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196화
196화
"여…여긴 어디지?"
정신을 차린 여주학은 주위를 돌아보며 놀라고 있었다.
자신은 분명히 신상현의 명령으로 노현우 장관의 집에 몰래 잠입했었다.
특수부대 출신인 자신에게 노현우 장관의 집에 몰래 침투하는 건 어려운 임무가 아니었다.
그런데 잠입에 성공했다고 생각한 순간 갑자기 등 뒤에서 누군가 자신을 기절시킨 것이다.
아주 깔끔한 솜씨였다.
갑자기 뒤에서 당했다고는 하지만 자신을 상대로 반격의 틈을 전혀 주지 않았다.
자신을 공격한 자가 상당한 수준의 인물이라는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젠장 누구 짓이지?'
여주학은 입맛이 썼다.
평소 자신의 실력에 대해 상당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척도 없이 자신의 뒤로 접근한 사내는 확실히 대단한 실력을 지닌 자였다.
눈앞에서 자신과 일대일로 겨룬다고 해도 쉬이 승부를 점할 수 없는 자일 것이다.
여주학은 온 몸의 감각을 곤두세우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현재 자신은 의자에 앉혀진 상태에서 온 몸이 묶여 있었다.
누군지 모르겠지만 자신과 같은 사람에 대해 잘 아는 자가 묶었다.
만일 일반적인 방식으로 묶었다면 벌써 자력으로 몸을 묶은 밧줄을 풀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방식은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어서 도저히 스스로 풀 수가 없었다.
여주학은 그런 사실을 확인하고 일단 자신을 잡아 가둔 자들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조금의 틈이라도 발생한다면 그때 탈출한 생각이었다.
지금쯤이면 자신을 보낸 자들도 이상한 점을 눈치챘을 것이다.
어쩌면 이미 사람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사방이 어둠으로 가득찬 방 안에 희미하게 빛이 새어들었다.
그리고 이내 문이 덜컥 열리며 세상이 환해졌다.
여주학은 일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래서 잠시 눈을 감았다가 서서히 두 눈을 뜨고는 방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을 살폈다.
구릿빛 피부에 근육질의 남자들과 눈빛이 서늘한 날씬한 남자들이 여럿 서 있었다.
하나같이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는데 의외로 피부색이 다른 외국인들이 몇몇 있었다.
여주학은 바짝 긴장했다.
이들 중 누구 하나 자신보다 아래인 자가 없다는 것을 직감했던 것이다.
몸에서 느껴지는 오라가 하나같이 잘 연마된 전문가들이었다.
여주학은 모두가 못해도 자신과 동급의 특수전 전문가라는 사실에 놀라고 있었다.
이런 정도의 실력자들을 한꺼번에 모을 수 있는 단체는 정부조직이 아니면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이 정부 요인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대체 대한민국 정부가 아니라면 누가 이런 자들을 한꺼번에 데리고 있다는 말인가?
여주학은 머리를 팽팽 돌려가며 현재의 상황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그러던 중 여주학은 그들 중 낯익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 깜짝 놀랐다.
"엇? 교, 교관님?"
"어이, 여주학이 잘 지냈나?"
여주학은 깜짝 놀랐다.
눈앞에 707특임대의 전설 이규철이 서 있었기 때문이다.
여주학은 HID 출신으로 북파 공작원이었다.
특수임무 수행을 위해 여러 특수전 부대의 베테랑들을 교관으로 하는 훈련 중 이규철을 만났다.
이규철은 당시 일대일 격술 훈련의 교관이었다.
맨손 대결에 관한한 이규철은 최고의 실력자였다.
난다 긴다 하는 동료들 중 누구도 이규철을 넘어설 수 없었다.
교관들 중에서도 이규철을 일대일에서 넘어설 실력자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만큼 일대일 전술에서 이규철은 독보적인 실력자였다.
"교관님이었습니까?"
여주학의 말에 이규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여주학은 슬며시 마음속으로 위로가 되었다.
조금 전까지 누가 자신의 뒤를 소리도 없이 접근해서 엿을 먹였나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규철이라면 말이 된다.
그는 자신들과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전설 중의 전설이었으니까.
그런데 눈앞에 서 있는 다른 사람들도 이규철에 못지않은 듯이 보였다.
"여주학이, 여친이 지금 많이 아프다지?"
"어, 어떻게 그걸?"
"그 병, 수술을 받아야 한다던데. 큰돈이 든다고 하더군. 그걸 미끼로 사주를 받았나?"
"……!"
여주학은 깜짝 놀랐다.
이미 자신이 누군가의 사주를 받았다는 것 까지 다 알고 있었다.
그러니 자신이 노 장관의 집으로 잠입할 때 놓치지 않고 습격한 것이다.
여주학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다 알고 있으니 긴말은 않겠습니다. 다 알려드릴 테니 절 놓아 주십시오. 그 아이 제가 아니면……."
"수술 받아야 한다며? 이미 다 조치해 놨다."
"예?"
"여기 잘 봐라."
여주학은 눈앞의 여권과 비행기 티켓을 보고 깜짝 놀랐다.
"네 여친 내일 미국으로 가서 수술 받기로 했다."
"뭐라고요?"
"여기서 수술 받으면 널 사주한 자들이 찾아내서 복수할 거다. 그러니 미국으로 가야 안전해."
"……!"
이규철의 말을 들으며 몇 번이나 깜짝 놀랐다.
이미 여자친구의 병이 무엇인지, 어떤 수술을 받아야 하는지 다 알고 조치를 취해 놓은 상태였다.
"바로 여기서 나가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여친과 미국으로 떠나라."
"교, 교관님."
이규철은 직접 군용칼을 꺼내서 묶은 밧줄을 끊었다.
잠시 후 여주학은 자유롭게 되었다.
"아무 것도 안 물으시는 겁니까?"
"물으면 대답해 줄래?"
이규철의 말에 여주학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네게 접근해 이번 일을 맡긴 녀석이 누구냐?"
"…샤크라는 별명을 가진 남자였습니다. 제 군대 후배라고 하더군요."
"……!"
"샤―크?"
이규철은 여주학의 말에 안면근육이 꿈틀거렸다.
이규철 역시 샤크 박광수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북파공작원 출신으로 작전 중 민가에 침입해 강도 살인을 저질러 큰 문제를 일으킨 자였다.
하지만 고위층에서 그런 사실을 쉬쉬하다가 결국 강혁과의 문제로 불명예제대를 했다.
여주학은 모든 것을 술술 불기 시작했다.
"흠, 집 안에 숨어 있다가 휴가에서 돌아온 노 장관 가족을 살해할 생각이었다고?"
"부끄럽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여주학의 말에 의하면 강도가 한 짓으로 꾸밀 생각이었다고 한다.
이규철은 여주학을 택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북파 공작원은 아무나 뽑지 않는다.
여주학은 어린 시절 부모를 여의고 고아원에서 불우하게 자랐다.
혈혈단신 죽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도 찾을 가족이 없는 사람을 가려 뽑는 경우가 많다.
제대 후, 만난 여자 친구가 하필 병으로 큰돈이 필요한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도 선정이유였을 것이다.
"좋아, 넌 이대로 돌아가서 여자친구와 바로 미국으로 떠나라."
이미 여주학의 여자친구는 이들이 빼돌려 놓은 상황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미 여주학을 사주한 샤크 박광수가 무슨 일을 벌였을지 몰랐다.
여주학이 자리를 벗어나자 이규철이 이끄는 전술팀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음, 잘 처리하셨습니다. 앞으로도 긴장을 늦추지 마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그런데 왜 그쪽에서 노 장관을 노리는 겁니까?
이규철이 의아한 음성으로 물었다.
위성 통신을 통해 들려오는 이규철의 음성에 강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말을 이었다.
"선배님, 그분이 바로 다음 대통령이 되실 분입니다."
"……!"
"그 녀석도 그런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그렇습니까?"
"예, 그러니 부디 꼭 잘 지켜주시기 바랍니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제 목숨을 걸고 지켜내겠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이규철의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화를 끊은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빌딩숲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예상했던 대로였다.
자신의 정체가 노출된 사실을 눈치챈 강혁은 신상현이 그대로 잠자코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강혁 역시 회귀자라는 사실을 눈치챘다면, 일을 서둘렀을 것이다.
그중 하나가 바로 삼강의 후계자인 자신의 형 신석준을 친 것이다.
사고로 위장해서 죽일 것이라는 것은 쉽게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서 미국에서 유학 중인 신석준의 주위를 감시했다.
하지만 사고를 막을 수는 없었다.
다행히 목숨을 구할 수는 있었지만 하마터면 신석준이 죽을 뻔했다.
이 일 이후로 강혁은 크게 경각심을 가지고 팀을 보충하고, 철저한 감시망을 형성했다.
그래서 신상현의 집과 주변을 24시간 철저히 감시하는 한편, 그가 노릴 또 하나의 표적을 예상했다.
바로 노현우 장관이었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다음 대선에서 승리해서 대통령이 될 사람이다.
하지만 자신의 등장으로 초조해진 신상현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신상현은 자신의 양모인 최영혜를 이미 역사와 달리 대한민국의 영웅으로 만들어 놓았다.
삼양 백화점 붕괴사건을 희생양으로 삼아서…….
강혁은 비로소 당시의 사건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날의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자신이 목숨을 걸고 막으려고 했던 사고를 그는 오히려 방조하고, 사고가 나도록 만들었다.
그 피의 희생을 밟고 서서 자신의 욕망을 이루려하는 것이다.
강혁은 그런 신상현을 결코 용서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의 야망을 끊어 놓을 생각이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놈, 이번 대선에서 최영혜를 대통령으로 만들 셈이겠지. 그리고 자신이 조정할 셈으로 말이야."
그를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셈인 모양이었다.
벌써 유력한 후보인 노현우를 강도살인으로 꾸며 죽이려고 하지 않았던가?
이규철의 전술팀이 사주받은 여주학이란 자를 막아내지 못했다면 결국은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이규철은 여주학을 기절시킨 후, 경각심을 가지게 하기 위해 도둑이 든 것처럼 꾸미고 신고까지 했다.
그 여파로 언론이 노 장관을 부패한 정치인으로 매도하게 되었지만 말이다.
강혁은 신상현의 편이 되어줄 기존 언론을 그대로 두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언론 쪽도 손을 봐야겠어."
전화기를 든 강혁은 여기저기에 전화를 걸어 몇 가지 지시를 내리기 시작했다.
쾅!
대한 일보 편집국 국장은 책상을 두드리며 화를 냈다.
"이거 이 자식들. 대체 뭐하는 짓이야?"
"왜 그러십니까? 국장님?"
"이거 좀 봐. 응?"
부장의 말에 편집국 직원들이 모여들었다.
편집국 한 국장의 책상 위에는 서울 데일리의 기사가 펼쳐져 있었다.
"엇? 이게 뭐야?"
"왜 그래?"
"이야, 이놈들 간이 부었나?"
편집국 직원들은 모두 돌아가며 서울 데일리 기사를 읽었다.
기사의 내용이 상당히 신랄했다.
노골적으로 대한일보 등 노 장관에 대한 기사를 비판하는 기사였다.
"서울 데일리가 언제부터 우리한테 반기를 들었어?"
"글쎄 말입니다.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놈들이네요."
"이렇게 되면 전쟁이야. 이놈들 아주 작살을 내줘야겠어."
대한일보 편집국 국장 한일주는 아주 화가 났다.
감히 한국에서 자신들이 낸 의제에 반하는 기사를 내는 신문사가 있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한일주는 당장 사장실로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