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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91화 (191/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91화

191화

이미 신상현은 자신의 외가 쪽 사람들을 모두 살해했다.

하지만 경찰은 외부 침입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음독자살로 종결시켰다.

I.M.F 사태로 인해 빚더미에 앉은 후, 일가족이 함께 동반자살 하는 사건들이 적지 않던 시기다.

있을 법한 이야기라 경찰 수사는 자살에서 더 나아가지 않았다.

하지만 강혁은 달랐다.

신상현이란 존재와 그가 외가에 가지는 분노와 혐오를 짐작하기 때문에 철저한 조사를 지시했다.

결국 첨단장비와 최고 수준의 수사관을 이용한 조사를 통해 현장에 가족 외에 다른 인물이 있었다는 증거를 찾아냈다.

가족이 아닌 제3의 인물의 DNA를 발견한 것이다.

아직 DNA수사가 한국에서는 초보적인 시절이고 시골이라 정밀한 감식이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다.

애초에 자살의 정황이 워낙 확실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외삼촌이 막대한 빚을 지고, 파산 상태였다.

사건을 수사하던 관할서에서 정황을 파악하고 대충 넘어가 버린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자살로 위조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강혁은 자기 사람도 쓸모가 없어지면 무참하게 죽여 버리는 신상현의 잔혹함에 전율했다.

'놈의 폭주를 최대한 막아야 해!'

강혁은 모든 첩보 자산을 동원해서 신상현의 일거수일투족을 24시간 감시할 것을 지시했다.

회귀 전에는 미처 가지지 못했던 힘이 지금 강혁에게는 있었다.

강혁은 자신이 가진 모든 힘을 동원해서 신상현을 막을 생각이었다.

똑똑!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이리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리나? 무슨 일이에요?"

"회장님, 정부기관에서 온 우편이에요."

"아, 기다리던 거야."

강혁은 이리나에게 우편을 받고는 종이칼을 찾았다.

"존 회장님."

"응?"

"아, 아니에요. 일 보세요."

이리나가 아쉬운 마음을 감추며 회장실을 나섰다.

강혁은 표정을 통해 마음을 읽는 사람이다.

이리나의 마음을 금세 간파했다.

뉴욕에 온 후 강혁은 일에 미친 사람처럼 열중했다.

자신에게 마음을 고백한 이리나를 제대로 돌봐주지 못했던 것이다.

강혁은 그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래도 시간을 좀 내야겠군.'

강혁은 이리나의 쓸쓸해 보이는 뒷모습을 바라본 후 다시 서류로 얼굴을 향했다.

서류 안에는 이전에 부탁했던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

대부분 한국에 센터를 둔 동아시아 지부에서 만들어낸 정보들이다.

골든 그룹이 한국에서 사업을 할 때 알아두어야 할 많은 정보들로 가득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평범한 우편이라 우체부가 보낸 것 같지만 실상은 매우 달랐다.

미 정보국에서 파견된 직원이 직접 자료를 회사로 보낸 것이다.

이리나의 손에서 강혁에게 올 때까지 절대적인 보안을 유지했다.

겉으로만 평범한 우체국 직인이 찍혀 있을 뿐 특급 보안 작전을 거쳐 강혁에게 도달한 자료였다.

그런 사실은 강혁도 직접 C.I.A국장에게 듣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강혁은 자료들을 살펴 본 후, 봉투 속에 있는 은색 USB를 들었다.

'…….'

이전에 온 자료에서 은색 USB에는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의 고급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강혁은 중국에 진출한 골든 그룹 북경 지부를 통해 필요한 자료를 시진풍에게 보냈다.

앞으로 시진풍이 중국에서 권력싸움을 벌일 때 매우 유용한 자료였다.

정보를 보낸 후 시진풍으로부터 직접 감사의 인사를 따로 받을 정도로 대단한 내용들이었다.

전화 속에서 들려온 시진풍의 목소리는 감격에 가까웠다.

"강 동생, 내가 동생의 은혜를 잊으면 사람이 아니라 짐승일세."

"하하, 형님도 참.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니야, 이건 이 우형이 진심으로 하는 말일세."

"하하. 저도 압니다. 시 형님."

"동생, 우형이 앞으로 중국의 권력을 쥐게 되면 그때는 반드시 지금의 이 은혜를 갚겠네."

"하하하, 알겠습니다. 저도 하루 빨리 그날이 오기를 바라겠습니다."

"고맙네. 고마워."

지난 기억을 돌이켜보며 강혁은 은색 USB를 컴퓨터에 꽂았다.

그리고 파일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으음, 이럴 수가?"

강혁은 파일 속 내용을 바라보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파일 안에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라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비밀들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많은 자들이 서로 얽혀 있었다는 말인가?"

강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료 속에 있는 자들은 하나같이 나는 새도 떨어뜨릴 만한 한국의 권력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의 권력은 놀랍게도 이미 일제 강점기 시대부터 시작하고 있었다.

나라가 망하고 나자 일본에게 들러붙어 권력과 부를 얻은 자들이 광복 이후에도 한국을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뿌리가 얼마나 깊고 넓게 퍼졌는지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자들이 기록되어 있었다.

이들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계와 재계를 아우르고 있었다.

여기에 언론과 법조계, 군대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세력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게다가 이들 중 유력한 자들은 끼리끼리 혼맥으로 인연을 다져 놓고 있었다.

강혁은 파일 속 정보를 보고 기가 찼다.

자신의 할아버지는 독립투사였다.

아버지가 어릴 때 집을 나가 평생을 독립을 위해 헌신하신 분이었다.

그 덕에 제대로 배우지 못한 아버지는 평생 하류인생을 면치 못했다.

자신 역시 사고로 절대기억능력을 가지지 못했다면 평생 말단군인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런데 친일파들은 해방 이후, 미군정 치하에서 다시 부활의 기회를 맞이했다.

독재세력과 유착관계를 형성하며 자신들의 세력을 오히려 더 공교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들이 얼마나 넓고 깊게 사회 각계각층에 퍼져 있는지 정보자료를 본 강혁은 혀를 내둘렀다.

'신상현… 네놈이 이들을 네 편으로 만든 게로구나.'

강혁은 명단 속의 상당수가 신상현과 직간접으로 연결된 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지금 신상현이 가진 힘은 그야말로 엄청난 것이었다.

대한민국 한정으로 그야말로 무소불위의 힘을 구가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강혁은 마음이 무거워졌다.

자신이 예상한 것 이상의 힘을 신상현이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전에는 그저 삼강의 영향력을 두려워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흑막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을 자신의 품에 끌어안은 것이다.

"신상현, 그래 어디 한 번 해보자."

강혁의 두 눈이 불타올랐다.

어찌 보면 이제 단순히 신상현과 대결하는 것 이상의 싸움이 되었다.

자신이 신상현을 건드는 순간.

강혁은 이전에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자들과의 대결이 벌어질 거라는 사실을 직감했다.

아니 대결은 이미 시작되었다.

강혁이 대통령과 협의 끝에 가짜 정보를 청와대 회의에서 흘린 순간부터 말이다.

이번에 신상현과 함께 큰 손해를 본 자들 대부분이 이 명단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들이 큰 손해를 입은 이상, 강혁에 대한 견제가 들어갈 것은 확실했다.

"운명인가?"

강혁은 잠시 허공을 응시했다.

신상현을 필두로 한 그들과의 싸움이 왠지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었던 운명처럼 다가왔던 것이다.

그리고 강혁은 이들과의 싸움을 절대 피할 생각이 없었다.

"응, 이건 뭐지?"

USB 속의 정보를 거의 다 읽은 강혁의 눈에 한 문장이 들어왔다.

자료의 끝부분에 적혀 있는 문장이었다.

이를 본 강혁은 깜짝 놀랐다.

[존 회장님, 국정원에서 당신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정부 결정이 아니라 독단적으로… 누가 사주한 것인지 알아보시오.]

"국정원에서 날 조사하고 있다고? 누군가의 사주?"

강혁은 뒷덜미가 싸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놈인가?"

직감적으로 강혁은 신상현을 떠올렸다.

대통령이 굳이 자신에 대해서 캐낼 이유는 없었다.

대통령에게는 그가 필요한 것이라면 이미 대부분의 것을 공개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과 세력, 미국 정계와의 관계.

김 대통령은 강혁이 가진 힘과 영향력에 대해서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감히 국정원을 움직여 관계를 악화시켜야 할 이유가 없었다.

대통령이 아닌데 국정원을 움직일 수 있는 자라면 지금 상황에서는 신상현밖에 없었다.

국정원에 대한 개혁 작업의 부작용으로 상당수 국정원 요원들이 신상현에게 붙었다는 정황이 있었다.

어느 부서의 누가 신상현의 수하가 되었는지 거기까지 구체적인 정보는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다만 다수의 불만분자들이 수상한 움직임을 보인 것이 발각되었다.

섣불리 건드렸다가는 큰일이 벌어질 수도 있어서 강혁도 은밀히 지켜보도록 지시를 내린 상황이었다.

이번 일은 그들 중 하나가 벌린 일일 것이다.

강혁은 잠시 몸을 의자에 눕혔다.

그리고 책상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리기 시작했다.

깊은 생각에 빠진 것이다.

어차피 시간문제였다.

강혁도 언제까지나 자신의 정체를 숨길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신상현도 자신에 대해서 언젠가는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 신상현에 대해서 알게 된 것처럼.

"그렇다면 선수를 치는 것도 좋겠지."

강혁은 씩 하고 입꼬리를 올렸다.

바야흐로 본격적인 전쟁의 북소리가 울리려 하고 있었다.

*     *     *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미국 현지에서 직접 생중계로 방송…….]

TV에서 방송 3사가 경쟁적으로 한 대기업 회장의 기자회견을 생중계로 방송하고 있었다.

I.M.F 사태로 한국경제가 나락으로 빠진 후, 국민들은 큰 상심에 빠져 있었다.

그런 시기에 국민들에게 한줄기 빛과도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한국인으로서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한 기업인이 한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이번 생중계는 한국에 대한 구체적인 투자계획을 발표하는 회견이었다.

기자들의 질문도 회장 본인이 받기로 했다.

골든 그룹에 대해 아직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생소하게 여기던 때였다.

이번 생중계는 국민들 대다수가 관심을 가지고 시청하는 회견이라 방송 3사가 모두 달려들었다.

시간이 되자 미국의 특급 호텔에 준비된 회견장으로 존 강 회장이 들어섰다.

사람들은 의외로 상당히 큰 키의 강혁을 보고 놀라는 표정이었다.

한국인들의 평균키가 아직 그리 높지 않던 시절이다.

190cm의 큰 키인 강혁은 그런 기자들의 눈에 신기하게 보였다.

회견장 중앙에 강혁이 자리했다.

사방에서 플래시 세례가 터졌다.

"안녕하십니까? 존경하는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 골든 그룹의 존 강 회장입니다."

회견장 정중앙의 탁자 앞에 준수한 외모의 강혁이 모습을 드러냈다.

대기업 회장이라기에는 너무나 젊은 외양과 운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체격.

두 눈에서 발산하는 맑은 정기.

TV를 시청하던 국민들은 미지에 싸여 있던 대기업 회장의 첫 등장에 환호했다.

그리고 그 시각.

자신의 저택에서 노집사와 함께 TV를 보고 있던 신상현은 들고 있던 잔을 놓칠 정도로 깜짝 놀라고 있었다.

"강…강 혁 형사님?"

두 눈의 동공이 커질 수 있는 만큼 최대한으로 커졌고, 입은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 것이다.

아니 한번은 의심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정황상 결코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강혁의 모습은 그런 신상현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마…말도 안 돼?"

신상현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일으키며 광기에 싸인 모습으로 웃기 시작했다.

"크하하하핫― 크하하핫하―"

노집사는 그런 신상현을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금까지 신상현을 옆에서 지키는 동안 한 번도 본 적 없는 광기에 찬 모습이었다.

아니 어쩌면 지금의 모습이야말로 신상현의 본모습인지도 몰랐다.

"크크크ㅤㅋㅡㅅ, 좋아. 좋아.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좋아. 크하하하핫―"

TV를 바라보며 신상현은 미친 듯한 웃음을 그칠 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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