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06화
206화
"정말이군요!"
점장은 강혁의 말을 확인하고 깜짝 놀랐다.
매장 내에는 여러 개의 CCTV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서예리의 동선을 확인해보니 지갑이 있던 코너는 그저 훑어보고 지나갔다.
그리고 그 후로는 다시 온 적이 없었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갑을 훔치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점장은 이해할 수 없어 몇 번이고 CCTV를 다시 돌려 보았다.
"그것 보세요. 제가 한 짓이 아니라고요."
서예리가 한껏 반색하며 말했다.
"하지만 그러면 대체 이 지갑은?"
점장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말했다.
지갑에 발이 달릴 것도 아닐 텐데 대체 어떻게 서예리의 가방에 들어간 것일까?
"누군가 이 아가씨의 가방에 몰래 넣은 것은 아닐까요?"
강혁이 어리둥절해 있는 점장을 향해 말했다.
"예? 대체 누가 그런 짓을?"
점장은 강혁의 말에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자 강혁은 함께 CCTV를 확인하고 있던 메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당신이 한 짓이죠? 메리."
"예? 아, 아니에요."
강혁의 말에 함께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강혁은 메리의 표정을 보며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강혁의 말에 놀란 점장이 되물었다.
"설마… 메리 너?"
"아니에요. 점장님. 믿어주세요. 제가 이유도 없이 왜 그러겠어요."
"……."
"저 같은 사람 골탕 먹이려고 그런 것인지도 모르죠."
서예리가 골이 난 표정으로 말했다.
간단히 말해서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냐?
그런 뜻이었다.
"제, 제가 그랬다는 증거도 없잖아요."
메리가 억울하다며 반문했다.
"그럼, 지금부터 확인해 볼까요?"
강혁이 슬쩍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어머, 이 사람… 왠지…….'
서예리는 강혁의 미소에 왠지 모르게 살짝 가슴이 설레는 것을 느꼈다.
"저기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점장이 말했다.
"CCTV 위치를 조정하셔야겠네요."
강혁이 웃으며 점장에게 말했다.
"……?"
서예리는 강혁과 점장이 서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때 메리는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CCTV를 5분 정도 전으로 더 돌려 보시죠."
강혁이 말했다.
점장은 강혁의 말대로 CCTV를 5분 전으로 돌려 보았다.
"아! 있네요!"
CCTV에는 강혁이 지갑을 골라서 살펴보는 장면이 나왔다.
강혁이 집어든 지갑은 분명히 지금 논란이 된 지갑과 동일한 지갑이었다.
잠시 후 강혁은 지갑을 다시 내려놓고 다른 곳의 지갑을 살펴보고 있었다.
"아, 지갑을 놓아둔 위치가 안보이네요."
서예리가 그제야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맞아요. 여기 위치 CCTV에 나오지 않죠. 원래는 안 그랬는데 코너 길이를 확장하면서……."
점장이 머리를 끄적이며 대답했다.
지갑이 놓여 있는 위치는 CCTV와 살짝 각이 맞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강혁이 지갑을 확인한 덕분에 서예리가 지나간 후 지갑이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확실히 이 아가씨가 가져가지 않았다는 건 알겠어요. 하지만 그렇다면 대체 어떻게 된 거죠?"
점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되물었다.
"이건 다른 CCTV를 보면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
강혁은 다른 위치에 있는 CCTV를 지목했다.
점장은 강혁이 매장에 있는 CCTV의 위치를 정확히 꿰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하, 대체 뭐하시는 분인지 궁금하군요? 혹시 형사?"
점장의 질문에 서예리와 메리, 두 사람의 시선이 강혁을 향했다.
강혁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지금은… 아니랍니다."
"역시 그랬군요."
점장은 이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뭐지? 전직 경찰이었다는 뜻인가?'
서예리는 강혁의 대답에 두 눈을 깜박거렸다.
강혁의 대답에 메리는 더욱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그럼 전직 형사님 말씀대로 해보죠."
점장은 강혁의 지시대로 다른 각도의 CCTV를 확인했다.
"서예리씨가 지나간 시간 이후로 확인해보세요."
"알겠습니다."
점장이 강혁이 지시한 시간대로 CCTV 화면을 돌렸다.
그리고 다시 작동을 시키자 잠시 후, 누군가가 화면에 나타났다.
"어엇? 메리!"
화면에 나타난 사람은 놀랍게도 매장 직원인 메리였다.
메리는 지갑 코너로 돌아 들어가기 직전 멈춰 서서 허리를 굽혔다.
물건을 정리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곳은 손을 뻗으면 지갑에 닿을 수 있는 곳이었다.
카메라에 잘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를 정확히 알지 못하면 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메리는 다시 뒤로 돌아 나왔다.
"메리의 손이 뒤로 돌아가 있군요."
점장이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만일 지갑을 들어 몸 뒤로 돌렸다면 카메라에 찍히지 않는 각도였다.
메리가 다시 다른 코너로 돌아 들어갔다.
이번에는 강혁이 말하기도 전에 점장이 먼저 움직였다.
코너를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각도의 CCTV를 확인한 것이다.
잠시 후 메리가 화면에 다시 나타났다.
"팔 위치가 바뀌었어요."
점장이 놀란 음성으로 말했다.
바뀐 팔 위치는 지갑을 카메라에 보이지 않게 감출 수 있는 곳이었다.
"저기 서예리씨가 있군요."
강혁의 말대로 가방을 살펴보고 있는 서예리가 보였다.
그곳을 스치듯 지나가는 메리가 보였다.
메리는 서예리가 물건을 살펴보는 동안 잠시 뒤편에 머물다가 자리를 떠났다.
서예리의 가방에 지갑을 넣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았다.
교묘하게 몸을 가렸고, 반대편에도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했다.
메리가 그곳을 지나면서부터 팔이 자유로워졌다.
그녀의 손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모두의 시선이 메리를 향했다.
메리는 가늘게 몸을 떨고 있었다.
"자… 메리,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 보세요."
강혁의 말에 메리는 다리를 부르르 떨더니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죄…죄송해요. 점장님. 사실은 다이애나씨가……."
"뭐라고? 다이애나라면……."
"아는 사람인가요?"
"아, 예. 여기 단골손님이죠. 그리고 이곳을 방문하면 항상 메리가 안내를 해줬어요."
"죄…죄송해요."
메리는 훌쩍이며 눈물을 흘렸다.
그때 갑작스런 서예리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서…설마, 다이애나가?"
"아는 사람인가요?"
강혁이 물었다.
"제… 제 절친이에요."
"흐흠, 여기에는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군요."
강혁이 서예리와 메리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두 사람이 주절주절 이야기를 털어 놓기 시작했다.
"연락이 온 건 2주 전이었어요. 이분이 여길 방문하면……."
메리가 뒷말을 줄였다.
"이런 짓을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는 거군요."
메리가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가 없이 그러진 않았을 텐데요?"
"본인이 소장하고 있는 가방을 주신다고 했어요."
"여기 가방은 몇천 달러는 기본이랍니다. 혹할 만하죠."
점장이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강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번에는 서예리에게 물었다.
"다이애나씨가 왜 그랬을까요?"
"그…글쎄요. 음……."
서예리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생각에 잠겼다.
"휴우… 최근에 절 따라다니는 남학생 중에 다이애나가 좋아했던 남자가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언제부터였죠?"
"하아, 한 2주 전부터였네요. 그리고 여기 매장을 소개해 준 것도 다이애나였어요."
"그래요?"
"예, 뉴욕에 갈 일이 생겼다고 하자 여길 꼭 방문하라며 알려줬어요."
서예리가 매우 낙심한 표정을 지었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니 어떤 심정일지 이해할 만 했다.
"대충 사건은 마무리가 된 것 같군요. 뒤처리는 점장님께 맡기고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강혁이 자리를 떠나려 하자 서예리가 즉시 그를 멈춰 세웠다.
"저기 너무 감사했어요. 성함이라도 알려주시면 나중에 사의를……."
"하하, 괜찮아요. 한국인이시죠?"
"아, 예. 혹시 그쪽도……."
"맞아요. 동포끼리 돕고 살아야죠. 인사는 됐어요. 그럼."
"아, 이름이라도 알려주세요."
"강혁. 강혁이라고 합니다."
"…강혁."
사라지는 강혁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점장에게 고개를 돌렸다.
"저도 이만 가볼게요. 이 점원의 처분은 알아서 하세요."
황급히 강혁의 뒤를 따라나선 서예리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미 강혁은 사라지고 없었다.
"하아― 어디로 간 거지?"
서예리는 한참을 주변을 살폈지만 강혁을 찾을 수 없었다.
마침 그녀의 앞으로 고급 승용차 한 대가 지나갔다.
하지만 설마 강혁이 그 안에 타고 있을 거라고도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저 아가씨인가요?"
운전대를 잡은 스티브가 강혁을 보며 물었다.
그의 입가에는 빙긋이 미소가 담겨 있었다.
"맞아, 스티브."
"상당히 미인이네요."
"뭐, 그렇군. 살 것도 샀으니 그만 가자고."
"예, 보스."
뒷좌석에 앉은 강혁의 손에는 매장에서 구입한 가방이 들려 있었다.
* * *
"아가씨, 여기가 요즘 뉴욕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한식당 서라벌입니다."
"그렇군요. 너무 기대돼요. 미국에서 한식이라니?"
1998년 뉴욕에서 한국 음식은 아직 그리 각광받는 음식이 아니었다.
한류와 함께 미주 대륙에서 K―푸드 선풍이 일어나기 전인 것이다.
자연히 미국 유학을 하며 한식을 먹을 기회가 없었던 서예리는 크게 반겼다.
그녀를 안내하고 있는 사람은 대한일보 뉴욕 특파원이었다.
이름은 손원일.
올해로 뉴욕에 거주한 지 3년 차인 베테랑 기자다.
가족들과 함께 뉴욕에 파견되어 있는 중이었다.
서예리는 강혁과 헤어진 후, 다시 쇼핑에 나섰지만 웬일인지 흥미가 사라져버렸다.
그래서 원래 만나기로 약속했던 시간보다 일찍 대한일보 뉴욕 특파원을 불러냈다.
손원일은 서예리를 숙소로 안내한 후, 저녁 시간이 되자 그녀를 데리고 서라벌에 온 것이다.
건물 외양도 기와를 절묘하게 입혀 멋들어지게 인테리어를 해놓은 곳이다.
"고마워요. 손 기자님."
손원일과 함께 입구에 들어서자 나타난 풍경에 감탄성을 내뱉었다.
"우와! 정말 잘 꾸며 놓았네요."
서예리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국의 전통적인 양식을 현대와 잘 조화시킨 멋들어진 인테리어에 감탄성이 절로 나온 것이다.
"여기가 요즘 뉴욕 최고의 핫스팟이라니까요."
"정말 그럴 만해요. 손 기자님."
서예리가 감탄하고 있을 때였다.
멋진 현대풍의 개량 한복을 입은 남자 직원이 나타나 두 사람을 안내했다.
"어서 오십시오. 손님. 예약 자리로 모시겠습니다."
두 사람은 직원의 뒤를 따라 예약한 자리에 앉았다.
마치 정자에 앉은 듯한 기분이 드는 장소였다.
"여기 정말 멋진데요. 돈이 얼마나 들었을까요?"
"여기 땅값만 해도 엄청났을 걸요? 맨허튼의 노른자위 땅이니 말입니다."
손 기자의 말에 서예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기 손 기자님."
"예, 아가씨."
"제가 사람을 찾고 싶은데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사람을 찾는다고요?"
"예, 전직 경찰이고요. 한국인인데 뉴욕에 살고 있어요. 나이는 20세 중반쯤……."
서예리가 한참 손 기자에게 강혁의 인상착의를 설명하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두 사람을 향해 다가왔다.
서라벌 사장인 백정원 대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