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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23화 (223/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23화

#223화

"손들어!"

사내의 입에서 묵직한 음성이 흘러나왔다.

총을 겨눈 숙련된 동작과 얼음처럼 냉철한 모습에는 조금의 빈틈도 느낄 수 없었다.

류수정은 할 수 없이 두 손을 들었다.

그때 통로 쪽에서 최요한이 걸어왔다.

국정원 요원 하나가 최요한을 겨누고 있었고, 아이는 다른 사내가 안고 있었다.

"넌 누구지?"

주변 머리가 하얗게 센 남자가 류수정에게 물었다.

다른 국정원 요원 세 명이 2, 30대로 보이는 반면, 사내는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다.

류수정은 사내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쓴 맛을 봐야 대답할 것 같군. 아이를 데려가!"

중년 사내의 말에 국정원 요원 중 아이를 안고 있던 사내가 계단으로 내려갔다.

―지금 진압해요!

류수정과 최요한의 귀에 박혀 있는 통신기로 신소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퉁― 투퉁!

시멘트 바닥 위로 동그란 원통이 굴러 들어왔다.

아직 유리창이 달려 있지 않은 뚫려 있는 창을 통해 들어 온 것이다.

콰―아앙!

원통이 터지며 굉음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굉음에 귀를 감싸 안았다.

휘―익!

이미 대비하고 있던 류수정이 재빨리 움직였다.

그녀의 앞발이 번개처럼 날아들어 자신을 겨누고 있던 사내의 총기를 허공으로 날렸다.

허공을 가로지른 발이 바닥에 닿기도 전에 류수정의 반대발이 국정원 요원의 복부를 날렸다.

퍼―억!

국정원 요원은 그대로 배를 감싸 안고 쓰러졌다.

그 사이 뚫려 있는 창구멍을 향해 완전무장한 작전 팀이 줄을 잡고 뛰어 들어왔다.

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모두 총을 버리고 투항하라!"

탕―! 탕―!

작전팀의 외치는 소리와 동시에 중년 사내가 그들을 향해 총을 쏘며 후퇴했다.

그 사이 요한도 총기로 자신을 겨누고 있던 국정원 사내를 급습했다.

요한은 사내의 총기를 바닥에 떨어뜨렸지만 국정원 사내는 만만치 않았다.

요한을 향해 매서운 펀치를 날렸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몇 번을 치고 받았다.

최요한도 모사드와 C.I.A 교관에게 직접 격투술을 훈련받았다.

하지만 최요한을 상대하는 요원이 더 숙련되고 한 수 위였다.

어느새 요한을 서브미션으로 잡아 바닥에 쳐박아 버렸다.

커―헉!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집어 던져진 요한의 입에서 고통스런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국정원 사내는 땅에 재빨리 떨어뜨린 권총을 주워 요한을 향해 겨누었다.

그리고 방아쇠를 당기려했다.

그때 류수정이 몸을 날려 바닥을 굴렀다.

온 몸을 동그랗게 말아 바닥을 굴러 국정원 사내의 발치로 접근했다.

휘리릭! 파―악!

환상처럼 접었던 몸을 펼친 류수정의 발이 총기와 함께 사내의 턱을 차올렸다.

퍼어억!

과자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턱이 부서지며 허공에 이빨과 피가 비산했다.

"흑거미, 요한 모두 괜찮나?"

"선배님?"

류수정이 완전무장에 얼굴에 여러 개의 열 영상 장비를 단 특수전 고글을 쓴 사내에게 물었다.

"나 이규철이다. 흑거미."

이규철은 류수정 보다 훨씬 윗 기수이며 707특임대의 전설적인 사내였다.

"저, 전 괜찮아요. 선배님."

"저도 괜찮습니다."

이미 장내의 조폭들은 굴비 엮이듯 작전팀에 의해 제압당해 결박당하고 있었다.

"아이는?"

―놈들이 데려갔어요. 빨리 쫓으세요.

통신기로 신소희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규철은 작전팀을 데리고 다시 옥상으로 뛰어 올라갔다.

류수정과 요한은 계단을 날 듯이 뛰어 내려가자 검은색 SUV가 코너를 돌아 문 앞에 정차했다.

"모두 빨리 타요!"

캐빈 박이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     *     *

회색 승용차가 코너를 쏜살같이 돌며 새벽 도로를 질주했다.

차 안에는 처음과 달리 잠든 아이를 제외하고 두 사람 밖에 없었다.

운전대를 잡은 30대 작전 요원이 중년 사내에게 물었다.

"대체 놈들의 정체가 뭘까요?"

"복장을 보니 미군 놈들 같았어."

"예? 그럼 미군이라고요?"

"틀림없어. 놈들 얼굴에 끼고 있는 특수전 고글은 아직 한국에는 보급 안 된 물품이야."

"……."

"델타포스나 네이비 씰에서 사용하는 장비다."

"그…그럼? 진짜 미군이라는 말씀입니까?"

"미군이 아니면 민간군사업체일 수도 있어."

"……!"

"어느 쪽이든 강형욱 판사가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니야."

"……."

"아무래도 우리가 벌집을 들쑤신 것 같다."

중년 사내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투투투투투―

허공에서 거대한 모터 소리가 들려왔다.

중년 사내가 창 밖으로 머리를 내밀고 보니 공중에서 헬기가 보였다.

"브…블랙 호크?"

미군 기지에나 가야 볼 수 있는 헬기가 자신들을 쫓아오고 있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조영기였지만 당혹스러웠다.

조영기는 국정원 해외 공작팀 소속으로 이미 20년 가까이 활약해왔다.

많은 작전을 수행했지만 국내에서 자신들이 블랙 호크에 쫓겨 다닐 줄은 몰랐다.

"달려!"

조 과장의 말에 운전대를 잡은 고상철은 엑셀을 밟았다.

순식간에 속도계의 바늘이 하늘로 치솟아 올랐다.

고상철의 두 눈에 독기가 어렸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조영기 과장을 비롯 자신들 네 명은 모두 해외 공작팀의 일원이었다.

이들이 지금 국내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그 누구도 몰라야 했다.

만일 외부에 정체가 발각된다면 국정원의 블랙요원들이 자신들을 제거하기 위해 올 것이다.

현장에서 저들에게 잡힌 두 명의 요원들의 운명도 마찬가지였다.

블랙요원들에게 죽고 싶지 않다면 스스로 탈출하던가 자신들이 구출할 때까지 입을 다물 것이다.

하지만 자신들 네 명이 모두 잡히거나 해서 정체가 외부에 노출되는 순간, 자신들은 죽을 운명이었다.

그러니 운전대를 잡은 손과 발에 힘이 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회색 승용차가 쏜살같이 도로 위를 달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헬기의 추적을 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베타 포인트에서 차를 갈아타겠습니다."

고상철의 말에 조영기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고층 건물들 사이로 피해!"

조영기의 말대로 고상철은 차량을 고층 빌딩들이 즐비한 서울의 중심지로 이동시키고 있었다.

그런데 회색 승용차가 고가 도로 아래를 통과할 때였다.

"……!"

고상철은 백미러를 힐끗 바라보앗다.

뒤에서 맹렬하게 달려오는 검은색 SUV 한 대가 보였다.

"차량 한대가 우릴 따라옵니다."

"따돌려!"

고상철은 고가도로 아래를 빠져나가자 말자 빌딩 숲 사이로 빠져나갔다.

뒤를 쫓아오던 헬기는 한순간 회색 승용차의 행적을 놓치고 빌딩 사이로 시야가 가려졌다.

하지만 문제는 뒤에서 쫓아오던 검은색 SUV였다.

자신이 핸들을 튼 방향을 그대로 목격하고 뒤를 쫓았다.

게다가 달려오는 속도가 범상치 않았다.

"개조 차량 같습니다."

고상철은 직진 도로에서는 승산이 없다고 판단했다.

눈 앞에 마침 백화점 주차장이 보였다.

"꼭 잡으십시오."

휘리릭!

핸들을 급히 돌려 주차장으로 돌입했다.

빙글빙글 돌아야하는 곳이라 속도를 줄일 수밖에 없고, 핸들링 솜씨가 중요했다.

고상철은 자신이 있었다.

해외 공작팀에서 고상철의 주요 임무 중 하나가 차량 운전이었다.

팀원을 도심에서 탈출시키는데 특화된 능력이 있었다.

회색 승용차가 주차장 도로를 따라 빙글빙글 돌며 위로 올라갔다.

"여기가 베타 포인트입니다."

"괜찮겠어?"

"금방 따라 잡을 수는 없을 겁니다."

고상철은 그만큼 자신이 있었다.

자신 이상으로 코너링을 빠르게 돌아야만 따라 잡을 것이다.

하지만 국내에 그 정도 운전 솜씨를 가지고 있는 작전요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고상철은 4층에 도착하자 말자 차량을 안으로 진입시켰다.

그리고 차량 서비스 센터로 들어갔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와 동시에 검은색 SUV과 4층으로 진입해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고상철의 두 눈이 믿기 어려운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설마 이렇게 빨리 뒤를 쫓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

'대체 얼마나 빠른 속도로 코너링을 한 거야?'

재빨리 철제 셔트를 내리려 했지만 이미 위치를 숨기기에는 늦었다.

고상철이 차에서 내려 셔트를 내리는 스위치를 눌렀다.

그 사이 조영기는 차에서 내려 검은색SUV를 향해 총을 갈겨 됐다.

탕―! 탕―!

"제길, 방탄 차량이야!"

총알이 팅겨나가는 것을 보고 조영기가 소리쳤다.

'젠장, 이젠 놀랍지도 않군.'

자신들의 차량을 추적하기 위해 미군의 특수전 헬기인 블랙 호크까지 동원하는 자들이다.

공사 중인 빌딩 안으로 난입해 들어온 자들의 장비도 델타포스나 네이비 씰 급 장비였다.

검은색으로 도색된 SUV차량이 방탄차량인 것은 이제 놀랍지도 않았다.

조영기 과장은 대체 자신들이 어떤 기관과 대립하고 있는건지 대충 짐작이 갔다.

'이놈들은 C.I.A다. 하지만 대체 왜?'

한국에서 이 정도의 병력과 장비를 동원할 수 있는 외국 기관은 C.I.A를 제외하고 생각할 수 없었다.

미군이 운용하는 블랙 호크만 봐도 짐작할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미국 첩보 기관인 C.I.A가 대체 왜 일개 판사의 딸이 납치된 사건에 개입하느냐는 것이다.

"과장님, 따라 오세요."

셔트가 내려가는 사이 고상철이 뒤로 달려가며 외쳤다.

조영기는 한 차례 더 총을 쏜 후 아이를 안고 뒤를 따랐다.

서비스 센터 점포에는 빠져나갈 다른 문이 있었다.

그르르르릉―

철제 셔트가 내려가며 서비스 센터 문이 닫혔다.

"그냥 돌진해서 박아버려!"

류수정이 눈을 빛내며 소리쳤다.

캐빈 박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엑셀을 밟았다.

"롸져―"

콰콰광!

거대한 철문을 향해 육중한 SUV가 그야말로 들이박았다.

철제 셔트가 말그대로 찢어 발겨졌다.

콰콰콰쾅― 끼이익!

검은색 SUV는 그대로 점포 안으로 돌진해 들어가 벽에 부딪히기 직전 움직임을 멈췄다.

캐빈 박이 기막힌 타이밍에 브레이크를 밟은 것이다.

차가 급속한 속도로 서면서 안에 앉아 있던 사람들의 몸이 크게 흔들렸다.

"빨리 쫒아가!"

캐빈 박이 소리쳤다.

류수정과 최요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차에서 내려 문으로 달렸다.

캐빈 박은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차를 뒤로 빼기 시작했다.

―꼭 구하라고!

캐빈 박은 어린 시절 복지센터에서 외국으로 보내진 입양아였다.

최요한 역시 고아원에서 자란 사람이었다.

그런 두 사람에게 아동 납치 사건은 있는 남의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러러렁―

차량을 뒤로 물린 후, 차량에 장착된 위치 추적 장치를 확인했다.

류수정과 최요한 두 사람은 납치범들을 쫓아서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최요한은 차량을 조정해 그들의 뒤를 따랐다.

"과장님, 놈들이 쫓아옵니다."

"다른 차량은 어디에 있지?"

"이젠 없습니다. 원래 거기서 조달해야 했습니다."

"방법이 없나?"

"1층으로 내려가십시오. 거기 차량이 한 대 주차되어 있는 걸 봤습니다."

고상철의 말에 조영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영기는 아이를 안고 달렸다.

탕―! 탕―!

등 뒤로 총알이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고상철이 뒤를 맡은 것이다.

"조심해!"

류수정이 소리쳤다.

아슬아슬하게 총알이 어깨 너머로 스치고 벽에 부딪혔다.

최요한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동안 다양한 훈련을 받아왔다.

하지만 현장에서 총알이 자신을 향해서 날아오는 것은 처음 경험한 일이었다.

"놈은 한명이야. 양동작전이다."

류수정의 말에 최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슴팍에서 권총을 꺼냈다.

묵직한 무게감이 손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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