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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228화 (228/301)

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28화

#228화

"손 기자님!"

"오셨군요. 아가씨."

서예리가 헐레벌떡 손 기자의 사무실로 들어왔다.

"여기 앉으시죠."

급히 뛰어 왔는지 서예리의 얼굴은 땀으로 뒤범벅되어 있었다.

"뭔가 마실 거라도 드릴까요?"

"시원한 거… 뭐든 주세요."

"마침 적당한 게 있네요."

손 기자는 냉장고에서 오렌지 주스를 꺼내 유리잔에 부어주었다.

서예지는 사양 않고 주스를 받아 입에 가져갔다.

"휴, 이미 알고 계신 것 같은데 두 분 다 징역형을 선고 받고 법정에서 바로 구속되셨습니다."

"그…그럴 수가?"

"아무래도 강혁 회장을 건든 것이 큰 실수였던 것 같아요."

"……."

손 기자의 말에 서예지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했다.

사실 미국에 있으면서 서예지는 자주 강혁을 만나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었다.

우연을 가장해서 강혁과 여러 차례 가벼운 만남을 가질 수 있었다.

그때마다 강혁은 서예지를 가볍게 응대해주곤 했다.

하지만 얼마 전부터는 서예지도 감히 강혁을 만나러 갈 수 없었다.

한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았기 때문이다.

대한일보를 시작으로 국내 언론들이 강혁을 현대판 이완용이라며 공격할 때는 어디로 숨어버리고 싶었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기 때문이다.

국내에 전화를 걸어 할아버지인 서성주와 큰아버지 서인태에게 항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저 웃으며 넌 아직 어려서 모른다는 말만 들었다.

그러면서도 강혁을 잘 만나고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데는 서예지로서도 할 말을 잊었다.

자신의 집안이 어떤 집안인지 모르지는 않았지만 이번 사태를 겪으며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인과응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하늘을 나는 새도 떨어뜨릴 것 같던 위세를 부리던 집안이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적어도 한국에서라면 대한일보가 가지는 위상은 절대적이었다.

대한민국 1등 언론.

한국에서 가장 빠른 정보를 입수하는 언론.

대통령도 만들어 낼 수 있는 신문.

한국을 움직이는 밤의 지배자.

좋은 말이든 나쁜 말이든 한 가지는 분명했다.

대한일보 사주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힘 말이다.

그런데 서예지는 눈앞에서 그 견고한 바벨탑이 무너지는 것을 목도했다.

세상이 망하지 않는 한 계속될 것 같았던 권세가 무너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걸까요?"

"수습을 해야지요."

"어떻게요?"

서예지의 말에 손 기자는 웃으며 말했다.

"정말 몰라서 그러시는 거예요?"

"……?"

"이런? 정말 모르는 모양이군요."

"뭔가 아시는 게 있군요. 손 기자님. 제게도 좀 알려주세요."

"하하, 이거 참. 사실은 제가 물어볼 판인데. 알겠습니다. 일단 제가 아는 거라도 말씀드리죠."

"……."

"사실은… 아가씨 아버님께서 대한일보 사장으로 취임하셨습니다."

"그…그럴 리가? 아버님은 신문사를 싫어하세요."

손 기자의 말에 서예리는 깜짝 놀랐다.

대한일보 사람들 중에 그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가씨 아버님은 신문 경영을 싫어하시는 게 아닙니다."

"……예?"

손 기자의 말에 서예리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신문사를 경영하는 방식을 싫어하신 거죠."

"……?"

"정말 모르는 모양이니 말씀드리죠. 사실 부군께서는 젊은 시절 꿈 많은 신문 학도였답니다."

"저희 아버지가요?"

"그럼요. 대학 시절에는 직접 대학 신문 편집자도 하셨죠."

"그런 애기 처음 들어요."

"이번에 한국에 가시면 물어보세요."

"그…그럴 게요."

"그러니, 아가씨는 걱정하실 게 없어요. 걱정은 우리가 해야죠."

"……?"

"못 들으셨나요? 아가씨 아버님은 그 동안 해 온 신문 경영 방식을 싫어하는 분이라는 거요."

"……!"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잘려 나갈 겁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들어오겠죠."

"그…그런 가요?"

서예지의 말에 손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인수 사장님이 무턱대고 사람을 자를 사람은 아니지만……."

"……?"

"사장님의 새 경영방식을 못 따라 올 사람들은 회사를 관둬야 할 겁니다."

"그…그럼?"

"예, 이제 새로운 대한일보가 탄생하게 될 겁니다."

손 기자의 말에 서예지의 얼굴에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하하, 보기 좋네요. 아가씨."

"저, 그만 가볼 게요."

"어퍼사이드 776빌딩으로 가보세요."

"예?"

"존 회장이 오늘 3시에 거기에 들릴 겁니다. 백 사장의 가게가 또 새로 오픈하거든요."

"고마워요. 손 기자님."

손 기자의 말에 서예리는 환히 웃으며 사무실 밖을 나갔다.

대한일보가 앞으로 새롭게 환골탈태 할 거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서예지는 그동안 강혁에게 미안했던 마음에 감히 그를 만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이 소식을 당장 강혁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가 자신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몰라도 이것만은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강혁을 만나 그 미소를 보고 싶었다.

마치 여동생을 보듯 웃어주었던 그 미소를 말이다.

*     *     *

"뭐라고? 태우가 부도 위기?"

김현중 대통령은 경제 부총리의 말을 듣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태우 그룹이 어떤 회사인가?

국내 재계 순위 2위에 올랐던 대기업이었다.

국내 4대 그룹의 일각을 유지하면 항상 2~3위를 다투는 회사가 아닌가?

태우 그룹의 자회사와 그곳에서 근무하는 인원만 해도 엄청난 수였다.

게다가 몇 년 전부터 세계 경영을 외치며 엄청난 수의 해외 지사를 새롭게 설립했던 회사다.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에 파견 나가 있는 태우 그룹 사원들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현지에서 채용한 직원들도 상당히 많았다.

태우 그룹의 총 고용인원은 물경 15만 명에 이르렀다.

계열사만 41개.

국외법인은 5대양 6대주에 걸쳐 모두 396개에 이르렀다.

그야말로 공룡 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회사가 바로 태우 그룹이었다.

그런데 이 엄청난 규모의 회사가 부도 직전이란다.

"대체 어쩌다가?"

"휴, 글쎄 말입니다. 게다가 부채 규모가 너무 커서 도저히 회생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회생이 불가하다는 경제 부총리의 말에 김 대통령의 안색이 변했다.

"어느 정도인데 회생이 불가능 하다는 겁니까?"

"대통령님, 그게…500억 정도 됩니다."

"500억? 그 정도라면… 아니 설…설마?"

"예, 맞습니다. 500억 달라입니다."

"……!"

환율이 미친 듯이 뛰어 오르던 시절이었다.

500억 달라를 원화로 환산하면 100조에 육박했다.

외환위기 이전 환율로 계산해도 50조를 훌쩍 넘어섰다.

골든 그룹의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로 환율이 내려갈 조짐이 보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엄청난 규모였다.

"하아, 대…대체 회사 경영을 어떻게 했기에 이런 엄청난 부채를 진 겁니까?"

"글쎄 말입니다. 김 회장, 그 사람 아무튼 너무 무모한 짓을 저질렀습니다."

대통령은 부총리의 말을 들으며 혀를 찼다.

"부채만 회사 자산의 거의 4배에 달하는군요."

"맞습니다. 게다가… 김 회장 이 사람이 이런 사실을 감추려고 분식회계를 저질렀더군요."

"그…그래요?"

"분식회계만 41조원이 넘습니다."

"……!"

분식 회계는 엄연한 범죄 행위였다.

"그럼 김 회장은?"

"해외 출장 중이라는데 아마도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

"이미 언론 쪽에 소문이 퍼지고 있습니다."

"으…으음. 큰일이군요."

한국 경제 전체에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올 대형 악재가 틀림없었다.

김현중 대통령은 고심에 잠겼다.

'휴, 그 사람은 대체 이런 사실을 어떻게 미리 알았을까?'

대통령은 마음속으로 강혁을 떠올렸다.

이미 오래 전 강혁이 자신에게 태우 그룹이 부도가 나게 될 것이란 예언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튼 신통하다니까?'

김 대통령은 혀를 내저었다.

처음 김 대통령이 강혁에게 태우 그룹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를 떠올렸다.

당시에는 아무리 그래도 태우가 무너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창 외환위기의 도중이었고, 골든 그룹의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저 진지하게 듣는 척했던 것이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로 닥치고 보니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니 클링튼이 그렇게 강 회장을 감싸고 돌 수밖에…….'

"태우를 인수할 회사를 찾아봅시다."

김 대통령이 무거운 얼굴로 말했다.

부총리는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내저었다.

"부채가 무려 500억 달라입니다. 인수할 회사가 있겠습니까?"

"도저히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회사들은 그렇다 치고, 괜찮은 회사도 있을 것 아닙니까?"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거라도 살려야죠."

"알겠습니다. 대통령님."

부실기업을 인수할 회사가 그리 쉽게 나타날 리는 만무했다.

하지만 그래도 태우 그룹에서 알짜 기업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부총리는 거기에 기대를 걸고, 대통령에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이제 채권단을 만나러 가야 했다.

부총리는 무거운 마음으로 청와대를 나섰다.

한고비를 넘기니 또 한고비가 다가온 느낌이었다.

태우 그룹 사태를 잘 넘기지 못한다면 한국 경제는 다시 한 번 큰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한 달 후. 청와대.

"아무래도 이 문제는 역시 골든 그룹에 기대를 걸어보는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역시 그렇죠?"

"하지만 그 분이 과연 회사를 인수하려고 할까요?"

"음… 회사 인수 대금을 더 줄여주고, 부채 상환도 연장하면 어떨까요?"

"아무래도 이 문제는 대통령님께서 강 회장에게 정식으로 부탁을 드려보는 것이 어떨까요?"

청와대 수석 비서관들과 경제 관료들이 태우 그룹 문제로 의논하고 있었다.

여러 가지 방안들이 검토되었지만 역시나 결론은 강혁과 골든 그룹이었다.

현재 한국에 그 정도로 큰 규모의 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기업은 없었다.

모두들 제 앞길을 모색하는데 바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외국 기업에 덜컥 싼 값에 회사를 넘기는 것도 국민들의 불만이 많았다.

그렇다면 적어도 같은 나라 사람인 강혁에게 회사를 넘기는 것이 가장 나은 선택이었다.

정치적으로도 가장 부담이 적은 방법이라 청와대 사람들은 대통령의 눈치만 봤다.

이들 중 그래도 강혁 회장과 가장 가까운 사람은 김 대통령이었기 때문이다.

"음, 알겠네. 내가 강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하도록 하지."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아니네. 국가의 경제가 풍전등화에 걸려 있는데 내가 아쉬운 소리 몇 마디 하는 게 뭔 문제겠는가?"

김 대통령은 각료들에게 그렇게 말하고 모두 자리를 물려 달라고 했다.

잠시 후, 부총리를 비롯 모든 비서관들과 경제 각료들이 회의장을 나갔다.

김 대통령은 강혁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하하, 강 회장. 오랜만입니다."

―예, 그렇네요. 오늘은 어쩐 일로 전화를 주셨습니까?

"그게 다른 게 아니라 태우 그룹 일로 전화를 했어요."

―……!

"아마 강 회장도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을 겁니다."

'드디어 때가 왔구나.'

강혁은 김 대통령의 전화에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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