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08화
208화
#55장 강혁, 자신을 드러내다
임페리얼 호텔 연회장.
맨허튼을 대표하는 임페리얼 호텔 연회장에 미국사회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모두가 골든그룹에서 운영하고 있는 홍익재단의 자선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이었다.
자선 파티는 강혁과 래리 위더슨, 커트 와이엇의 인맥들로 인해 큰 성황이었다.
래리 위더슨은 홍익재단의 이사장으로 안젤라의 남자친구였던 죽은 마크의 아버지이다.
미국 금융계의 실력자였던 래리 위더슨이 돌연 은퇴를 선언했을 때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랐다.
아이언페이스라 불리며 두려움에 떨게 했던 그가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게다가 홍익재단이라는 자선단체의 이사장이 되었다는 말에 더욱 놀랐다.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 불렸던 래리 위더슨이었다.
그런 사람이 돌연 사람이 바뀐 듯이 행동했으니 말이다.
게다가 래리 위더슨은 이 재단에 천만 달라라는 엄청난 액수의 돈을 기부하기도 했다.
98년도의 미국이었다.
천만달라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엄청난 금액이었다.
이번 파티에는 래리가 자선사업가가 되었다는 소식에 놀라 그를 만나기 위해 온 사람도 있었다.
대체 어떤 심경의 변화가 생겨서 이런 일을 하느냐고 묻고 싶은 그의 지인들이었다.
아들이 죽은 것은 알지만 평소 그의 신념과 너무나 반대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이런 화제성과 더불어 더욱 주목받고 있는 것은 동양에서 온 신흥 재벌 강혁이었다.
무려 10억 달라라는 믿기지 않는 금액으로 이 재단을 설립했다는 소식이 정재계에 자자했다.
그동안 골든 그룹의 회장인 강혁의 존재는 종이에 물이 스며들 듯 서서히 알려지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오늘 존강 회장이 자신의 존재를 만천하에 공개하는 셈이었다.
그동안은 최대한 자신의 정체를 감추려고 했던 강 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감출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지금부터는 최대한 자신을 노출시키며 그 영향력을 확대 시켜야 할 시점이었다.
시간이 되자 음악을 연주하고 있던 밴드와 관혁악단이 갑자기 연주를 멈추었다.
밝게 빛나던 전등이 꺼지며 무대 위를 조명이 비추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무대를 향했다.
그러자 잠시 후, 재단 이사장인 래리 위더슨이 등장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오늘 저희 홍익재단의 자선파티에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짝짝짝!
래리 위더슨이 파티의 시작을 알리는 말을 건네자 장내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러 퍼졌다.
"저희 재단은 설립 이후 전 세계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무료 의약품을 제공하는 일을 해왔습니다."
짝짝짝!
한참 재단에 대해 소개를 하던 래리 허드슨이 한쪽을 보더니 웃음을 터트렸다.
"여기 옛 친구들도 모두 와주셨군요. 다들 저 이상으로 짠돌이들이죠."
하하하하핫.
래리 위더슨의 말에 지목된 사람들과 주변 사람들이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대다수가 유대계 금융 재벌들로 짠돌이 소리를 듣는 자들이었다.
그들은 아직도 아이언 페이스가 자선파티에서 연설을 하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뭐라는 거야? 우리가 아무리 그래도 자네만 하겠나?"
와하하하하!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봐, 난 그래도 이 일에 천만 달라를 기부했다고!"
와우!
사람들의 놀라는 소리가 장내에 퍼졌다.
소문으로 듣는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한 사람들이 놀람을 표시했다.
"중간에 말이 끊어졌는데 계속하죠. 여러분 우리나라의 건국이념에 대해서 다들 잘 아시죠?"
래리 허드슨의 말에 장내는 일순 경건해졌다.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나라에 대해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니 허드슨이 건국이념을 들먹이자 자세를 바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바다 건너편에는 나라의 건국이념이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는 뜻을 가진 곳이 있습니다."
허드슨의 말에 장내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홍익인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바로 이 재단의 창립자인 존강 회장의 나라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입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잠시 강혁에게 집중되었다.
"헌법 전문에 인류공영에 이바지한다라는 말이 명시되어 있는 나라지요."
허드슨의 설명에 그런 줄 몰랐다며 자리에 온 사람들은 놀라움을 표시했다.
짝짝짝짝!
파티장에 모인 사람들이 일제히 우레와같은 박수로 경의를 표했다.
오늘 파티에 모인 사람들은 대다수가 미국 사회를 이끌고 있는 오피니언 리더들이었다.
대다수 미국 사회의 여론을 선도하고 이끄는 사람들이 한 나라의 헌법에 경의를 표한 것이다.
"우리 재단은 그 뜻을 이어받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는 일을 위해 탄생했습니다."
짝짝짝짝!
"박수로 환영해 주십시오. 재단 설립자인 골든 그룹의 존 강 회장입니다."
와-아!
짝짝짝짝!
환호와 박수 소리가 섞여 나오는 가운데 조명을 받으며 강 혁이 마이크 앞에 섰다.
190이 넘는 큰 키와 단련된 몸에서 나오는 슈트 핏.
준수한 얼굴과 몸 전체에서 풍기는 아우라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 시켰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존 강입니다."
강혁이 자리에 초대된 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 앞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연신 여기저기서 박수소리와 함께 카메라 프레시가 터졌다.
자선 파티에 초대된 언론사 카메라맨들이 사진을 찍은 것이다.
한쪽 구석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대한일보 손 기자는 속이 쓰렸다.
정식으로 초대받은 언론사는 대부분 미국 현지 언론사였다.
여기에 국내 언론사는 서울 데일리와 자신들과 적대관계의 언론사 몇 군데에 불과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속이 쓰리군.'
손 기자는 대한일보가 앞으로 상대하게 될 서울 데일리의 주인이 가진 위상에 위협을 느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말 그대로 미국을 움직이는 사람들이었다.
서울 데일리의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존 강 회장은 그런 사람들을 직접 상대하는 것이다.
꿀꺽.
손 기자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한편 긴장하고 있는 손 기자의 옆에는 드레스를 입고 아름답게 치장한 서예리가 서 있었다.
이제 겨우 22살에 불과한 대학생이지만 이렇게 꾸며 놓으니 천사가 따로 없었다.
왜 서 사장이 자기 조카를 이 자리에 보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꾸미기 전에도 매력이 넘치는 아가씨였지만 최고의 스타일리스트들이 붙자 차원이 달라졌다.
누구라도 한 번 보며 눈을 떼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이 있었다.
이 정도면 존 강 회장의 눈을 사로잡을 가능성이 높았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만일 서예리가 존강과 좋은 관계가 된다면 모든 것이 만사형통이었다.
지금 이렇게 걱정하는 것이 농담거리가 될 일이 될 것이다.
거기다 대한일보의 영향력을 미국까지 확대 시킬 수 있을 지도 몰랐다.
아니 오늘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있는 존 강 회장의 힘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로 보였다.
강혁이 연설을 마치자 다시 조명이 켜지며 음악이 연주되었다.
무대에서 내려온 강혁은 여기저기서 사람들을 만나 악수를 나누며 새로운 친분을 만들었다.
강혁에 대해 궁금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몰려와 이내 하나의 인파가 만들어졌다.
"아가씨, 틀림없이 기회가 올 거예요. 눈을 떼지 마세요."
"물론이죠. 손 기자님. 제 걱정은 하지 마세요."
서예리가 당차게 말했다.
그렇게 기회만 노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강혁을 둘러싼 인파가 둘로 갈라지는 것이 아닌가?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사람들이 스스로 길을 비켜주는 모습에 손기자와 서예리는 두 눈을 부릅떴다.
"저… 저 사람은?"
"천려시잖아요?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붉은 색 드레스를 입은 천려시의 모습은 청순한 듯하면서도 요염했다.
조명을 받은 얼굴의 각도에 따라 그 이미지가 달라지는 천상 여배우였다.
그녀가 등장하자 사람들은 그 놀라운 미모에 압도되어 스스로 길을 비켜주고 있었다.
"존 회장님. 오랜만이에요."
"미미! 여긴 어떻게?"
"후훗, 놀랐죠?"
천려시가 혀를 고양이처럼 낼름거렸다.
미미는 천려시의 아명으로 친한 사이만 알고 있는 이름이었다.
강혁은 천려시가 자신을 아명으로 불러주길 원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에 미미라고 부른 것이다.
"존 회장님, 정말 아름다운 아가씨로군요. 서로 친분이 있는 것 같은데 저희는 자리를 피해드리죠."
"하하, 그럽시다. 젊은 선남선녀들을 방해하면 안 되죠."
강혁을 둘러싸고 있던 미국의 슈퍼 리치들과 상원의원들이 웃으며 자리를 옮겼다.
마침 음악 소리가 바뀌며 사람들이 무대 한가운데로 들어가 파트너들과 춤을 추기 시작했다.
"어머, 딱 좋은데요. 존."
"응?"
갑작스런 천려시의 등장에 잠시 당황하고 있던 강혁의 팔을 이끌고 천려시는 무대 중앙으로 이동했다.
두 사람이 함께 춤을 추기 시작하자 주변에서는 감탄성과 함께 흐뭇한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오늘을 위해 힘껏 단장한 아가씨들이 역시 호시탐탐 강혁을 노렸다.
하지만 대다수는 함께 춤을 추고 있는 천려시를 한 번 보고는 안색이 창백해졌다.
그만큼 천려시의 미모는 모든 사람을 압도할 정도로 강렬했다.
"이런 선수를 뺏겼어."
서예리가 몸을 일으켜 무대쪽으로 움직였다.
손 기자는 천려시의 등장에 너무 놀라 서예리가 움직이는 것을 가만 보고만 있었다.
감히 만류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천려시의 존재감은 강렬한 것이었다.
마치 이 세상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아름다움에 그저 멍하니 쳐다보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서예리는 확실히 보통 사람이 아니었다.
어느새 한 곡의 연주가 끝이 났다.
천려시는 강혁의 품에 안겨 즐거운 표정을 지었다.
"춤을 잘 추네요. 존."
"하하, 전혀. 그렇지 않은데 잘 봐줘서. 고마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갑자기 낯선 음성이 두 사람을 방해했다.
"죄송하지만 다음 춤은 저와 춰주시겠어요? 강혁 오빠."
한국어였다.
깜찍하게 강혁의 이름과 함께 오빠라는 말까지 붙인 것이다.
"엇? 너는?"
강혁이 두 눈을 깜빡거렸다.
"잊으신 건 아니죠? 어제 절 구해주셨잖아요."
"아하? 이렇게 꾸며 놓으니 몰라보지."
강혁은 서예리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 이름은 예리에요. 서예리."
"그렇군. 그런데 여긴 어떻게 온 거야?"
"어떻게 오긴요. 오빨 만나러 왔죠. 그런데 계속 여기 세워두실 거예요?"
서예리는 강혁을 향해 두 팔을 내밀었다.
강혁은 할 수 없이 천려시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아는 사이인 모양인데 전 저기서 기다릴게요."
"조금만 기다려. 미미."
강혁은 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서예리의 어깨와 허리를 감싸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무대 위를 한 바퀴 돌때였다.
서예리가 물었다.
"오빠가 골든 그룹 회장이라고요?"
"응, 맞아."
"그런데 왜 제게 전직 경찰이라고 하신 거죠?"
"하하, 그거 거짓말 한 거 아냐."
"아니라고요?"
"그래, 말하자면 길지만 한국에서 난 경찰이었어."
"하아?"
서예리는 강혁의 말에 믿어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그렇고. 정말 날 만나로 온 거야?"
"물론이죠. 제가 누군지 아세요?"
"나도 그게 묻고 싶었어. 너 대체 누구니?"
강혁의 물음에 서예리가 배시시 웃었다.
젊은 남자라면 누구라도 유혹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미소였다.
"대한일보 아세요?"
"대한일보? 알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있겠니?"
"거기 회장님이 제 할아버지에요. 큰 아버지가 사장이시고요."
"……!"
강혁은 서예리의 말에 깜짝 놀랐다.
설마 자신의 팔에 매달려 있는 깜찍한 여자아이가 대한일보 사주의 손녀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