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 사는 절대기억능력자 231화
231화
#61장 변절자들
"휴, 말이 안 나오는군."
김현중 대통령은 눈앞의 서류를 바라보며 참담함을 금치 못했다.
국정원 요원들이 불법으로 현직 판사의 딸을 납치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정황상 사실이라 판단되었다.
문제는 납치에 가담한 국정원 요원들이 모두 죽었다는 것이다.
아이를 구출하는 과정에서 사실 당한 요원들 외에 살아남은 자들이 꽤 있었다.
이들은 모두 국정원에 넘겨져 치료를 받은 후, 모종의 시설에 구금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취조해서 배후를 알아내기도 전에 모두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현재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조사 중이었지만 아무 것도 발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국정원 내에 이들을 죽인 자가 있는 것이 분명했지만 말이다.
비록 정권은 바뀌었지만 아직 이들은 변하지 않은 것이다.
내부자들을 속속들이 잡아내지 않는 한 국정원의 변화는 요원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대통령님."
"이 일이 어찌 자네 잘못이겠나?"
김현중 대통령은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국정원 원장 최길룡을 위로했다.
비록 명칭을 바꾸고 새롭게 탈바꿈하고 있는 국정원이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구시대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 많았다.
함께 갈 사람들과 함께 가지 못할 사람들을 솎아내는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번에 강 회장이 나서주지 않았다면 큰일이 날 뻔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 하지만 한 개인이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는 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최 원장이 우려 섞인 표정으로 김 대통령에게 말했다.
국정원 요원이 벌린 납치 사건을 강 회장이 해결해 냈다.
국정원 원장인 최길룡으로서는 안도하는 한편으로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무슨 말인지 알고 있네."
김현중 대통령은 국정원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히 틀린 말은 아니다.
지금은 정도에 벗어난 행동은 하지 않고 있지만 언제까지 그럴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를 제어할 적당한 명분이 부족했다.
"자네도 알고 있겠지만 실버 울프는 미국 정부와 특수 협력 관계를 가지고 있네."
"……."
"불법 행위를 했다는 명확한 증거가 없는 한에는 우리 쪽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깨보면 나오는 것이 있을 겁니다."
국정원 원장의 말에 대통령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섣불리 건드릴 일이 아니네."
"……."
"강 회장은 여러모로 우리에게 덕이 되는 인물이야. 괜히 적으로 돌아서게 만들 필요는 없지."
"알겠습니다."
"그보다 급선무는 우리 쪽의 변절자들을 속아내는 것이 먼저가 아니겠나?"
김 대통령의 말에 최 원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강 회장이 국내도 들어오면서 그놈들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비밀리에 움직였지만 강 회장 쪽에서 벌써 몇 명을 포착했더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김 대통령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강 회장이 먼저 저에게 제안한 일입니다."
"……?"
최 원장은 의아해하는 김 대통령에게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강 회장은 자신이 한국으로 오게 되면 국정원이나 국가 기관 내부의 끄나풀들이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더군요."
"으음."
"그 자들이 움직이게 되면 신분 확인 후 저희에게 넘기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쪽에서도 감시를 붙이는 것은 어떤가?"
김 대통령이 최 원장의 말에 깜짝 놀라며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
"우리 쪽에서 움직이게 되면 그들이 섣불리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재 국정원에서는 정말 믿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괜히 감시한다고 팀을 보내면 정보가 누설 될 수 있었다.
"음, 강 회장을 믿는 수밖에 없다는 말이군."
"지금으로서는 안타깝지만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흠."
최 원장의 말에 김 대통령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의 말처럼 지금으로서는 다른 길이 없어 보였다.
"어쩔 수 없지."
김 대통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 대통령은 사실 말은 안했지만 누구보다도 강혁을 신뢰하고 있었다.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힘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강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사욕을 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번 일만해도 그랬다.
그에게 딱히 득이 될 일도 아닌데 일개 판사의 딸이 납치되었다고 발 벗고 나서지 않았는가?
김 대통령은 강혁이 정도를 벗어난 일을 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번에도 자신의 위험을 무릅쓰고 국가 기관에 암약하는 변절자들을 잡아내려 하지 않는가?
만일 지난 납치 사건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이런 위험이 닥치지도 않았을 것이다.
김 대통령은 국가와 민족의 미래를 위해 살신성인하는 그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꼈다.
그래서 겉으로는 강혁이 가진 힘에 대해 우려를 표시하는 국정원 원장의 말에 공감했지만 속마음은 달랐다.
'강 회장은 신이 우리 민족에게 주신 큰 선물이야. 이런 시기에 강 회장 같은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강 회장에게는 매번 우리 정부가, 아니, 우리 민족이 큰 빚을 지는군."
김 대통령의 말에 국정원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대통령님."
강혁이 가진 힘에 대해 우려를 표하던 최 원장도 김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강혁이 아니라면 현 정부는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래 세월 힘을 키워 왔던 일진회.
현 정부가 추구하는 개혁에 가장 크게 저항하는 무리였다.
이들과의 싸움에서 강혁의 존재는 커다란 희망이 되고 있었다.
* * *
태우 그룹 회장실.
강혁은 늦은 저녁까지 힐튼 호텔 23층에 있는 회장실에서 숙고하고 있었다.
태우 그룹의 계열사인 태우 개발은 서비스 업종으로 호텔 경영을 하고 있었다.
태우 개발은 힐튼 호텔과 제휴하여 서울에 힐튼 호텔을 운영했다.
재미있는 것은 태우 그룹의 김 회장이 이곳 23층을 자신의 집무실로 사용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본사에서의 회의 후 강혁은 숙소로 잡은 힐튼 호텔로 돌아와 23층 집무실을 사용했다.
'음, 역시 전자, 중공업, 건설, 통신, 자동차, 금융은 그대로 가져가야겠군.'
마음속으로 대충의 얼개는 잡았지만 이대로는 인수 비용이 너무 컸다.
다행히 강혁의 고민을 정부에서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최대한 은행과 채권단을 설득하고 있는 중이었다.
강혁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자신이 유리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애가 타는 채권단이 시간이 지날수록 인수 비용을 더 줄여 줄 것이라 걸 알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거의 공짜나 다름없는 가격에 인수할 생각은 없었다.
강혁이 고심하는 지점도 거기에 있었다.
어느 정도 가격에 인수를 해야 할지 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인수 이후에도 들어갈 비용이 적지 않았다.
회사의 경쟁력을 제고 하고, 다시 수익을 얻으려면 상당한 비용의 지출이 예상되었기 때문이다.
"휴, 머리 아프군."
강혁은 혀를 내둘렀다.
♬♪??♪♬~
집무실 전화기가 울렸다.
아직 이곳 전화번호를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강혁이 전화기를 들자 낯익은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리나? 무슨 일이야?"
―회장님, 대통령께서 전화 통화를 원하시는데 어떻게 할까요?
"응? 청와대에서 무슨 일이지?"
―아뇨, 블루 하우스가 아니라 화이트 하우스에요.
"……!"
이리나의 말에 강혁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전화 연결해주세요."
―예, 회장님.
강혁은 클링튼 대통령이 무슨 일로 전화를 했는지 짐작이 갔다.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존 강입니다."
―존 강 회장. 이번엔 정말… 뭐라고 감사를 해야 할지 모르겠군.
강혁은 클링튼 대통령의 말에 빙긋이 미소를 지었다.
"별 말씀을 명예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강혁은 최승호와 함께 명예 국민증을 수여받은 바가 있었다.
명예 국민이란 국가에 큰 공헌을 한 외국인에게 수여되는 칭호이다.
강혁과 최승호 두 사람은 그래서 무비자로 미국에 머무를 수 있는 권한이 있었다.
―하하,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군 그래.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
―이번에 자네에게 대통령 자유 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네.
"……!"
대통령 자유 훈장은 국내외 민간인에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추서할 수 있는 훈장이다.
일반인에게 주는 훈장으로 미국 의회에서 수여하는 의회 명예 훈장과 동격의 훈장이었다.
강혁은 클링튼 대통령의 말에 크게 놀랐다.
"자유 훈장이라면?"
―맞아, 일반 시민이 받을 수 있는 최고 등급의 훈장이지.
"제게 그럴 자격이 있을지 모르겠군요."
강혁의 말에 클링튼이 크게 웃었다.
―무슨 소릴 하는 건가? 자네가 살린 우리 국민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가?
강혁은 클링튼의 말에 그저 입가에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그런데 정말 신통방통하군. 자네가 말한 대로 딱 그곳이었네.
"역시 그랬군요."
강혁은 클링튼에게 아프리카에 위치한 미국 대사관 두 곳이 동시에 공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곳을 공격할 계획을 가지고 있는 테러 단체에 대해 자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이번에 클링튼이 전화를 한 것은 강혁의 덕분에 테러를 사전에 성공적으로 막았기 때문이다.
―자네 말대로 공격을 계획한 곳은 알 카에다였네.
"오사마 빈 라덴."
―그래, 그 녀석이었지. 정말 괘씸한 녀석이야. 감히 우리 미국을 노리다니!
클링튼은 정말 화가 나 있었다.
―아주 조무래기라고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어.
"그렇겠지요."
클링튼의 말에 강혁은 속으로 웃었다.
'조무라기? 하하,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군.'
강혁은 회귀 전의 역사에서 9.11테러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가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활동을 했는지 대략 알고 있었다.
1998년. 알카에다는 아프리카에 있는 미국 대사관 두 군데를 공격했었다.
케냐 나이로비와 탄자니아 다르에스살람의 미 대사관이었다.
회귀 전 역사에서는 이 두 대사관에 같은 날 4분 간격으로 차량을 이용한 폭탄 테러가 자행되었다.
나이로비에서 213명, 다르에스살람에서 13명 등 총 226명이 숨졌다.
차량이 대사관 건물에 돌진해 폭발을 일으켰는데 대사관 건물은 일부만 무너졌었다.
하지만 폭발의 여파로 인근 빌딩이 완전히 붕괴해 사망자가 많았다.
두 테러로 인한 부상자는 4000여 명에 달했다.
이 일로 인해 미국 전역이 큰 충격에 빠졌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강혁의 제보로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 다행히 막을 수 있었던 것이다.
―C.I.A의 분석에 따르면 사전에 막지 못했다면 엄청난 피해를 입었을 거라고 하더군.
"그건 정말 다행이군요."
클링튼과의 전화를 끊은 후, 강혁은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