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09화
209화
"오빠, 강혁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서예리의 말에 강혁은 피식 웃었다.
"벌써, 그렇게 부르고 있잖아?"
"히히, 허락한 걸로 알겠어요."
서예리의 상큼 발랄한 매력에 강혁은 미소를 지었다.
여동생이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날 만나러 왔다고? 내게 무슨 볼일이 있을까?"
"뭐, 전 돌려서 말하지 못하는 스타일이라서요. 단도직입적으로 말씀 드릴게요."
"……."
"저 오빠 여자 친구하고 싶어요. 어때요?"
서예리가 눈웃음을 치며 예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어 보냈다.
서예리의 말에 강혁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여자친구?"
강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이 귀여운 한 마리 고양이를 연상시켰다.
"미안한데… 난 이미 여자친구가 있단다."
강혁의 말에 서예리는 살짝 한숨을 쉬었다.
"역시 그랬군요. 혹시 저 여배우예요?"
"맞아."
강혁은 서예리의 몸을 휙하고 돌리며 대답했다.
음악에 맞춰 서예리가 몸을 빙글하고 돌리더니 강혁의 품에 자연스럽게 안겼다.
그때 두 사람의 몸이 밀착하자 서예리가 기습적으로 강혁의 입을 맞췄다.
"……!"
"히히, 이건 벌이에요."
"…벌?"
"저보다 먼저 저 사람을 여친으로 삼은 벌이라고요."
"……!"
두 사람은 다시 몸을 풀고 춤을 추었다.
"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어제 식당에서 만난 여자분은 어떤 관계예요?"
강혁은 서예리의 말에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우연히 저도 그날 저녁 그 식당에 있었거든요."
"그랬군."
"혹시 그 여자분도 사귀는 사이인가요?"
"……."
서예리의 질문에 강혁은 곤혹스런 표정을 지었다.
강혁의 표정에서 모든 것을 짐작한 서예리가 웃으며 말했다.
"호홋, 역시 그 분과도 보통 사이는 아닌 것 같았어요."
"……."
강혁을 향해 서예리는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오빠, 미리 말해두겠지만 전 여친이 몇 명이 있어도 상관없어요. 결국 절 택하게 될 테니까."
"……?"
어느새 춤이 끝났다.
서예리는 한쪽 손가락으로 강혁의 가슴을 찔렀다.
그리고는 뒤로 돌아서더니 고개를 돌려 강혁을 향해 말했다.
"그러니까, 각오하고 계시라고요. 오.빠."
서예리는 그 말을 끝으로 인파속으로 사라졌다.
강혁은 대한일보 사주의 손녀라는 서예리의 등장에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
"저도 한국말을 배워 둘까 봐요. 존."
"미미?"
어느새 뒤에서 다가온 천려시가 배시시 웃으며 강혁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미미."
"뭐, 남은 시간은 절 위해서 사용하신다면 이 무례는 용서해드릴게요."
"하하, 알았어."
다시 음악이 시작되고, 강혁은 천려시와 함께 춤을 추기 시작했다.
천려시에 이어 서예리까지 두 사람의 미인이 번갈아 강혁과 춤을 독차지 한 것이다.
기회만 노리던 여인들은 대부분 두 사람의 미모에 질려서 그만 지레 포기하고 말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들로서는 어떻게 비벼볼 엄두를 내지 못한 것이다.
만일 서예리 정도만 되었다면 다른 사람들도 대쉬해 볼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확실히 예쁘고 매력적이기는 하지만 넘지 못할 벽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말이다.
하지만 천려시는 비교 불가였다.
괜시리 절대가인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 아닌 것이다.
"존, 아까 그 아가씨가 존을 오빠라고 부르는 것 같던데. 무슨 뜻이죠?"
강혁은 천려시의 질문에 당혹해하며 뜻을 알려주었다.
"우응, 얄미워. 나도 이제부터 오빠라고 부를래요."
"하하, 알았어. 미미. 그렇게 해."
"만나고 싶었어요. 존… 오.빠."
강혁은 자신을 애처롭게 바라보는 천려시의 표정에서 그녀의 깊은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미."
강혁은 자신도 모르게 허리를 감싸 안은 팔에 지긋이 힘을 주었다.
어느듯 천려시를 바라보는 강혁의 눈에도 애틋함이 어려 있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사람이 자신을 너무도 사랑해주고 있었다.
미안함과 감사함… 여러 가지 감정이 섞여 자신도 모르게 강혁은 천려시의 콧잔등을 살짝 매만졌다.
"그렇게 보고 싶었어?"
강혁의 말에 천려시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은 휴가를 내보도록 하지."
"…정말이에요?"
강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젠 진짜로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응?"
"후훗, 사실 저 조금 전 엄청 질투했었다고요."
"그… 그랬어?"
천려시가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아가씨, 이대로 돌아가시는 겁니까?"
손 기자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물었다.
"작전상 후퇴예요. 오늘은 아무래도 진도를 더 나가기 어렵겠어요."
서예리가 말했다.
"하긴 저 아가씨가 확실히 대단하기는 하죠."
손기자는 혀를 내둘렀다.
임페리얼 호텔의 연회장을 가득 채운 사람들 중에는 수없이 많은 여자들이 와있었다.
많은 여자들이 파트너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여자들도 많았다.
대다수가 강혁을 만나기 위해 여러 집안의 어른들이 데리고 온 여자들이었다.
사실 그럴만도 했다.
미국 재계 순위에 지각 변동을 일으킬 다크호스로 알려진 사람이 바로 강혁이었다.
이제 나이도 20대 중반에 불과했다.
게다가 아직 미혼인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니 생각 있는 집안에서는 결혼적령기의 여성들을 대동하고 자선파티에 온 것이다.
그 중에는 상당한 미모를 갖춘 여자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주인공은 절대가인 천려시였다.
어느 누구도 오늘의 그녀를 당해낼 수 있을 성 쉽지 않았다.
그 정도로 천려시의 아름다움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두 사람이 춤을 추는 모습을 보며 여자들은 속만 끊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서예리는 정말 대단하다고 볼 수 있었다.
모두가 천려시에게 압도당한 순간에도 당당하게 강혁의 앞에 나서는 것을 보면 말이다.
더 대단한 것은 물러날 시기를 아는 거라 할 수 있었다.
서예리는 그대신 강혁의 뇌리에 자신의 존재감을 단단히 박아 넣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미묘한 상황까지 손기자는 알지 못했다.
다만 서예리가 지레 포기하고 물러나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그런 손기자를 향해 서예리가 말했다.
"미리 말해두지만 전 지는 싸움은 하지 않아요."
"…예? 하, 하지만……."
"두고 보라고요. 반드시 저 사람을 내 걸로 만들고 말테니까 말이에요."
서예리의 말에 손 기자는 그제서야 회색이 돌아왔다.
처음 서예리가 이만 돌아가자고 할 때는 다 틀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손 기자가 기뻐하며 대답했다.
"그렇게만 된다면 서 회장님께서 정말 기뻐하실 겁니다."
"호홋, 저 서예리예요. 믿어 보세요."
"……!"
손 기자는 서예리의 자신감과 당돌함에 압도되었다.
확실히 매력적인 아가씨란 생각이 들었다.
외모에서는 천려시에게 밀릴지 몰라도 이 솔직 발랄한 매력은 타고난 것이었다.
남자라면 누구라도 매료되지 않을 수 없을 성 싶었다.
"대신 제 뜻을 이루려면 손 기자님이 절 확실히 서포트 해주셔야 해요."
"알겠습니다. 아가씨."
"후훗, 그럼 이만 돌아가요."
서예리는 다시 한 번 스테이지를 돌아보았다.
마침 강혁이 천려시의 늘씬한 몸을 껴안고 턴을 하는 것이 보였다.
'호홋, 경쟁자가 있다고 포기하는 건 내 성미에 안 맞아요. 다음에 또 봐요. 강 혁 오.빠.'
서예리는 다시 몸을 돌리며 손가락으로 자신의 입술을 쓰다듬었다.
두 번째 만남에 강혁의 입술을 빼앗은 것이다.
'다음번엔 오빠의 하트를 훔치겠어요. 반드시. 두고 보라고요.'
서예리는 손 기자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회장에서 벗어났다.
그때 그들의 옆을 스치듯 지나가는 여인이 있었다.
"엇, 저 언니는?"
"왜 그러시죠? 아가씨?"
"아니에요. 후훗. 그만 가요."
"예, 아가씨."
서예리는 웃으며 손기자를 따라 내려갔다.
그러다 슬며시 뒤를 돌아보았다.
어제 식당에서 보았던 스타 검사 안젤라 존슨이었다.
검사가 아니라 헐리우드 여배우라 해도 믿을 정도로 아름다운 여자였다.
화려한 금발에 물빛 드레스는 그녀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고 있었다.
'하아, 정말 못 말리는 오빠야. 뭐, 경쟁자가 많을수록 흥이 나는 법이지. 그건 그렇고. 과연 오빠는 누굴 선택할까? 구경하고 갈 걸 그랬나?'
두 사람 사이에서 곤란해할 강혁을 상상하며 서예리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자신이 남자라고 해도 두 사람 중 한명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을 성 싶었기 때문이다.
***
서울 데일리를 필두로 한국의 대다수 언론에 골든 그룹의 대대적인 투자계획이 실렸다.
대한민국 정부 대변인이 직접 언론에 상세한 내용을 브리핑 한 것이다.
국민들은 오랜만에 들리는 반가운 소식에 크게 기뻐했다.
외국으로 빠져나간 달러 때문에 국가 부도 선언을 한 게 바로 한 해 전의 일이었다.
국가 신용이 바닥까지 내려가 외국자본이 모두 한국을 떠나지 않았던가?
그런 상황에서 골든그룹의 천문학적인 투자 계획이 발표된 것이다.
게다가 정부 관계자의 이어지는 발언에 더 열광했다.
[만일 골든 그룹의 한국 투자가 계획대로 순조롭게 이뤄진다면 IMF를 조기 졸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이 아닙니다.]
정부의 발표에 반신반의하면서도 국민들은 크게 환영했다.
지금 이뤄지고 있는 기업들의 정리해고는 IMF의 권고 때문이었다.
물론 정부 협상 당시 강혁의 간섭으로 IMF의 권고사항이 회귀 전과 같지는 않았다.
그래도 워낙 방만한 경영을 해왔던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자업자득인 셈이지만 빚으로 경영을 해왔던 기업들은 체질 개선을 위해서는 거쳐야 할 과정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국민들의 뇌리 속에는 IMF의 간섭 때문이라는 인식이 깊이 박혀 있었다.
그러니 투자가 원활하게 진행되면 IMF의 빚을 조기상환할 수 있다는 말은 얼마나 큰 희소식인가?
국민들은 골든 그룹과 골든 그룹 회장이라는 강혁에 대해 열광하며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대체 어떤 회사이기에 한국에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한다고 하는 것일까?
그리고 그런 큰 돈을 투자하는 골든 그룹의 회장인 강혁은 어떤 사람인가?
이 두 가지는 금세 국민적인 관심사가 되었고, 한국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언론이 움직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단기간에 충실한 보도가 이뤄지기는 어려웠다.
대다수의 언론 보도 내용이 대동소이했다.
한국에서 태어난 토박이가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크게 성공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그뿐이면 사람들도 그저 아 그렇구나하고 끝났을 것이다.
서울 데일리를 필두로 몇몇 회사들이 강혁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내용들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언론 보도를 통해 사람들이 알게 된 내용 중 충격은 준 것은 바로 강혁이 LA다저스의 새로운 주인이라는 사실이었다.
매주 주말이면 박찬우의 영향으로 LA다저스가 나오는 메이저리그 경기를 시청하던 시절이었다.
65000석에 달하는 거대한 경기장과 그 곳을 꽉 메운 야구팬들, 선수들의 화려한 플레이.
LA다저스는 그야말로 대한민국 국민들 모두의 사랑을 받는 꿈의 구단이었다.
그런데 강혁이 그런 구단의 새로운 주인이었다.
당시 스타들의 몸값이 얼마며, 새로 FA계약을 맺은 선수가 얼마를 벌었다.
혹은 누가 계약 대박을 쳤다는 이야기들을 소주 한 잔 걸치면서 하던 시절이다.
누구나 천문학적인 돈을 벌어들이는 메이저리그 스타들을 부러워하는 시절인 것이다.
그런데 뜬금없이 한국인이 구단 하나를 통째로 샀다고 하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그게 다가 아니었다.
대중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에 더 놀라고 열광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