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80화
180화
이 자리에 모여 있는 사람들의 면면을 생각하면 엄청난 발언이었다.
부통령 다음 서열인 국무부장관부터 미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움직이는 국방부장관.
거기에 C.I.A와 F.B.I국장을 앞에 두고 한 말인 것이다.
클링튼은 이들이 혹시나 강혁의 말을 믿지 못하고 제때 움직이지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내 말을 허투루 듣지 마시기 바라오. 언제든 존 회장이 연락하면 내 전화처럼 바로 받으세요. 알겠습니까?"
"알,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갑작스런 호출에 백안관 집무실로 모인 미국의 파워맨들 모두가 대통령의 지시에 얼떨떨해했다.
하지만 너무도 단호한 어조와 표정에 다른 말을 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여기서 있었던 이야기는 그 누구에게도 발설해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까?"
"예, 대통령님."
졸지에 잭 해리스는 모두에게 중동에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브리핑하게 되었다.
이미 이전 국무부 장관에게 강혁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던 새 국무부 장관과 F.B.I국장은 수긍하는 눈치였다.
"대단한 친구군요. 결국 자비를 들여서 우리 국민을 구한 것 아닙니까?"
패리 국방장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감탄했다.
"맞습니다. 이거 대통령 표창이라도 드려야 하지 않을까요?"
"사실 존 회장은 이미 이전에 비밀리에 받은 적이 있습니다."
대통령의 말에 새 국무부 장관과 F.B.I국장을 제외하고는 깜짝 놀랐다.
"기억하실거요. 이전에 납치사건 말이오."
"아, 그렇다면?"
"맞아요. 그때 그 사건을 해결한 것도 존 회장이에요."
대통령의 말에 즉각 F.B.I국장이 말을 이었다.
"사실입니다. 여러분."
모두는 두 사람의 말에 깜짝 놀랐다.
당시에 워낙 큰 사건이라 전 미국에서 대서특필 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의 해결에 존 회장이 관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사람들은 그제야 대통령이 왜 그렇게 강혁의 말을 들으라고 했는지 이해가 갔다.
모두의 얼굴에 그제야 납득하는 표정이 돌자 클링튼이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이번에 존 회장에게 명예 훈장을 드릴 생각입니다."
"좋은 생각이군요. 대통령님. 존 회장이라면 자격이 충분하고도 남죠"
그린라이트 국무 장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저도 동의합니다. 대통령님."
곧바로 패리 국방 장관이 이어서 대답하자 일사천리로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 * *
"가르시아, 제발 그만 좀 해."
"엄마, 이게 그만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이제 막 10대를 벗어난 남자 아이가 엄마로 보이는 중년 여성에게 소리쳤다.
"오빠, 그만해. 안 그래도 아빠 때문에 힘들어하시는 거 안 보여?"
"닥쳐, 카밀라."
"동생한테 그게 무슨 말투니. 가르시아."
스테파니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
그녀는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다.
첫째인 가르시아는 얼마 전 대학을 합격했고, 둘째인 카밀라는 아직 고등학생이다.
가정주부인 스테파니는 얼마 전부터 생계가 급격하게 어려워졌다.
남편인 칼로소가 얼마 전 갑자기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연락도 없이 사라진 칼로소를 가족 모두가 걱정했지만 점점 현실 생활의 어려움에 부딪히고 있었다.
이미 스테파니는 지역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점원으로 일을 시작했다.
하지만 가르시아의 학비를 지원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했다.
가르시아가 오늘 폭발한 것도 그 이유이다.
"아빠는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설마 우릴 버린 건 아니겠죠?"
가르시아가 화를 내며 말했다.
아들의 말에 스테파니가 정색을 했다.
"가르시아!"
얼굴을 딱딱하게 굳힌 스테파니는 얼굴 앞에 손가락 하나를 곧추세우며 말했다.
"아빠를 모독하면 내가 가만 안 있을 거다."
"오빠, 제발 그만해."
가르시아는 대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엄마, 지금 같은 상황에서도 아빠를 두둔하시는 거예요? 예?"
"가르시아……."
아들의 말에 스테파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아무래도 오랫동안 숨겨두었던 비밀을 밝힐 때가 된 것 같다.
아마도 칼로소는 이미 죽었을 것이다.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연락이 두절된 적은 없었다.
칼로소의 동료들도, 그의 직장상사도 그저 고개를 저을 뿐… 이제는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가르시아, 넌 큰 오해를 하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예요? 오해를 하고 있다니. 아빤 대체 어떤 사람이에요?"
가르시아의 말에 카밀라도 엄마를 바라보았다.
두 아이는 지금까지 아빠의 정확한 직업도 모르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지금까지 여러 가지 직업을 전전했고, 그동안 제대로 된 직장도 없었다.
하지만 언제나 집안에는 돈이 부족한 적이 없었다.
사실 가르시아는 아빠가 마약상의 끄나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자주 출장이라며 멕시코를 오갔고, 그때마다 집에는 여러 가지 선물들을 가지고 왔었다.
여러 가지 정황을 생각해보면 딱 마약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풍족하기는 하지만 엄청난 부자는 아니니 끄나풀 정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왔다.
이번에도 갑자기 연락이 끊어지지 않았는가?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게 아니면 가족을 버리고 잠적해버렸다던가.
가르시아와 카밀라는 의문을 품은 눈으로 스테파니를 바라보았다.
"너희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겠어. 확실히 칼로소는 비밀스런 사람이지."
"……."
"하지만 결코 나쁜 사람은 아니야. 너희들도 그건 알지 않니?"
엄마의 말에 가르시아와 카밀라는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건 모르죠. 가족들에게는 잘하지만 남들에게는 악한 사람도 얼마든지 있다고요."
가르시아가 말했다.
"너도 그렇게 생각하니 카밀라?"
"그건… 전 잘 모르겠지만… 아빤 항상 남들에게 친절했어요."
카밀라의 말에 스테파니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카밀라를 바라보았다.
"그래, 칼로소는 언제나 그랬지."
그녀는 뭔가를 추억하는 눈빛으로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엄마, 조지 영도 주변 사람들에게는 친절했다고요."
조지 영은 멕시코를 오가며 메데인 카르텔과 손잡고 코카인을 운송했던 미국인이다.
미국 최대의 밀수꾼으로 유명하며 이 사람에 대해서는 영화와 다큐도 만들어졌었다.
스테파니는 아들의 입에서 조지 영이 언급되자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아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가르시아, 네 아빠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란다."
"……?"
"엄마, 그럼 아빠는 마약상이 아니에요?"
카밀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이런? 카밀라, 너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니?"
엄마의 말에 카밀라는 당황하며 오빠를 바라보았다.
"제가 말해 줬어요. 카밀라도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가르시아가 쭈뼛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휴, 그랬니?"
스테파니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눌렀다.
아이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줄이야―
아니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직접 귀로 들으니 역시 충격이었다.
스테파니는 두 사람을 향해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가르시아, 카밀라, 이제는 너희들에게 말해줘도 되겠지. 사실 너희 아빠는 말이야……."
"……."
"마약 단속국 요원이란다."
스테파니의 말에 가르시아와 카밀라는 엄청 놀랐다.
특히 가르시아의 놀라움이 컸다.
"뭐, 뭐라고요? 엄마? 아빠가… 마약 단속국 요원이라고요?"
스테파니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맞아."
"엄마, 그런데 왜 우리에겐 말하지 않은 거예요?"
"휴우, 사실 아빠는 이미 오래 전부터 마약 조직에 잠입해 있었단다."
"……!"
"언더 커버라는 건데… 보안이 제일 중요한 임무라서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거야."
"그, 그럼. 혹시 아빤 죽은 건가요?"
카밀라가 눈에 눈물이 슬쩍 고인 채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딸의 질문에 스테파니는 차마 선뜻 말하지 못했다.
"난, 아직 포기하지 않고 있단다."
"흐흑, 엄마."
카밀라가 끝내 울음을 터트리자 스테파니가 그녀를 끌어안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엄마, 그럼 아빤… 임무 중에 실종되신 건가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아. 아빠의 동료였던 분이 그렇게 말씀해 주셨단다."
스테파니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말해주지 못했던 것들을 하나둘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집 안 깊숙한 곳에 꼭꼭 숨겨두었던 앨범을 꺼내어 보여주었다.
앨범에는 경찰 제복을 입고 있는 칼로소의 젊은 시절 사진이 있었다.
"경찰학교 시절, 마약단속국 사람이 너희 아빠를 눈여겨보았지."
"……!"
"너희 아빠는 경찰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쫓겨난 것으로 되어 있지만 사실은 이때부터 요원으로 일을 시작한 것이었단다."
스테파니의 설명에 아이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나도 결혼하고 나서 한참이나 뒤에야 알게 된 일이야. 어쩌면 평생 모르고 살았을 수도 있단다."
"정말 대단해요. 엄마. 아빠는 영웅이었군요."
가르시아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 칼로소는 진짜 영웅이었지."
"아빤, 대체 어떻게 되신 걸까요?"
가르시아가 답답한 표정으로 물었다.
"글쎄, 하지만 살아 있다면 반드시 우리에게로 돌아오실 거야. 난 그렇게 믿는다."
엄마의 말에 가르시아는 조금 전까지 자신이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죄책감을 느꼈다.
"죄송해요. 엄마. 전 정말 나쁜 놈이에요. 아빠가 실종됐는데 대학 학비 이야기만 했어요."
가르시아의 말에 스테파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녀는 이번에 붙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아들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고 있었다.
합격통지서가 집으로 날아온 날 얼마나 기뻐했던가?
스테파니는 아들의 학비를 마련해주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사실 스테파니는 이미 마약단속국에 상황을 설명하고, 남편의 연금이나 월급에 대해 물어보았다.
문제는 남편이 실제로 마약단속국 요원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보안을 위해 극소수의 사람만이 남편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편을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만일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는 전화번호가 없었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가까스로 칼로소의 동료를 만난 스테파니가 집안사정을 이야기하자 책임자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그때 뜻밖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칼로소의 연금을 가족이 받으려면 적어도 아직 반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지금은 칼로소의 죽음이 완전히 확인되지 않았다.
언더커버의 속성상 그의 보안이 해제되고 정식으로 요원의 신분을 회복하려면 절차를 거쳐야 했다.
거기에 걸리는 시간만 쳐도 적어도 반년이 소비되었다.
칼로소의 상사라는 자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스테파니는 복잡한 심경이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연금을 받게 될 때는 남편인 칼로소가 확실히 죽었다는 것을 상정하기 때문이었다.
그날 스테파니는 남편과 아들 두 사람을 위해 남몰래 눈물을 흘렸다.
"가르시아,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단다. 내가 열심히 벌고 있으니 다른 방법을 한번 알아보자."
"아니에요. 엄마, 지금은 제가 장남으로서 엄마를 도와드려야 할 때인 것 같아요."
"가르시아, 아니다. 무슨 소릴 하는 거니? 넌 대학을 가야지."
스테파니의 말에 가르시아가 고개를 내저었다.
"나중에 가죠 뭐. 그보다 카밀라 학비도 마련해야 하잖아요. 저도 일해서 벌게요."
"오빠, 나 같은 것보다는 오빠가 대학에 가야지."
"무슨 소리야. 카밀라. 여자도 배워야 하는 거야. 나 같은 거라니? 그리고 난 대학 포기한다는 말은 안 했다."
"가르시아."
스테파니는 울음이 터져 나오려는 입을 손으로 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