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77화
177화
사우디아라비아 아피프.
C.I.A요원 조지 앤더슨은 반년 전부터 알카에다의 조직원을 쫓고 있었다.
알카에다는 수장인 오사마 빈 라스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조직이 확장 중인 테러 단체였다.
조지 앤더슨은 진작부터 이 단체에 대해 의구심을 품고 있었다.
알은 정관사로 별다른 뜻을 가지지 않지만 카에다는 근본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 조직은 이름부터 이슬람 근본주의를 표방하고 있었다.
조지 앤더슨은 이들의 조직원들을 비밀리에 조사하면서 갈수록 이들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이들이 미국 내의 대중에게 알려지게 된 것은 몇 년 전의 일이다.
대범하게도 알카에다의 세포조직 중 하나가 부통령의 아들과 동급생들을 납치했던 것이다.
다행히 이 일은 미수에 그쳤지만 일반 대중에 알카에다가 널리 알려진 계기가 되었다.
이때를 기점으로 C.I.A 역시 이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시켰다.
조지 앤더슨 같은 요원들이 사우디아라비아에 대거 파견된 이유였다.
조지 앤더슨은 알카에다에 대해 조사하면서 이들이 매우 위험한 사상을 가진 자들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특히나 이들의 수장인 오사마 빈 라스는 미국에게는 너무나 위협적인 생각을 가진 자였다.
아직 그를 직접 컨택한 적은 없지만 그의 부하들에게 내리는 그의 교훈들은 매우 위험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몇 번이나 민감한 정보들을 윗선에 보고했다.
하지만 조지 앤더슨의 보고는 항상 어느 선에서 멈춰 섰다.
그가 보낸 정보가 허무맹랑하게 여겨졌던 것이다.
[알카에다는 미국 국내에 대규모 폭탄테러를 일으키려고 한다.]
[그날을 대비해서 조직원들을 모집하고 훈련시키고 있다.]
[한날한시에 미국 국내의 여러 곳을 동시다발적으로 공격하려고 한다.]
정보기관의 수장들은 조지 앤더슨의 이야기가 구체성이 없는 판타지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내부 단합시키려는 오사마의 과장된 이야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카에다는 2년 전 사건 이후로는 지금까지 너무나 조용했다.
그래서인지 윗선의 지시는 그저 지속적인 감시에 그쳤다.
실제 이들이 어떤 종류의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매우 낮게 본 것이다.
조지 앤더슨은 그런 정보 당국의 태도에 크게 실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개 요원인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결정적인 정보를 수집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래서 더욱 조지 앤더슨은 이를 악물었다.
언젠가 움직일 수 없는 증거를 잡아서 한 방 먹일 생각이었다.
자신을 과대망상증 환자 정도로 취급한 동료들과 윗선의 대가리 나쁜 상사에게 말이다.
그렇게 이를 갈며 알카에다의 조직원을 감시하던 어느 날이었다.
조지 앤더슨은 자신이 은밀히 감시하고 있던 의사 하미드에게서 뭔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출근 시간이 아닌 이른 새벽에 진료 도구를 챙기더니 집에서 나와 어딘가로 향한 것이다.
처음에 앤더슨은 하미드가 누군가의 요청으로 새벽에 진료를 나간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확인 결과 집 안에 설치해 놓은 도청 장치에는 어떤 전화도 걸려오지 않았다.
뭔가 이상하다고 확신한 앤더슨은 은밀히 그의 뒤를 쫓았다.
다른 조직원과 은밀히 접촉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의 생각은 옳았다.
외견상 평범해 보이는 일반 주택으로 하미드가 들어가는 것을 앤더슨은 확인했다.
잠시 후 앤더슨은 몰래 하미드가 들어간 집의 뒤로 돌아들어 갔다.
그리고 주변을 살피고는 조심스럽게 배관을 타고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다 보니 창문이 나타났다.
허리춤에서 침투 도구를 꺼낸 앤더슨은 창문을 동그랗게 오려낸 후 손을 넣어 문을 열었다.
앤더슨은 창문을 열어 집 안으로 들어간 후 사람들이 쉽게 발견할 수 없는 곳에 몸을 숨겼다.
"우리의 위대한 인도자께서 보내온 메시지요."
거실에 여러 명의 남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중 한 남자가 사람들을 향해 일장 연설을 하고 있었다.
남자가 사람들에게 비디오테이프를 꺼내 들자 모두들 작은 목소리로 환호했다.
"자, 우리 함께 보도록 합시다."
잠시 후, TV에서 오사마 빈 라스가 나타났다.
영상 속의 오사마는 흰 옷을 입고 긴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말투는 부드럽고 온화하게 시작했으나 한마디, 한마디가 가볍지 않았다.
―형제들이여― 미국은 오랫동안 우리를 억압하고, 무시하고, 학살해왔소.
오사마의 말은 낮고도 부드러우며 목소리에 힘이 있었다.
장내에 모여 있는 사람들 몇몇을 제외하고 대다수가 젊은이들이었다.
그들의 얼굴과 눈빛에는 분노가 어리고 있었다.
오사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반응하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우리가 누구인지 상관하지 않으며,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을 싫어하오.
젊은이들 중 몇몇은 분노와 함께 주먹을 움켜쥐었다.
―이것을 기억하시오. 우리의 위대한 지하드(성전)는 결국 모든 것을 바꾸어 놓을 것이오.
"오오!"
―지하드(성전)에 무고한 여성이나 어린아이가 희생당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죄가 아니요.
영상 속의 오사마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의 사상 속에서 지하드는 무고한 시민들이라 할지라도 공격목표가 될 수 있었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 가까워지고 있소. 그날은 곧 올 것이오.
"오오오!"
―그날 우리는… 비행기…….
갑자기 지지직 하는 소음이 들리며 음성이 줄어들었다.
비디오테이프의 음질이 좋지 않았다.
'비행기?'
조지 앤더슨은 중요한 대목에서 소리가 잘 들리지 않자 조바심이 났다.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킨 앤더슨은 좀 더 잘 들리는 곳으로 몸을 이동했다.
―…미국을 상징하는 …될 것이요.
"와아아!"
거실에 오밀조밀 앉아 있는 알카에다 조직원들은 기묘한 열기에 싸여 환호했다.
그들은 거사가 성공하는 날 마침내 미국에게 한 방 날릴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날이 오면 오랜 억압과 울분을 풀 수 있으리라.
―우리는 단합해야 하며 반드시 이스라엘을 우리 선조들의 땅에서 몰아내야 하오.
'젠장!'
앤더슨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중요한 대목을 듣지 못한 것이다.
오사마가 말하는 대부분의 내용들은 아랍 극단주의 단체들이 내세우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언급한 테러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었다.
앤더슨은 그가 들은 두 가지 단어들을 되뇌었다.
'비행기? 상징? 대체 무슨 뜻일까?'
조지 앤더슨은 거실에서 상영되고 있는 비디오테이프를 주목했다.
비디오테이프를 자신이 회수한다면 듣지 못한 대목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앤더슨이 머릿속으로 비디오테이프를 회수할 방법을 궁리하고 있을 때였다.
그의 뒷목에 서늘한 금속성 물건이 닿았다.
권총이었다.
"손들어!"
앤더슨은 말없이 양손을 들었다.
은폐하고 있던 위치에서 자리를 옮긴 것이 실책이었다.
그만 적에게 잡히고 만 것이다.
앤더슨은 알카에다에 잡힌 자신이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다.
불현 듯 최근에 사귄 여자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제니퍼― 미안…….'
퍼―억!
권총으로 뒤통수를 가격당한 앤더슨은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기절했다.
한 달 전, 강혁의 회의실.
―사우디아라비아에 알파팀과 작전팀 요원들을 보내라는 말씀입니까?
"그렇습니다. 박 팀장님."
강혁이 말했다.
회의실에 있는 거대한 스크린 위에 박정철의 모습이 보였다.
"앞으로 한 달쯤 뒤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C.I.A요원 한 명이 알카에다에게 납치당합니다."
―……!
강혁의 말에 박정철의 두 눈이 커졌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담긴 표정이 박정철의 얼굴에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 사람을 구출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박정철은 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에게 강혁의 지시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은 그에게 불필요한 것이다.
"제가 말씀드리는 지역에 팀들을 파견하세요."
강혁은 박정철에게 몇 개의 지역을 알려주었다.
"시기는 앞으로 한 달쯤 후입니다. 납치 대상 후보자 C.I.A요원 명단을 보내드리죠."
―누가 납치되는지 정확하지 않은 겁니까?
박정철의 말에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들 중 하나가 납치됩니다. 시기는 약 한 달 후고요."
―알겠습니다. 마침 알파팀과 작전팀의 훈련이 끝났으니 실전 투입되기에 적절한 시기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박 팀장님."
강혁의 당부를 끝으로 스크린이 꺼졌다.
조지 앤더슨이 알카에다에게 납치되기 한 달 전, 강혁은 회귀 전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앞으로 자신의 행보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에 대해 결정하기 위해서였다.
무엇보다도 지금 미국에 있는 강혁은 앞으로 미국 정부가 바뀐다는 사실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현 정권과 강혁의 관계는 매우 독특한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과 부통령, 그리고 정부의 파워 맨들이 강혁의 편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정권이 바뀌게 되었을 때 지금의 관계는 독이 될 수 있었다.
공화당의 국회의원들은 몰라도 정부의 실권을 잡을 사람들과 관계 정립이 문제였다.
부시와 그의 내각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면 믿음을 얻을지 계획이 필요했다.
그때 강혁의 뇌리에 스친 것이 바로 9.11테러였다.
회귀 전 강혁은 불면증 때문에 큰 고초를 치르고 있었다.
잠을 자지 못하는 강혁은 밤마다 수많은 다큐멘터리 방송을 시청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 CNN, BBC등에서 만든 다큐들은 실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고증이 철저했다.
강혁이 본 다큐멘터리 중에는 9.11과 관련된 것이 몇 개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미국 정보기관이 9.11테러를 예측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밝히고 있었다.
강혁은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다큐를 시청했었다.
당시 강혁은 다큐를 시청하고 깜짝 놀란 것이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미정보기관이 사실은 알카에다의 테러 위험성에 대해서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체 왜 미국은 무방비 상태로 그런 큰 테러 공격을 당하였는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있지만 그중 하나는 부시 정권이 정보기관에서 보낸 보고를 무시했다는 것이었다.
사실 정확한 증거가 있는 보고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거기에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것은 강혁이 BBC방송에서 본 내용이었다.
바로 부시 가문과 빈 라스 가문이 모종의 유착관계에 있었다는 내용이다.
오사마 빈 라스는 여러 명의 이복형제들이 있었다.
이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살렘 빈 라스가 아버지의 사후, 가문을 이끌고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부시 대통령은 한때 빈 라스의 회사에서 중역으로 일했다.
부시의 아버지인 전 부시 대통령 역시 이 회사에서 유급고문으로 일한 적이 있다.
방산 업체인 칼라일사의 자회사로서 이 회사의 지분을 빈 라스 가문이 가지고 있었다.
부시 일가는 이 모든 것이 단순히 우연에 불과한 일이라고 치부했지만 말이다.
게다가 9.11이 있기 20년 전 부시는 살렘 빈 라스가 자금을 지원한 석유회사를 통해 돈을 벌었다.
모든 것이 너무나 공교로웠다.
이런 관계 때문에 대통령이 된 후에도 확실한 증거가 없는 정보국의 제보를 믿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