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13화
213화
"안녕하세요. 회장님."
"하하, 자네 왔나?"
"예, 회장님, 간밤에 별일 없으시죠?"
"아이고, 이 사람아. 나야 건강하지 거 회장님 소리 좀 안하면 안 되나?"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아들이 회장이면 당연히 어르신도 회장이죠. 하하하."
"아이고, 이 사람들 못 말리겠구만. 그래 어딜 가는 길인가?"
강혁의 아버지 강일수는 귀농한 마을 젊은이와 인사를 나누었다.
사람들은 강일수에게 회장님이라고 불렀다.
강일수의 아들이 골든 그룹의 회장인 강혁이란 사실을 알고서 그렇게 불러 주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이 회장이라고 부를 때마다 그러지 말라고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들이 회장이면 아버지도 당연히 회장이라는 것이다.
강일수도 한두 번 말리다가 요즘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고 있었다.
"아, 그게 아침나절에 제 안사람이 배가 좀 아프다고 해서 약국에 가는 길입니다. 허허."
"뭐? 어디가 아픈데?"
"아니 별거 아닙니다. 복통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아니, 이 사람이. 사람이 아픈데 그게 별 거 아냐?"
"아, 그게……."
강일수는 언제나 자신의 지근거리에 있는 경호원을 불렀다.
"이보게."
"예, 회장님."
"어이쿠, 자네도 그렇게 부르나?"
"하하, 그게 대셉니다. 회장님."
"쩝, 그래? 내가 아들 덕에 팔자에도 없는 회장 소릴 다 듣게 생겼구만. 그래."
강일수는 허허하고 웃더니 경호원에게 일렀다.
"여기 이 친구 안사람이 아프다는데 바로 병원에 좀 데려다 주게나."
"알겠습니다. 회장님."
"아니, 회장님 안 그러셔도 되는데……."
마을 젊은이 김 씨는 강일수의 말에 깜짝 놀랐다.
아직 마을마다 자기 차가 있는 그런 시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읍내에 하나 있는 병원까지 데려가기 어려워 약국에라도 가볼 생각이었던 것이다.
"아냐, 병이라는 게 그래. 초기에 딱 잡아야지. 잘못하면 병을 키울 수 있어요."
강일수의 말에 김 씨는 못 이기는 척 아내를 차에 태워 병원에 데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병원에서 벌어졌다.
김 씨의 아내를 진료한 의사가 복통이 문제가 아니라며 더 큰 병원에서 검사를 받아보라고 한 것이다.
경호원 한동수는 바로 김 씨 아내를 데리고 큰 병원으로 데려가 검사를 시켰다.
그랬더니 위장에서 물혹이 여러 개 발견 되었다.
다행히 암은 아니지만 조기에 발견되었기에 망정이지 모르고 지나쳤으면 암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경호원에게 사실을 전달 받은 강일수는 바로 김 씨 아내를 입원시키고, 수술까지 시켜주었다.
입원부터 수술까지 모든 비용 일체를 강일수가 부담한 것은 물론이다.
김 씨는 강일수에게 크게 감사했고, 이 소문이 마을에 파다하게 퍼졌다.
역시 강혁의 아버지는 뭐가 달라도 다르다며 마을 전체가 고마워했다.
이 일 이후에 마을에 뭔가 어려운 일이 생기면 다들 강일수를 찾았다.
한 날은 이런 일이 있었다.
서울로 돈 벌러 갔다던 손 씨의 아들이 빈털터리가 되어 고향에 내려왔다.
그런데 며칠 후 손 씨의 아들이 집안을 온 통 헤집어 놓으며 난동을 부렸다.
사업을 할 돈이 필요하니 논밭을 팔아서라도 돈을 해 놓으라며 고함을 지르며 행패를 부렸다.
보아하니 아무리 설득해도 손 씨가 말을 듣지 않자 술에 취해 대놓고 야료를 부린 모양이다.
이러다 큰 일 나겠다 싶었던 마을 사람들이 급히 강일수를 불렀다.
"회장님, 큰… 큰일이 났습니다."
"아니, 최 영감 댁 아들 아닌가? 무슨 큰일이 났다는 게야?"
"왜 엊그제 서울서 내려온 손 씨 아저씨 아들 손말석 말입니다."
"어, 그래. 기억나네. 손 씨가 서울서 아들이 내려왔다고 했지. 안 그래도 손 씨가 그 놈 일자리 좀 알아봐달라고 했는데……."
"예? 그러셨어요? 그런데 지금 그놈이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고 있습니다."
"뭐? 그게 무슨 말이야?"
"손 씨 아저씨한테 전답을 팔아서 사업할 돈 해놓으라고 난리를 치고 있어요. 이러다 일 나겠어요. 어르신."
"그래? 어여 가 보자."
강일수가 손 씨 집으로 가자 항상 지근거리에서 그를 따르는 경호원도 함께 했다.
세 사람이 도착해보니 집안에는 와당탕 와장창 물건 부서지는 소리와 울음소리가 뒤섞였다.
손말석이 술에 취해 물건을 다 때려 부수며 난동을 치자 어머니와 아내가 우는 소리였다.
"이놈의 자식이 안되겠네. 손 좀 봐줘야겠어."
"회장님, 제가 하겠습니다."
경호원이 강일수를 만류했다.
"아니야, 이런 자기 애비도 모르는 놈은 내가 직접 손을 봐줘야겠어."
강일수가 앞으로 나서자 집 주변에 모여 있던 마을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옆에 건장한 체격을 지닌 경호원이 바로 뒤를 따르자 다들 우려하면서도 나서지 않았다.
경호원이 옆에 있는데 무슨 일이 있을까 싶었던 것이다.
와장창―!
"어이쿠, 이게 뭔 소리야?"
"회장님, 괜찮을까?"
"몸이 떡대같은 경호원이 같이 들어갔는데 괜찮지 않겠어?"
잠시 후, 강일수가 밖으로 나왔다.
모두들 괜찮냐고 묻는 가운데 경호원이 손 씨 아들을 어깨에 메고 나타났다.
"여기 내려 놔."
"예, 회장님."
그런데 경호원의 표정이 이상하다.
강일수를 바라보는 거대한 떡대의 경호원이 괴물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던 것이다.
"회장님, 말석이는 괜찮은 겁니까?"
"죽은 거 아냐?"
"숨을 안 쉬는 거 같은데?"
동네 사람들이 웅성거릴 때 강일수는 정신을 잃은 손말석에게 다가가 심장에 손바닥을 올렸다.
그리고 살짝 손을 움직이는 것 같더니 갑자기 손말석이 숨을 쉬며 정신을 차렸다.
"이 녀석, 이제 정신이 드는 것이냐?"
"회…회장님!"
정신을 차린 손말석은 강일수를 보자말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정신이 들었으면 일어나."
"예, 예."
손말석은 누운 자리에서 일어나 무릎을 꿇었다.
제대로 눈을 들어 강일수를 바라보지도 못할 정도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공장에 자리하나 알아봐 줄 테니까, 열심히 일해서 돈 벌 생각이나 해. 알겠냐?"
"예, 예, 어르신 알겠습니다."
"앞으로 한 번만 더 행패를 부리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 줄 알아. 알겠냐?"
"알, 알겠습니다. 회장님."
"네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공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서울에 점포 하나 알아봐 주마."
"예? 그…그게 진짭니까? 회장님?"
"네 놈이 진짜 정신을 차렸다고 인정되면 그렇게 해주마."
"감, 감사합니다. 회장님. 저…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강일수가 말하는 점포가 신라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점포라는 사실을 손말석도 알고 있었다.
"강 회장, 진짜 고맙네."
어느새 집 안에서 나온 손 씨가 강일수에게 말했다.
"우리 사이에 뭔 인사야. 당연한 일이지. 그건 그렇고. 내일 우리 집에서 바둑 한판 어때?"
"허허, 알았어. 저녁즈음에 시간 내서 갈게."
"뭔 저녁까지 기다려. 내일 아침 먹고 바로 와."
"알았어. 알았어. 내 그렇게 할게."
이날 이후 강일수의 경호원이 힘이 엄청 세다느니 무술이 합이 20단이 넘는다는니 하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다들 강일수가 심장에 손바닥에 손을 대자 숨을 쉰 것에 대해서는 이해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건의 전말을 손말석에게 물어본 친구들은 이상한 이야기를 들었다.
난동을 부리던 자신을 제압한 것은 경호원이 아니라 강일수라는 것이다.
그런데 다들 손말석이 술에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것으로만 생각했다.
어떻게 건장한 젊은이인 손말석을 나이든 강일수가 어찌할 수 있느냐는 말이다.
하지만 손말석의 대답은 단호했다.
술에 취해 달려들던 자신에게 강일수가 손바닥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손바닥이 몸에 닿자 몸이 한 바퀴 맴을 돌면서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다.
소주에 고기를 먹으며 손말석의 이야기를 듣던 젊은이들은 다들 손말석이 농을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손말석의 이야기는 우연한 일로 모두에게 사실로 밝혀졌다.
동네에 사람들이 장 씨라고 부르는 들개들을 잡아다가 사육하는 사람이 있었다.
한날은 장 씨가 들개를 사육하던 장소에서 그만 개 한 마리가 탈출하는 일이 생겼다.
장 씨가 사육하는 개들 중에서도 사나운 들개였다.
덩치가 장정만한 들개가 날카로운 이빨로 사육장 철사를 찢고 탈출한 것이다.
찢어진 사육장을 뒤늦게 발견한 장 씨는 깜짝 놀라 들개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하필이면 들개가 도망친 것이 마을 회관 쪽이었다.
"할아버지, 엄마가 점심 드시러 오래요."
"알았다. 곧 나가마."
"흐흐, 김 가야, 그럼 이 바둑은 내가 이긴 거다?"
"뭔 소리냐? 내 얼른 점심 먹고 올 거니까 어디 가지 말고 있어, 응?"
"껄껄, 이미 다 진 바둑을 어떻게 역전한다는 게야?"
"아, 두고 보라니까."
"이보게, 김 씨 같이 가세."
"한 회장도 집에 가게?"
"그래, 여편네가 얼른 오라는군."
꺄아악!
마을 회관 밖에서 김 씨 집 손녀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김 씨와 강일수, 그리고 그의 경호원이 밖으로 나와 보니 40여 미터 밖에서 들개가 달려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아가야!"
김 씨는 맨발로 손녀에게 뛰어갔다.
"위험합니다. 여기 계십시오. 회장님."
경호원이 달려 나가려 할 때였다.
그의 바로 앞에 있던 강일수의 몸이 그림자처럼 흐릿해지더니 어느새 강 씨 손녀의 앞에 서 있었다.
"회, 회장님?"
강일수의 경호원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경호해야 할 대상이 스스로 위험한 지경에 달려든 것이다.
그런데 미처 만류한 세도 없었다.
자신의 눈앞에 있던 강회장이 어떻게 벌써 저기까지 간 것인지 이해도 가지 않았다.
경호원은 재빨리 품속에 있던 권총을 뽑아 들었다.
그때였다.
경호원은 두 눈을 부릅떴다.
강 회장이 한쪽 손을 들어 자신을 만류했던 것이다.
으르르르렁!
거친 울음소리와 함께 들개가 강일수를 향해 날카로운 이빨을 내밀며 뛰어 올랐다.
"앗― 안 돼!"
마을 회관에서 나온 사람들이 모두들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때였다.
강일수가 손바닥 하나를 뛰어 오르는 들개의 가슴팍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손바닥이 개의 가슴에 닿자 개의 몸이 소용돌이치며 회전하기 시작했다.
파라라라랏―
허공에서 맴을 도는 거대한 개의 몸체는 마치 파랑개비를 보듯이 회전했다.
케에에에엥―
들개의 비명 같은 울부짖음이 들렸다.
들개는 그대로 허공에서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사람들이 뛰어와 강 회장과 그 뒤에 있던 손녀와 김 씨를 챙겼다.
"회장님 괜찮으십니까?"
경호원은 총을 다시 가슴팎에 집어 놓고 강 회장에게 뛰어갔다.
"허허, 보다시피 난 괜찮네."
들개는 혀를 축하고 입 밖으로 내밀며 눈이 뒤집혀 있었다.
입가에는 하얀 거품이 삐져나와있었다.
강수일은 유유자적 들개에게 다가가더니 손바닥을 가슴에 갖다 대었다.
그러자 가슴이 움푹 들어갔다가 나왔다.
캐캥―
들개가 울음을 터트리며 휙 하고 몸을 일으켰다.
강수일이 그런 들개를 노려보았다.
끼이잉―
들개는 강수일의 칼 같은 날카로운 시선에 눈을 내리 깔고는 갑자기 배를 뒤집어 보였다.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배를 내밀며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그때 장 씨가 헐레벌떡 트럭을 몰고 왔다.
"아이고, 죄송합니다."
장 씨는 모두에게 크게 사과를 하고는 들개를 잡아 개장에 가두었다.
그날의 일은 순식간에 마을에 퍼졌고, 모두들 강 회장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마을 사람들은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모두 강 회장을 존중하며 조심스럽게 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