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02화
202화
사람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정일환의 화려한 화술과 적절한 제스처와 농담에 좌중은 까르르 웃어가며 열기를 더해갔다.
순식간에 좌중을 빨아드린 정일환은 마지막 항목을 제외하고 모든 내용들을 발표해버렸다.
정일환이 자금 융통 대책만 남겨놓고 온라인 뉴스 서비스와 수익 구조까지 발표했을 때였다.
청중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자리에서 일어나 정일환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아하하! 이거 반응이 너무 뜨거운데요?"
사원들이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자 정일환도 마음이 뜨거워졌다.
이들도 자신들이 참된 언론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열망해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이들도 당장 이번 달 월급을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떻게 할까?
지금의 찬사와 환호는 바로 비난과 악평으로 바뀔 것이 뻔했다.
'하, 역시 말해줘야겠지?'
정일환은 자포자기한 듯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
"여러분 최근 저희 회사에 광고가 모두 끊어졌는데 말입니다. 아하하."
정일환의 말에 강당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모두들 알고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오늘 설명회가 열린 것이었다.
모든 사원들의 눈과 입이 정일환을 향했다.
"사실은……."
덜컹!
문이 열리며 광고팀 이예림 팀장이 뛰어 들어왔다.
"엇? 자네 여기 없었나?"
"예, 사장님. 갑자기 전화가 몰려와서 말이지요. 도저히 참석할 시간을 낼 수 없었어요."
"……?"
"여러분 기뻐해주세요. 지금 광고가 물밀듯이 몰려오고 있어요. 그것도 전부 엄청난 건들이에요."
"뭐, 뭐라고 그게 사실인가?"
"예, 사장님. 외국계 회사들이 광고 넣겠다며 문의가 엄청 와요. 이제 광고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요!"
"와아아아아!"
강당에서 일제히 환호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고려 일보와 정일환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모두들 두 사람이 미리 다 짜놓고 일종의 연기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이밍이 너무 그럴듯했기 때문이다.
광고를 다 받아 놓고는 서로 짜고 친 연출이라면서 말이다.
그래도 효과는 너무 좋았다.
모두의 걱정으로 차 있던 분위기를 완전히 싹 바꿔 놓는 최고의 연출이었다.
정일환은 기뻐하는 사원들을 바라보며 정신이 없었다.
'아하하!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외국계 광고라니? 내가 꿈이라도 꾸는 건가?'
띠리리리―
품속의 전화기가 울렸다.
폴더를 열자 김신환의 번호였다.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대자 김신환의 열띤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너 혹시 외국 광고 들어왔냐?
"어? 너는 어떻게 알았어?"
―지금 우리 회사뿐 아니라 지태네 회사에도 외국계 회사 광고가 엄청 몰려오고 있단다.
"뭐라고?"
―일환아,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냐?
"그, 글쎄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정일환과 김신환이 어리둥절한 상태로 통화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더움의 이재학 사장이 자신의 방에서 강혁과 위성 화상 통화를 하고 있었다.
"예, 회장님. 지시하신 대로 일을 처리했습니다."
[음, 좋아요. 그 친구들 대한일보의 횡포에 기겁을 했을 텐데 이번 일로 전화위복이 되면 좋겠군요.]
"하하, 괜찮지 않을까요? 지금쯤 엄청 환호하고 있을 겁니다.
[아하하, 그래요?]
"아무튼 회장님이 미리 언질을 해주신 대로 잘 진행이 된 것 같습니다."
[저도 아직 양심이 살아 있는 젊은 언론인들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강혁은 서울 데일리를 시작으로 대한일보의 행포에 맞서 싸울 언론들이 등장하기를 기대했다.
오랫동안 수동적으로 따르기만 하던 언론들 중 서울데일리가 기치를 세우고 나선 셈이었다.
누군가 서울 데일리를 따라 움직여만 준다면 이들의 방패막이 되어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방안 중 하나가 더움을 앞세운 인터넷 뉴스 서비스와 광고였다.
그래서 더움의 이재학 사장과 미리 이야기를 맞춰 둔 것이었다.
기존의 기득권 언론 매체를 제외한 중소 언론사들에게 인터넷 뉴스 서비스를 홍보하라고 말이다.
이재학은 각 회사에 이와 관련된 홍보물들을 보냈다.
그중에서 고려 일보의 정일환과 두 친구들이 제일 먼저 반응을 보인 언론사 사장들이었다.
나머지는 아직 별다른 생각이 없거나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세 회사가 말이라도 맞춘 듯이 일제히 대한일보를 저격하고 나섰다.
이 사실을 확인한 강혁이 더움의 이재학을 시켜 중간에서 움직이게 만들었다.
계열사들과 우호적인 기업들을 움직여 필요한 만큼 세 회사에 광고를 넘겨주도록 하라고 말이다.
이제 정식으로 포털사이트를 통해 뉴스 서비스가 시행되기 전까지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이다.
이들이 대한일보의 방해에도 살아남는다면 그 선전효과는 매우 클 것이다.
지금까지 움츠리고 있던 언론사들이 일제히 일어날 수도 있었다.
강혁은 앞으로 더 많은 언론사들이 서울 데일리의 뒤를 따를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다.
한편 강혁은 알파팀을 통해 세 언론사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감시를 시켰다.
그래서 금융권에도 대한일보가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대한일보 사주인 서성주 회장이 가지고 있는 강대한 인맥의 힘이기도 했다.
은행들과 거래하고 있는 거대 기업의 회장들이 언론사들과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다.
"아무래도 한국에 내 뜻대로 움직여 줄 은행들이 필요할 것 같군."
이미 일본의 많은 은행들을 손아귀에서 쥐락펴락하고 있는 강혁이었다.
한국에서 자신을 따를 사람들을 지켜주려면 역시 금융권을 장악이 필요했다.
"이재학 사장님, 그럼 계속 수고해주세요."
[예, 회장님. 걱정 마십시오.]
위성 화상 통신이 끊어지며 스크린 속의 이재학 사장이 사라졌다.
강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뉴욕 맨허튼 거리를 내려다보기 위해 유리 창문 쪽으로 걸어갔다.
거대한 전면 강화 유리 아래로 화려한 별무리들이 수없이 반짝거렸다.
셀 수 없이 늘어서 있는 빌딩숲들이 만들어내는 별천지였다.
강혁은 지금의 언론 전쟁이 마무리가 되면 금융권 장악을 위해 움직일 생각을 굳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양의 달러를 눈앞에 내밀면 다들 알아서 달려들 터였다.
"흐흠, 볼만하겠군."
"회장님, 가져왔습니다."
이리나가 얼음을 넣은 와인 잔을 들고 다가왔다.
"고마워, 이리나. 이제 퇴근해야지."
"호호, 이것만 드리고요."
와인 잔을 받아 든 강혁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항상 고마워, 이리나."
"정말 고맙게 생각하면……."
이리나가 매혹적인 미소를 발산하며 손가락을 입술에 살짝 갖다 댔다.
이리나의 두 눈이 별빛처럼 반짝거렸다.
"…이리나……."
불그스름한 두 뺨과 사랑스러운 눈빛이 강혁을 그윽하게 응시했다.
강혁은 왼손으로 이리나의 가냘픈 허리를 부드럽게 감싸 안고는 입술을 맞추었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시간이 멈춘 듯했다.
한참을 지나 키스가 끝나자 이리나는 키스의 여운을 한껏 음미했다.
그리고는 감았던 두 눈을 뜨고 강혁을 그윽한 눈으로 응시했다.
"회장님… 사랑해요."
"…이리나."
강혁은 다시 한 번 이리나의 목을 끌어안고는 열정적으로 키스를 나누었다.
두 사람 사이의 뜨거운 열풍이 가실 줄을 몰랐다.
* * *
"어디라고요?"
메이저리그 사무국의 홍보담당 이사 잭 마일러는 전화를 받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예, 한국 대사관의 이재영 영사입니다.
"아, 그렇군요. 그런데 왜 영사님께서 이런 일에 신경을 다 쓰시는지 모르겠군요."
―하하, 아무래도 저희로서는 다양한 언론사에 기회를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라서 말이지요.
"뭐, 아무튼 알겠습니다. 이 영사님. 앞으로 참고하겠습니다."
―예, 아무쪼록 잘 생각해주시기 바랍니다.
전화를 끊은 잭 마일러는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사무총장 로이스 맥컬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슨 일이야? 잭?
"로이스, 신경 쓰이는 전화를 받아서 말이야."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자세히 설명해봐.
잭 마일러는 한국 영사가 전해준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무슨 말이지 알겠어. 잭.
"어떻게 할 거야? 로이스."
―그 건은 정해져 있어. 잭.
"……?"
―앞으로도 우리 메이저리그는 서울 데일리를 통해서 한국 측에 홍보할 거야.
"특별히 그래야 할 이유가 있나?"
잭 마일러가 물었다.
―물론이지. 아주 다양한 이유가 있어. 우선 서울 데일리의 사주가 누군지 아나?
"난 모르지."
―존 강 회장이야.
"뭐라고? 그 사람. 이번에 L.A다저스를 인수했잖아?"
―맞아, 그 빌어먹을 머독의 손에서 우릴 구원했지.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은 L.A다저스를 인수한 후, 투자를 하지 않아 팬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사무국 입장에서는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인기 구단이 갈수록 팬들의 원성을 듣자 큰 문제로 인식했다.
구단주가 제대로 된 투자를 하지 않으면 팬들은 점차 야구를 멀리하게 된다.
농구와 미식축구 등과 경쟁하고 있는 야구로서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에서도 골치 아픈 문제였는데 이번에 큰 손이 인수한 것이다.
"대대적인 투자를 약속했다면서?"
―맞아, 그러니 우리로서는 어떻게 해야겠어? 잭?
"두말하면 잔소리지. 알았어. 로이스. 앞으로는 이 일로 일절 전화하지 않겠네."
―알아들었다니 다행이군. 잭. 그 외에도 여러 가지로 얽혀 있는 일이 많아 그러니 잭~
"알겠어. 로이스. 다른 건 자네가 알아서 잘 하겠지. 난 그것만 알아도 돼."
―좋아, 많이 알아서 좋을 건 없어. 자네는 자네 일만 잘 하라고.
"오케이. 로이스. 계속 수고하게."
잭 마일스가 전화를 끊자 로이스는 잠시 전화기를 내려다보았다.
"잭, 만일 자네가 다른 쪽에도 홍보비를 지출하면 우린 모두 모가지가 될 거야."
로이스는 목을 만지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메이저리그만이 아니었다.
미국의 4대 스포츠 사무국 어디라도 존 강 회장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는 곳은 없었다.
미국의 거대 자본을 움직이는 유대 금융그룹이 존 강을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일개 한국인 기업가가 그렇게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많은 사람이 알게 될 터였다.
존 강이 이전과 달리 점차 사람들 앞에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 시작은 루퍼트 머독이 가지고 있던 L.A다저스의 주인이 된 사실을 홍보하기 시작할 때일 것이다.
현재 L.A다저스는 한국인의 모든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구단이었다.
박찬우 선수가 L.A다저스에서 활약하면서 생긴 일이다.
현재 L.A다저스는 국민 구단이 되어 있었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이 매일 같이 언론에 보도 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국민 구단의 주인이 한국인이 된다면 전국에 그 사실이 알려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아직 구단 매각 보도가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사무국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조만간 정식으로 발표가 이뤄지고 나면 존 강의 이름은 전 미국에 알려지게 될 것이다.
그와 동시에 한국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어질 것이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