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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87화 (187/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87화

187화

"하아, 우리도 그런 일을 당하면 골든 그룹에서 가족들을 도와주겠지?"

"흐흐, 왠지 든든한 뒷배가 생긴 기분이야. 고리타분한 관료제의 덫에서 자유로운 방패막이라고 할까?"

"그런데 골든 그룹의 존 회장은 미국인도 아닌데 왜 이런 일을 하는 거지?"

"내가 듣기로는 할아버지와 관련이 있다더군."

제임스 박이 동료의 의문에 대답했다.

"응? 너 뭐 좀 아는 거 있어?"

리우 량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물었다.

그러고 보니 제임스 박은 존 회장과 같은 나라 사람이다.

아무래도 자신들은 모르는 사정 같은 것을 알고 있을 가능성이 있었다.

"그게… 너희들은 잘 모르겠지만… 한국에서는 일제 강점기에 레지스탕스들이 있었는데……."

제임스 박은 강혁의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 당시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때문에 가족 모두가 힘들게 살았다는 사실까지 말해주었다.

특히나 존 회장의 아버지는 초등학교도 제대로 나오지 못했다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자 모두의 얼굴에 납득하는 표정이 어렸다.

"어쩐지, 그런 가정사가 있었군."

마크가 감탄한 표정으로 말했다.

"애국자 집안이었구만, 그 양반."

리우 량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심정을 알 것 같다는 표정이다.

모두의 얼굴에 잔잔한 미소가 어렸다.

"그래서 우리 같은 사람들 가족들에게 그렇게 신경을 써주는 거였군."

"그것도 국적에 관계없이 말이야."

"뭐, 존 회장은 명예 미국인이잖아."

실제로 강혁은 최승호와 함께 명예 시민권을 받은 상태였다.

한국 국적을 유지하면서도 미국에서 일하는 데 불편한 점이 없도록 미 정부에서 편의를 봐준 것이다.

그래서 강혁이나 최승호나 비자를 연장 받으려고 한국대사관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

"한국과는 강력한 동맹이니 그런 거겠지."

마크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이며 납득하는 표정이다.

사실 강혁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은 다양한 이유가 엮여 있지만, 이들로서는 그런 것까지야 아무래도 좋았다.

중요한 것은 강혁의 골든 그룹이 자신 같은 사람들을 위해 재단을 만들어 운영한다는 점이다.

"이제는 진짜 목숨 걸고 작전해도 안심이 된다."

마크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글쎄 말이야. 항상 그놈의 정치논리와 관료주의 때문에 회의가 들었는데……."

"존 회장 만세!"

이들이 강혁과 골든 그룹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극동 지부 본부의 다른 요원들이 그들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하나같이 전설로 여겨지는 베테랑들이었다.

"이봐, 들었어. 이번에 골든 그룹 건 조사한다며?"

"엇, 선배님."

마크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디 우리도 좀 볼 수 있을까?"

"아, 예. 여기 있습니다. 살펴보세요."

현재 C.I.A는 한국에 극동 지부 센터를 구축해 놓고 있었다.

중국의 부상과 함께 여러모로 일본이나 중국 등으로의 이동에 편리한 한국 측에 구축한 것이다.

중국과 일본 모두 현지 본부가 있지만 이곳은 각국의 현지 본부를 컨트롤하는 중심센터였다.

그래서 각국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베테랑 요원들도 많았다.

지금 이들에게 다가온 사람들은 모두 그런 요원들이었다.

마크는 선뜻 그들에게 골든 그룹의 업무 협조 요청이 들어 있는 서류를 건넸다.

다들 워낙 베테랑들이고, 각국에 인맥들이 많아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었다.

이들이 이렇게 먼저 나서서 도와준다고 하는 건 골든 그룹의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일부러 찾아와서 서류를 보여 달라고 할 이유가 없었다.

원래 이들은 훨씬 중요하고 위험한 일들에 동원되는 매우 스페셜한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움직인 것은 그만큼 골든 그룹에 대해 감동을 받은 요원들이 많다는 반증이었다.

"흠, 중국에 있는 미국 대사관으로 들어온 요청이군?"

제일 먼저 서류를 살펴본 다니엘 첸이 말했다.

첸은 리우 량처럼 중국계 미국인으로 중국에서도 오랫동안 활약을 해왔다.

"골든 그룹이 중국에 진출할 모양이에요."

첸과 안면이 있는 리우 량이 보충 설명을 건네었다.

"하긴 요즘 그런 미국 기업이 많지."

"어디 나도 좀 봐."

첸과 함께 온 다른 베테랑 요원들이 서류를 건네받고 살펴보았다.

"흐흥, 이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군. 상무부 쪽에 아는 사람이 있어."

다니엘 첸 옆에서 서류를 함께 살피던 은테 안경의 사내가 말했다.

그의 이름은 상첸 류.

극동지부 베테랑들 중에서도 특히나 중국 쪽 상류인사들에 대한 끈이 많았다.

"그래, 그럼 이건 내가 알아봐주지. 재정부에 끈이 있어."

다니엘 첸이 말했다.

"나도 한번 봐도 될까?"

여기저기서 서류를 돌려보더니 도와주겠단다.

게다가 이들이 말하는 끈이나 아는 사람들은 모두 고급 정보원들이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부의 은밀한 고급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괜히 베테랑 스파이라고 불리는 자들이 아닌 것이다.

사실 일개 기업이 대사관에 협조 요청을 부탁한 걸로 움직이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한편 이들이 살펴본 서류들에는 중국 공산당 정부의 중요 인사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대부분 중국에서 사업을 하려면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들 중 상당수가 현재 시진풍과 대척점에 서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시진풍을 제거하려는 은밀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그런 사실들까지 알 수는 없었다.

어디까지나 표면적으로는 중국에서의 사업상 알아두어야 할 정보들을 수집하는 것으로 보였다.

명단을 보고 알 수 있는 건 단지 현재 중국 정부를 움직이는 실세들의 정보 파악 정도였다.

그런데 명단들을 살피는 베테랑 스파이들의 눈빛이 이상하게 번쩍거렸다.

사실 명단에 있는 자들이 하나의 집단을 이루고 막대한 권력을 자기 마음대로 행사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었다.

만일 중국에서 새롭게 사업을 하려고 한다면 필연적으로 이들과 맞닥트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시진풍이 앞으로 중앙권력을 잡으려면 이들에 대해서 충분한 정보가 필요했다.

"좋아, 이 사람들은 우리들한테 맡겨 둬."

다니엘 첸이 서류에 있는 사람들 중 몇몇을 거론하더니 서류를 넘겨주고는 자리를 떴다.

이들이 자리를 떠나자 마크가 말했다.

"휴우, 저 사람까지 움직이다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그러게? 기업에서 필요한 정보들이라면 우리 정도에서 움직이면 되는데?"

"뭐, 이상한 건 아니지. 골든 그룹 일이잖아."

마크가 말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도 나직이 고개를 끄덕였다.

충분히 이해가 간다는 표정이다.

그만큼 요즘 관련 기관의 요원들 사이에서 골든 그룹에 대한 애정이 높았다.

"크크, 어쨌든 덕분에 우리 일이 준 건 사실이잖아?"

이들은 모두 쉽게 일이 끝날 것 같다며 좋아했다.

"그런데 저 사람들, 대다수가 안보 관련 분야 사람들인데……."

제임스 박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인상을 찡그렸다.

"왜? 뭐가 걱정되는데?"

"아니, 저 분들이 이런 대기업 민원 문건을 처리해 본 적이 있나 싶어서."

"뭘 걱정해. 저 사람들 다 첩보 분야에서 전설적인 사람들이야."

"맞아, 작정하고 파면 수십 년 전에 저지른 짓들도 증거까지 찾아서 들고 올 사람들……."

말을 하던 리우 량이 섬ㅤㅉㅣㅅ하며 말을 멈추었다.

뭔가 모를 말도 안 되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피식 웃었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어?'

리우 량은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상상을 떨쳐버리고 말을 이었다.

"뭐, 알아서들 잘 조사해 올 거야."

"그렇겠지?"

"당연한 거 아냐. 아무튼 우리도 슬슬 움직이자고."

마크의 말에 모두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     *     *

골든 타워 회장실.

강혁의 눈앞에는 하나의 커다란 노란색 서류봉투가 놓여 있었다.

회장실에 들어오자 책상 위에 놓여 있던 우편물이었다.

겉에는 아무 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누가 보냈는지 무엇이 들었는지 알 수 없는 우편물.

강혁은 비서실에 인터폰을 했다.

"이라나?"

"예, 회장님."

"책상 위에 있는 우편물 어디서 보낸 온 거죠?"

"예? 그런 게 있나요?"

"……?"

이리나의 깜짝 놀란 말투에 강혁은 흥미로워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서류봉투는 이리나가 올려놓은 것이 아니었다.

그럼 대체 누가 올려놓은 것일까?

강혁은 잠시 우편 봉투를 살피다가 종이칼을 꺼내서 밀봉된 입구를 열었다.

혹시나 모를 테러를 대비하지도 않고 거침없이 봉투를 연 것이다.

강혁은 서류 봉투 안에서 한 개의 조그만 USB를 발견했다.

잠시 말없이 USB를 살피던 강혁은 자신의 컴퓨터에 USB를 꽂았다.

그리고 USB 속에 있는 자료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

자료를 살펴보던 강혁의 표정이 일별했다.

"…이건?"

컴퓨터 화면 속에 나타난 자료들의 정체에 깜짝 놀라고 있을 때였다.

회장실의 문이 열리더니 올리브 윌슨이 두툼한 종이 서류를 들고 상기된 표정으로 들어왔다.

"윌슨 사장?"

"존…존 회장님."

"응? 왜 그러는 거죠?"

"중국 내 미국 대사관 측에 요청했던 서류가 왔습니다. 그런데… 이게 내용이 엄청납니다."

"그래요?"

강혁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저희가 원했던 내용은 물론이고, 그 이상의 고급 정보들이 한가득이에요. 하하."

"잘됐군요."

강혁이 미소를 지었다.

"이 정도면 중국 진출도 걱정할 것 없이 잘 될 것 같습니다."

"음, 기대해보겠습니다. 윌슨 사장님."

"하하, 사실 중국은 처음이라 걱정이 많았는데 이렇게까지 정부에서 도와줄 줄은 몰랐습니다."

윌슨 사장이 웃으며 대답했다.

조금 전 올리브 윌슨은 자신의 책상 위에 놓인 우편물을 살펴보고 깜짝 놀랐다.

우편물에는 미국 중앙 정부의 직인이 찍혀 있었던 것이다.

내용을 살펴보니 중국 진출을 위해 미국 대사관 측에 요청했던 자료들이 들어 있었다.

그런데 서류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 상당히 디테일했다.

지금 당장 중국에 진출한다고 해도 걱정이 없을 정도로 상세한 내용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게다가 요청하지 않았던 내용도 많이 들어 있었다.

미처 골든 그룹 내에서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도 빠짐없이 들어 있었다.

만일 미리 모르고 있었다면 현지에서 고생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내용들이었다.

'후훗, 역시 생각대로 일이 진행되고 있었군.'

강혁은 올리브 윌슨 사장의 말을 들으며 자신이 계획했던 대로 되어 간다고 생각했다.

이번에 올리브 윌슨 사장 쪽으로 들어간 자료들을 보면 확실히 그런 사실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미국 정보기관 내에서 골든 그룹에 대한 호감도가 엄청 높아져 있는 것이다.

강혁은 윌슨 사장에게서 서류를 건네받아 목차와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하나같이 중국 진출에 필요한 피가 되고 살이 될 내용들이었다.

'후훗, 감사할 일이군. USB에 보내온 내용과는 비교가 안 되지만 말이야.'

강혁은 흘깃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떠있는 자료들을 바라보았다.

그 속에는 앞으로 중국에서 상대할 사람들의 비밀스러운 정보들이 들어 있었다.

만일 이 속에 있는 자료들이 하나라도 외부로 유출되면 발칵 뒤집힐 정도의 정보들이 말이다.

하나같이 비밀스럽고, 치명적인 정보들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강혁은 양쪽의 자료들을 바라보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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