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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195화 (195/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95화

195화

"뭐라고요?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다고요?"

"예, 장관님. 오셔서 도둑맞은 물건이 있는지 확인 좀 부탁드립니다."

"아, 거참. 알았어요."

노현우 장관은 형사의 말에 전화를 끊고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말했다.

"여보, 우리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군."

"예? 세상에. 어떡해요. 빨리 가 봐요."

"음, 어쩐다."

노 장관은 아이들을 바라보며 겸연쩍어했다.

가족들과 함께 모처럼의 휴가를 온 지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도둑이 어떻게 알고 빈집을 턴 모양이다.

"허허, 그놈들 간도 크지. 장관 집을 다 털 생각을 하네."

"아빠, 어서 돌아가요. 우리 집 물건 다 훔쳐갔으면 어떡해요?"

"그래요. 어서 올라가요. 아빠."

"쩝, 훔쳐갈 물건도 없을 텐데. 그래 알겠다."

노현우 장관은 해변에 쳐 놓은 텐트를 철거하고 부리나케 다시 서울 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을 달린 끝에 집에 도착하니 이미 경찰차들이 몇 대나 집 앞을 지키고 있었다.

형사들의 경례를 받으며 집 안으로 들어가자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여보, 세상에 여기 좀 보세요."

노 장관의 아내가 목소리를 높였다.

노현우 장관도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거실과 집 안 곳곳이 엉망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도둑들이 온 집 안을 다 헤집어 놓았다.

하지만 다행히 물건들이 사라진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집 안에 있는 물건들은 다 오래된 것들이라 가져가 봐야 돈이 되지 않는 것들이었다.

"허허, 이것 참."

노 장관은 혀를 찼다.

누군지 참 간이 크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현직 장관의 집이다.

도둑이 들었다는 말에 관할서에서 경찰팀이 급파되어 수사를 시작했다.

현직 장관의 집이 털린 것이라 관할서의 서장이 닦달을 한 모양이다.

과학수사대와 베테랑 강력계 형사가 꼼꼼히 집 안을 살폈다.

누군지는 몰라도 잘못 걸린 것이다.

"장관님, 없어진 물건들이 있으십니까?"

"글쎄요. 당장은 경황이 없어서 꼼꼼하게 살피지는 못했는데 어차피 집에는 현금이나 값나가는 물건이 없어요."

노 장관의 말대로 저택에는 특별히 값나가는 물건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도둑이 장관 집이라고 털었는데 헛걸음만 한 모양이다.

"나중이라도 도난당하신 물건이 확인되시면 연락 주십시오."

"예, 그렇게 하지요. 그런데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그게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신고가요?"

"예, 공중전화기로 신고가 들어온 걸 보면 동네 분들이나 지나가던 사람인 것 같습니다."

"그것 참 고마운 분이네요. 그런데 신원을 안 밝혔나보죠?"

"예, 기록을 보니 신원미상의 젊은 남자라고만 되어 있더군요."

형사의 말에 노 장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노 장관은 그저 고마웠다.

누군지는 몰라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신고까지 해줬으니 말이다.

"참, 여보, 여기 형사님들 힘드신데 음료수라도 좀 주세요."

"예, 여보, 잠깐만요."

노 장관의 부인이 곧바로 음료수를 내놓았다.

가족 여행에 가지고 갔던 음료수들이다.

"아이고, 괜찮습니다. 장관님."

"하하, 아니야. 다 같이 나랏밥 먹는 사람들끼린데. 목이 탈 텐데 시원하게 한 잔씩 마셔요."

"그럼, 잘 마시겠습니다."

장관씩이나 되는 사람이 몇 번이나 권하자 형사들은 인사를 하고 시원하게 음료수를 들이마셨다.

장관 내외는 형사들이 보기에 상당히 소탈한 사람들이었다.

정치에 대해서 특별히 관심이 없는 형사들이었지만 노 장관은 그들도 잘 알았다.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TV광고 연설로 김현중 대통령의 당선에 큰 역할을 한 인물이었다.

지금은 그 공로를 인정받아 고향인 부산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해양수산부 장관에 올랐다.

현 정권의 실세로서 김 대통령이 차기 대권 후보로 키우고 있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런 사람의 집에 도둑이 든 것이니 이번 사건을 맡은 형사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신고 전화를 접수받자마자 긴급 출동한 것이다.

하지만 형사들이 들이닥친 시점에는 이미 도둑들은 도망을 친 이후였다.

온 집 안이 엉망이 되어 있어서 휴가를 떠난 노 장관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내어 연락한 것이다.

다행히 도난당한 물건이 없다니 그나마 안심이었다.

하지만 현직 장관의 집이다.

과연 아무 것도 값나가는 물건이 없었을까?

보통 도둑들은 집을 털기 전에는 사전 조사라는 것을 하는 법이다.

그렇지 않다면 오늘처럼 낭패를 당하는 법이 말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아마추어의 짓이 아닐까 했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솜씨가 상당히 깔끔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비하면 뒤처리가 너무 엉망이라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느낌이었다.

사건을 맡은 베테랑 형사는 이번 사건이 뭔가 말이 안 되는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문을 따고 집 안에 들어왔다가 도망친 것까지 확실히 프로급인데…….'

집 안에는 그 흔한 지문도 족적도 없었다.

온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고도 범인을 특정할 증거들이 발견되지 않았다.

확실히 전문적인 솜씨였다.

그래서 형사는 혹시나 노 장관이 값비싼 물건을 어딘가 감춰놓고 도둑맞은 사실을 감추는 것은 아닐지 의심했다.

그러나 집 안의 어디에도 그런 물건을 숨길만 한 장소는 분명히 없었다.

도둑이 분명 허탕을 친 것이다.

프로급 도둑이 한 일치고는 너무나 허무한 짓거리였다.

도난 수사의 베테랑인 오 형사의 눈에 비친 이번 사건은 상당히 비정상적인 사건이었다.

그의 촉에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신고를 했다? 그런데 대체 누가 신고한 걸까? 대체 어떻게 알고?'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은 대체 누가 어떻게 안 것일까?

지나가던 사람이 이 저택에 도둑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아니 어려운 정도가 아니라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범인 중 누군가가 전화를 했다?

대체 왜?

오 형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아귀가 하나도 맞지 않는 이 사건에 머리를 갸웃거렸다.

한편 다음 날 신문에는 현직 장관의 집에 도둑이 들었다는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특히 대한일보에서는 뭔가 큰일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기사를 실었다.

교묘하게 독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그런 기사였다.

도둑들이 현직 장관의 집에서 엄청난 금품을 털었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장관이 경찰에 밝히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는 것이다.

만일 집 안에 그런 값비싼 물건이 있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큰 낭패를 당할 것이라서 말이다.

이런 내용의 글들로 가득한 기사였다.

신문을 읽은 노 장관은 대노했다.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적어 놓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독자들은 그런 사정을 알아줄 리가 없었다.

"이런 빌어먹을 자식들~"

장관 집무실에서 노 장관은 크게 화를 냈다.

노현우 장관은 사실 국회의원 시절부터 대한일보와는 악연이 있었다.

변호사 시절 노현우는 우연한 기회에 요트 경주를 접하게 되었다.

당시 우리나라는 요트 경주 자체가 생소한 종목이었다.

노현우는 올림픽 출전을 염두에 두고 요트 조정에 심취한 적이 있었다.

당시 작은 경주용 요트를 구입했는데, 이걸 가지고 대한일보가 왜곡 보도를 했다.

구수한 서민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노현우를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보도였다.

서민 이미지로 어필하고 있지만 사실은 엄청난 고급 요트를 취미로 가진 그런 사람이란 보도였다.

결국 노현우는 대한일보에게 소송을 걸었고, 길고 긴 법정투쟁 끝에 결국 승소했다.

그렇다 보니 노현우와 대한일보 사이에는 좋은 감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번 기사만 봐도 악의적이고 왜곡된 기사로 가득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오른 노현우는 당장 소송을 걸 준비를 했다.

예전부터 노현우는 다른 정치인들과는 달리 언론에 머리를 숙이지 않았다.

언론과 정치인의 관계를 생각해보면 상당히 일반적이지 않은 대응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정치인이라면 어떻게든 언론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현우는 기존의 정치인들과 많이 달랐다.

대한일보 등 언론계 인사들은 그런 노현우를 좋게 보지 않았다.

자신들의 권력에 도전하는 발칙한 존재로 보았다.

더 크기 전에 찍어 누르거나, 버릇을 고치거나 해야 한다며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이번 일도 그런 측면에서 기사화된 것이다.

대한일보를 필두로 전국 일간지들과 지역 신문들이 여기에 가담했다.

대부분 대한일보가 쓴 기사를 그대로 받아쓰거나 확대 과장한 기사들이 범람했다.

거의 모든 신문들이 관성처럼 이번 사건의 보도를 대한일보가 만든 프레임대로 기사화한 것이다.

그런 사실을 확인한 노현우 장관은 한국 언론의 현실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어찌 된 게 제대로 확인을 해보고 쓴 기사가 한 군데도 없나? 쯧쯧."

"그러게 말입니다. 장관님."

노현우의 비서관이 허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가 보기에도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론들이 아예 노현우 장관을 엿 먹이려고 작정을 하고 쓴 기사였다.

이렇게 되면 정정 보도 신청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기사가 정정되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사람들의 기억 속에는 정정 보도된 것은 남지 않는다.

그전에 떠들썩하게 보도된 기사들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 노현우에게 이번 기사는 확실히 악재였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그 이유는 언론의 비양심적인 행태가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마음이 가는 대로 갈겨쓴 이런 기사는 커다랗게 활자화되어 실린다.

하지만 정정 보도 기사는 신문 한구석에 자그마하게 실리기 때문이다.

노현우는 이런 언론의 행태가 반드시 고쳐져야 한다고 믿었다.

정치인으로서 자신이 마땅히 해야 할 사명으로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반론 보도 신청하고 언론 인터뷰 잡으세요."

"예, 장관님."

비서관이 대답했다.

하지만 걱정이었다. 이미 언론에 찍힌 노 장관이었다.

과연 어느 언론이 인터뷰 내용을 있는 그대로 보도해줄 것일까?

걱정부터 되는 것이다.

"어? 장관님."

"왜 그러나?"

"이 신문 좀 보십시오."

"응? 왜? 또 내가 서민 이미지로 정치하면서 뒤로는 사치스런 취미나 즐기는 그런 놈으로 그렸나?"

"아뇨, 이 신문은 완전 반대인데요?"

"그래?"

노 장관은 비서의 말에 긴가민가하는 표정으로 신문을 받아들었다.

서울 데일리라는 신문이었다.

서울 데일리는 원래 수도권 지역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신문이었다.

하지만 최근 완전히 탈바꿈하며 전국 일간지로 도약했다.

찬찬히 기사를 읽은 노 장관의 얼굴 표정이 확 변했다.

"이야, 이거 누가 쓴 건지 참 잘 적었다."

"그렇죠?"

"여기 당장 인터뷰 잡아."

"예, 장관님."

비서관이 환한 얼굴로 대답했다.

노 장관이 이렇게 말할 만큼 서울 데일리의 기사는 기존의 흐름을 거스르고 있었다.

다른 신문들은 대한일보가 쓴 기사를 거의 복사해서 붙여 쓴 수준이었다.

그에 반해 서울 데일리는 상당히 깊이 있는 심층 보도를 했다.

이번 사건의 실체가 무엇인지 직접 발로 뛰며 쓴 기사였다.

게다가 거기서 더 나아가 이번 사건을 다루고 있는 기존 언론들을 비판적으로 지적까지 했다.

이런 식으로 대한 일보에 반하는 기사는 기존에는 없던 일이었다.

언론계 일각에서는 한국 언론들의 기존 관성을 거스르는 일약 사건으로까지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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