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81화
181화
"엄마, 누가 왔나 봐요?"
아들에 대한 대견함과 미안함에 울음을 참고 있던 스테파니에게 카밀라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문밖에서 누군가가 벨을 눌리고 있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스테파니는 얼른 눈물을 훔치고는 옷매무새를 만지고 문가로 다가갔다.
"누구시죠?"
스테파니가 물었다.
문밖의 남자는 깔끔한 검은색 양복 차림에 머리를 빈틈없이 붙여 놓고 있었다.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갈색머리에 어딘지 동작에 절도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스테파니 부인. 저는… 남편 분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어 왔습니다."
남편에 대해 할 말이 있어 왔다는 남자의 말에 스테파니는 벌컥 문을 열었다.
"저희 남편을 아세요?"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를 드리지요."
남자의 말에 스테파니는 선뜻 그를 집 안으로 들였다.
잠시 후, 스테파니는 아이들을 방안으로 들여보내고 소파에 앉아 갈색머리 남자와 마주보았다.
"우선 제 소개부터 드려야겠군요. 저는 이름 없는 영웅들의 보금자리라는 곳에서 나왔습니다."
갈색 머리 남자는 자신의 이름을 제임스라고 소개하며 명함 하나를 건네주었다.
"이름 없는 영웅의 보금자리라고요? 처음 듣는 기관이에요."
"그러실 겁니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은 사설 복지 기관이거든요."
"사설 복지 기관이라고요?"
스테파니의 말에 갈색머리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골든 그룹이라고 혹시 아십니까?"
"아, 아니요?"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아시죠?"
"아, 알아요. 아이들이 페이스북을 하거든요. 그리고 구글은 당연히 알죠."
"두 회사 모두 골든 그룹의 계열사들이랍니다."
제임스의 말에 스테파니는 살짝 놀랐다.
두 기업 모두 세계적인 IT기업이라는 사실은 스테파니도 모르지 않았다.
미국인이라면 아니 전 세계 사람들이 모두 이용하는 인터넷 기업이 아닌가?
그런데 두 회사 모두 같은 그룹이란 사실은 몰랐다.
"이름 없는 영웅들의 보금자리는 골든 그룹에서 만든 사설 복지기관으로 귀댁의 부군 같은 분들을 위한 곳이지요."
"그, 그래요?"
스테파니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사실 처음에는 남편에 대한 소식을 알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를 듣고 보니 사설 복지기관이라면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제 남편 이야기는 어떻게 알고 오신 건가요?"
스테파니의 말에 제임스는 지긋이 미소를 지었다.
"저희는 그저 앉아서 접수를 받는 곳이 아니랍니다."
"……!"
"적극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분들을 찾아나서는 시스템이지요."
"그, 그래요?"
"저희 조사팀에서 부군의 이야기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찾아온 겁니다."
"그, 그렇군요."
"알아보니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던데요."
"휴, 그이의 실종 후로는 아무런 수입이 없거든요."
스테파니의 말에 제임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겠죠. 언더커버의 특성상 정식으로 정부기관의 월급을 받을 수는 없으니까요."
"맞아요. 그동안 남편이 벌어온 돈은 모두 그쪽 일하면서 번 돈이었어요."
제임스는 스테파니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남편 분이 실종되신 지가 한 달이 채 안 됐죠?"
"맞아요."
스테파니는 금세 눈에 눈물이 고였다.
"아직 포기할 때는 아닙니다. 부인. 힘을 내세요."
"고마워요. 제임스씨."
스테파니는 제임스의 위로에 감사를 표했다.
"흠, 문제는 당장의 수입이 부족하다는 거군요."
제임스의 말대로였다.
저금이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대로라면 얼마 가지 않아 바닥을 드러낼 터였다.
스테파니가 서둘러 마트에서 일자리를 얻은 이유다.
남편에게는 국가에서 주는 연금과 밀린 연봉이 있지만 서류 확인 작업이 필요했다.
실종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남편의 신분은 멕시코 마약상의 미국 내 끄나풀에 불과했다.
마약수사국 내에서도 남편의 진실한 신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금과 밀린 연봉을 언제 받을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앞으로 반년만 기다리라고 했지만 정확한 시기는 기약할 수 없었다.
그때까지는 스스로의 힘으로 버텨야만 했다.
스테파니는 자신의 처지가 너무 한심스러웠다.
"아드님이 대학에 합격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예, 콜롬비아대에 합격했어요."
스테파니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곧 얼굴이 어두워졌다.
"부끄러운 말이지만, 가르시아의 등록금을 마련할 길이……."
"그 부분부터 도움을 드리지요. 아드님의 대학학비는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
제임스의 말에 스테파니는 깜짝 놀랐다.
기대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렇게 선뜻 대학등록금 문제를 해결해 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정, 정말인가요?"
"그렇습니다. 부인. 앞으로 부군의 연금과 밀린 연봉을 받으시게 되기 전까지는 저희가 책임지죠."
"가,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당장 경제생활이 어려우신 것 같은데 저희가 새로운 직장을 마련해드리죠. 만족하실 겁니다."
"새 직장이라고요?"
"예, 여기로 연락해보세요."
제임스가 명함 하나를 건네었다.
"어머? 여긴!"
스테파니는 제임스에게 받은 명함을 받아들고 깜짝 놀랐다.
명함에는 도시에서 가장 큰 쇼핑몰 이름과 사장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었다.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지역의 작은 슈퍼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곳이다.
"이미 저희 측과 이야기가 다 되어 있습니다. 좋은 조건으로 일하실 수 있을 겁니다."
"정, 정말 고마워요. 제임스씨."
"아닙니다. 스테파니씨. 부군처럼 정당하게 받아야 할 대가를 받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저희가 존재하는 거니까요."
스테파니의 눈가가 촉촉하게 젖어들었다.
정말 간절히 필요할 때 가장 필요한 도움을 받은 것이다.
"골든 그룹이라고 하셨죠. 정말 고마워요. 누군지는 몰라도 이걸 생각하신 분은 복 받으실 거예요."
스테파니의 말에 제임스는 감사의 뜻으로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가에 지긋한 미소를 지었다.
"부군의 실종에 대해서는 저희 측에서도 찾고 있습니다. 뭔가 알게 되면 연락을 드릴게요."
제임스의 말에 스테파니의 눈에서 불꽃이 피었다.
"정, 정말인가요?"
"예, 저희 회장님의 특별한 당부가 계셨습니다."
"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조금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격렬한 반응이었다.
제임스는 그런 스테파니의 등을 두드리며 격한 감정을 추수를 수 있도록 도왔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돌아서 나가는 제임스를 스테파니는 배웅했다.
그리고 자신에게 남기 두 개의 명함을 번갈아 보았다.
'이름 없는 영웅들의 보금자리라?'
스테파니는 명함들을 조심스럽게 품속에 갈무리하며 문을 닫았다.
* * *
짙은 어둠이 깔린 숲속에서 완전 무장한 한 무리의 사내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얼핏 보면 군인들로 보였지만 어깨의 마크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부대마크였다.
실버 울프!
늑대의 그림 밑에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부대 명칭이었다.
강혁이 그동안 훈련시킨 용병들로 만든 전술 부대였다.
얼굴에는 여러 개의 야간 스코프가 달려 있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총기와 각종 장비들도 하나같이 쉽게 보기 힘든 물건들이었다.
아직 세상 그 어떤 특수부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장비들이었다.
미군 특수 부대라고 해도 아직 보급 받지 못한 물건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었다.
이들은 가벼운 몸놀림으로 작은 언덕 위로 올라갔다.
선두에 선 남자가 모두를 향해 수신호를 보내자 일제히 동작을 멈추고 고개를 숙였다.
팀장으로 보이는 남자가 몸을 엎드려 100여 미터 떨어져 있는 숲속의 집을 바라보았다.
어둠이 짙었지만 적외선 스코프에 보이지 않는 것은 없었다.
집 밖에는 철제로 된 울타리가 쳐져 있고, 자동소총을 든 경비들이 지키고 있었다.
"철제 문 앞에 무장한 경비가 있다. 숫자는 셋이다."
얼굴에 끼고 있는 스코프를 돌린 후, 벽돌로 된 집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스코프에 벽 너머의 사람들이 열화상으로 나타났다.
벽 너머로 사람 형태의 붉은 그림자들이 움직이는 모습들이 보이는 것이다.
"좋아, 위치 확인 완료. 모두 여섯 명이야. 작전 시작해."
팀장의 지시가 떨어지자 실버 폭스는 여러 조로 갈라져 신속하게 흩어졌다.
그러자 팀장이 남아 있는 인원 중 한 명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수신호를 확인한 팀원이 조심스럽게 가방을 내려놓고 노트북과 드론을 꺼냈다.
올리버 윌슨 사장이 사들인 몇 개의 관련 회사들을 통해 만들어낸 시대를 앞선 드론이었다.
조원이 노트북을 조작하자 드론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숲속의 집을 향해 은밀하게 날아갔다.
잠시 후, 공격조가 숲속의 집을 둘러싸고 있는 철제 울타리에 도착했다.
"여기는 델타, 목표지점에 도착했다."
이들을 이끄는 공격조 조장이 귀에 낀 통신기로 팀장에게 보고했다.
"스코프3로 전환하라."
조장이 수신호를 하자 조원들 전체가 얼굴에 낀 마스크의 스코프를 돌렸다.
그러자 그들의 눈에 철조망 너머의 사람들이 보였다.
드론이 보내는 화명이 그들의 눈에 보이는 것이다.
즉각 조장이 조원 중 한 명에게 수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조원 중 하나가 총을 들고 허공을 향해 겨누었다.
그런데 들고 있는 소총의 모양이 매우 특이했다.
현재 세상 어떤 특수부대도 가지고 있지 않은 소총이었다.
소총에 여러 가지 장치들이 결합되어 있는 형태였다.
회귀 전 강혁의 시대에 등장했던 복합 소총의 일종이었다.
일찍부터 강혁의 의지로 관련 회사들을 사들여 엄청난 예산을 투자해 개발되었다.
이 복합소총의 특징은 미래에 등장했던 복합소총 개발의 흑역사들을 반영해서 개발됐다는 점이다.
개발 초기부터 개발팀들은 강혁이 건넨 한 권의 노트를 받았다.
그 노트 속에는 이렇게 하면 실패한다는 점들이 빼곡히 들어가 있었다.
달칵, 달칵, 달칵.
방아쇠를 연이어 당기는 미세한 소리와 함께 복합소총에서 스마트탄 세 발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스코프에 찍혀 있는 세 점에 소리도 없이 날아와 박혔다.
이들을 유도한 것은 허공에 떠 있는 드론이었다.
퍽, 퍼퍽.
경비를 서고 있던 세 명이 비명하나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스마트탄의 위력을 실전에서 확인한 실버울프 대원들은 혀를 내둘렀다.
―대단하군. 총알이 아니라 개인용 유도탄이라더니.
―이거 개발한 사람. 노벨상 받아야 하는 거 아냐?
―크레이지~
잠시 후, 이들은 철제문에 스프레이 같은 것을 뿌리자 하얀 거품이 나와 철문의 일정 부위를 덮었다.
쾅―
조원 중 하나가 거품이 굳은 부위를 치자 철조각이 떨어져 나갔다.
이들은 어둠 속에서 조용히 문을 열고 집으로 다가갔다.
쨍그랑!
창문이 깨지며 집 안으로 섬광탄이 떨어졌다.
번―쩍! 콰아아앙.
"으아아앗!"
섬광탄에서 나오는 빛과 강력한 소음에 집 안의 거실에 있던 사람들이 바닥을 굴렀다.
탕, 타, 탕.
창문 안으로 공중폭발탄이 레이저측정기에서 조준한 조준점으로 날아가 공중에서 폭발했다.
파아앙!
파편이 바닥에 있는 사람들의 몸에 떨어져 내렸다.
크아아앗!
문이 열리며 실버울프 대원들이 달려들어 사방으로 자동소총을 난사했다.
드르르르륵! 드르르르륵!
크앗! 크읏―
아직 살아 있거나 목숨이 완전히 끊어지지 않은 사람들이 순식간에 절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