도는 일리가 있는 말이야."

"김철 선배."

"혹시 새로 사주가 된다는 사람에 대해 뭐 아는 것 좀 있어요?"

김철은 경제부 기자로 서울 데일리에서는 알아주는 베테랑 기자다.

정관계에 인맥도 상당해서 이런 쪽으로는 최고의 정보통이기도 했다.

모두가 자신만 바라보자 손가락으로 은색 안경테를 살짝 올리며 김철이 말했다.

"음, 나도 확실하게는 몰라. 하지만 여길 인수한 것이 골든 그룹이라는 건 확실해."

"골든 그룹?"

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이 일었다.

"누가 여기 아는 사람 있어?"

"나 알아요."

"이진주?"

어느새 기자실로 올라간다던 이진주가 합류해 있었다.

모두의 눈이 이진주에게 쏠렸다.

"뭐야? 아는 거 다 말해봐."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시선이 모두 이진주에게 쏠렸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진주는 서울 데일리의 최고의 민완기자다.

"우― 나도 많이 아는 건 아니고. 신라 치킨 알죠?"

"응? 신라치킨?"

"맞아요. 우리 아버지가 여기 점주인데. 신라 치킨이 골든 그룹 소속이에요."

신라 치킨이라면 모르는 것이 더 이상할 정도로 유명한 프랜차이즈 치킨집이었다.

그런 신라 치킨이 골든 그룹 소속이라고 하자 모두들 살짝 놀랐지만 아직까지는 그런가 정도였다.

"신라 치킨이라? 신라 레스토랑 체인점도 같은 소속이야."

"어, 거기 엄청 유명하잖아."

신라 레스토랑은 현재 고급스런 유러피안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다들 한 번 정도는 방문한 기억이 있었다.

"그거 말고 다른 건?"

"아버지 때문에 좀 알아봤는데 골든 타워라고 알아요?"

생소한 이름에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외국에 본사가 있는 금융투자회사예요. 일단은 제가 알기로 이 회사가 지주기업이에요."

김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골든 타워는 내가 좀 알아. 윌스트리트의 떠오르는 신흥강자로 유명해."

김철의 말에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신라치킨이니 신라 레스토랑이니 하는 것보다 훨씬 있어 보이는 회사였다.

게다가 외국계 금융투자회사라니?

지금 제일 큰 문제가 환율 때문에 원화가치가 바닥이 된 것 아닌가?

그런데 외국계 금융투자회사라면 달러가 많을 것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조지아 솔라스가 이끄는 유대자본과 화교금융자본도 여기 움직임을 주시할 정도라고 하더군."

"그, 그 정도예요?"

김철의 말에 모두들 놀란 표정이었다.

갑자기 모두의 분위기가 일변했다.

얼마 전까지 회사가 망할 위기에 처했다면 이직을 알아보던 동료들도 얼굴이 환해졌다.

"자본이 탄탄한 회사인가 보네?"

누군가의 물음에 김철이 대답했다.

"그렇다고 봐야지. 내가 알아본 건 좀 더 있어."

"어서 말해 봐."

"대진 건설 알지?"

"대진 건설?"

"거기 요즘 아파트 잘 짓는다고 유명한 회사잖아요."

직원들 중 아파트에 관심이 많은 여성 직원이 대답했다.

"맞아, 거기 요즘 유명해."

"층간 소음이 안 난다고 다들 그러더라."

"내부 디자인도 참신하고."

대진 건설 이야기가 나오자 다들 한마디씩 보태었다.

그만큼 대진 건설이 지은 아파트는 장내의 화제였다.

워낙 유명해지고 인기도 많아지다 타 업체들도 대진 건설을 따라하는 분위기로 움직이는 중이었다.

"대진 건설도 골든 그룹이야. 여기에 요즘 너희들 전자메일 뭐로 보내냐?"

"메일? 난 더움 거 쓰는데?"

"어? 너도 그래? 나도 야후에서 갈아탔어."

"나도."

"나도."

여기저기서 대답이 나왔다.

"어? 그럼 혹시?"

"맞아, 토종 포털 사이트 더움도 골든 그룹 자회사다."

"하아, 대단한데?"

모두들 회사를 새로 인수한 골든 그룹이 탄탄한 회사라는 사실을 알고 기뻐하는 눈치다.

그런데 여기에 김철의 말이 기름을 부었다.

"너희들 겨우 이걸로 놀라면 안 돼."

김철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다시 그를 향했다.

"뭐? 여기서 더 있어?"

"듣고 놀라지 마라. 유니버셜 영화사 알지?"

"서, 설마?"

모두는 김철의 말에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그 설마다. 골든 그룹에서 얼마 전에 유니버셜 영화사를 인수했단다."

"대에―박!"

"그런 큰 회사가 우리 같은 중소 언론을 인수했다고?"

김철의 말은 너무 어마어마해서 일순 서울 데일리 직원들은 믿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모두 사실이야."

낯익은 중저음의 목소리.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목소리의 주인공에게 향했다.

"헉! 장 선배?"

누군가 소스라치게 놀라는 목소리로 내뱉었다.

대다수의 심정을 대변하는 말이었다.

그들의 눈앞에 몇 달 전 비참하게 회사에서 쫓겨났던 장기옥이 양복차림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세련된 양복을 입은 사내들이 두터운 가방을 들고 도열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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