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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11화 (211/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11화

211화

"할아범이 주는 홍차는 역시 맛있단 말이야."

"만족하신다니 저도 기쁘군요."

백발의 노집사가 왼쪽 눈의 단안경을 반짝이며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

신상현은 홍차를 마신 후 만족스런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할아범, 대중일보 사장이 갑작스런 사고를 당했다며?"

신상현의 질문에 노집사의 단안경이 반짝거렸다.

"아직 창창한 나이인데 불행히도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합니다."

"저런, 저런, 아직 한창 때인데 어쩌다 그런 일을 당한 거지?"

홍차를 입안에 머금은 신상현이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마주보고 오던 트럭에 치였다고 하더군요. 트럭을 몰던 기사가 졸음운전을 했다고 합니다."

"쯧쯧, 그거 참 안됐군. 그래서 그 트럭을 운전하던 기사는 어떻게 됐나?"

"그게 그만 유족들과 가족들에게 미안하다는 유서를 써놓고, 유치장에서 자살을 했다고 합니다."

"그것 참 안됐군 그래."

"그렇습니다. 한 잔 더 따라 드릴까요?"

노집사가 경쾌한 톤으로 말했다.

두 사람은 대중일보 사장의 갑작스런 죽음을 즐기는 듯했다.

"음, 한 잔 더 마시고 싶군."

신상현은 작은 팔을 내밀어 노집사에게 잔을 내밀었다.

노집사가 따르는 홍차가 잔에 부어지며 따뜻한 김이 올라왔다.

"삼영 그룹의 박 회장은 어떻게 됐어?"

"그분은 갑작스런 심장마비라고 하더군요."

"허허, 그 사람 평소 비만이더니. 결국 그렇게 됐군. 아직 죽을 나이는 아닌데 말이야."

"그렇습니다. 도련님."

새로 따라진 홍차를 입에 가져가며 맛을 음미하던 신상현이 말했다.

"아마 충분한 경고가 됐을 거야."

"물론입니다. 도련님."

신상현의 말에 노집사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삼영 그룹의 박 사장은 이번에 땅 투기로 큰 손해를 입은 사람 중 하나였다.

강혁이 한국에 대대적인 투자를 계획하면서 일진회에서는 미리 땅을 사놓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런데 정부에서 유출된 투자 정보들은 일종의 페이크였다.

강혁이 대통령과 입을 맞춰서 흘린 가짜 정보에 당한 것이다.

결국 신상현에게 정보를 듣고 일진회에서 땅을 미리 사둔 사람들은 큰 손해를 입었다.

신상현도 투자를 했었기 때문에 역시 손해를 입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는 신상현의 카리스마에 손상을 입었다는 것이다.

신상현은 이 문제를 정부에서 투자 정보를 입수했던 일진회 소속 대통령 경제 특보의 탓으로 돌렸다.

하지만 이 문제로 인해 생긴 여진은 남아 있었다.

공공연히 신상현을 탓한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삼영 그룹의 회장 박영훈이었다.

박영훈은 올해 50세의 나이로 카리스마 넘치는 재벌 회장이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죽음을 맞이했다.

두 사람의 죽음의 여파는 일진회 회원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줄 것이다.

신상현에게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냈던 자들이 갑자기 모두 사고로 죽었으니 말이다.

그들도 눈치가 있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앞으로는 몸을 사릴 것이다.

"우리 쪽 쥐새끼들은 앞으로 얌전히 지내겠는데. 문제는 강 형사님이군."

"그렇습니다. 도련님. 아직도 믿기지 않습니다. 어떻게 일개 형사가……."

"흐흐, 내가 말했잖아. 할아범. 우리 강 형사님을 보통 사람들과 같이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그러셨죠. 도련님."

사실 노집사는 지금도 어안이 벙벙했다.

오래 전부터 신상현은 강혁의 동정을 파악하도록 지시를 내렸었다.

그래서 노집사와 박광수는 강혁에 대한 감시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강혁이 순경이 되어 경찰서에서 근무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철저히 그의 행적을 감시했다.

당시에 강혁은 그저 평범한 경찰에 불과했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으로 연수를 떠난 것이다.

그리고 1년.

갑자기 나타난 강혁은 골든 그룹의 회장으로 등장했다.

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런데 신상현은 어쩐 일인지 불가능한 일로 보지 않는 듯했다.

오히려 반가워하는 기색까지 보였다.

마치 즐길 거리가 더 늘어나 좋아하는 모습이었다.

"좋아, 그래서 내가 내린 지시는 어떻게 됐지? 할아범?"

"우선, 미국 본사 쪽에 사람을 심는데 성공했습니다."

노집사의 말에 신상현은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좋아. 잘했어. 그리고?"

"강 형사 부모님들은 모두 귀농을 했더군요."

"응, 그랬지."

강혁은 자신의 정체가 한국에 드러날 때쯤에 부모님에게 모든 사실을 알려주었다.

자신이 미국에서 큰 성공을 거두어 대기업 회장이 되었다고 말이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던 두 사람이었지만 지금은 강혁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강혁의 권유로 귀농을 선택해 시골로 내려가 있었다.

사실 귀농은 옛날부터 강혁의 부모님이 했던 이야기였다.

강혁이 가정을 가지게 되면, 두 사람은 시골로 내려가 농사나 지으며 살자고 말이다.

그때의 이야기를 기억했던 강혁은 두 사람을 시골로 모셨다.

시골에 땅을 사서 대저택을 짓고 그곳에 거주하게 했다.

"강 형사가 부모님을 많이 아끼는 모양입니다. 대저택에 경호원도 두었더군요."

"그래서?"

"경호원 쪽에 저희 사람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강혁 부모님에게 새로운 이웃이 생겼죠. 젊은 귀농 부부입니다."

"후훗, 잘했어. 할아범."

"아닙니다. 도련님. 저는 지시하신 대로 따른 것뿐입니다."

노집사의 말에 신상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박광수는 어때?"

"여전하죠. 지금이라도 강 형사님 목을 따버리고 싶어 하더군요."

"흐흐, 조금만 더 참으라고 해."

"그렇게 일러두었습니다."

"흐흐, 그렇군. 그 녀석에게 전해."

"……."

"대신 다른 먹잇감들을 던져줄 테니 그걸로 참으라고 말이야."

"예, 도련님."

노집사는 신상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단안경을 반짝였다.

*     *     *

"사장님, 준비되셨습니까?"

"음, 그래. 출발하자고."

"예, 사장님."

검은색 양복을 위아래로 입은 대한일보 서인태 사장은 재촉하는 비서에게 대답했다.

대중일보 허 사장의 갑작스런 사고사에 문상을 가려는 것이다.

사장실을 나서려고 할 때 핸드폰 벨이 울렸다.

번호를 확인하니 대동일보의 이 사장이었다.

"어, 이 사장."

"가고 있는 중이야?"

"음, 이제 막 나서려는 중이었어."

"그렇군."

이 사장은 잠시 말을 멈추고 침묵했다.

그러다 다시 말을 이었다.

"사고사라며?"

"그렇다는군."

"……."

다시 전화 너머로 잠시 말이 없었다.

하지만 서 사장도 재촉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후 이 사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삼영 그룹 박 회장님도 돌아가셨어."

"알고 있어."

"심장마비라고 하더군."

"……."

"믿어져?"

"……."

이 사장의 말에 서인태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삼영 그룹의 박 회장은 자신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겉으로 보기에 건강에 문제가 있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너도 알겠지만 두 사람 모두……."

"잠깐만. 이 사장."

"응?"

"일단 만나서 이야기하자."

"…그래. 그렇게 하자."

서인태는 무거운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

"사장님?"

문밖에서 비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나가. 김 비서."

"예, 사장님."

서인태는 전화기를 품속에 넣고 사장실은 나섰다.

하지만 그의 얼굴은 전에 없이 핏기가 사라진 모습이었다.

"얼마나 남았지?"

서 사장의 말에 앞자리에 앉은 묘령의 젊은 여자가 시간을 확인했다.

"10분쯤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그렇군."

서인태는 팔짱을 끼고 눈을 감았다.

그러자 며칠 전 자신의 눈앞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허 사장이 떠올랐다.

그런 사람이 갑자기 죽음을 당했다.

서인태는 쉽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리고 입 밖으로 내지 않았던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혹시 그 사람이 죽인 것일까?'

서인태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설마, 그저 우연의 일치일 거야. 박 회장도? 연세가 있는 나이잖아? 하지만 아직 50대 중반이었어.'

띠리리리리― 띠리리리릿―

생각에 잠겨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핸드폰을 꺼낸 서 사장은 번호를 확인했다.

조금 전 사장실에서 전화를 나눈 이 사장이었다.

"이 사장, 도착했어? 난 10여 분 정도……."

―…교통 순찰대 이형택 경장입니다. 혹시 휴대폰 주인과 아시는 사이입니까?

"무슨 일이죠? 이 사장과 저는 친구 사이입니다. 지금 함께 친구의 문상을 가기로……."

―…친구 분은 사망하셨습니다.

"…예?"

―교통사고예요. 교차로를 지날 때 대형 컨테이너 차가 갑자기 브레이크 고장으로…….

"……!"

경찰과의 전화를 끊은 서인태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을 부여잡았다.

이번에도 사고사였다.

그런데 정말 사고사일까?

서인태는 떨리는 몸을 주체할 수 없었다.

띠리리릿― 띠리리리릿―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서인태는 전화기 속의 번호를 확인했다.

못 보던 번호다.

떨리는 손으로 통화버튼을 누른 서인태의 귀로 아직 앳된 소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서 사장.

"……?"

―친구가 둘이나 사고사로 죽었다고 하더군. 심심한 조의를 표하네.

"…미…미륵불님?"

―자네가 살아남은 건 모두 자네 아버님 덕이니. 앞으로는 더 몸가짐을 바르게 해야 할 걸세.

"……!"

―알겠나?

"알…알겠습니다. 미륵불님."

전화가 끊어졌다.

서인태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창밖을 내다보았다.

확인사살이었다.

두 사람의 죽음은 사고사가 아니었던 것이다.

서인태는 차가 장례식장에 도착할 때 떨리는 몸을 멈추지 못했다.

머리속으로 서성주 회장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버님, 왜 그런 어린아이의 말을 맹신하시는 겁니까?"

"어리석은 녀석, 몰라서 그러는 것이냐?"

"그게 아니라. 아무리 한두 번 예언이 맞았다고 해서 그렇게……."

"예언 때문이 아니다."

"예?"

"아니, 예언 때문만은 아니라고 해야겠군."

"……?"

"그분은 이미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서성주 회장의 말에 서인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럴 수밖에. 자신들이 누구인가?

어떤 이들은 자신들을 밤의 대통령이라고 불렀다.

대한민국의 밤을 지배하는 사람들.

대한일보 사주 일가는 그런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함부로 할 수 없다니?

대한민국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다는 말인가?

대통령이라고 할지라도 자신들을 두려워했다.

언론에서 꼬투리를 잡으면 어떤 사람이라도 하루아침에 멸문지화로 만들 수 있는 힘.

그것이 대한일보였다.

"아버님, 너무 과장하시는 거 아닙……."

"이런 어리석은 녀석! 아직도 그렇게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는 눈이 없는 것이냐?"

"아, 아버님."

서인태는 이렇게 분노하는 서성주를 오랜 만에 보았다.

"그분은… 그분은… 이미 엄청난 힘을 손에 넣었다."

"……?"

"삼강 그룹의 회장이 그분 편에 섰다."

"……!"

서성주의 말에 서 사장은 깜짝 놀랐다.

"왜인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확실해!"

"……!"

"그뿐이 아니다. 정계, 사법, 경찰, 국정원에 군대까지 모두 암암리에 장악했어."

"그…그게 가능한 일입니까?"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서성주의 말에 서인태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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