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03화
203화
"지금 뭐라고 했어? 양 국장."
"죄, 죄송합니다. 사장님."
대한일보 광고국 국장 양경일은 지금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얼마 전 자신을 잘라버리려다 편집국 한 국장이 말려서 참는다고 했던 서 사장이었다.
그날 회의실의 모두가 보는 앞에서 골프채로 얻어맞았던 양경일이다.
지금 그의 심정은 불구덩이 안에 집어 던져진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우리가 광고비를 깎아 준다고 해도 안 움직였단 말이야?"
"예, 심지어 50% 할인에도 눈도 하나 깜짝 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곳은? 다른 곳도 그래?"
"마찬가지였습니다. 사장님."
"이런 병X 새끼야―"
서 사장은 버럭 화를 내며 양 국장에게 눈앞에 있던 재떨이를 집어던졌다.
와장창!
요란한 소리와 함께 벽에 부딪힌 재떨이가 부서지면 파편이 튀었다.
"사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사장실 문이 열리며 비서들 몇이 뛰어 들어왔다.
혹시나 서 사장에게 어떤 위해라도 가해진 것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소란 피우지마! 아무 일도 아니니깐. 들어와서 저거나 치워!"
"아! 예― 옙, 사장님."
젊은 비서들이 들어와 허겁지겁 부서진 재떨이 조각들을 치웠다.
그 와중에 양 국장은 몸을 부들부들 떨며 죄송하다며 빌었다.
대한일보는 서울 데일리에 들어간 해외 광고를 타킷으로 대대적인 작업을 벌였다.
람보르기니의 경우 한국 지부에 연락해 여러 가지 우대 조건을 제시했지만 반응이 냉담했다.
담당자를 만나 접대와 유흥을 제공하려고 시도도 했지만 면전에서 거절당했다.
결국 이탈리아 본사 측에 컨택을 시도했다.
한국 최고의 판매부수를 자랑하는 대한일보를 알리며 한국광고를 따내려고 시도했다.
각종 우대 조건들을 제시하며 승리를 자신했지만 본사의 반응도 냉담했던 것이다.
대한일보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대체 이유가 뭐야? 이유가?"
서인태가 다시 버럭 화를 냈다.
"저기… 사장님."
양 국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뭐야! 아직도 할 말이 남았어!"
"그…그게… 아, 아닙니다."
양 국장은 서울 데일리에 돈을 투자했다고 알려진 골든 타워를 떠올렸다.
해외에서 들어온 자금이니 왠지 그쪽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떠오른 것이다.
회사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면 금세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기업의 내부 정보는 회사가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한에는 일반인은 알 수가 없었다.
대한일보의 정보력이라면 조사를 하면 알 수 있는 것도 많이 있겠지만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지 않았던 것이다.
"메이저리그는? 거긴 다를 거 아냐? 기업도 아니고."
"그게 영사님까지 움직였지만… 신문 쪽 광고는 서울 데일리로 충분하다면서……."
쾅―
서인태가 책상을 내리쳤다.
있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이렇게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모두 해외에서 일어나는 일이라 자신의 입김이 전혀 통하지 않았다.
"끄응―"
"큰일입니다. 해외 유명 기업들이 이런 식으로 계속 서울 데일리만 찾는다면……."
"기업 이미지가 달라지겠지."
"그…그렇습니다. 벌써부터 막아놓은 국내 광고들이 들썩거리고 있습니다."
"뭐…뭐야?"
"람보르기니 같은 유명 기업 광고와 함께 자사 광고가 실리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끄응."
며칠 전에는 애플의 신형 퍼스널 컴퓨터 광고가 서울 데일리에 실리기도 했다.
세계 1등 회사라고 할 수 있는 기업들이 서울 데일리만 찾는 형국이었다.
그런 광고가 지속적으로 실리는 신문사에 대한 구독자의 인식이 달라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일류 기업 광고와 함께 신문도 일류라는 인식이 박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그런 신문에 광고를 넣고 싶은 생각이 당연히 생길 수밖에 없었다.
대한일보에 광고가 몰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미치겠군. 이유를 알 수 없으니 더 그래―"
"저… 사장님. 어쩌면……."
"뭐야? 뭔가 짐작 가는 거라도 있어?"
"골든 타워라고 아십니까?"
"……?"
"서울 데일리에 자금을 투자했다고 알려진 금융 투자 회사입니다."
"그래? 계속해봐!"
"미국에 본사가 있는 회사라고 알려져 있는데… 어쩌면 그것과 관련된 것이 아닐지?"
"……."
양 국장의 말에 서 사장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
지금까지 돌아가는 형국을 봐서 서울 데일리와 해외 기업들 사이에 뭔가 특수한 관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체 어떤 기업이 이런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인가?
양 국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골든 타워가 메이저리그 사무국도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 되었다.
그런 막강한 힘을 가진 회사가 만일 서울 데일리의 뒷배라면 큰 문제였다.
"…골든 타워라고?"
"예, 대체 어떤 회사인지 한번 알아보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 건은 내가 알아보도록 하지."
"예, 사장님."
양 국장이 물러난 후, 서 사장은 한 국장을 불렀다.
그리고 몇 가지 지시를 내렸다.
"예? 서울 데일리에 투자한 회사에 대해 조사하라고요?"
"그래, 그리고 단순 투자인지 아니면 아예 그쪽에서 인수한 건지도 알아봐."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대한민국에서 가장 빠르고 정확한 정보력을 가지고 있다고 스스로 공언하는 대한일보였다.
그만큼 사회 각계각층에 많은 눈과 귀를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골든 타워가 어떤 회사인지 알아내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의 예상대로 한 국장은 오래지 않아 골든 타워에 대해 조사를 해왔다.
하지만 한 국장이 조사해온 골든 타워의 실체는 서 사장의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대한일보 사장실.
"뭐야? 그 말이 사실이야?"
"예, 사장님. 사실입니다. 고려 일보, 동보 일보, 경향 데일리 모두 해외광고가 들어오고 있습니다."
양 국장이 당황한 얼굴로 서 사장에게 대답했다.
대한일보가 작업을 벌여 대다수의 광고가 끊어진 세 회사였다.
여기에 은행 자금줄까지 묶어 놓았다.
이제 얼마 안 있으면 패배의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집무실에 들어와 빌어야 할 운명들이었다.
그런데 이들 회사에 해외 기업들의 광고가 들어갔다니 믿기 어려웠다.
"어디 봐. 내가 직접 확인해야겠어."
서 사장은 급히 양 국장이 들고 온 세 신문사의 신문들을 펼쳤다.
그러자 양 국장의 말대로 해외 기업들의 광고가 올라가 있었다.
"노…노키아?"
현재 세계 점유율 1위인 핸드폰 회사의 광고가 버젓이 실려 있었다.
"그뿐이 아닙니다. 여기도 보시죠."
한 장을 넘기자 이번에는 한국 기업의 광고였다.
"아니, 신라 치킨이잖아?"
서 사장이 두 눈을 부릅뜨고 광고를 노려보았다.
신문에는 놀랍게도 홍콩 영화배우 천려시가 모락모락 김이 나는 양념치킨을 들고 있었다.
당시 한국에서 홍콩 영화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는 시기였다.
그중에서도 천려시의 인기는 상상을 불허하던 시기다.
신라 치킨의 인기 역시 엄청났다.
국민 치킨이라 이름을 붙여도 아무런 유화감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를 구가했다.
아시아의 연인 천려시와 국민 치킨의 만남인 셈이다.
문제는 이런 대박 광고가 자사가 아닌 다른 신문에 났다는 것이다.
서 사장의 두 팔이 부들부들 떨렸다.
찰―싹!
서 사장의 손바닥이 대뜸 양 국장의 뺨을 갈겼다.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대체 넌 뭘 했어?"
"죄, 죄송합니다. 사장님."
"죄송하다면 다야? 이 밥버러지야!"
"시…시정하겠습니다."
"신라 치킨은 국내 기업이야. 어떻게든 연락해서 따―내!"
"알겠습니다."
신라 치킨만이 아니었다.
다음 장을 넘기자 화려한 금관을 쓴 여왕이 새겨진 컵이 중앙에 떡하니 나온 광고가 있었다.
요즘 한창 장안의 화제인 커피 프랜차이즈 신라 퀸스였다.
세련된 맛과 멋진 인테리어를 자랑하는 카페로 순식간에 국내 점유율을 높여 가고 있었다.
그런데 둘 다 신라 기업의 프랜차이즈가 아닌가?
"이…익, 백정원 대표하고 자리 한 번 마련해봐."
"그…그게 백정원 대표는 지금 뉴욕에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뭐야? 뉴욕에 있다고?"
"신라 치킨과 신라 퀸스의 미국 진출 사업을 진행 중이라고 합니다."
"뭐? 미국 진출?"
"그…그렇습니다. 안 그래도 저희 회사 측에서도 관련 기사를 준비 중이라고 합니다."
"그래?"
요즘은 국민들의 자존심을 북돋기 위해서 이런 내용의 기사들이 환영을 받고 있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박찬우나 미국에서 자수성가한 최승호처럼 말이다.
만일 미국 진출이 성공만 한다면 큰 기삿감이 분명했다.
아니 진출하려고 노력하는 모습만 담아도 분명 큰 화제가 될 것이 분명했다.
"어떻게 되어 가는지 양 국장이 알고 있어?
"한 국장에게 듣기로는 상당히 성공적인 것 같습니다."
"그래? 어느 정도인데, 그래?"
"뉴욕과 LA에서 내는 점포마다 몰려든 사람들로 미어터질 정도라고 합니다."
"호오? 그게 사실이야?"
"그래서 백 사장이 한국에 오고 싶어도 너무 바빠서 못 오고 있답니다."
"……!"
"일주일에 한 개씩 점포를 늘리고 있다고 하네요."
"허허! 그게 사실이라면 엄청난 일이군."
양 국장의 말에 서인태는 깜짝 놀랐다.
미국이 얼마나 크고 넓은 시장인지 서인태는 잘 알고 있었다.
한국과 비교하기 민망할 정도로 큰 시장이 아닌가?
그런 곳에서 성공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웬만한 재벌 뺨칠 정도로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말을 들으니 서 사장은 어떻게 해서든 백 사장과 만남의 자리를 가지고 싶어졌다.
"흠, 그 정도란 말이지?"
"예, 사장님."
"좋아, 자세한 건 나중에 한 국장에게 더 듣기로 하고. 양 국장은 그만 물러가."
"예, 사장님."
양 국장이 사장실을 나서자 서인태는 어떻게 하면 백정원을 만날 수 있을까 골몰했다.
조금 전까지 세 신문들에 대해 열폭하던 서인태는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눈앞에 먹음직한 먹잇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백 사장이 분명히 아직 미혼이지. 흐흐흐."
대한일보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재벌 기업들의 치부를 덮어주고, 때로는 미화해줄 뿐만 아니라 혼맥으로도 엮여 있었다.
지금 서인태는 자기 친척 중 하나와 백정원을 엮어 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사장실 문이 열리며 한 국장이 들어왔다.
"사장님!"
"오, 한 국장. 어서와. 안 그래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데 말이야. 자네 백 사장 아나?"
"예? 무,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요즘 미국 진출 중이라는데 아는 걸 좀 말해보게."
"그…그게 사장님. 그보다 지금 꼭 아셔야 할 더 중요한 일이 있습니다."
"응? 더 중요한 일? 그게 뭔가?"
"골…골든 타워가… 아니 골든 그룹이……."
"……?"
"엄…엄청난 회사였습니다.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요."
"……!"
말을 하는 한 국장의 얼굴이 엄청나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가 얼마나 놀라고 있는지 표정만 봐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