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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18화 (218/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18화

#218화

"어머, 손 기자님. 이것 좀 보세요."

"아가씨, 왜 그러시죠?"

손 기자는 서예리의 뉴욕 아파트를 정리해주고 있었다.

최근 서예리는 주말이면 항상 이곳에서 기거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자주 강혁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가끔 손 기자도 이곳을 찾아 뭔가 필요한 것이 없는지 살피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늘도 서예리의 아파트를 들린 손 기자는 서예리에게 차를 얻어 마시고 있었다.

그런데 거실 TV를 켠 서예리가 놀란 표정을 짓자 손 기자도 TV를 향했다.

"아, 아니? 이럴 수가?"

손 기자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CNN에서 한국 언론의 대대적인 조세 포탈 소식을 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 방송사가 한국 언론의 탈세 소식을 다룬다는 것은 상당히 의외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방송은 상당히 상세한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게다가 단순히 조세 포탈에 대한 이야기에 거치지 않았다.

어떻게 한국 언론이 독재정권과 유착하여 그 세를 불려왔는지.

어떻게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조세 포탈이 가능했는지.

그리고 지금 적반하장으로 정부의 조치를 언론 탄압으로 포장하고 있는지.

한국이란 나라가 고속 성장을 이루는 가운데 중진국의 함정에 빠진 이유와 연관해서 설명했다.

한마디로 오늘 날 한국이 경제 위기에 빠진 이유 중 하나가 언론 탓이라는 거다.

"어우, 맞는 말이지만 진짜 뼈 때리네!"

"아가씨―"

"뭐, 어때요. 맞는 말이잖아요. 아무튼 이거 큰일이네요. 외신에서 이 정도로 때리면……."

"국내에서의 파장도 만만치 않겠죠."

"괜찮을까요?"

"글, 글쎄요."

CNN에서 왜 이런 방송을 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이번 정부의 조치에 강혁 회장도 직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을 것이다.

자신들이 그렇게 때려 됐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 외신의 이런 방송은 역시 강혁 회장의 입김이 들어갔다고 봐야 한다.

"아가씨, 죄송하지만……."

"어서 가보세요. 손 기자님. 당분간 좀 바쁘시겠네요."

"하하, 예. 그럼."

손 기자가 부리나케 서예리의 아파트를 빠져나갔다.

"휘유, 이것 참. 아무래도 지각 변동이 있겠는데?"

서예리는 마치 남의 집에 불 난 듯이 행동했다.

한국에서 대한일보 사주인 할아버지와 큰 아버지가 징역형을 받게 될 상황인데 말이다.

그런데 속사정을 알고 보면 서예리의 이런 태도를 이해할 만했다.

만일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모두 감옥에 가게 된다면 회장과 사장이 공석이 된다.

그렇게 된다면 자연스럽게 그 뒤를 자신의 아버지가 잇게 될 것이다.

그러니 이런 태도가 나오는 것이다.

"어쩌나, 우리 아빠 엄마. 지금쯤 기대감으로 가슴이 풍선처럼 부풀어 있겠는데?"

서예리는 소파에 앉아 방송을 끝까지 지켜보기 시작했다.

*     *     *

CNN을 시작으로 폭스TV와 스타TV가 움직였다.

미국의 양대 언론 라이벌이 한국 언론의 조세포탈 문제를 일제히 조명한 것이다.

그러자 연달아 미국의 다른 언론들도 이 문제를 다루었다.

한국은 미국의 원조와 도움으로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로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언론의 극심한 부패로 성장에 발목이 잡혔다는 기사들이 연일 등장했다.

서울 데일리를 비롯해서 몇몇 언론사들이 이들 외신 기사를 연일 보도했다.

하지만 다른 언론사들은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이 외신 기사들을 외면했다.

그런데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TBS에서 특집 방송을 편성한다는 예고가 떴다.

외신에서 보도하고 있는 한국 언론의 문제점에 대해 파헤친다는 방송이었다.

"뭐야? TBS에서?"

"예, 회장님."

대한일보 회장 서성주는 비서의 말에 부들부들 떨었다.

TBS는 한국의 공영방송이다.

그러니 당연히 정권의 입김에 약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지금 사장은 전 정권에서 임명된 자였다.

서성주와도 인연이 있는 사이로 사장인 서인태와 친분이 깊었다.

그런데 이럴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당장 그 놈한테 전화 연결해!"

"예, 회장님."

서성주의 비서는 황급히 TBS 사장의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연결을 시도했다.

"회장님, 연결됐습니다."

비서에게서 핸드폰을 건네받은 서성주의 귀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회장님,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잘 계셨습니까?

"흥, 자네 밑에 사람들 때문에 잘 못 지내게 생겼네."

―하하, 그 특집 방송 때문이군요.

서성주 회장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박 사장의 웃음소리가 거슬렸다.

"그 특집이니 뭐니 하는 방송 설마 자네가 지시한 건가?"

―어이쿠, 요즘 애들이 어디 시켜서 하는 애들입니까?

"자네가 지시한 건 아니란 말이지?"

―그럼요. 저는 그런 방송을 준비하는지도 몰랐습니다.

"그렇다면 두말 않겠네. 그 방송 중지 시키게."

―죄송합니다만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요.

"뭐야? 자네 그게 무슨 소린가?"

생각지도 못했던 박 사장의 말에 서성주는 두 눈을 부릅떴다.

예전에는 자신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했던 박 사장이었다.

그런데 지금 감히 자신의 말을 듣지 않겠다니?

―방송은 예정된 날짜에 그대로 방영될 겁니다. 회장님.

"자네 감히 날 거스를 생각인 건가?"

―죄송합니다만 회장님… 시류를 잘 보셔야지요.

"너, 너 이 녀석… 어떻게 지금 그 자리에 있게 된 건지 잊은 게야?"

서성주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 박 사장의 얼굴에는 회심의 미소가 번져 있었다.

―뭐, 하실 말씀 다하신 것 같으니 저는 이만 끊겠습니다. 그럼.

달깍―

전화가 일방적으로 끊어졌다.

"이…이 놈이 감히 날!"

서성주의 얼굴이 종이 짝처럼 구겨졌다.

"흐흐흐, 늙은이. 설마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겠지?"

박 사장은 흥얼거리며 손에 든 와인 잔에 술을 부었다.

"오늘따라 술맛이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군."

박 사장은 며칠 전 자신에게 걸려왔던 한 통의 전화를 떠올렸다.

만일 그때 자신에게 걸려온 전화가 아니었다면 오늘 이런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미국의 언론 재벌 테드 터너였다.

비록 자신이 한국의 공영방송 TBS의 사장이라고는 하지만 테드 터너같은 사람에게는 피라미에 불과했다.

아마 존재 자체에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알고 전화를 한 것인지 박 사장도 무척이나 당황했었다.

―하하, 반갑습니다. 박 사장님.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테드 터너의 목소리에 박 사장은 놀랐지만 이내 유창한 영어로 대화를 나누었다.

박 사장 역시 미국 유학 시절을 보내며 나름 영어에 능통한 사람이었다.

"터너 회장님. 반갑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로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까?"

―하하, 사실은 전부터 박 사장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주시하고 있었습니다.

"……!"

테드 터너의 말에 박 사장은 깜짝 놀랐다.

어떻게 알고 전부터 주시했다는 말일까?

―저한테 한국인 동생이 있는데 존 강 회장이라고 아시나요?

"아, 알다마다요. 아주 훌륭하신 분이지요."

박 사장은 테드 터너가 강혁을 거론하자 깜짝 놀랐다.

강혁이 누군가?

현재 한국에서 가장 핫한 사람이었다.

―그 친구가 박 사장님 칭찬을 엄청하더군요.

"예? 그…그래요?"

테드 터너의 말에 박 사장은 얼떨떨했다.

존 강 회장이 자신을 칭찬했다니?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사실 저희 CNN에서 아시아의 정치, 문화에 능통한 인재를 찾고 있었답니다.

"……!"

―존 회장의 말을 들어보니 박 사장처럼 저희 회사가 찾는 인재에 부합하는 분이 없더군요.

테드 터너 회장의 말이 진행될수록 박 사장의 가슴을 저절로 부풀어 올랐다.

―현재 저희 회사에 아시아 보도 부문 부사장 자리에 비어 있습니다.

"……!"

―제가 알기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걸로 알고 있는데요?

"맞, 맞습니다. 터너 회장님."

부사장 자리라고는 해도 거대 언론사인 CNN의 부사장이다.

게다가 이제 임기를 다해 백수신세가 될 자신에게 온 엄청난 제의라고 할 수 있었다.

―조만간 우리 직접 만나 자리를 함께 해봅시다. 제가 호텔숙박권과 항공권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박 사장은 테드 터너 회장의 말에 감격했다.

언론계의 거인이 자신을 어떻게 알고 직접 초대까지 하다니?

박 사장은 당시의 일을 떠올리며 다시 입가에 와인 잔을 가져갔다.

자신은 어차피 앞으로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사람이었다.

대한일보 서성주 회장에게 밉보인다고 해서 아쉬울 것이 없는 입장인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자기 상사로 모시게 될지도 모를 터너 회장에게는 잘 보여야 했다.

CNN이 주도해서 터트린 이번 보도에 대해 박 사장이 직접 특별방송 편성을 지시한 이유였다.

*     *     *

TBS에서 터트린 특집 방송의 파장은 엄청났다.

서울 데일리와 몇몇 언론사들에서 써낸 기사들과 함께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냈다.

타 방송사들도 뉴스 시간에 한국 언론의 행태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여기에 온라인상에서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SNS에서 끊임없이 이 일이 재생되었다.

온라인상에서 한국 언론에 대한 비판 기사는 화제성과 신뢰성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결국 대, 중, 동으로 상징되는 세 언론사들에 대한 국민의 여론은 엄청나게 악화되었다.

남들은 다 내는 세금을 안낸 주제에 세무 조사를 한 정부에 대고 언론탄압이라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서 세 언론사를 향해 서서히 악화되던 국민 여론에 기름을 갖다 붓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 시작은 중국에서였다.

푸젠성의 부서기인 시진풍이 중국 언론과 푸젠성 시민들에게 골든 그룹의 대중국 투자를 끌어오겠다고 한 것이다.

[골든 그룹이 한국에 대대적으로 투자하려고 했던 자금을 제가 푸젠성으로 유치하겠습니다.]

[골든 그룹의 강혁 회장은 한국에서 지금 몇몇 언론들에 의해 매국노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우리 푸젠성에 골든 그룹이 데이터 센터와 공장을 세운다면 푸젠성에서 모든 방면에서 적극 협력하겠습니다.]

[투자만 한다면 최고의 조건과 최고의 대우를 약속합니다.]

중국에서 시작한 러브 콜은 연이어 미국으로 이어졌다.

이번에는 일개 성의 부서기가 아니라 무려 미국의 대통령이었다.

[존 강 회장이 애국심을 발휘하여 한국에 투자하려 한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미국에 재투자 한다면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습니다.]

[존 강 회장이 우리 미국에 데이터 센터와 공장을 짓는다면 미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돕겠습니다.]

중국에 이어 미국까지 이어진 구애는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게 뭐야? 우리가 속은 거야?"

대한일보와 대중, 대동일보를 중심으로 거의 모든 언론사들이 강혁과 골든 그룹을 어떻게 말했던가?

강혁은 애국자가 아니라 사실은 한국의 인프라를 집어 먹으려는 현대판 이완용이다.

투자는 명목상일 뿐이고, 사실은 한국의 알짜 기업들을 미국에 팔아넘기려고 한다.

한국 기업이 미국으로 팔려 간다.

실제와는 다른 자극적인 기사로 연일 신문지상에서 강혁과 골든 그룹을 매도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중국과 미국이 강혁을 향해 적극적으로 구애의 손길을 내밀자 비로소 국민들은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외국 자본의 한국 침탈이라는 언론의 보도와는 180도로 다른 진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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