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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22화 (222/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22화

#222화

"어떻게 됐지?"

신상현은 의자에 앉아 브랜디를 넣은 홍차를 마시며 노집사에게 물었다.

고개를 든 노집사의 단안경이 번쩍였다.

"성공했다고 합니다. 도련님."

"시나리오대로 움직이도록 확실하게 압박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선고 공판이 끝날 때까지 방심하지 말라고 해."

"예, 도련님."

의자에 몸을 기댄 신상현은 어두컴컴해진 마당을 바라보았다.

"흐흐, 강 형사님. 이번 일은 생각대로 되지 않을 겁니다."

신상현은 입가로 홍차를 가져갔다.

생각 같아서는 이전처럼 술을 마시고 싶지만 아직은 브랜디를 섞은 홍차로 참고 있었다.

자신의 몸이 아직 다 자라기도 전에 알콜로 망쳐 놓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약간의 브랜디로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더 참기 어려운 것은 따로 있었다.

피와 폭력과 죽음!

살인 중독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신상현은 명백한 살인 중독이었다.

다만 갑작스런 죽음과 회귀의 충격으로 지금까지 오랫동안 냉각기를 가져왔다.

하지만 그 봉인은 육체의 자람과 함께 서서히 열리고 있는 중이었다.

첫 시작은 회귀 전과 같았다.

마당에 심겨 있는 나무를 살펴보면 주변의 나무보다 유난히 잘 자란 나무가 보일 것이다.

그 나무 아래에는 신상현의 새로운 시작이 담겨 있었다.

바로 최영혜가 집에서 기르던 강아지의 사체다.

'해피!'

최영혜는 그렇게 불렀다.

신상현은 마당을 볼 때마다 해피가 묻혀 있는 나무를 감상했다.

마치 술 대신 브랜디를 섞은 홍차를 마시는 것과 비슷했다.

피를 향한 갈증과 열망을 해피가 묻혀 있는 나무를 바라보며 식힌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에는 오랫동안 참아 왔던 이빨을 드러냈다.

같은 미술 학원에서 만난 연상의 여학생을 처리한 것이다.

회귀 후 처음으로 양 손을 피로 뒤범벅 시킨 날이었다.

그때부터였다.

피를 향한 갈망이 점점 더 참기가 어려워졌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좀 더 참아야 했다.

모든 것을 자신이 장악하기 전에는 눈앞의 적이 너무도 강대했다.

잘못하면 적을 처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어둠 속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오늘 선거 공판 결과를 보면 어떤 표정을 지을 지 궁금하군요. 강 형사님. 크크큿."

자정을 훨씬 넘긴 시각.

신상현은 의자에 몸을 기대어 브랜디를 넣은 홍차를 마시며 기분 좋은 흉소를 흘렸다.

*     *     *

―어디에요?

류수정의 귀에 꼽혀 있는 마이크로 신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바로 위층이야."

―카메라 도청 장치 설치하세요.

"조금만 기다려."

류수정은 조금 전 창문으로 보았던 사내들의 위치를 어림해서 위치를 이동했다.

그리고 몸에 부착되어 있는 장비 중 하나를 꺼냈다.

가느다란 관처럼 생긴 도구를 콘크리트 바닥에 갖다 대고 스위치를 눌렀다.

윙하는 소리와 함께 콘크리트 바닥에 가늘고 동그란 구멍을 냈다.

그리고 그 구멍 안으로 기다란 검은색 호스를 내려 보냈다.

호수의 맨 앞에는 구술처럼 생긴 카메라 렌즈가 달려 있었다.

그리고 검은 호스를 휴대한 박스 안에 있는 노트북에 연결시켰다.

류수정이 놀라운 점은 이런 도구들을 휴대하고도 빌딩 벽을 타고 올라갔다는 것이다.

"보인다."

"여기도 보여요."

류수정의 귓가로 신소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도 보여."

최요한의 목소리였다.

검은색 SUV에 타고 있는 캐빈 박과 최요한도 같은 화면을 보고 있었다.

화면에는 넓게 사방이 터여 있는 곳에 커다란 소파를 가져다 놓고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남자를 중심으로 십여 명이 넘는 사내들이 있었다.

"데리고 왔냐?"

"예, 형님."

검은 가죽 재킷을 입은 사내가 흘깃 모포에 쌓여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머리에 포머드를 발라 붙인 머리에 눈 아래 볼에 긴 흉터가 나 있었다.

"잠시 후면 아이를 데리러 갈 손님들이 오실 거야. 이쪽에 눕혀."

"예, 형님."

깍두기 머리를 한 사내 하나가 소파에 아이를 눕혔다.

팔뚝에는 호랑이가 새겨진 문신이 반쯤 보였다.

소파 옆에는 쇠파이프와 각목이 쌓여 있었다.

"언제쯤 오기로 했습니까? 형님."

"그렇게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될 거다."

"그런데 형님."

"왜?"

"우리가 왜 이런 심부름 같은 일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흑표야."

"예, 형님."

"그분들은 우리 같은 놈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

"시키는 대로 하고 조용히 돈이나 받으면 될 일이야. 알겠냐?"

"알겠습니다. 형님."

―아무래도 이놈들은 납치만 하고, 시킨 쪽은 따로 있는 것 같군요.

신소희가 말했다.

―어떻게 할까요? 사주한 놈들이 오는 모양인데.

―기다렸다가 아이를 데려가는 놈들이 오면 덥치도록 해.

박정철이 상황을 보고 있다가 지시를 내렸다.

"알겠습니다."

류수정이 대답했다.

"요한은 수정이 지원을 나가고. 캐빈은 준비하고 있어."

"알겠습니다."

"전 늘 준비되어 있죠."

캐빈이 인상을 쓰며 짧게 대답했다.

최요한은 박정철의 지시를 따라서 차에서 나와 건물 뒤로 돌아갔다.

그리고 류수정에게 훈련받은 대로 벽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건물을 타고 오르는 것이 상당히 능숙해진 모습이었다.

―요한이 이젠 잘하는데?

"전 뭐든 잘합니다. 소희 누나."

"풋, 지랄한다. 넌 아직 멀었어, 인마."

"큭―"

류수정의 빈정거리는 말에 최요한은 인상을 찌푸렸다.

―큭큭, 수정 언니. 여전하시네요. 칭찬 좀 해주지 그래요. 귀여운 제자인데.

"흥, 저 놈은 조금만 칭찬해주면 기고만장해져서 안 돼."

―호호, 제자 사랑이 대단하시네요.

"흥."

신소희의 말에 류수정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닫았다.

―호호, 내가 정곡을 찔렀죠. 언니.

신소희는 고아로 자란 최요한이 고생을 많이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비록 소매치기에 사기꾼이었지만 번 돈 대부분을 고아원에 보낸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때나마 잘못된 길을 간 최요한을 엄하게 대하는 것이다.

"이쪽 방향을 접근하는 차가 있네요."

"차량 조회해 봐."

"알겠습니다."

신소희는 CCTV화면을 통해 차량의 등록번호를 확인하고 시스템에 돌렸다.

그러자 차량 주인이 떴다.

"한 달 전에 도난 신고 된 차량입니다."

"놈들이군. 신원 확인할 수 있나?"

"잠깐만요."

신소희는 차량 번호를 시스템에 올렸다.

그러자 얼마 안가서 교통시스템에 올라온 영상들이 확인되었다.

"여기 신호등 앞에 선 영상이 있네요. 얼굴이 나왔습니다."

"신원 확인해 봐."

"모두 네 사람인데 앞에 두 사람만 확인이 되네요."

"신호철, 나이 34세. 직업은 무역 회사 직원입니다. 효림 상사라는 곳이네요."

"무역회사 직원이 이 시간에 왜 납치된 아이를 데리러 가는 걸까요?"

통신망을 통해 두 사람의 대화를 모두 듣고 있던 최요한이 물었다.

"효림 상사는 국정원이 운영하는 유령 회사야. 저놈들 해외파트 공작원들이다."

박정철이 말했다.

그의 말에 신소희의 얼굴이 굳어졌다.

"팀장님, 이대로 괜찮을까요?"

"작전팀은 어떻게 됐어?"

"준비는 끝났습니다. 하지만 우리 쪽이 10분 정도 늦을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국정원과 전면전을 벌여서는 안 돼. 여기서 막는다."

신소희는 박정철의 판단이 맞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국정원에 넘어가면 일이 커질 수 있었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존재가 국정원에 대대적으로 노출될 수 있었다.

아직까지 국정원에는 신상현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곳곳에서 암약하고 있었다.

가능한 정체를 노출시키지 않은 것이 필요했다.

"알겠습니다. 팀장님."

―흑장미, 들었지? 10분이야. 버틸 수 있겠나?

"뭐, 해보죠."

박정철의 음성이 통신기를 통해 들어왔다.

류수정은 그저 씩하고 웃었다.

"어떻게 하려고 누나?"

어느새 빌딩을 타고 올라 류수정의 옆으로 온 최요한이 물었다.

"일단 우리가 먼저 아이를 빼내는 것이 중요해. 교란작전을 벌이자."

류수정의 말에 최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여러 차례 다양한 작전 훈련을 해왔던 두 사람이었다.

한마디만 해도 무슨 뜻인지 이해하고 있었다.

*     *     *

전화기 벨 소리가 울렸다.

흉터의 사내는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로 익숙한 사내의 음성이 들려왔다.

―아이는?

"준비됐습니다. 어디시죠?"

―곧 도착한다.

"알겠습니다. 아이를 내려 보내겠습니다."

사내는 탁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기를 닫았다.

"곧 온다는군. 준비해."

"예, 형님. 들었지. 너희들 내려가서 손님들 안내해."

"예!"

함께 있던 무리 중 몇 명이 우르르 빌딩 아래로 내려갔다.

그때였다.

펑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 연기가 터지며 주변이 자욱해졌다.

"뭐, 뭐야?"

파악― 팍―

끄아악!

뭔가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들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침입했다. 막아!"

"예, 형님."

부하들을 비명소리가 나는 곳으로 보낸 사내는 급히 고개를 돌려 아이를 찾았다.

"아, 아니? 어디로 간 거야?"

사내는 깜짝 놀랐다. 눈 깜짝 할 사이에 소파에 누워있던 아이가 사라진 것이다.

끄아악― 컥―!

그와중에도 비명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대, 대체 어떤 놈들이야?"

"놈들이 아니라 년이다."

"뭐?"

고개를 돌리자 흑발의 여성이 눈앞에 보였다.

키는 160 정도 되었을까? 아니, 더 작을 지도 몰랐다.

몸 전체에 딱 들어붙은 검은색 레깅스 복 같은 복장을 하고 있었다.

사내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자객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것은 작은 체구의 여자였던 것이다.

"뭐, 뭐야?"

"뭐긴 뭐야―"

쉬익―

허공을 가르며 흉터 사내의 눈가로 손가락이 날아왔다.

핑거―잽이었다.

헉!

사내는 헛바람을 집어 삼키며 고개를 뒤로 피했다.

그 순간, 퍽 하는 소리가 아래에서 들려왔다.

어느새 낭심에 여자의 발등이 박혀 있었다.

극심한 고통이 몸 전체로 올라왔다.

"끄으윽― 이…이 년!"

"어디서 이 년 저 년이야!"

퍼―어억!

류수정은 사정없이 사내의 목울대를 내질렀다.

사내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흥!"

"저기다. 막아!"

어느새 연기가 걷히고 사방이 보이기 시작했다.

속절없이 당했던 사내들은 기습을 한 적의 정체가 작은 체구의 여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가 막혔다.

하지만 현실이었다.

이미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는 여러 명의 동료들이 쓰러져 있었다.

심지어 그 중에는 자신들이 두목도 포함되어 있었다.

"형, 형님!"

손님들을 기다리기 위해 아래로 내려갔던 흑표는 소란스러운 소리에 다시 올라왔었다.

그런데 눈앞에 여자아이는 사라지고, 자신이 모시는 형님이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저 년을 죽여!"

흑표가 소리쳤다.

"흥, 날 죽이려는 사람이 네가 처음인 줄 아냐? 줄 서서 기다려!"

류수정은 뒤로 돌아 뛰었다.

하지만 이곳은 사방이 막혀 있는 곳이었다.

출구 쪽으로 달려가던 류수정의 앞을 어느새 사내들이 가로 막았다.

"이 년! 서라―"

하지만 류수정은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사내들을 향해 내달렸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갑자기 양손을 앞으로 뻗어 땅을 짚었다.

그리고 눈앞에 환상이 펼쳐졌다.

눈 깜짝할 사이 덤블링을 펼쳐 몸을 돌더니 사내들의 눈앞에서 허공을 향해 몸을 날렸다.

사내들의 머리 사이를 지나 어깨 위로 몸을 회전시키며 포위망을 뚫었다.

그뿐이 아니다.

조금 전 이 년이라고 외친 사내의 몸을 타고 넘으며 마지막 순간 양발을 뻗어서 등을 찼다.

퍼어억!

크―헉―!

외마디 비명소리와 함께 사내의 등을 찬 반동으로 몇 미터를 더 날아갔다.

류수정은 몸을 동그랗게 말아 땅 위를 구르더니 다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바이―바이!"

기가 막혀 입을 딱 벌리고 자신을 향해 멍하니 바라보는 조폭들을 뒤로 하고 뛰었다.

눈앞에 건물을 빠져나갈 수 있는 문짝이 달려 있지 않은 통로가 보였다.

몇 발만 더 가면 이곳을 빠져나갈 수 있었다.

"거기까지!"

류수정은 달리기를 멈출 수밖에 없었다.

눈앞에 인상이 딱딱하게 굳어 있는 사내가 총구를 자신을 향해 내밀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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