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94화
194화
신철호 회장의 대저택.
지금 저택 주변은 경호원들이 엄중하게 둘러싸고서 감시하고 있었다.
어떤 외부 인사도 감히 이곳에 얼씬거리지 못하도록 검문을 철두철미하게 하고 있었다.
그런 중 한 대의 검은색 승용차가 저택 입구로 다가왔다.
선글라스를 낀 경호원이 가까이 다가가 신분을 확인하고 나서야 차가 저택 입구 쪽으로 들어갔다.
차가 입구를 통과한 후에도 한참을 지나서야 비로소 본가 건물이 등장했다.
차가 주차장에 서자 그 앞으로 유니폼을 입은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도열했다.
대체 차 안에 누가 있기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는 것일까?
마치 신철호 본인이 당도하기라도 한 듯한 환영 인파였다.
차 문이 열리자 아직 중학교 2학년 정도로 보이는 미소년이 차에서 내렸다.
도열해 있는 사람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외쳤다.
"도련님,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상현 도련님."
"오서 오세요. 도련님."
신상현은 그런 고용인들의 모습에 살짝 표정이 변했다.
하지만 이내 얼굴에 미소를 띠고는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풋, 머리를 좀 썼네요. 아버지.'
신상현은 괴물 신철호를 떠올리며 저택을 향해 걸어갔다.
오래 전 자신이 처음으로 이곳을 방문했을 때의 일이 떠올랐다.
노집사의 손에 이끌려 저택을 방문했던 날.
신철호는 자신에게 제대로 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냉대! 무관심!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 자신은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해야 했다.
'썩을~'
신상현은 만면에 미소를 띠면 주변 풍경을 바라보았다.
"그래… 아주 멋진 그림이겠어."
"아, 그렇죠. 여긴 정말 멋진 곳이죠."
신상현을 저택으로 인도하던 고용인이 대답했다.
"그렇군요."
상현이 미소 지으며 말을 받아 주었다.
'언젠가 보고 싶군. 이곳 전체가 거대한 불길에 휩싸여 잿더미로 변하는 모습을 말이지. 정말 멋진 그림일 거야.'
그때가 되면 상현은 불타는 대저택의 모습을 직접 두 눈으로 보면서 그림으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황제 네로가 불타는 로마의 모습을 보면서 시를 지었다는 일화처럼 말이다.
씨익―
상현은 마음속으로 이 거대한 저택이 불에 타오르는 모습을 생각하며 황홀한 듯 미소 지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최상현이라고 합니다."
"오오! 네…네가 내 아들 상현이란 말이지?"
신철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직접 신상현의 손을 꼬옥 잡았다.
그런 신철호를 보며 신상현은 속으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회귀 전의 기억 속에 신철호는 자신에게 이런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까지 세상 밖으로 자신의 모습을 일체 드러내지 못하게 했었다.
마치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살았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이렇게 자신을 환영한다.
확실히 신철호는 현재 신상현의 존재 가치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정치계에 등장한 신데렐라 최영혜의 양아들 최상현.
지금 각종 미디어에서는 최상현에 대해 조금이라도 기사화하려고 난리였다.
단 10여 초 미디어에 노출된 것만으로도 최상현은 엄청난 화제를 불러 일으켰던 것이다.
"미안하다. 내가 널 그동안 찾지 않았던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단다."
신철호는 자신의 옆에 신상현을 앉히고는 진심어린 표정으로 사과를 했다.
그 속마음이야 알 수 없었지만 아무튼 신상현은 아버지의 사과를 받아들였다.
"제가 태어나기 전의 일인 걸요. 절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셨다고 들었어요. 전 그걸로 만족합니다."
"아아, 미안하구나. 아직 어린데 이렇게 의젓할 수가? 역시 내 핏줄이라 뭐가 달라도 달라."
"그렇습니다. 회장님. 역시 호랑이의 핏줄은 호랑이인 것이지요."
김 비서가 신 회장 옆에서 맞장구를 쳤다.
"하하핫, 역시 그렇지?"
장성한 아들을 사고로 잃은 지 얼마나 됐다고 신철호는 상현의 등장에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넌 내 아들이다. 굳이 그 집에 양자로 있을 필요는 없다. 그러니……."
"아버지, 그 말만은 거두어 주십시오."
"……?"
"어디에 있던, 어떤 성이든 제가 아버님의 핏줄인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 아닙니까?"
"그…그렇지. 암 그렇지. 네가 내 핏줄인 것은 지울 수 없는 사실이지."
"제가 지금 다시 아버님 품으로 돌아간다면 어머님이 슬퍼하실 겁니다."
"그…그건 그렇지만……."
"저는 적어도 제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어머님 곁을 지켜드리고 싶습니다."
"그…그러냐?"
"예, 이제 막 정계에 진출하신 어머님께 제가 좀 더 힘이 되어드리고 싶군요."
"네가 힘이 되어 드린다고?"
신철호의 말에 상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외부에서는 잘 모르지만 사실 어머님은 제게 크게 의지하고 계신답니다."
상현의 말에 신철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신상현의 영향력이 설마 그 정도일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
"제가 옆에 있으면 어머님께서 정신적으로 많이 안정이 되신다고 하시더군요."
"오, 그래?"
"예, 저는 어머님께서 정치인으로 성공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흐흠."
"아버님께 도움을 드려야 하는 것도 당연히 자식이 할 도리이지만 그건 좀 더 커서 해도 되지 않을까요?"
"하긴 네가 회사를 맡으려면 앞으로 훨씬 더 많은 세월이 흘러야 할 일이지."
신철호는 잠시 생각해보는 것 같은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알겠다.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내가 양보하마. 하지만……."
"제가 장성하고 독립을 할 나이가 되면 어머님께서도 더는 붙잡지 않으실 겁니다."
"그래, 그래. 알았다. 대신 약속한 거다."
"예, 아버님."
"아버님이라― 거 참 듣기 좋구나. 그래 한 번만 더 불러 보거라."
"아버님."
"크하하하핫. 그래, 그래."
신철호는 호탕하게 웃었다. 마치 팔불출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들을 만난 기쁨을 한껏 표현했다.
그렇게 두 사람의 만남은 화기애애하게 끝이 났다.
신상현은 왔을 때처럼 다시 승용차를 타고 최영혜에게로 돌아갔다.
신상현이 저택을 떠나는 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본 후 신철호는 김 비서에게 물었다.
"어떻게 봤나. 김 비서."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조금 전까지 아들을 만난 팔불출 아버지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보다는 재계에서 귀신, 괴물이라 불리는 신철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김 비서는 그런 갑작스런 변화에 조금도 의아해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오히려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나무랄 데가 없었습니다. 도련님은 확실히 보통 아이는 아닌 듯합니다."
"내가 보기에도 그래. 아직 어린 나이인데도… 속에는 능구렁이가 들어 있는 느낌이야."
김 비서는 이번에는 어떤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오랜 비서 생활로 언제 어떤 대답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쓸 만하겠어."
"예, 회장님."
신철호는 냉정한 표정으로 입가에 와인을 가져갔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아들이 아니라 회사를 이어받을 후계자였다.
그런 점에서 신상현은 합격이었다.
아무리 자신의 핏줄이라고 해도 멍청하고 쓸모없는 녀석은 필요 없었다.
만일 오늘 신상현이 자신 앞에서 어리광이라도 피웠다면 가차 없이 버려졌을 것이다.
당장 이 집으로 들어오겠다고 대답했어도, 아웃이었다.
신철호는 뼛속까지 장사꾼이다.
그는 결코 손해를 보는 짓은 하지 않는다.
눈앞에 커다란 이익을 얻을 수단이 있는데 활용하지 않는 것은 바보 멍청이나 하는 짓이다.
신철호는 신상현을 뽑아 먹을 수 있을 때까지 뽑아 먹을 생각이었다.
그가 최영혜의 아들로 지내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결코 간과하지 않았다.
"앞으로 아가씨는 우리가 서포트 한다."
"예, 회장님."
"우리가 전면에 나서면 언론이 냄새를 맡을 거야. 입에 재갈을 물려. 돈이든 인맥이든 뭐든 사용해."
"예, 회장님."
오늘의 행동은 처음부터 끝까지 연기였을 뿐이다.
아들을 예뻐하는 팔불출 아빠 같은 것은 애초부터 신철호에게는 불가능한 이야기였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회사를 이어받을 유능한 후계자다.
그런 점에서 신상현은 그의 합격점에 들었다.
하지만 신철호는 알고 있을까?
신상현 역시 처음부터 끝까지 그의 앞에서 연기를 했을 뿐이라는 것을 말이다.
* * *
"협조에 감사드립니다. 로버트 국장님."
"하하, 무슨 말씀이십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이죠."
"……."
"회장님께서 국가를 위해 애쓰는 것에 비하면 더 도와드리지 못해서 죄송할 뿐입니다."
CIA국장 로버트 J 타일러는 연신 강혁에게 아부성 발언을 이어나갔다.
강혁이 현재 클링튼 행정부에서 가지고 있는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 잘 알기 때문이다.
국가 안보에 있어서도 강혁과 미국 정부가 잘 지내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 그의 주변을 돌고 있는 쥐새끼들을 일제히 소탕해 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묘한 것은 그들의 정체였다.
한국의 국가정보기관이 강혁의 주변을 캐고 있었던 것이다.
이 일은 미국 대통령의 귀에도 직접 들어가 큰 파장을 일으켰다.
엄연히 한국 국적을 가진 한국인의 신상을 한국정보기관이 조사한 것이지만 클링튼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엄연한 미국의 안보 문제로 파악하고 한국 대통령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항의를 한 것이다.
이 일의 파장은 엄청났다.
당장 김 대통령은 국정원 원장을 불러 상황을 파악하도록 지시했다.
강혁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과한 것은 물론이다.
로버트 국장과 대화하는 와중에 강혁은 당시의 일을 떠올렸다.
―존 회장, 정말 미안하오. 이 일은 절대 내가 지시한 일이 아닙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해가 안 되는군요. 대통령님."
강혁의 말투가 상당히 딱딱하다는 것을 느낀 김 대통령은 급히 사과를 이어나갔다.
―정말 미안하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내가 지시한 일이 아닙니다.
"정말 입니까? 대통령님."
―정말입니다. 존 회장. 제 말을 믿으셔야 합니다.
"……."
―누가 벌인 일인지. 이번 일은 철저히 조사해서 관련자를 엄벌하겠어요. 그러니 화를 푸시오. 존 회장.
"으음….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이번에는 대통령님을 믿어 보겠습니다."
강혁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김 대통령은 크게 조심했다.
지금 강혁은 한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 중이었다.
이런 시기에 강혁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벌어져서 김 대통령도 엄청 화가 났다.
김 대통령은 대체 누가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인지 누가 사주한 것인지 알아낼 생각이었다.
이번 일에 배후가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국정원에서 단독으로 강혁의 뒷조사를 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조사한 내용을 한국 정부에 보내셨다면서요?"
강혁은 생각을 마치고, 로버트 국장을 바라보며 물었다.
로버트 테일러 국장은 이번에 잡힌 국정원 요원들을 심문해서 몇 가지 정보들을 알아낸 상태였다.
"그렇죠. 지금쯤이면 한국 정부에서 관련자들을 한참 잡아내고 있을 겁니다."
"내부의 쥐새끼들을 잡아내는 일이니 김 대통령께도 나쁜 일은 아니겠네요."
강혁은 빙긋이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